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치킨이 멈추자, 경제가 뒤흔들렸다
[CEONEWS=김소영 기자] “치킨이 사라진다.” 농담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2025년 5월,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되며 벌어진 사태는 단순한 유통의 문제가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HPAI) 발생으로 인한 수입 차단은 곧바로 대한민국 내수경제 곳곳에 경고음을 울렸다. 브라질은 우리나라 닭고기 수입의 89%를 차지하던 ‘절대 수입국’이었다. 그 버팀목이 무너지자 물가는 꿈틀거렸고, 외식업은 흔들렸으며, 공급망은 민낯을 드러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 육계 산업과 경제 시스템 전반에 드러난 다섯 가지 구조적 리스크를 다시 들여다봤다.
1. 소비자는 치킨값 인상으로 되돌아온다
먼저 문제는 ‘가격’이다. 브라질산 닭고기는 단가가 국내산 대비 60% 수준이었다. 순살치킨, 닭강정, 도시락 등 서민들이 애용하던 가공제품에 폭넓게 사용됐다. 수입이 멈추자 가격은 즉각 반응했다. 일부 프랜차이즈는 메뉴 변경을 고려하고 있으며, 편의점은 공급 차질로 신상품 출시를 연기했다.
문제는 이 영향이 단발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체감하기 쉬운 식품 물가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이는 고스란히 가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수입이 중단된 닭 한 마리가 결국 내수 전체의 체온을 바꾼 셈이다.
2. 자영업자의 마진이 무너진다
외식업자들은 이중의 충격을 받고 있다. 원재료 단가 상승은 즉각적인 가격 전가가 어렵다. 특히 중소 치킨 전문점, 분식점, 급식업체들은 이미 한계마진 구조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버티느냐, 접느냐’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사실상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외부 변수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중소업체에 훨씬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대체 수입선이나 재고 운용 여력이 있다. 반면 소상공인은 없다. 위기 속에서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3. 식량안보,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브라질산 닭고기는 ‘값싸고 질 좋은’ 공급원으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명확하게 드러냈다. 단일국 수입 의존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리스크라는 사실을.
브라질 외 하나의 국가에 의존해 90%에 가까운 수입을 맡기고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국가단위의 공급망 도박이었다. 누군가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닭고기 한 마리 없이 한 달을 버텨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식량안보, 이제는 농업의 이슈가 아니다. 경제안보 그 자체다.
4. 식품 제조업도 멈춘다
가정간편식(HMR), 냉동식품, 치킨가공품을 만드는 국내 식품기업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기존에 브라질산을 활용하던 생산라인은 원료가 끊기자 품질 테스트, 라벨 재설계, 생산 캘린더 전면 조정에 들어갔다. 한 달에 수백 톤씩 조달되던 원물이 사라지자, 제조공장은 사실상 스톱 버튼을 눌렀다.
이는 결국 납기 지연, 생산성 저하, 비용 증가라는 형태로 수출 경쟁력까지 흔든다. 닭고기라는 한 품목의 중단이 단순히 ‘국내 시장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5. 하림은 구조로, 마니커는 반사로 움직였다
기업 대응도 극명히 갈렸다. 하림은 즉각 공급 확대에 나섰다. 평년 대비 105~110% 출하 확대 계획을 발표하며, 태국·미국 등 대체 수입국을 병행 확보하고 있다. 수직계열화된 구조는 이번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닭을 키우는 것부터 가공해 유통까지 일원화된 시스템은 위기 대응 속도에서 독보적이었다.
반면 마니커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자체 도축은 없지만, 국내산 원료 가공 중심이라는 점에서 일시적인 시장 주목을 받았다.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생산 확대 역량도 제한적이고, 구조적으로 외부 도계장에 의존하는 사업 모델은 한계가 뚜렷하다.
하림이 구조로 승부한 반면, 마니커는 외생변수에 의한 반응에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기 속 체질을 바꿀 시간
이번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 중단은 단순한 사료비 상승, 가공 원가 인상, 유통 차질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의 ‘공급 불균형’, ‘의존형 수입구조’, ‘자생력 부족’을 동시에 들춰낸 사건이다.
한 마리 닭이 사라지자 유통망이 흔들리고, 자영업자가 무너지고, 식품산업이 멈췄다. 위기 속에서 진짜 강한 기업은 시스템으로 살아남고, 구조를 가진 자가 다음 기회를 만든다. 다음은 다른 식재료일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엔 시간이 없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