[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6]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③ 논란의 종착역... '비싼 돌봄'과 '값싼 돌봄' 의 프레임을 벗어나야

최저임금 논쟁의 법적·윤리적 지뢰밭 고가치 돌봄 경제를 위한 청사진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vs '그렇지 않은 사회' 대한민국의 최종 선택

2025-09-03     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6]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③ 논란의 종착역... '비싼 돌봄'과 '값싼 돌봄' 의 프레임을 벗어나야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 논의는 단순한 정책 토론을 넘어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둘러싼 법적·윤리적 논쟁부터 이주노동자의 인권,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부재에 이르기까지, 이 이슈는 우리 사회가 노동, 인권, 평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 논쟁… 법적·윤리적 지뢰밭

논쟁의 가장 폭발적인 핵은 단연 '최저임금 차등 적용' 문제다. 이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가치관의 충돌 지점이다.

찬성 측 논리: 지지자들은 가계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한국의 돌봄 비용이 홍콩, 대만에 비해 4배 이상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합리적 비용'의 돌봄 서비스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행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라고 본다. 노동자의 출신 국가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의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반대 측 논리: 노동계와 인권 단체는 이를 명백한 '인종차별'로 규정한다. 국적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것은 ILO의 차별금지 협약(제111호)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며 ,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저임금 외국인력 도입이 결국 돌봄 분야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촉발할 것이며, 이는 돌봄 노동에 대한 이중의 차별—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돌봄 노동 자체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국제 노예상'을 자처하는 것과 다름없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격한 비판까지 나온다.

논쟁의 법적 핵심에는 근로기준법 제11조 '가사사용인 적용 제외' 조항 있다. 조항은 가사노동자를 노동법의 핵심적인 보호(최저임금, 근로시간 등)에서 배제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법적 유물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적 계약' 모델은 바로 법적 허점을 이용하여 최저임금 이하의 노동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반면, 반대 측은 조항의 즉각적인 폐기와 ILO의 '가사노동자 괜찮은 일자리 협약(제189호)' 비준을 통해, 돌봄을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는 공식적인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최저임금 논쟁은 단순히 임금 수준을 정하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돌봄 노동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투쟁인 셈다.

착취와 불안정성

저비용 모델이 초래할 '인간의 비용'은 심각하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현행 고용허가제(EPS) 하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제한되어 부당한 처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미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높은 비율로 언어폭력, 임금 체불, 열악한 주거 환경 등 인권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

정부가 제안하는 '사적 계약' 모델은 이러한 위험을 더욱 증폭시킨다. 외부의 감시로부터 고립된 가정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착취와 학대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의 체류 자격이 고용 관계에 종속되어 있을 경우,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거나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을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와 합의의 부재

중차대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사회적 합의의 부재'다. 정부는 노동계, 여성계, 인권 단체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실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연구기관 내부에서조차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민정책연구원의 장주영 연구위원이나 보건사회연구원의 김유휘 연구위원과 같은 전문가들은 정책 추진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 부족, 돌봄의 관계적 특성에 대한 몰이해, 국내 노동 시장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논의에서 정작 돌봄 서비스의 최종 수혜자인 '노인'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은 오직 '비용'과 '인력 수급'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매몰되어, 돌봄을 받는 이들이 어떤 품질의 서비스를 원하는지, 문화와 언어가 다른 돌봄 제공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와 같은 인간적인 차원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의 부재는 정부가 이 문제를 노동 공급과 가격이라는 단순한 기술관료적 방정식으로 접근한 필연적인 결과다. 돌봄은 신뢰, 존엄, 인간관계라는 깊은 가치를 담고 있는 복합적인 사회적 이슈다.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속도와 효율성만을 앞세운 정책 추진은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뿐,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

고가치 돌봄 경제를 위한 청사진

저비용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돌봄 비용을 낮출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질 높고 지속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는 돌봄 경제에 대한 투자를 단순한 사회적 비용이 아니라, 공중 보건, 성 평등, 경제 안정을 위한 핵심적인 사회적 투자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공성의 핵심 강화

한국의 돌봄 시장은 영세한 민간 기관들이 난립하며 저가 경쟁을 벌이는, 파편화된 시장화 구조에 놓여 있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이 시장의 기준을 제시하는 '앵커(anchor)' 역할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은 '사회서비스원(Social Service Agency)'의 기능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직접 돌봄 노동자를 고용하여 안정적인 일자리, 적정한 임금, 체계적인 교육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 민간 기관들이 따라야 할 '모범 기준(gold standard)'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민간 제공자들이 더 이상 비용 절감만으로 경쟁할 수 없게 만들고, 서비스의 질과 노동 조건으로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시장 신호가 된다. 이를 위해 현재 시·도 단위에 임의로 설치된 사회서비스원을 시·군·구 단위까지 의무적으로 설립하도록 법제화하고, 안정적인 국고 지원을 통해 운영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시급하다. 강력한 공공 부문은 저비용 경쟁의 악순환을 끊고, 시장 전체를 상향 평준화시키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전체 돌봄 인력을 전문화

저비용의 함정을 탈출하기 위한 또 다른 핵심 전략은 내국인과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돌봄 노동자를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임금 체계 개혁

최저임금에 의존하는 현재의 임금 구조를 넘어, 경력과 숙련도, 전문성을 보상하는 표준화된 직무급제 임금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경력 개발 경로 구축

단순 요양보호사에서 시작하여 사회복지사, 시설 관리자, 전문 사례관리자 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명확한 '경력 사다리(career ladder)'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유능한 인재들이 돌봄 분야에 머무르며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안전한 노동 환경 조성

돌봄 노동자들이 빈번하게 겪는 언어폭력, 성희롱, 과도한 육체적 부담, 감정적 소진 등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정기적인 심리 상담 지원, 안전사고 예방 교육, 부당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 구제 절차 등을 마련하여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권리에 기반한 이주 정책

만약 외국인 인력이 해결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면, 그들의 통합은 반드시 차별이 아닌 평등의 원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대만의 '분리' 모델이 아닌 일본의 '통합' 모델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별적 법제 폐지

'가사사용인 적용 제외'와 같은 차별적인 법 조항을 폐지하고, 모든 돌봄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

사회 통합 지원

단순히 노동력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 문화 적응 프로그램, 법률 및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노동권의 완전한 보장

사업장 이동의 자유,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의 자유 등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돌봄 노동의 질을 담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며, 지속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정책 제안들의 기저에는 중요한 통찰이 깔려 있다.

첫째, 잘 설계된 공공 투자는 민간 시장 전체를 '높은 길(high road)'로 이끄는 파급 효과를 낳는다. 강력한 공공 부문이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세우면, 민간 부문도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저비용 모델이 유발하는 '바닥을 향한 경주'와 정반대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둘째, 돌봄 노동자의 권리와 돌봄 수혜자의 권리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운명 공동체다. 현재의 논쟁은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야만 가계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착취당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노동자는 결코 수혜자가 필요로 하는 안정적이고 공감 능력 높은 양질의 돌봄을 제공할 수 없다. 높은 이직률과 소진된 노동력은 곧바로 서비스 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수혜자를 위한 최상의 서비스 품질에 투자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일치한다.

돌봄을 선택하는 미래를 향하여

대한민국은 돌봄 경제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저비용의 함정'은 피할 수 없는 경제적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내리는 정책적 '선택'의 결과다. 저임금 이주노동력에 의존하는 분리된 시장을 만드는 길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의 유혹을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돌봄의 질, 노동의 존엄성, 그리고 한국 사회의 통합성에 깊은 상처를 남길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다.

대안은 돌봄 경제를 21세기 사회의 필수적인 인프라로 재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공 투자를 통해 시스템의 중심을 잡고, 모든 돌봄 노동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며, 이주민을 차별이 아닌 평등의 원칙 위에서 통합하는 길은 더 어렵고 더 많은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 길만이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이며, 품위 있는 돌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회복력, 성 평등의 실현, 그리고 모든 시민의 안녕을 위한 근본적인 투자다.

결국 우리 앞의 선택은 '비싼 돌봄'과 '값싼 돌봄'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사이의 선택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