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창업스토리] K-라면의 대명사 농심

40년간 업계 1위의 아성 흔들리나 라면 신화를 이어갈 新 성장동력은?

2025-09-01     김병조 기자

[CEONEWS=김병조 기자] 한국에서 9월은 라면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62년 전 한국에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등장한 달이고, 우리나라 라면 업계의 양대 산맥인 삼양식품과 농심이 모두 9월에 창립했기 때문이다. 9월호 창업 스토리는 1985년부터 40년간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농심을 소개한다.

창업 배경과 동기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5918, 롯데공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라면을 제조·생산하는 회사로, 오늘날 농심()의 전신이다. 그보다 2년 전인 1963915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회사 삼양식품이 생겼으니, 두 번째로 생긴 라면 회사다.

농심 창업자 신춘호 전 회장

롯데공업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신춘호가 만든 회사다. 신춘호는 삼양식품이 국내에서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을 내놓는 것을 보고 형에게 라면 사업에 진출하자고 건의했다. 일본에서 이미 인스턴트 라면을 경험한 터라 한국에서도 라면 사업이 유망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 신격호는 반대했다. 신격호가 라면 사업을 반대한 이유는 2가지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일본과 한국은 시장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인스턴트 라면은 간식 개념이었는데, 한국은 아직 간식을 먹을 수준이 아니어서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미 선발 주자 삼양라면이 있는데, 후발 주자로 뛰어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형이 반대하자 신춘호는 형과의 사업 관계를 정리하고 독자적으로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롯데라면을 출시하면서 선발업체 삼양식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형 신격호 때문에 회사명을 농심으로 변경

신춘호는 야심차게 라면시장에 도전했지만, 처음에는 어려웠다. 선발업체 삼양식품도 초기에는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국수에 익숙해져 있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라면은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 덕분에 라면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롯데공업이 국내 라면 시장에 정착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 국내 최초로 소고기 국물 맛이 나는 소고기 라면을 개발하면서부터다. 그때까지는 삼양식품이 개발한 닭고기 국물 맛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농심이 소고기 국물 맛이 나는 스프를 개발했고, 삼양식품도 농심을 따라 소고기 맛 스프를 개발했다.

한편 신춘호는 라면사업이 어려울 때 대안으로 스낵사업도 준비했었는데, 1971년 그 첫 제품으로 새우깡을 출시했다. 그런데 이것이 형 신격호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 말라는 라면사업에서 보란 듯이 성공을 한 데다가 스낵사업에까지 손을 대서 롯데의 스낵 아성에 도전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신격호는 동생 신춘호에게 롯데공업의 회사명에서 롯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신춘호는 어쩔 수 없이 1978년 회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게 된다. ‘농심이라는 상호는 1975년에 개발해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로 인기를 끈 농심라면에서 착안했다. 회사명에서 롯데를 쓰지 못하게 된 신춘호는 형 신격호와는 졀연의 수준으로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공전의 히트작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서

1980년대 들어 농심은 공전의 히트 제품들을 선보이며 황금기를 맞이한다. 먼저, 1982오동통한 내 너구리,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너구리를 출시해 히트를 친다.

그리고 1983년 맛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안성탕면을 출시해 연속 안타를 친다. 안성탕면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라면에 접목시켜 소비자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듬해인 1984년에는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짜파게티를 출시해 짜장라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1985년 마침내 선발업체 삼양식품을 누르고 라면 업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1986, 국내 라면 역사상 최장수 1위 브랜드인 신라면을 출시했다. 신라면은 매운맛을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출시와 함께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라면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로 진출해 한국의 맛을 알리는 K-라면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어서 1988년 제25회 무역의날 라면 업체 최초로 1천만불 수출유공탑을 수상하고, 이듬해인 1989년 선발업체 삼양식품의 우지파동이 발생하면서 농심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경쟁업체의 도전

우지파동으로 경쟁업체 삼양식품이 무너지자 2015년까지 농심은 라면업계의 1강 체제로 독주한다. 그러다가 1915년 오뚜기 진짬뽕이라는 해물짬뽕라면으로부터 도전을 받는다.

오뚜기 진짬뽕은 2015년 국내 라면 시장에서 프리미엄 짬뽕라면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출시 1년 만에 17천만 개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쫄깃하고 탱탱한 굵은 면발과 오징어, 홍합, 미더덕 등의 해물과 다양한 채소, 고춧가루를 센 불에 볶은 불맛, 치킨, 사골 육수로 우려낸 개운하고 진한 국물맛이 특징으로 진짜 짬뽕 그 이상의 맛을 자랑했다.

오뚜기는 진짬뽕 효과로 라면 시장 점유율이 진짬뽕 출시 이전에는 겨우 10%를 조금 넘는 정도였으나 출시 이후 2016년에는 25.6%로 급격히 상승했고, 2018년에는 28%까지 치솟으며 업계 2위로 도약했다.

오뚜기에 이어 초기 경쟁업체였던 삼양식품으로부터도 불닭볶음면으로 도전을 받았다. 불닭볶음면은 2012년에 처음 출시됐지만, 출시 당시보다는 2016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증가하면서 농심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불닭볶음면이 삼양식품의 전체 수출액 중 85% 이상, 전체 매출액의 55%를 차지했다.

불닭볶음면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2015년에는 삼양식품의 매출이 2,909억원에 불과했는데, 2024년에는 17,280억원이나 됐다. 10년 만에 매출이 494%나 늘어났다. 영업이익도 2015년에는 고작 71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3,446억원으로 무려 4,753.5%나 증가했다.

반면에 농심은 2015년 매출 21,816억원에서 2024년에는 34,387억원으로 57.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183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631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짜파구리로 세계인의 주목 끌어

2015년부터 경쟁업체의 거센 도전을 받게된 농심은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수상하며 다시 농심의 라면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농심의 너구리 라면과 짜파게티를 섞은 요리 짜파구리를 먹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영화 인기 덕분에 농심의 라면도 크게 주목을 받게 된다. 이에 농심은 2020짜파구리라면을 출시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농심 신라면블랙2020년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선정됐고, 그해 상반기 농심의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성장하기도 했다. 2920년 연말에는 제25회 소비자의날 대통령 표창까지 수상했다.

신동원 회장 취임으로 2세 경영 돌입

신동원 농심 회장

창업자 신춘호가 2021327일 타계하자 20217월 아들인 신동원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농심은 2세 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신동원은 창업자 신춘호의 장남으로 서울 신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외모에서 풍기듯 신 회장은 외유내강형이다.

경영 총사령관을 맡은 지 5년 차에 접어든 신 회장은 라면 사업의 경우 해외사업에서 농심의 브랜드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라면과 스낵에 편중된 그룹의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동원은 농심 브랜드의 위상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해외사업에서 농심의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해외에서 경쟁업체인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농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신동원 회장은 2022년 첫 임원 회의에서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라면기업 5위라는 지금의 성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객에게 더 큰 만족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라면의 가치를 올리고 생산과 마케팅 시스템도 세계 톱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2022년 제2공장 가동으로 신라면 등 판매가 늘어나면서 점유율에서 일본 기업을 꺾고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농심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25.2%로 일본 토요스이산(47.7%)에 이어 2위다. 2020년보다 점유율이 1.9%포인트 증가했다.

한편 농심은 새 기업 슬로건으로 인생을 맛있게, 농심(Lovely Life Lovely Food)’을 내걸며 고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농심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새 슬로건에는 품질과 맛, 식품안전과 관련한 기존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고객에게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더 친근하게 다가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농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농심은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경쟁업체인 삼양식품에 밀렸다. 식품업계에서 시가총액 1위는 CJ제일제당이고 농심이 2위였는데, 최근 삼양식품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2위 자리를 삼양식품에 내어주고 3위로 밀려났다. 그렇다면 농심이 재도약을 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은 무엇일까? 크게 보면 건강기능식품, 생수사업, 비건사업과 대체육, 그리고 스마트팜사업으로 볼 수 있다.

신동원 회장은 2021325일 정기 주총에서 신사업은 건강기능식품이 유력하다면서 콜라겐 제품은 성공적으로 출시한 상황이고, 지난해 선보인 대체육은 올해 제대로 출시할 계획이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농심이 건강기능식품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20203라이필 더마 콜라겐을 출시하면서부터다. 그리고 20214월 콜라겐과 프로바이오틱스가 함께 담긴 라이필 더마 콜라겐 바이옴을 출시했고, 20228월에 어린이를 위한 프로바이오틱스 신제품 라이필 바이탈 락토 키즈와 온 가족을 위한 라이필 바이탈 락토 패밀리를 출시했다. 이어서 202211식물성 알티지 오메가3’, 202312관절에쎈크릴등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생수사업도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신동원 회장은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50년간 농심이 라면으로 2조원 기업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 100년 농심의 역사는 생수가 쓸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농심은 201212월 삼다수 판매계약이 종료되자 곧바로 백두산을 수원지로 하는 백산수를 출시했다. 생수 사업이 초기에 대규모 투자만 하면 미래 수익성이 보장되는 유망사업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신동원 회장은 농심 라면의 중국 진출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생수 시장인 중국에서 성과를 올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중국 대도시 생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에 확보해 둔 1천여 개 라면 대리점 판매망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팜 사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스마트팜은 일반적인 농사에 비해 경작 기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할 수 있으며, 완성된 설비로 구성된 컨테이너 형태로 수출해 현지에서 전기와 수도만 연결하면 즉시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농심은 스마트팜을 구성하는 재배설비, LED, 환경제어시스템 등의 자재와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20233월 사우디아라비아 농업법인 사우디 그린하우스와 스마트팜 수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202211월에는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2동을 약 20만 달러에 오만으로 수출했다.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비건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의 일환으로 20225월에 비건 레스토랑 ‘ForestKitchen’을 오픈했다. 또 대체육 사업을 위해서도 이미 투자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