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국 방위산업 심층 분석
미군 철수를 계기로 시작된 방위산업 이젠 자주국방 넘어 수출 효자산업으로 우뚝
[CEONEWS=김병조 기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전쟁의 양상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현대전은 기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국의 방위산업 현황과 경쟁력, 주요 방산 업체와 생산 무기 등을 심층 분석한다.
방위산업 개요 및 현황
한국 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10위 수준 2) 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방위산업도 한국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할 유망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방위산업은 국토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군수품을 생산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총기, 전차, 전투기, 군사 위성, 통신 장비 등의 군수품 생산을 담당하는 산업으로, 최근 들어 일자리와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수출 유망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K팝, K드라마처럼 K방산으로 불리고 있다.
외국 언론들도 한국의 방위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CNN은 한국이 ‘방위산업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고 보도했고, 미국 포브스(Forbes)는 “한국이 조용히 세계 최대 무기 공급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영국의 로이터(Reuters)도 “한국이 방위산업의 주력을 내수에서 수출로 전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의 방위산업 육성 전략과 무기 수출 동향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한국의 방위산업이 발전한 배경 – 1971년 주한미군 2만명 철수가 계기
한국의 방위산업이 발전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남북으로 분단된 이래 남한과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이어 오고 있다. 우리나라 만 18세 이상 남성에게는 일정 기간 군 복무를 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가 주어진다. 남북 군사적 대립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자국을 스스로 지키는 자주국방을 이루는 일은 항상 중요한 과제였다.
자주국방을 목표로 한국 정부가 방위산업을 육성하게 된 계기는, 1971년에 있었던 주한 미군 약 2만 명의 철수였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주한 미군이 갑작스럽게 철수하자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 이때부터 정부는 자주국방을 목표로 고도화된 무기의 개발과 생산에 노력을 집중하게 된다. 정부 주도로 중화학공업 육성이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무기의 일종인 중화기를 생산하려면 중화학공업의 시설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국 방위산업이 고도화된 것은 ‘불곰사업’과도 연관이 있다. 불곰사업은 1991년 한국 정부가 소련(현 러시아)에 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한 경제 협력 차관의 일부를 러시아 무기로 대신 받기로 한 국가사업을 의미한다. 최신 무기는 수출을 했다가 다른 나라로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로 수출이 통제되는 편이다. 이로 인해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국가도 많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최신 무기와 기술을 확보한 것이 우리나라 방위산업 발전에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방위산업의 강점 - 가격 경쟁력, 빠른 공급 능력
한국의 무기는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2~2016년에 한국이 수출한 무기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비중이 2017~2021년에는 2.8%로 상승했고, 이로써 한국은 세계 8위 무기 수출국 위치에 올랐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의 무기 수출액은 177% 증가했는데, 이는 세계 상위 25개 무기 수출국 중 가장 빠른 증가세다.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액은 최근 10년간 연간 20억~30억 달러에 머물다가 2021년 약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로 급증했다. 과거 아시아와 북미 중심이던 한국 방위산업의 수출 시장은 최근 중동, 유럽, 중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수출 무기도 과거의 탄약, 함정 중심에서 전투기, 자주포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 무기의 가장 큰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세계에서 성능이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독일 자주포와 비교할 때, 비슷한 성능의 한국 자주포는 1문당 가격이 독일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 경쟁력에 힘입어 한국 자주포는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69%를 점유하고 있다. 비슷한 성능의 전차를 비교할 때도, 한국 전차의 1대당 가격은 독일 전차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무기의 또 다른 장점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공급 능력이 빠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은 폴란드와 2022년 7월에 대규모로 계약한 무기의 물량 중 1차분인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8문을 4개월 만에 납품했다. 무기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문에서 납품까지 통상 수년이 걸리는 주요 무기 수출국의 공급 능력과 비교할 때 매우 빠른 수준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후 무기 수입에 나선 폴란드가 한국 무기를 대량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경쟁 상대인 독일 무기에 비해 한국 무기의 납품 기간이 훨씬 짧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군인들은 남북 대치 상황으로 인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다. 또한,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평지와 산악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처럼 훈련을 바탕으로 무기의 성능이 검증된 점, 무기 성능 검증에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한국 무기가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는? - 무기 수출만으로 끝나지 않아
무기는 도입 후에도 유지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일례로 전투기는 도입 후 30~40년간 사용하는데, 도입 후에도 무기 운용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부품을 교체하거나 정비하는 데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이렇듯 무기는 무기 자체를 수출한 후에도 관련 수출이 이어지기 때문에 국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정부 차원에서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나가고 있다.
2022년 방산 수출 수주를 통해 13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46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7년까지 세계 방산 수출 점유율 5%를 넘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는 방위산업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핵심 소재 부품 기술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민과 군의 기술협력에 2027년까지 1조 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2023년 유럽·아시아 국가들과 연달아 방위산업 협력 행사를 개최해 각국의 정책과 제도를 파악하는 한편, 각국과의 방위산업 협력 추진 방안을 마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각종 첨단 무기 개발에 필요한 조선, 반도체, 정보 통신 분야의 기술력과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들 산업을 방위산업과 연계하면 산업 간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과제를 넘어 한국의 방위산업이 미래의 성장 산업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주요 방산 업체 현황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화그룹 계열사다. 1977년 삼성정밀공업으로 출발해 삼성테크윈, 한화테크윈을 거쳐 2018년 현 사명으로 변경되었으며, 최근에는 한화디펜스·한화방산 등 방산 계열사를 통합해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가스터빈 엔진 및 항공기계 전문 기업으로 40년 이상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기·함정용 엔진과 부품 개발·생산·정비에 특화된 첨단 항공 산업의 리더다.
▲LIG넥스원
LIG넥스원은 1976년 설립된 LIG그룹 계열의 종합 방산 업체로, 정밀유도무기와 감시정찰, 지휘통제, 전자전, 항공전자 분야에 걸쳐 활약한다. 2007년 LIG넥스원으로 사명을 바꾼 이후 2025년 현재 육·해·공 전 분야 무기체계를 통합 제공하는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전체 인력의 절반가량이 연구개발 인력이며, 2008년 국내 방산매출 1위에 오른 바 있다.
▲현대위아
현대위아는 원래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부품사이나, 국내 유일의 화포(포신) 생산업체로서 방산에도 진출해 있다. K2 흑표 전차의 120mm 주포와 동력계통(파워팩) 개발, K1A1 전차 개조, K9 자주포의 부품(포신, 포탑 등) 생산에 참여해 왔다. 최근 K2 전차와 K9 자주포 수출 호조로 방산 부문 매출이 급증했으며, 2023년 방산 매출이 3,457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에서 방산 비중이 2%대에서 4%대로 확대됐다. 현대위아는 경량화포 및 무인 차륜·궤도 무인차량(UGV) 등 첨단 체계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1999년 공기업 성격으로 설립된 항공우주 체계종합업체다.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과 한국형 상륙기동헬기 수리온을 개발했으며, 2021년부터 KF-21(보라매) 4.5세대 전투기 개발 주체로 활동 중이다. 경공격기 FA-50과 기본훈련기 KT-1 등을 제작·수출해 왔고, F-15K 전투기 날개와 AH-64D 아파치 헬기 동체 등 해외 기체의 부품도 생산한다. 2023년 매출 약 3.8조원으로 국내 최대 방산업체로 성장했다.
▲한화시스템
한화시스템은 항공전자·우주·감시정찰·지휘통제·정밀타격 등 첨단 방산 전자체계를 개발·공급하는 기업이다. 레이다·전자광학·C4I·위성통신·해양전투체계 등 핵심 분야의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며, 국내 유일의 함정·잠수함 전투체계 독자개발 역량을 갖추고 있다. 2023회계연도 방산부문 매출은 약 1조8,170억원(연결 기준)으로 영업이익 985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무기체계
▲항공전력
한국항공우주산업(KAI)는 고등훈련기·경전투기(T-50·FA-50)와 KF-21(4.5세대) 양산·개발의 중심이다. 또한 KT-1 초등훈련기, 수리온 헬기, AN/TPQ-53 레이다 등 다양한 항공체계를 독자 개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투기용 엔진(F404, F414), KAIG엔진(수리온 헬기용) 등 추진체계를, 한화시스템은 KF-21 AESA 레이다·항공전자장비, LIG넥스원은 KF-21용 미사일(국산 장거리공대지유도탄 등)을 담당한다.
▲지상무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자주포 및 K55 자주포(구 M109) 등을 생산하며, 현대위아는 K2 흑표 전차의 포 및 파워팩, K1A1 개조 사업을 수행한다. 또한 다연장로켓 천무(K239)와 자주포용 차륜형 관측장비, 차량 탑재형 RCWS(원격사격통제체계) 등을 개발 중이다. LIG넥스원은 대전차 유도탄 ‘현궁’과 30mm 경기관총용 조준경 등 지상무기 체계도 선보이고 있다.
▲유도무기
LIG넥스원은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Ⅱ(M-SAM), 근거리 대공 미사일 천궁, 대함 미사일 비궁(HSGM)·해궁, 대전차 미사일 현궁 등을 개발·생산한다. 해상용 대함·대잠 유도탄(홍상어·백상어 어뢰), K-SAAM 함대공 미사일 등도 주력제품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연장로켓 천무, 함정용 함포체계(수직발사체계 K-VLS) 등을 갖췄고, 한화시스템은 GPS 유도폭탄(KGGB)과 탄도미사일 요격체계(KAMD 부품)에 참여한다.
▲무인·로봇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목적 무인차량 ‘그룬트(GRUNT)’, 폭발물처리로봇 등 UGV를 개발 중이며, LIG넥스원은 전술정찰용 무인기(SAR 탑재 중고도 UAV)와 도심방위용 소형 드론 체계에 투자하고 있다. KAI는 미국 Shield AI사 기술을 도입해 자율비행 시험을 추진하는 등 무인기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한화시스템은 정찰·관측용 소형 위성체계(SAR, EO/IR), 함정 위협 탐지 레이다 등의 무인·감시기술도 연구 중이다.
정책적 시사점
방위산업 육성에는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다. 첫째,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강화해야 한다. 방산 R&D 예산을 확대해 반도체·항공기 엔진·위성통신칩 등 국산화율이 낮은 분야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민·군 기술협력과 산학연 협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부는 ‘민군기술협력사업’을 통해 민간의 첨단 ICT·소부장 기술을 방위 분야에 신속히 적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첨단 민군 협의체를 구성하여 군 수요와 연계할 핵심기술을 발굴하고, 군 검증용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조치가 추진 중이다.
셋째, 수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방산기업의 해외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 방산제품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서는 수출 시장 다변화와 해외 마케팅 지원이 필수적이며, 한미·한EU 등 우방국과의 협력도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탄탄한 산업기반 확보를 위해 방산 중소·중견기업과의 협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선두 기업의 수출 성과가 중소기업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생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방산 전문 인력 양성·제도 정비를 통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