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글로벌 K-치킨, 최후의 승자? "미국 정복 BBQ", "동남아 제패...교촌, BHC"
교촌: 장인의 길 BHC: 마케터의 길 제너시스 BBQ: 설계자의 길
[CEONEWS=박수남 기자] K컬처의 글로벌 도약을 이야기할 때, 대중들은 보통 K팝의 중독적인 리듬, K드라마의 감성적인 서사, K뷰티의 ‘힙함’을 떠올린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세계에 선보인 가장 강력하고 본능적인 수출 장르는 따로 있다.
바로 K푸드다. 트렌드는 언젠가 변하지만, 익숙해진 입맛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을 넘어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깊이 파고든 입맛의 변화와 중독은 뿌리 깊은 문화로 자리 잡아 시대를 거쳐 진화하고 전파되며 정착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푸드 트렌드이자, K푸드를 대표하는 이름 K치킨이다.
K치킨은 이제 전 세계 미식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은 김치를 제치고 해외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K푸드로 여러 차례 선정되며 그 위상을 입증했다. 이 급성장하는 산업의 중심에는 마치 삼국지를 연상케 하는 세 개의 거인이 있다. 바로 교촌치킨, BHC, 그리고 제너시스 BBQ다.
치킨 산업의 중심을 이루는 이 세 축은 각각 ‘개척자’, ‘국내 시장의 파괴자’, 그리고 ‘글로벌 설계자’로 정의할 수 있다. 교촌, BHC, 제너시스 BBQ의 포지셔닝 차이는 비즈니스에 대한 근본적인 청사진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글로벌 지배력에 대한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세 기업이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그들의 기업 DNA와 위기 대응 능력의 차이를 드러낸다. 2010년대, K푸드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폭발했을 당시 이들 세 기업은 동일한 외부 기회를 마주했다. BHC는 문화적 근접성이 높고 K푸드 열풍이 뚜렷한 동남아시아에 집중했다. 교촌 역시 아시아 시장 중심의 신중하고 점진적인 확장을 선택했다.
반면, BBQ는 한류가 정점에 도달하기 훨씬 전인 2006년에 이미 미국 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BHC와 교촌이 지리적·문화적으로 인접한 시장에서 뚜렷한 수요 신호에 자본을 투입하는 반응형(reactive) 전략을 선택했다면, BBQ는 선제적(proactive)이고 훨씬 더 야심찬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BBQ는 단기 유행이 아닌 장기적 비전을 기반으로,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미국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확장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가 K푸드와 K치킨에 열광하는 이 시점에서 BBQ의 전략은 정교하게 들어맞았다. 경쟁사들이 한류의 인기에 편승해 해외로 진출한 것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세 개의 청사진
1. 교촌: 장인의 길
1991년 설립된 교촌은 프리미엄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의 개척자로, 고품질, 독특한 조리 기술, 엄선된 재료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구축했다.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코스피(KOSPI)에 상장하며 국내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입증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산에도 불구하고, 최근 교촌은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BHC와 BBQ에 내주며 고전하고 있다. 고객 이탈의 원인으로는 잦은 가격 인상, 불공정 관행에 대한 규제 당국의 조사, ‘고가’라는 인식 등이 지적된다. 국내 매장 수가 경쟁사보다 적어 규모의 경제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확장도 비교적 신중히 진행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중국·말레이시아·대만 등 아시아 7개국에 약 85개의 해외 매장을 운영 중이다. 500개 매장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 BBQ와 비교해 규모 면에서 크게 뒤처진다. 순이익의 급감도 공격적인 투자에 제약이 될 수 있다.
2. BHC: 마케터의 길
2013년 독자 경영을 시작한 BHC는 ‘뿌링클’ 같은 메가 히트 상품을 통해 빠른 제품 혁신과 차별화를 선보였다.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도 두드러진다.
글로벌 확장은 2018년 홍콩 진출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 중이다. 최근에는 미주 시장으로의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BHC는 현지화 전략에 강점을 두며, 시그니처 메뉴와 김치볶음밥, 삼계탕 등 현지 인기 메뉴를 접목한 메뉴 개발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25년 중반 기준 약 29개 해외 매장을 운영하며 빠른 성장을 계획 중이다.
3. 제너시스 BBQ: 설계자의 길
1995년 설립된 제너시스 BBQ는 ‘창세기(Genesis)’라는 이름에서부터 프랜차이즈 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BBQ는 단순한 치킨 브랜드가 아닌 글로벌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지향하며, ‘세계 최대·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이라는 목표를 공표했다.
이 철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바로 1999년에 설립된 치킨대학이다. 박사급 연구원이 포진한 이 R&D 및 교육 센터는 가맹점 운영, 품질 관리, 시스템화를 위한 BBQ의 철학과 투자를 반영한다. BBQ는 프랜차이즈를 ‘교육 사업’으로 보는 관점을 실제 경영에 적용해왔다.
BBQ의 글로벌 진출은 매우 이른 시점부터 지리적으로 다각화되었다. 2003년 중국, 2004년 스페인, 2006년 미국 진출을 통해 아시아, 유럽, 미주 전역에 마스터 프랜차이즈 모델로 수십 개국과 계약을 체결하며 빠르게 확장했다. 현재 BBQ는 57개국에서 7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며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브랜드 전략의 프레임워크: 장인 vs 마케터 vs 설계자
교촌은 ‘장인(Artisan)’이다. 품질 중심이지만 확장에는 시간이 걸린다.
BHC는 ‘마케터(Marketer)’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민첩한 시장 점유를 노린다.
BBQ는 ‘설계자(Architect)’다. 시스템과 비전을 기반으로 견고한 글로벌 인프라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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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레임워크는 각 기업의 전략적 차이를 설명하며, 교촌이 규모의 한계로 고전하는 이유, BHC가 동남아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 그리고 BBQ가 시스템 의존도가 높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미국시장 브랜드 가치 = 세계 시장 진출 프리패스
미국은 현대 프랜차이즈의 발상지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외식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의 성공은 단순한 제품력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미국 외식 전문지 '네이션스 레스토랑 뉴스(NRN)'의 ‘미국 톱 500대 레스토랑 브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BBQ는 2021년 처음으로 376위에 진입한 이후 2025년에는 180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이는 단기간 유행이 아닌, 수년에 걸친 브랜드력 강화의 결과다. Taste of Home은 BBQ를 ‘가장 맛있는 치킨’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반면 교촌과 BHC는 현재까지 NRN 순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이들은 한류 팬을 타깃으로 한 동남아 시장 중심의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으며, 미국 진출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BBQ의 독자적인 글로벌 전략은 윤홍근 회장의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그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프랜차이즈 이론가이자 비저너리로 평가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치킨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5만 개의 매장을 두는 ‘글로벌 제국’을 만드는 것이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철학은 치킨대학, 현장 운영 지원, 교육 시스템 등으로 구체화되어 경쟁사와의 확연한 차이를 만든다. 특히 가맹점과의 ‘윈-윈’ 관계를 구축하며, BBQ는 충성도 높은 브랜드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공급업체 문제나 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BBQ는 상생의 기반 위에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BBQ의 강점은 단순히 제품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드웨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 즉 철학과 문화에 있다.
K-치킨의 미래: 동남아를 넘어, 전 세계로
K치킨 산업은 세 가지 전략적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교촌의 장인 모델은 품질에 강하지만 글로벌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
BHC의 마케터 모델은 빠른 성장에 유리하지만, 변화하는 트렌드에는 취약할 수 있다.
BBQ의 설계자 모델은 장기 비전과 시스템 구축을 통해 지속 가능한 글로벌 성장을 만들어낸다.
결론적으로, BBQ는 한국 브랜드가 일시적인 인기에 기대지 않고, 시스템과 교육, 철학에 기반해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문화적 파워는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결국 비즈니스 설계와 리더십이 결정한다. 한국의 미래 브랜드들은 한류에 기대는 ‘상인’의 리더십을 넘어, 제너시스 BBQ의 선례를 참고해 ' 단순 상인'을 넘어선 ‘창조적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