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기념 특집]트럼프 관세전쟁 진단

보호무역의 부활과 세계 경제의 지각변동

2025-03-02     이재훈 기자

[CEONEWS=이재훈 기자] 트럼프의 귀환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의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 세계 경제는 그의 관세 폭탄 예고에 또다시 요동치며 지각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식 관세 정책은 지난 임기 동안 전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들었다. 이제 돌아온 트럼프는 한층 대담한 보호무역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이며, 글로벌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유무역에 기대온 나라들에게는 냉혹한 현실이다. 결국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그의 구호 앞에 한국을 비롯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또다시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한국 산업 3대 축의 위기 '철강, 자동차, 반도체'

한국 경제의 3대 주력 산업인 철강·자동차·반도체가 트럼프 관세의 집중 포격을 받고 있다. 세 산업 모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있어 생명줄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칼날은 이들 핵심 산업의 급소를 정통으로 겨냥하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엔진들의 경고등이 일제히 켜진 셈이다.

철강

먼저 철강 산업을 보자.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다시 2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철강 업체들은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미 중국발 공급과잉과 가격 인하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여기에 미 관세 장벽까지 부활하며 수출길이 더욱 좁아졌다. 한때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담판을 통해 철강 쿼터(수출할당)를 얻어내며 급한 불을 껐지만, 이번 관세 부활로 그런 협상 효과도 빛이 바랬다. 업계는 부랴부랴 내수 시장 강화와 동남아 등 대체 수출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특수강 생산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미국 시장을 단기간에 메우기엔 역부족이라는 냉엄한 평가가 나온다. 25%라는 관세 장벽은 기술력과 노력만으로는 넘기 힘든 높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자동차 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 위협에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를 매길 경우, 국내 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들의 가격 경쟁력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생산 전략을 전면 재편하고 있다. 이미 앨라배마·조지아 등 미국 현지 공장에 수조 원대 투자를 단행하며 ‘Made in America’ 카드를 꺼내 들었다. 관세 폭탄을 피해 미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과감한 현지 생산 확대와 부품 공급망의 현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도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될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고 있다. 물론 모든 차종을 해외에서 만들 수는 없어 남는 국내 생산 물량은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자동차 업계는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 시장 판도를 고려한 생산 재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반도체

반도체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주로 제조업 제품을 겨냥하지만,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놓인 반도체 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은 안보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 수출을 막고 한국 등 동맹국의 협조를 압박하고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대 시장인 중국과 핵심 동맹국 미국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까지 겨냥해 추가 관세나 제재 카드를 꺼낸다면 한국산 반도체 공급망은 큰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이미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와 중국의 견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세계의 공장’ 중국을 떠나라는 압력과 미국 내 생산 투자를 요구하는 신냉전식 선택의 강요 속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는 어느 한쪽도 놓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와 공급망 재편

이러한 트럼프발 보호무역 충격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 전체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관세 폭탄과 이에 따른 보복 조치로 무역 둔화를 겪으면, 투자 위축과 소비 침체로 이어져 전반적인 경기 하강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관세 부활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증시는 곤두박질쳤고, 달러화 강세와 신흥국 통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며 환율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위험을 피하려는 투자자들이 몰리며 금 가격과 미 국채 가격이 뛰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 한국을 비롯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증시 역시 눈에 띄게 흔들리며, 무역분쟁이 현실화될 경우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 속에서 기업과 투자자 모두 위험 관리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에 세계 경제 블록화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도 세계 경제 지형을 바꾸고 있다. 두 강대국은 기술과 무역을 무기로 패권 다툼을 벌이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연대해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중국 밖으로 재구성하는 탈중국 압박에 나섰다. 중국 역시 핵심 산업의 자급자족과 대체 시장 확보로 맞서면서 세계 경제는 새로운 블록화 조짐을 보인다. 그 여파로 다국적 기업들은 생산과 조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오랫동안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을 갖춘 중국에 의존해온 제조업체들은 생산 거점을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으로 옮기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핵심 부품을 복수의 국가에서 조달하고, 생산 공장을 여러 지역에 분산시키며 리스크 분산에 나섰다. 물론 이러한 공급망 재편은 단기적으로 비효율과 비용 상승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무역 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진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빅뱅이 진행되는 가운데, 변화를 읽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살아남을 방법은?

그렇다면 보호무역의 한복판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답은 냉정하지만 분명하다. 외교, 혁신, 글로벌화 세 가지 축으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뿐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자구노력이 포함된다. 생존을 위한 전략을 하나씩 짚어보자.

외교채널 총동원해 협상카드 마련

첫째, 외교적 협상력 강화가 시급하다. 한국이 동맹국이라고 해서 미국이 관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난 관세 전쟁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결국 우리의 이익은 우리가 챙겨야 한다. 정부는 모든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관세 면제나 인하를 이끌어낼 협상 카드 마련에 나서야 한다. 안보 동맹을 내세워 “우리를 때리면 너희도 손해”임을 설득하고, 필요한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같은 다자 전략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기업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전직 미 행정부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하고 미국 정·재계 인맥을 동원하는 등 발빠른 개별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미국 현지 공장 준공식에 트럼프를 초청하는 방안을 거론하는 등 아첨도 불사하는 모양새다. 결국 정부와 민간이 함께 움직여 워싱턴을 상대로 유리한 거래를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은 “실리 외교”로 국익을 사수해야 할 때다.

대체 불가한 산업구조 고도화 박차

둘째, 산업 구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언제까지 값싼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전략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관세 장벽을 뚫으려면 남들도 만드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핵심 제품을 쥐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기업들은 기술 혁신과 제품 고급화로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예를 들어 철강업계는 건설용 철근처럼 어디서나 만드는 품목에 머물지 말고, 항공우주·방산 등에 쓰이는 초고강도 특수강처럼 미국이 쉽게 제재하기 어려운 필수 소재 공급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도 내연기관차 수출에 안주했다간 미래가 없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배터리 생태계까지 장악한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함부로 관세를 매기기 어려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반도체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시스템반도체, AI칩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한국 칩 없이는 글로벌 IT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결국 남들이 따라오기 힘든 혁신 역량을 갖춘 기업만이 보호무역의 칼바람을 비껴갈 수 있다.

현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대

셋째,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대에 나서야 한다. 높은 관세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나라 안에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미국 남부에 자동차 공장, 동남아에 전자제품 공장 등을 세우며 생산기지를 다변화해왔다. 앞으로 이 움직임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 ‘메이드 인 USA’ 제품으로 미국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동시에 유럽·인도 등 각 시장별로 현지 생산 비중을 높여 관세 회피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이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각국의 고용과 여론까지 고려한 현명한 현지화 전략이다. 물론 해외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 데는 막대한 투자와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생존 비용이라 생각하고 감내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생산 거점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면 한 곳이 막혀도 다른 채널로 버틸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 현대차 등은 미국과 동남아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다각화된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한 기업만이 관세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보호무역 시대 관세전쟁에서 생존해야

트럼프의 관세 회귀는 한국 기업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관성대로 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보호무역 시대에는 정부의 지원이나 시장의 낙관에 기대기보다 기업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위기 상황이야말로 체질 개선과 사업 재편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외교·혁신·글로벌화 전략을 말이 아닌 실행으로 옮기는 기업만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 관세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미래의 왕좌를 차지한다. CEONEWS의 냉철한 조언처럼, “관세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