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 칼럼 15] 현대차 조지아 사태... 反이민 정책 트리거, MASGA 위협

워싱턴의 자가당착(自家撞着)… 한미동맹의 미래, 트럼프의 선택

2025-09-09     박수남 기자
CEONEWS 대표/편집국장 박수남 

 

[CEONEWS=박수남 기자] 2025년 9월 4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 메타플랜트 건설 현장을 덮친 연방 요원들의 군홧발은 단순한 이민 단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오만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정책 모순이 폭발한 순간이자, 속도전을 위해 규제 준수를 시스템적으로 외면해 온 리스크, 이른바 '한국형 빨리빨리 시스템(Georgia Syndrome)'이 미국 정치의 도마위에서 칼질을 당한 순간이었다 

한 편에서는 '미국 제조업 부흥'을 외치며 한국 기업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환영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 투자를 실현할 동맹국 국민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는 낡은 시스템으로 동맹을 옭아맨 미국의 자가당착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해외 투자를 통한 산업 부흥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맹목적인 반이민 정책인가. 이 두 정책이 공존하는 한 제2의 조지아 사태는 불가피하며, 그 파장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 한미동맹의 근간인 조선업 협력까지 위협하고 있다.

워싱턴의 두 얼굴

조지아주 엘라벨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분열이 현실화된 '그라운드 제로 (9/11 테러로 붕괴된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부지)였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산하 국토안보수사국(HSI)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사인 HL-GA 배터리 컴퍼니 건설 현장을 급습, 475명을 구금했다. HSI는 이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사업장 단속 작전'으로 명명했다.구금된 인력 중 300명 이상이 대한민국 국민이었으며, 이들이 족쇄를 찬 채 연행되는 굴욕적인 장면은 동맹에 대한 '배신'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주 역사상 가장 큰 경제 개발 프로젝트'라며 약 20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지원한, 미국 제조업 부흥의 상징이었다. 타임지가 분석했듯, 이는 "트럼프의 상충하는 우선순위"가 빚어낸 예고된 참사였다.

현대차와 LG는 즉각 "직접 고용한 직원은 없다"며 '하청업체 방패(Subcontractor Shield)' 전략을 펼쳤다.이는 2022년 앨라배마 아동 노동 스캔들 당시 사용했던 전략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번 단속은 단순한 이민 단속이 아니었다.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등이 총동원된 것은 당국이 단순 비자 위반을 넘어 불법 체류자 은닉, 금융 사기 등 더 광범위한 조직적 범죄 공모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법 집행 당국은 더 이상 '하청업체 방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수사의 칼날은 불법을 조장한 기업 구조 자체를 겨누고 있다.

정책 실패가 '불법'을 강요

'조지아 사태'의 근본 원인은 우리 기업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 미국 이민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와 이를 방치한 트럼프 행정부에 있다.

사태의 핵심에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오용 문제가 있다. VWP는 '직접적인 노동(hands-on work)'을 명백히 금지한다.하지만 H-1B와 같은 정식 취업 비자는 발급에 최소 8개월 이상 소요되고 절차가 까다로워, 현대차 조지아 메타플랜트의 '번개처럼 빠른' 건설 일정에는 부적합했다. 이 때문에 VWP를 이용한 단기 기술 인력 파견은 업계에서 "매우 잘 알려진 허점(loophole)"이자 암묵적으로 용인된 관행이 되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핵심 국정 과제(제조업 부흥)를 뒷받침할 합법적인 노동력 이동 통로를 마련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세금 공제로 신속한 투자를 장려하면서도, 정작 그 투자를 실현할 인력의 배치를 막는 모순적인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기조를 선택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수년간 숙련 기술 인력을 위한 새로운 비자 신설을 요구했지만, 워싱턴은 이를 외면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스스로 정책 실패로 만들어낸 '회색 지대'를 향해 사법의 칼날을 휘두른 셈이다. 이는 함정을 파놓고 그곳에 빠진 동맹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행위이며, 시스템의 실패를 동맹에 대한 폭력으로 전가한 것이다.

'조지아 사태'의 민낯

물론 조지아 사태의 원인제공은 현대차의 위법적 인력운용에 있다. 이는 규제 준수보다 속도를 우선시하는 패턴이 낳은 한국형 '빨리빨리 시스템'이 낳은 긍정적이자 부정적 산물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2022년 앨라배마 아동 노동 스캔들이 그렇다. 당시 현대차 부품 공급업체들은 미성년 이주 아동을 불법 고용한 사실이 적발되었고, 현대차는 하청업체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했다.미 노동부가 하청업체에 대한 규정 준수 강화를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구조적 문제가 조지아에서도 반복되었다.

조지아 메타플랜트 현장의 문제도 심각했다. 이민법 위반 외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Growth at All Costs)' 문화는 심각한 환경 및 안전 문제를 야기했다. 2024년 9월, 공장 폐수에서 허용치의 6배가 넘는 구리가 검출되어 위반 통지를 받았고, 2025년 5월에는 폐수 불법 처리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또한, '속도전'에 내몰린 건설 현장에서는 최소 3명의 사망자와 20명 이상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따라서 일방적 트럼프 행정부의 전적인 실책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현대차의 입장처럼 이 것을 모멘텀 삼아 규제준수를 통해 제2의 앨라배마, 제2의 조지아 사태를 미연에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의 본질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모순에 있음은 자명하다. 현대차나 한국의 기업들이 규제준수를 한다해도, 트럼프 행정부의 모순적 정책이 수정되지 않는한 이 불씨는 자연 연소하지 않고 도사리고 남아 제2의 조지아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하고, 나아가 한국과 미국의 핵심 협력이라 할 수 있는  MASGA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자명하다.  

좌초 위기의 조선 동맹 (MASGA)

수십 년간 쇠퇴하여 중국에 현저히 뒤처진 미국 조선업은 국가 안보의 치명적 위협이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 조선 기술을 수혈하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MASGA)'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이는 한국의 첨단 기술을 통해 미국의 군함 건조 능력을 회생시키려는 국가적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MASGA의 성공은 전적으로 '사람', 즉 한국의 숙련된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의 미국 이전에 달려있다.조지아 사태는 이 핵심 동력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자국민 수백 명이 범죄자 취급받는 모습을 본 한국의 고급 인력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행을 자처할 가능성은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한 기업 임원은 "워싱턴이 직접 로비해서 유치한 공장을 짓는 한국 노동자들이 범죄자처럼 취급받고 있다"고 토로했다.실제로 조지아 사태 이후, MASGA를 포함한 최소 22개의 한국 기업 관련 미국 현지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이 어떻게 스스로의 경제와 안보를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트럼프의 선택, 그리고 한미동맹의 미래

조지아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대차의 경영행위의 과실로 정당화하기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순된 정책방향이 조지아 사태의 기저에 깔려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적 자가당착에 있다.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선언과 '불법 이민을 뿌리 뽑겠다'는 구호는 현재의 낡은 시스템하에서는 양립할 수 없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중대한 결단의 기로에 섰다.

첫 번째 길은 '투자 유치'를 우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경직된 이민법, 특히 숙련 기술 인력의 단기 파견을 위한 비자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 한국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전문직 비자(가칭 E-4 비자) 신설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합법적인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이는 투자 기업들에게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조지아 사태'와 같은 파괴적인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두 번째 길은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 길을 선택한다면, 행정부는 조지아 사태와 같은 대규모 단속을 계속 정당화할 것이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을 '예측 불가능한 고위험 국가'로 간주하고 투자를 철회하거나 재검토할 것이다.MASGA와 같은 국가적 프로젝트는 동력을 잃고 좌초될 것이며, 미국의 제조업 부흥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결국 이는 동맹의 신뢰를 잃고, 스스로의 경제와 안보를 약화시키는 자해 행위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이 딜레마를 인식하고 "전문가들이 들어와 우리 미국인을 훈련시킬 수 있도록 무언가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제 말뿐인 인정이 아닌,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지아의 비극은 한미 경제 동맹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성장통이 될 수도, 혹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은 워싱턴의 몫이며, 대한민국과 전 세계가 그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