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주 4~4.5일제 도입 현황과 확산 전망
‘워라밸’이 몰고온 노동시간 단축 1953년 주 6일제로 시작된 법정 노동시간, 주 5일제에 이어 주 4~4.5일제로 갈까?
[CEONEWS=김병조 기자] 1953년 근로기준법을 통해 주 6일제(주 48시간)로 시작된 법정 노동시간이 주 5일제(주 40시간)를 거쳐 주 4~4.5일제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워라밸’ 문화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재 우리나라의 주 4~4.5일제 도입 현황과 확산 가능성을 전망해본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
우리나라의 법정 노동시간이 처음 정해진 것은 1953년부터다. 당시 정부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시간은 주 6일제였다. 하루 8시간, 주 48시간 일하도록 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1960년대 경제 성장기에는 하루 8시간 근무로는 부족해 초과 근무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에 따라 장시간 근로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고,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거세지면서 정부는 1989년 주 44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을 줄였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재차 부각한 시점은 2000년 김대중 정부가 주 40시간(주 5일제) 도입을 공식화하면서부터다.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근로자의 목소리와 경영 타격을 우려한 재계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섰다. 나라 전체가 3년 넘게 홍역을 치른 뒤에야 주 5일제의 근거가 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주 5일제 추진의 근거를 마련했지만,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7년여에 걸쳐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갔다. 사회 전반에 주 5일 혁명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4년 금융·공공 부문과 1,000명 이상 사업체에 시범적으로 토요 휴무제를 실시했다. 이듬해부터는 학교를 대상으로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을 휴일로 지정해 이른바 ‘놀토’를 만들었다. 2011년까지는 2·4주 격주로 휴일을 늘렸고 2012년 들어서 토요 휴무제는 매주 토요일로 확산됐다.
도입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여가 지날 무렵 주 5일제는 표준으로 자리 잡아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근로시간은 2000년 2,512시간에 달했으나 2010년 2,082시간으로 줄었다. 주 5일제를 통해 근로자 개인은 일주일에 6시간가량 여유 시간을 추가로 얻게 된 것이다.
토요일이 휴일로 추가되면서 직장 문화는 물론 사회 풍속도 역시 크게 달라졌다. 금요일 밤에 보통 많이 이뤄졌던 회식은 목요일로 하루 앞당겨졌고 젊은 직장인들은 ‘도깨비 투어’를 이용해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2박3일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다만 경영계의 우려대로 기업의 추가 부담은 현실화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4~2009년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신규 고용률은 2.28%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간당 임금을 상승시켜 경영 부담을 가중시킨 탓으로 분석됐다.
주 4~4.5일제 도입 현황
국내에서는 IT·콘텐츠 업종을 중심으로 주 4일 또는 4.5일 근무제가 속속 도입·실험되고 있다. SK그룹 계열사는 SK와 SK수펙스추구협의회가 매달 2회 금요일에 휴무하는 ‘Happy Friday’ 제도를 운용하며, SK텔레콤은 격주 금요 휴무를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부터 매달 셋째 주 금요일에 쉬는 방식의 부분적 주4일제를 적용했다.
CJ그룹의 콘텐츠 계열사인 CJ ENM은 2월부터 월 2회 금요일을 업무에서 제외하고 외부 활동을 허용하는 형태로 주 4일제에 준하는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정유·철강·자동차 등 24시간 조업이 필요한 제조업체에서는 아직 4일제 도입 사례가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 외에도 국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부터 주 32시간(주 5일 중 월요일 오후 1시 출근) 근무제를 시행 중이며, 토스(비바리퍼블리카)는 주 40시간 근무 후 금요일 오후 2시 퇴근하는 ‘얼리 프라이데이’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어때컴퍼니는 2017년부터 월요일 오후 출근으로 구성된 주 4.5일제를 운영 중이며, 카카오게임즈는 2018년 7월부터 격주 금요일 휴무제를 실시했다. IT 교육기업 휴넷도 주 4일제를 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부터 정규직(생산직 제외) 직원에게 매월 급여일이 포함된 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하는 ‘월 1회 금요 휴무제’를 도입했다. 삼성은 이를 통해 근무 시간은 40시간대로 유지하되 직원에게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워라밸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
이처럼 주 4~4.5일제 도입 기업은 대체로 업무 효율성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이미 정착돼 있는 곳들이다. 실제로 주 4.5일이나 4일제를 선제 도입한 기업들은 애초부터 성과 중심·효율성 중심의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친환경 소재 스타트업 뉴라이즌은 2019년 창업 때부터 전 직원 주 4일(월·화 출근, 수~금 중 2일 자유선택)을 적용했고, 2023년부터는 출퇴근 시간을 자율화하며 업무 효율을 끌어올렸다. 이 결과 직원 만족도뿐 아니라 연매출이 3년 전보다 80%나 증가했다.
중견 제조업체인 코아드는 2019년 국내 제조업체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했는데, 사측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회사”를 목표로 근무 시간 단축 후 직원 만족과 매출이 동반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도입 격차
그러나 이러한 도입 사례는 주로 자금력과 조직 융통성이 큰 대기업·중견기업이나 일부 스타트업에 한정되는 모습이다.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유연근무제 활용률 자체가 매우 낮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탄력근로제 도입률은 전체 사업장에서 4.1%에 불과하며, 300인 이상 대기업은 40.6%가 도입했으나 100인 미만 중소기업은 4.0%에 머물렀다.
기업연 관계자들은 “수십만 개에 이르는 기업 전체에 확대하면 활용률이 극히 낮아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경총 측도 “대기업은 해외생산 확대 등 대응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주 4.5일 도입 시 연장근로수당 부담만 늘어날 뿐”이라며 사실상 수혜는 일부 대기업에 국한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도입 여부는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경제·사회적 평가
경제·사회적 측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긍정적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OECD 평균(약 1742시간)보다 여전히 긴(2023년 기준 약 1872시간) 한국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은 지속되고 있다. 실제 해외 연구자들은 주 4일제 도입이 업무 동기 부여와 워라밸 제고,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내 사례에서도 탄력적 근무와 작업공정 혁신을 병행하면 근로시간을 줄여도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상승한 사례가 보고된다. 반면 부정적 평가도 많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인건비 부담이 늘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앞서 도입했던 일본 모델에서 실효성 논란이 있었으며, 포괄임금제 등의 제도 개선 없이 근로시간만 줄이면 임금 삭감 등으로 노사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일부 업종(물류·유통·요양 등)과 직무(생산직 교대근무 등)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경영계는 “국가 지원 없이 비용부담을 떠넘기면 중소기업·자영업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경계한다.
사회적 맥락으로는 ‘저출산·고령화 위기’ 해법의 하나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육아·가사 시간이 확보되어 출산율 개선과 청년층 고용 여건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실제로 김진우 경기경총 상임이사는 “근로시간 축소는 일·생활균형 추구와 노동력 수급 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일자리를 늘리려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숙명여대 박우람 교수는 “주 4.5일제가 임금 삭감·기업 폐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동자 1인당 산출량 증가가 병행돼야 한다”며 점진적 도입과 기업·근로자 인식 전환을 강조했다.
기업 전략 및 조직문화 대응
주 4.5일제를 대비해 기업들은 생산성 저하 없이 워라밸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성과 중심 문화와 유연근무제를 결합할 것을 제언한다. 실제 주 4~4.5일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이미 성과 기반의 평가체계를 갖춘 곳이 많았다. 예컨대 뉴라이즌 CEO는 “근무 시간보다 업무 성과에 집중하는 문화가 확립되자 직원들의 자율성과 몰입도가 높아졌다”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리더십도 결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조직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수평적·자율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연근무제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뉴라이즌은 10시 출근·17시 퇴근 선택 근무제를 시행하며 생산성과 만족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마찬가지로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 등의 유연근무를 확대해 분산근무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도 재구성해야 한다. 업무 목표·성과를 상시 공유하고 일일 보고체계(데일리 스탠드업) 등을 통해 업무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관리한다. 이와 함께 근로시간 저축계좌나 탄력근로제를 도입해 사실상의 장시간 노사를 방지할 수 있다. 숙명여대 박우람 교수는 “성과보상을 명확히 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와 같은 시스템으로 장시간 노동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휴가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거나, 휴가를 더 쓰는 대신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등 다양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휴가 사용을 장려하고 휴가 일수를 크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연차제도를 개편하면 주 4.5일제 도입 시 부족해지는 휴식 시간을 보완할 수 있다.
정치·입법 동향
주 4.5일제를 둘러싼 정치권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 3월 ‘주 4.5일제 확산법(과로사 예방 및 근로시간 단축 지원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2025년 대선 공약으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제시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 발의 법안은 단순히 법정 시간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근로시간을 줄이는 기업에 대해 국가·지자체가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하는 인센티브 법안이다. 이재명 후보는 “주 4.5일제 도입 기업을 확실히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임금이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민주당은 주 40시간을 36시간으로 단계적으로 낮추면서도 임금 삭감 없는 단축을 추진하는 방안을 내걸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간 주 4.5일제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면서도 법정 근로시간(주40시간)은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한 주 4.5일제를 적극 추진하고, 주 52시간 규제는 폐지하겠다며 월~목 1시간 추가 근무 후 금요일 4시간 근무 형태(울산 중구 모델)를 예로 들었다. 즉, 근로시간 총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금요일 단축 출근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과 달리 근로시간을 줄여 급여가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라며 일방 감축에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안은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 없는 4.5일제”로 평가되며, 40시간제 유지·52시간제 폐지 추진에 방점이 찍혔다.
정부 차원의 공식 지침은 아직 미흡하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논의에서 유연근무제 확대를 강조해 왔고, 지자체인 경기도는 2025년부터 경기도 내 50개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이 사업에서 감축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보전하고, 업무 개선 컨설팅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국회에서는 부처별 태스크포스나 공청회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경기도가 주최한 공청회에서는 현장 전문가들이 “대기업 중심으로 추진하되 뿌리기업·고생산성 기업을 우선 육성하고, 중소기업 지원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사단체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국노총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논의되고 있다”며 법·제도적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사용자 측은 “대다수 중소기업은 현 상황에서 주4.5일제 도입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결론 및 전망
현재 국내 주 4.5일제 도입은 일부 선도 기업·지자체 단위 시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높아지며 제도 도입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확산 가능성은 정부·지자체 지원, 노사 합의, 업종·기업 유형별 맞춤 설계에 달려 있다. 경총 김진우 상임이사가 지적한 것처럼 “대기업은 해외 대응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연장수당 부담이 커질 것”이므로, 기업 지원 대책과 탄력근로 활용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또한, 박우람 교수의 지적대로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보전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 관건이다. 향후 주 4.5일제 확대는 생산성 혁신, 조직문화 변화, 유연근무제 확산 등과 결부되어야 경제·사회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