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X파일 3화] 정의선, 베일 벗은 ‘현대차 황태자’의 숨겨진 야망

모빌리티 제국 건설을 향한 혁신과 승계의 두 얼굴

2025-08-25     이재훈 기자
정의선 현대차 회장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그는 단순한 황태자가 아니다.” 재계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창업주 정주영의 손자, 정몽구 명예회장의 외아들이라는 태생적 배경은 분명 막강하다. 그러나 오늘의 정의선은 혈통을 넘어, 현대차 DNA를 바꾸고 글로벌 모빌리티 제국을 설계하려는 혁신가로 자리 잡았다. 이번 ‘X파일’은 정의선의 개인사, 법적 공방, 인수·합병, 승계 구도, 그리고 미래 비전까지 다각도로 해부하며 그의 야망과 리스크를 동시에 짚어본다.

황태자로 태어나 혁신가로 성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현대자동차그룹)

1970년 10월 18일 출생. 태어날 때부터 현대차의 ‘운명’을 짊어진 그는 재계에서 흔히 말하는 금수저 3세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경복고를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에서 MBA를 마쳤다. 현대차에 입사한 후 영업, 기획, 구매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으며 현장 중심의 리더십을 키웠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정주영과 아버지 정몽구로부터 엄격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기업 경영의 본질을 체화했다. 그는 내연기관 중심의 현대차 DNA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이는 훗날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모셔널 설립 등 과감한 미래 투자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회장 취임 4년 만에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톱3 완성차 업체로 끌어올리며, 현대차와 기아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한 그의 리더십은 재계에서 '정의선 웨이'로 불린다. 불과 20년 전 '저렴한 브랜드'로 여겨지던 현대차를 유럽과 미국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배경에는 그의 고성능 N 브랜드 전략이 자리한다.
그는 단순히 혈통에 의지하지 않았다. 2009년 부사장, 2018년 총괄수석부회장을 거쳐 2020년 회장으로 취임하며, 매 단계에서 성과로 존재감을 입증했다. 특히 고성능 브랜드 제네시스와 전기차 아이오닉 시리즈는 그의 비전이 구체화된 결과물이다. 제네시스는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BMW, 벤츠와 경쟁하고, 아이오닉 5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대차의 기술력을 알렸다. 이러한 성과는 그가 현장 경험과 글로벌 감각을 결합해 현대차를 재정의한 결과다.

혼인, 혈연 이상의 전략적 퍼즐

2023년 11월 23일 대영제국훈장을 받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1995년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의 장녀 정지선 여사와의 결혼은 개인적 선택이자, 재계의 전략적 결속으로 해석됐다. 이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애 결혼으로, 정략혼이 아닌 진정한 인연으로 평가된다. 두 그룹의 연대는 정의선 체제의 안정성 확보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여사는 예술적 감각과 세련된 매너로 회장의 글로벌 외교무대 활동을 뒷받침하며, 현대차의 이미지 제고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진다. 슬하에 1남 2녀(장녀 정진희, 차녀 정유희, 장남 정재신)를 두었으며, 이들의 역할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재계의 관심을 모은다. 특히 장녀 정진희 씨는 2022년 6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조카 아들과 혼인을 맺어 재벌가 4세 결혼 러시를 상징했다. 이 결혼식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노현정 등 재계 인사들이 총출동해 현대가의 네트워크를 드러냈다.

정지선 여사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행사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녀는 현대차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간접 지원하며, 브랜드의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현대 모터스튜디오’와 같은 프로젝트는 그녀의 예술적 감각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받는다. 자녀들의 미래 역할은 승계 구도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장남 정재신 씨가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정의선 회장은 아직 명확한 승계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신중한 경영 스타일을 보여준다.

법적 전쟁과 M&A – 승부사의 본능

그의 경영 승계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현대글로비스의 내부거래 논란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는 그의 경영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2010년대 중반 현대글로비스를 통한 지분 확보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거래 논란은 공정위로부터 60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리스크로 작용했다. 그러나 정의선은 지분 매각과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를 정면 돌파했다. 그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일부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고,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하며 공정위의 압박을 완화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법적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동시에 M&A 판에서는 승부사 본능을 발휘했다. 2020년, 그는 미국 자율주행 기술 기업 앱티브와 합작해 자율주행 전문 법인 '모셔널(Motional)'을 설립했다. 현대차는 2023년 추가 지분 인수를 통해 모셔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모셔널은 아이오닉 5를 기반으로 한 레벨 4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중이며, 202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사인 웨이모와 크루즈와의 기술 격차, 상용화 시점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2021년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약 8억 8천만 달러에 인수하며 글로벌 무대를 놀라게 했다. 이는 단순한 로봇 기업 매입이 아니라, 현대차를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현대차의 스마트 팩토리와 물류 현장에 시범 적용되고 있다. 2023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스팟이 제조 라인 점검에 투입되며 효율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지속적인 적자와 IPO의 불확실성은 리스크로 지적된다. 정의선은 2021년 미국 출장 중 모셔널과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직접 방문해 기술 협업을 점검하며, 그의 미래 비전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승계와 상속, 풀어야 할 방정식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인도를 방문해 현지의 미래 성장전략을 점검했다.

정의선의 왕좌는 굳건해 보이지만, 아직 끝난 게임은 아니다. 첫째,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 현대모비스 중심의 복잡한 지배구조는 현대차그룹의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시도가 주주 반발로 무산된 이후, 그는 지분 구조 단순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 중이다. 둘째, 상속세 부담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을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약 2조 6천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재무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과제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승계 구도다. 장남 정재신 씨를 비롯한 자녀들의 역할은 재계의 뜨거운 관심사다. 정 회장의 현재 지분은 현대모비스 0.32%, 현대차 2.67%, 기아 1.78%로, 오너로서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모셔널의 IPO를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는 전략을 예상한다. 예를 들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2026년 IPO에 성공하면 약 5조 원의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승계 전략과 미래 산업 투자가 맞물린 정의선식 계산법이다. 그는 배당금 확대와 계열사 지분 활용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며, 동시에 현대모비스 중심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려는 복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광폭 행보

브라질 룰라 대통령 면담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의선은 현대차의 정체성을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규정한다. 이를 위해 그는 네 가지 핵심 영역에 집중한다. 첫째, 전동화다. 현대차는 2030년 연간 200만 대 전기차 판매를 목표로, 아이오닉 시리즈와 제네시스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는 글로벌 시장에서 30만 대 이상 판매되며 테슬라 모델 3와 경쟁 중이다. 수소차 넥쏘는 최대 주행거리 720km를 달성하며 실용성을 입증했다. 둘째, 자율주행이다. 모셔널을 통해 레벨 4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중이며,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테스트를 확대하고 있다. 셋째, 로봇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기반으로 제조, 물류,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을 확장한다. 2028년 아틀라스 상용화와 200대 생산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UAM(도심항공모빌리티)이다. 자회사 ‘슈퍼널’은 전기 수직 이착륙 항공기(eVTOL)를 개발하며,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슈퍼널은 UAM,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허브)를 연결한 미래 도시 비전을 제시한다. 2040년까지 수소연료전지를 UAM, 선박, 항공기에 적용하는 장기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는 단순 사업 다각화를 넘어, 현대차의 기업 DNA 자체를 리빌딩하는 과정이다.

미래전망, 빛과 그림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의선의 성공 방정식은 위기 돌파, 광폭 투자, 승계 전략으로 요약된다. 그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자동차 산업 혁신 선구자로 평가하며 경쟁을 인정했다. 현대차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2024년 기준 2위를 달성했지만, 테슬라와 BYD와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BYD의 저가 공세와 테슬라의 기술 우위에 대응해, 그는 인도 시장 진출과 기술 초격차 전략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인도 첸나이 공장을 확장해 연 100만 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현지 맞춤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나 그림자도 짙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연간 3천억 원대 적자와 모셔널의 상용화 지연은 재무적 부담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전기차 시장 경쟁 심화, 정부의 마이데이터 정책에 따른 데이터 유출 리스크도 도전 과제다. 상속세와 지배구조 개편 압력은 그의 경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는 혁신가와 3세 경영인의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닌다. 재계에서는 그의 리더십이 현대차를 글로벌 모빌리티 리더로 만들었지만, 지속 가능한 수익성과 기술 혁신이 성공의 열쇠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태자에서 제국 설계자로

정의선 현대차 회장

정의선 회장은 더 이상 단순한 ‘재벌 3세’가 아니다. 그는 현대차를 미래로 이끄는 개혁자이자, 글로벌 모빌리항공기, 선박에 연료전지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국의 설계자다. 제네시스와 아이오닉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모셔널과 보스턴 다이내믹스로 미래 기술을 선점하며, 슈퍼널로 하늘을 개척하려는 그의 비전은 현대차를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상속세, 지배구조 개편, 글로벌 경쟁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그를 기다린다. 질문은 단 하나다. 그는 단순한 승계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모빌리티 제국의 창조자가 될 것인가? 세계는 지금, 정의선의 다음 수를 주목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