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ORLD] 유럽 전기차 삼국지...테슬라의 몰락, BYD의 대관식, 현대자동차의 생존 전략
혁신에서 '가치'로, 유럽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규칙 BEV, HEV, PHEV의 차이점 테슬라는 왜 유럽의 왕좌를 잃었나? 브랜드의 부채가 된 '머스크 리스크' BYD는 어떻게 유럽을 정복했는가 K-자동차의 묘수: 샌드위치 위기 속 생존 전략
[CEONEWS=전영선 기자] 2025년 중반, 유럽 자동차 시장의 지형은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 한때 전기차 혁명의 대명사였던 테슬라(Tesla)가 7개월 연속 판매량 급감을 기록하며 왕좌에서 밀려나고, 그 빈자리를 중국의 비야디(BYD)가 압도적인 성장세로 차지하는 극적인 권력 이동이 발생했다. 이 거대한 지각 변동의 중심에는 단순히 순수 전기차(BEV)로의 전환을 넘어, 소비자들이 실용성과 가치를 중시하며 하이브리드 전기차(HEV)를 대안으로 선택하는 시장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2025년 7월, 테슬라의 유럽 신차 등록 대수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폭락한 8,837대에 그친 반면, BYD는 225% 폭증한 13,503대를 판매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이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기아(K-자동차)는 위로는 프리미엄 브랜드, 아래로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 생존을 넘어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기 위한 정교한 생존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기로에 섰다.
판이 바뀌었다: 혁신에서 '가치'로, 유럽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규칙
유럽 자동차 시장의 전기화 전환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방향은 예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 시장이 기술적 혁신과 고성능을 앞세운 프리미엄 BEV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높은 가격, 충전 인프라에 대한 우려, 그리고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찾는 '가치 중심' 시장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이 새로운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시장 구도를 파악하는 첫걸음이다.
숫자가 말해주는 거대한 전환
유럽 자동차 제조업 협회(ACEA)가 발표한 데이터는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5년 1월부터 7월까지 유럽연합(EU) 시장에서 순수 전기차(BEV)의 시장 점유율은 12.5%에서 15.6%로 꾸준히 성장했다. 이는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흐름 자체는 유효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다른 곳에 있다. 이 기간 동안 시장의 진정한 승자는 하이브리드 전기차(HEV)였다. HEV는 무려 34.7%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가솔린(28.3%)과 BEV(15.6%)를 모두 압도하는 가장 인기 있는 동력원으로 등극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역시 6.9%에서 8.6%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반면, 순수 내연기관인 가솔린과 디젤의 합산 점유율은 47.9%에서 37.7%로 급격히 하락했다.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유럽 소비자들은 내연기관을 떠나고 있지만, 그들이 곧바로 순수 전기차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충전의 불편함과 높은 초기 구매 비용이라는 장벽 앞에서, 내연기관의 주행거리와 전기 모터의 효율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를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과도기적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 시장은 이념적 순수성보다 경제적 실용성을 선택한 것이다.
BEV, HEV, PHEV의 차이점
현재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기화 차량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순수 전기차 (BEV - Battery Electric Vehicle): 오직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로만 구동되는 차량으로, 내연기관이 없어 배출가스가 전혀 없다. 테슬라 모델 Y가 대표적인 예다.
하이브리드 전기차 (HEV - Hybrid Electric Vehicle):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차량이다. 외부 전원으로 충전할 수 없으며, 엔진의 동력이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발생하는 회생 제동 에너지로 배터리를 스스로 충전한다. 현대 투싼 하이브리드, 토요타 RAV4 하이브리드가 여기에 속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PHEV - 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HEV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더 큰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외부 전원으로 직접 충전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오직 전기로만 주행할 수 있으며, 배터리가 소진되면 하이브리드 모드로 전환된다. BYD 씰 U DM-i가 대표적인 PHEV 모델이다.
제국의 붕괴: 테슬라는 왜 유럽의 왕좌를 잃었나?
불과 1년 전만 해도 유럽 전기차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테슬라의 몰락은 단순한 판매 부진을 넘어선 '제국의 붕괴'에 가깝다. 이러한 추락은 경쟁 심화라는 외부 요인보다, 브랜드 이미지의 심각한 손상과 시장의 요구를 외면한 전략적 관성이라는 내부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륙 전역의 충격적인 판매 급감
테슬라의 위기는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대륙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7월 한 달간의 판매량 감소는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일: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에서 판매량이 55.1% 폭락했다. 한때 연간 6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시장을 호령했지만, 이제는 2만 대 판매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영국: 영국 시장에서도 59.9%라는 경이적인 판매량 급감을 기록했다.
북유럽 거점 붕괴: 전통적으로 전기차 수용성이 가장 높았던 북유럽 시장에서의 붕괴는 더욱 충격적이다. 스웨덴에서는 무려 86%의 판매량이 증발했으며, 덴마크(-52%), 네덜란드(-62%), 벨기에(-58%)에서도 판매량이 반 토막 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야심 차게 출시한 신형 모델 Y조차 스웨덴에서 등록 대수가 88%나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문제가 단순히 노후화된 모델 라인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테슬라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외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판매 부진은 시장 점유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져, 테슬라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불과 1년 만에 1.4%에서 0.8%로 쪼그라들었다.
브랜드의 부채가 된 '머스크 리스크'
테슬라의 추락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개인적인 행보, 즉 '머스크 리스크'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발언, 극우적인 정치 성향으로의 전환, 그리고 특히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 표명은 테슬라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진보적이고 환경을 중시하는 유럽 소비자들에게는 일종의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브랜드 가치의 손상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유럽 전역의 테슬라 전시장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주차된 차량에 '나치 자동차'라는 낙서가 남겨지는 기물 파손 행위까지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기존 테슬라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CEO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일론이 미치기 전에 샀어요(I bought this before Elon went crazy)"와 같은 '사과 스티커'를 차량에 붙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는 테슬라 차량이 더 이상 친환경 혁신의 상징이 아니라, 소유주가 해명해야 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징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한때 브랜드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창업자의 명성이 이제는 약 150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증발시킨 가장 큰 부채가 된 것이다.
혁신은 자율주행 중? 낡아가는 함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동안, 테슬라의 제품 전략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주력 모델인 모델 3와 모델 Y는 시장에 출시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신선함을 잃었다. 2023년 말 모델 3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인 '하이랜드'가, 2025년 초에는 모델 Y의 '주니퍼' 버전이 생산에 들어갔지만, 이러한 부분 변경 모델들은 시장의 차가운 반응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정적인 패착은 시장의 요구와 회사의 자원 배분 사이에 발생한 심각한 불일치였다. 유럽 시장은 당장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소형 전기차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FSD),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슈퍼컴퓨터 '도조'와 같은 장기적이고 리스크가 큰 인공지능(AI)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다. 2025년 하반기에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저가형 모델과 로보택시라는 먼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동안, 경쟁사들은 소비자들이 지금 당장 원하는 매력적인 신차를 쏟아내며 시장을 잠식했다. 결국 테슬라는 자동차 혁신 기업에서 AI 기업으로 정체성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뿌리인 자동차 사업의 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BYD는 어떻게 유럽을 정복했는가
테슬라가 스스로 무너지는 동안, 동쪽에서 온 용 BYD는 유럽 시장을 정복하기 위한 치밀하고 다층적인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BYD의 부상은 단순한 저가 공세의 결과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압도적인 산업 기술력과 유럽 시장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지정학적 전략의 결실이다.
궁극의 무기, 완전한 수직 계열화
BYD의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경쟁 우위는 '완전한 수직 계열화'에 있다. 이는 단순히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을 넘어,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핵심 부품과 소재, 심지어 물류까지 통제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배터리 기술: BYD 성공의 심장은 자체 개발한 혁신적인 '블레이드 배터리(Blade Battery)'다. 이 배터리는 가격이 비싸고 윤리적 논란이 있는 코발트 대신 리튬인산철(LFP)을 기반으로 하여 원가를 크게 낮췄다. 못 관통 테스트를 화재나 폭발 없이 통과할 정도로 안전성이 뛰어나며, 3,000회 이상 충전과 방전이 가능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특히, 긴 칼날 모양의 셀을 기존의 모듈 단계를 생략하고 팩에 직접 통합하는 '셀투팩(Cell-to-Pack)' 기술은 LFP 배터리의 고질적인 단점이었던 낮은 에너지 밀도 문제를 해결하며 공간 효율을 50% 이상 끌어올렸다.
반도체 자립: BYD는 자회사인 BYD 반도체를 통해 전력반도체(IGBT, SiC 모듈) 등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한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했던 반도체 공급난으로부터 BYD를 자유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최적화를 통해 차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광산에서 부두까지: BYD의 통제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회사 FinDreams를 통해 원자재를 제련하고, 자체적으로 전기 모터와 구동계를 생산하며, 나아가 완성된 자동차를 유럽으로 운송하기 위한 거대한 자동차 운반선(RoRo선) 선단을 직접 운영한다. 이처럼 공급망의 모든 단계를 통제하는 능력은 BYD에게 경쟁사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막강한 원가 경쟁력과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부여했다.
트로이의 목마가 된 하이브리드
BYD의 유럽 공략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트로이의 목마'로 활용한 전략이다. 이는 유럽연합(EU)의 관세 정책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허점을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현재 EU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에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한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문제 삼아 중국산 순수 전기차(BEV)에 대해서만 17%의 상계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있다.
BYD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했다. 그들의 주력 PHEV 모델들은 BEV가 아니기 때문에 17%의 징벌적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어 10%의 기본 관세만 적용받는다. 이 관세 차이는 엄청난 가격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독일 시장에서 BYD의 BEV 모델인 아토 3(Atto 3)는 약 10,000유로의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PHEV 모델인 씰 U(Seal U)는 약 4,000유로의 관세만 내면 된다.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BYD는 2025년 상반기에만 유럽에서 2만 대 이상의 PHEV를 판매했는데, 이는 2024년 한 해 전체 판매량의 세 배가 넘는 경이적인 수치다. 이 전략은 앞서 분석한 유럽 소비자들의 하이브리드 선호 현상과 완벽하게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냈다. BYD가 관세 장벽을 우회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딜러망을 구축하는 동안, 다른 중국 BEV 경쟁자들은 높은 관세 장벽에 막혀 고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 장악의 정석: 가격, 유통, 현지화
강력한 기초 체력과 영리한 진입 전략을 바탕으로, BYD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정공법을 펼쳤다.
가격 전쟁: 수직 계열화를 통해 확보한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이어졌다. BYD의 모델들은 동급의 테슬라나 유럽 브랜드 차량보다 20%에서 많게는 40%까지 저렴한 가격표를 달고 시장에 출시되었다.
딜러망 총공세: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는 테슬라와 달리, BYD는 유럽 전역에 빠르게 오프라인 거점을 확보하며 고객 접점을 늘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2025년 말까지 딜러망을 67개에서 120개로 두 배 가까이 늘릴 계획이며, 독일, 헝가리 등 주요 시장에서도 공격적으로 유통망을 확장하고 있다.
현지 생산이라는 최종 병기: BYD 전략의 최종 목표는 '유럽에서, 유럽을 위한' 자동차를 생산하여 모든 무역 장벽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현재 헝가리 세게드와 터키에 건설 중인 공장이 바로 그 핵심 기지다. 비록 헝가리 공장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은 2026년으로 다소 지연되었지만, 이 공장들이 가동을 시작하는 순간 BYD는 모든 수입 관세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유럽 시장에 확고히 뿌리내린 진정한 현지 기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K-자동차의 묘수: 샌드위치 위기 속 생존 전략
테슬라의 몰락과 BYD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현대·기아는 절체절명의 '샌드위치 위기'에 직면했다. 위로는 BMW,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전통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버티고 있고, 아래로는 BYD, MG 등 가격을 무기로 한 중국 브랜드들이 맹렬히 추격해오고 있다. 이 치열한 전장에서 생존을 넘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현대·기아만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인 해법이 절실한 상황이다.
강점을 재발견하다: 신뢰, 기술, 그리고 하이브리드
위기 상황이지만, 현대·기아는 이 구도를 타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들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브랜드 신뢰도: 유럽 시장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품질, 신뢰성,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판은 단기간에 쌓을 수 없는 강력한 자산이다. 아직 유럽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중국 브랜드들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이 바로 이 '신뢰의 격차'다.
기술 리더십: 아이오닉 5와 EV6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800V 초고속 충전 시스템은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대중차 브랜드 중 현대·기아만이 가진 독보적인 기술적 우위다. 이는 충전 속도에 민감한 유럽 소비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차별점이다. 또한, 자체 개발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ccNC)과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술력은 사용자 경험을 한 차원 높여준다.
강력한 하이브리드 라인업: 오직 BEV에만 집중하다 시장 변화에 직격탄을 맞은 테슬라와 달리, 현대·기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부문에서 이미 강력한 플레이어다. 투싼 하이브리드와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는 동급 최강자인 토요타 RAV4와 대등하게 경쟁하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방어와 공격, '투트랙 전략'의 모든 것
현대·기아의 생존 방정식은 기존의 강점을 지키는 '방어'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공격'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 '투트랙(Two-Track)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트랙 1 (방어): 하이브리드 시장의 지배력 강화 첫 번째 전략은 현재 가장 수익성이 높고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투싼과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모델의 성공은 이 전략의 유효성을 이미 증명했다. 이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창출되는 수익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BEV 전환 과정에서 든든한 '실탄' 역할을 하며, 회사의 재무적 안정성을 지켜주는 방패가 될 것이다.
트랙 2 (공격): 합리적 가격의 BEV로 정면 돌파 두 번째 전략은 BYD의 저가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는 과감한 공격이다. 이를 위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대중적인 BEV 라인업을 신속하게 확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아 EV3: 2024년 말 유럽에 출시된 소형 전기 SUV로, 약 41,000유로(영국 기준 약 33,000파운드)부터 시작하는 매력적인 가격과 뛰어난 디자인으로 출시 직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기차 중 하나로 등극했다.
현대 인스터(국내명 캐스퍼 일렉트릭): 25,000유로 미만의 파격적인 가격대로 출시될 초소형 전기차로, BYD 돌핀, 르노 5와 같은 모델들과 유럽 보급형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놓고 직접 경쟁하게 될 전략 모델이다. 특히, 차량의 전기를 외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V2L(Vehicle-to-Load) 기능과 겨울철 주행거리를 늘려주는 히트 펌프 등 동급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급 사양을 갖추고 있어 '가격 대비 높은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모델들은 단순히 저렴한 차가 아니라, 현대·기아의 디자인 철학과 기술력을 담아 '가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패, '메이드 인 유럽'
현대·기아 그룹이 오래전부터 유럽 현지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운영해 온 것은 현재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현대차 체코 공장(HMMC): 이미 코나 일렉트릭을 '유럽에서, 유럽을 위해' 생산하고 있다. 이는 유럽 내 소비자에게 차량을 인도하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중국산 수입차에 부과되는 관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든다. 이 공장은 향후 코나 일렉트릭 생산 비중을 전체 생산량의 1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질리나): 최근 1억 800만 유로를 투자하여 유럽 현지에서 생산하는 첫 전용 전기차인 EV4의 양산을 시작했다. 향후 출시될 저가형 모델 EV2 역시 이곳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높아, 기아의 유럽 전기차 전략의 심장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현지 생산 체제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EU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장벽으로부터 현대·기아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지정학적 방패'다. 유럽 소비자와 정부로부터 신뢰를 얻고, 잠재적인 무역 분쟁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중국산 수입차에 비해 막대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해준다.
유럽 도로의 미래를 지배할 자는 누구인가
2025년, 유럽 전기차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테슬라의 독주 시대는 브랜드 이미지 손상과 전략적 관성이라는 내부적 요인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그 자리를 차지한 BYD의 부상은 단순한 가격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압도적인 산업 기술력과 시장을 꿰뚫는 치밀한 전략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 전기차 전쟁의 패러다임은 명확하게 전환되었다. 이제 승리의 열쇠는 누가 더 빠르고 멀리 가는 고가의 BEV를 만드느냐가 아니다. 가치, 실용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보급형 시장을 누가 먼저 장악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현대·기아는 이 새로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추고 있다. 시장의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제품 포트폴리오(하이브리드와 합리적 가격의 BEV), 가격 이상의 가치를 증명할 기술적 우위,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막아줄 '메이드 인 유럽'이라는 강력한 방패까지. 이제 남은 과제는 실행력이다. 새로운 전기차 모델들의 생산을 얼마나 신속하게 확대하고, 기술적 장점을 효과적으로 마케팅하여 '오염된 테슬라'와 '저가 중국산' 사이에서 '가치 있는 대안'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향후 24개월이 K-자동차가 유럽 도로의 단순한 생존자를 넘어 새로운 리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FAQ)
Q1: 2025년 유럽 전기차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선호도가 고가의 순수 전기차(BEV)에서 실용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하이브리드 전기차(HEV)와 합리적인 가격의 BEV로 이동한 것이다. 이로 인해 HEV가 34.7%의 점유율로 가장 인기 있는 동력원이 되었고, 시장의 경쟁 구도가 완전히 재편되었다.
Q2: 테슬라 판매량이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핵심 요인이 있다. 첫째, CEO 일론 머스크의 정치적 행보로 인한 '머스크 리스크'가 브랜드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여 핵심 고객층을 이탈시켰다. 둘째, 시장이 원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신차 출시가 지연되는 동안 경쟁사들이 다양한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제품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Q3: BYD가 유럽에서 성공한 핵심 전략은 무엇인가? ABYD의 성공은 세 가지 전략의 결합이다. 첫째, 배터리부터 반도체까지 모든 것을 자체 생산하는 '수직 계열화'로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둘째, EU의 추가 관세를 피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주력으로 내세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셋째, 헝가리에 현지 생산 공장을 건설하여 장기적으로 관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 하고 있다.
Q4: 현대·기아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가? 현대·기아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고있다. 한편으로는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유지하고(방어), 다른 한편으로는 기아 EV3, 현대 인스터와 같은 경쟁력 있는 보급형 전기차를 출시하여 BYD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또한, 유럽 현지 공장을 통해 관세와 무역 분쟁의 위험을 피하는 '메이드 인 유럽' 전략이 핵심적인 강점이다.
Q5: 앞으로 유럽에서는 순수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가 더 유망한가? 단기적으로는 하이브리드(HEV, PHEV)가 충전 인프라 부족과 높은 BEV 가격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강력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탄소 중립 목표와 규제 강화를 고려할 때, 시장의 최종 목적지는 순수 전기차(BEV)가 될 것이다. 현재는 BEV로 넘어가는 중요한 '과도기'이며, 이 기간 동안 하이브리드 시장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