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8] "30년 뒤 누가 빚 갚나"... 저출산 쇼크, 韓 국가신용등급 '강등' 방아쇠 당겼다

피치·무디스의 경고장, '인구 회복력 지수(DRI)' 블랙록의 '코리아 패싱' 선언, 채권 시장에 등장한 '인구 프리미엄' 연금개혁 좌초가 쏘아 올린 '정책 실패'의 결정타

2025-09-10     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8] "30년 뒤 누가 빚 갚나"... 저출산 쇼크, 韓 국가신용등급 '강등' 방아쇠 당겼다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경고는 끝났다. 재앙은 이미 시작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인구 절벽'이 마침내 국가 경제의 멱살을 쥐는 구체적인 금융 리스크로 전환됐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사회문제가 아니다. 바로 지금, 한국의 돈줄을 죄는 '국가 부도'의 방아쇠가 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 언론 모두 이 치명적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주요 금융지,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의 최신 방법론, 그리고 자산운용사 보고서를 교차 분석한 결과, 글로벌 자본은 이미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있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저출산=‘국가 부도 리스크’ 공식화

지금까지 국가 신용등급은 주로 단기적인 경제 성장률이나 외환보유고 같은 지표에 의해 결정됐다. 하지만 그 공식이 깨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월 9일 자 분석 기사에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국가의 장기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잣대로 '인구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국가의 펀더멘털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반도체를 잘 만들고 자동차를 많이 팔아도, 미래에 세금을 내고 빚을 갚을 '사람'이 사라지는 국가는 신뢰할 수 없다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있다. 저출산은 이제 명백한 '채무 불이행(Default)' 위험으로 간주된다.

피치·무디스의 경고장, '인구 회복력 지수(DRI)'

이 변화의 선두에는 피치(Fitch)와 무디스(Moody's)가 있다. 이들은 2025년부터 국가신용등급 평가에 '인구 회복력 지수(Demographic Resilience Index, DRI)'를 도입했다. DRI는 합계출산율, 생산가능인구 감소 속도,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율을 정량화하여 신용등급에 직접 반영하는 모델이다.

특히 피치는 방법론 개정 보고서에서 충격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합계출산율이 장기간 1.0 미만인 국가는 장기 성장 잠재력에 대한 ‘자동 하향 조정 트리거(Automatic Downgrade Trigger)’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한국을 겨냥한 조치다. 2025년 기준 0.7명대의 처참한 출산율을 기록 중인 한국은 이 새로운 기준 하에서 언제든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블랙록의 '코리아 패싱' 선언, 채권 시장에 등장한 '인구 프리미엄'

거대 자본의 움직임은 더 빠르고 냉혹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9월 초 발표한 '2026 글로벌 장기 자본시장 전망'에서 향후 10년의 최대 리스크로 '인구통계학적 분열'을 지목하며, 인구 구조가 불안정한 국가의 자산 비중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코리아 패싱'이다.

블랙록은 보고서에서 "급격한 고령화는 기술 혁신으로도 막을 수 없는 구조적 디플레이션과 자산 가치 하락을 유발한다"고 단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초대형 연기금들이 한국을 '인구 리스크 집중 관리 대상국'으로 분류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경고는 이미 시장에서 현실적인 비용으로 청구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9월 10일, 글로벌 채권 투자자들이 한국 국채 매입 시 추가적인 위험 가산금리, 이른바 ‘인구 프리미엄(Demographic Premium)’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과거보다 더 비싼 이자를 내야만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우리는 30년 뒤 누가 이 나라의 빚을 갚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뼈아픈 지적을 남겼다.

연금개혁 좌초가 쏘아 올린 '정책 실패'의 결정타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정책적 무능력(Policy Paralysis)'은 이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연금 개혁 지연을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연금 개혁 좌초를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지목하며 "정치적 교착 상태가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인구는 급감하는데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구조를 방치하는 시스템이 국가 신용을 갉아먹는 결정타가 된 것이다.

제2의 IMF보다 고통스럽다... '구조적 쇠퇴'라는 이름의 청구서

이 사태의 심각성은 1997년 외환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IMF 위기는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였기에,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구 구조 붕괴로 인한 신용 위기는 다르다. 이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쇠퇴의 신호탄이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폭증하고, 외국인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환율은 급등하게 된다. 이는 경제 활력 저하와 자산 가치 폭락이라는 고통스러운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부와 정치권이 폭탄 돌리기를 지속하는 동안, 글로벌 금융 시장은 이미 한국 경제에 대한 사형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국가의 존립을 건 인구 전략과 연금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구조적 쇠퇴'라는 이름의 혹독한 청구서를 받게 될 것이다. CEO와 정책 결정자들의 비상한 각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