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성의 역사적 리더십 2] 카이사르의 일화와 그의 리더쉽
[CEONEWS=이완성 칼럼니스트] 루비콘 강변에 다다른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말 위에서 강건너편 로마시내를 바라보고있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이곳까지 달려왔으나 막상 루비콘강을 건너려 하니 마음 한구석에 떠오르는 께르침한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없이 우뚝 서 있었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도 말없이 그들의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후 카이사르는 몸을 돌려 부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그리고는 그를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망설임을 떨쳐버리듯 큰 소리로 외쳤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장군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병사들의 우렁찬 응답과 함께 카이사를 군대는 루비콘강을 거너기 시작했다. 기원전 49년 1월12일 이다. 로마사 아니 세계사에서 꼽을만한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의 순간이다
2천년이 지났지만 아직 까지도 유럽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받는 카이사르지만 의외로 엉뚱한 일화들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2. 해적들에게 붙잡힌 카이사르
카이사르가 청년시절 로도스섬에 유학하고 있던 시절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가던 중 해적들에게 잡혀 파르마쿠사라는 섬에 갇히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 했겠지만 카이사르는 섬에서 갇혀 지내는 동안 해적들에게 거만하게 굴곤했다. 해적들이 그의 몸값으로 20달란트를 요구하자 그는 자신의 몸값이 그것 밖에는 안되냐며 화를 내고는 50달란트를 요구하라고 화를 냇다고 한다.
"네놈들을 교수형에 처하고 말거야" 라고 공언하기도 했지만 해적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생각했다.
그는 해적들과 같이 지내면서 좋은 음식과 거처를 요구를 했다. 조금이라도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이 나오면
"이런 음식은 너희들 같이 하찮은 놈들이 먹는 것이야~!"
해적들은 그의 몸값 때문에 대부분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해적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고 한다.
"무식한 놈들 네놈들 머리 속에는 똥밖에 없어~!"
하며 무시했는데 여하튼 젊은 시절부터 배포 하나는 컸던것 같다. 나중에 몸값을 받고 풀려난 카이사르는 빚을 내서 군대를 모집하여 해적들을 추적하여 일망타진 하므로써 결국 교수대에 매달은 것으로 그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3. 엄청난 빚을 지며 살았던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율리우스가문 이라는 귀족집안 출신이었지만 그 가문이 재력으로는 그리 대단한 가문이 아니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평생 막대한 빚을 지며 살았다.
그가 스페인 총독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나게 되었다. 그가 임지로 떠나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의 행렬을 막아섰다. 알고보니 카이사르에게 돈을 빌려준 빚쟁이 들이었다. 그가 스페인으로 간다는 소문을 듣고는 로마의 모든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카이사르가 돌아오지 않으면 빚을 못받을것 같아 빚을 갚고 떠나라 하며 길가에 드러눕는둥 난리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카이사르는 빚을 갚기는 커녕 그에게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최대 채권자에게 거액을 빌려달라고 했다.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나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당신은 앞으로 한푼도 받을수 없소"
빚쟁이는 기가막혔지만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그럴것 같아서 돈을 빌려줄수 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카이사르는 오히려 거꾸로 수퍼갑질을 하며 많은 빚쟁이들의 입막음을 한 뒤 스페인으로 떠날수 있었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최대 채권자는 크랏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라는 사람으로 로마 최대의 부호이자 뒷날 삼두정치를 같이 했던 정적이기도 했다.
카이사르가 많은 빚을 지며 살았던 것은 그의 씀씀이의 규모가 일반인이 생각할수 없을 정도도 컸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부하장군과 병사들을 위해 쓰기도 했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원로원 유력자 같은 사람들에게 로비로 많이 썼다.
또한 그는 수많은 여인들에게 선물하느라 많은 돈을 탕진했다고 한다. 폼페이아(Pompeia Sulla)는 아내가 있었지만 카이사르는 로마에 있는 많은 미녀들과 연애를 했다. 미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값비싼 선물을 해야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막대한 빛으로 남게된 것이다. 그의 엄청난 빚은 뒷날 갈리아에서 8년간 총사령관을 하면서 그 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대부분 갚기는 했다고 한다.
4. 카이사르에 열광하는 유렵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카이사르지만 유럽인들의 가슴 속에는 그들이 동경하는 로마제국을 이룩한 존재로서 각인되어 있다. 왜 이리도 유럽인들은 카이사르에게 열광할까? 그것은 서구문명의시발점이 로마이고 그런 로마제국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 카이사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럽의 주요 도시인 런던, 쾰른, 리용등 수많은 도시들이 로마인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유럽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고있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카이사르가 당시 브리태니아에 정벌하러 왔음에도 그들은
"잉글랜드 문명의 시작은 로마인들이 잉글랜드 섬에 발을 디딫는 순간이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일본이나 중국대륙의 침입을 수없이 받아온 우리가 그 시대를 결코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의아할 따름이다.
비단 유럽인들 만이었을까?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Shiono Nanami) 여사는 그가 15년 동안 매년 출판하여 15권 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두툼한 두권의 분량에 할해하며 썼다.
그녀는 로마제국의 특징을 얘기하면서 카이사르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았고 바람기가 많았던 그의 연애행각에 대해서도 크게 거부감 없이 기술한듯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카이사르는 역사상 다시 없는 특별한 존재라 생각한다. 군인으로서 정치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연설가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다. 문장력도 상당히 있어서 그가 저술한 '갈리아전기'의 내용을 보면 그의 대단한 필력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카이사르에 대한 외경심을 느끼는 것은 단지 그의 능력이나그가 이룩한 업적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일 것이다.
보통사람으로서의 매력이 아닌 리더로서 갖춰야할 덕목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 그의 생애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그의 덕목이 있어서 얘기해 본다.
- 패자도 동화시키는 관용
카이사르는 자신의 반대세력도 탄압하려 하지 않았다. 관용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고 패자도
동화시킨다는 로마전통에 충실했다.
로마는 초창기부터 그들을 괴롭힌 이민족을 정복한 후에도 그들과의 동화정책을 꾸준히
해오기는 했다. 왕정초기에는 로마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에트루리안 출신을 왕으로 삼기도 하고 공화정 때에는 굴욕을 안겨준 삼니움족 출신의 집정관들도 있었다.
그가 갈리아의 수많은 민족들을 단 8년만에 평정하고 안정시켯던 것은 관용을 기반으로한
당근과 채찍전술에 의한 것이었다. 일단 패배시킨 적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충분히 생존할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다른 민족을 정복할 때 우군세력으로 이용할수 있었던 것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는 반대파에 대한 보복은 일체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 칼끝을 겨눈 세력과 행동을 같이 했지만 카이사르 자신과 뜻을 함께할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자신이 최대 정적인 폼페이우스 에게도 최후의 순간까지 타협을 포기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가장 로마스러운 로마인이었던 것 같았다.
그는 호위병도 없이 로마시내를 무방비 상태로 활보하고 다녔다고 한다. 자신의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며 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도 했지만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을 지키는 갑옷은 신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그의 나이 55세였을 때, 브루투스를 위시한 14명의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요즈음 국가적인 리더쉽의 부재라는 말이 자주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국가라는 커다란 공동체의 지도자에게는 여러가지 중요한 덕목이 필요하다
카이사르가 보여주었던 패자도 동화시키는 관용의 덕목은 다른 여러가지 덕목 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사회는 모든 법이나 제도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야 한다.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듯 보인다.
이것은 정의(正義)의 문제이다. 정의가 살아있지 않는 사회는 결코 건전한 사회가 될수 없다.지도자는 사회의 정의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개혁에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개혁에는 진통이 따른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자신의 정책에 반하고 적대시 하는 세력도 품을줄 알아야 한다. 개혁의 드라이브 속에서도 패자를 동화시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추진했으면 한다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분열되는 모습에 착찹함을 느낀다. 진영간 세대간 분열의 양상이 의견이 다르면 상대방의 얘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부디 우리사회를 통합시킬수 있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