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필요한 건 다 있는 국민가게 ‘다이소’
“가격이 저렴하지만 사구려는 팔지 않는다” 가성비 트랜드에 급성장한 국민가게 “필요한 건 다 있소”
[CEONEWS=김병조 기자] 불황일 때는 가격이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된다. 무조건 싼 제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성비를 따지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 트렌드 때문에 급성장한 기업이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다이소다. 1992년 설립돼 32년 만에 매출 3조 9,689억 원을 올린 다이소의 발자취를 짚어본다.
10년간 매출 345.9%, 영업이익 560.5% 성장
다이소가 얼마나 급성장을 하고 있는지 최근 10년간의 실적으로 확인해보자. 2014년의 다이소 매출은 8,900억 원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24년의 매출은 3조 9,689억 원이었다. 10년간 매출 신장률이 무려 345.9%나 됐다. 2015년에 1조 원을 돌파한 뒤 4년 만인 2019년에 2조 원대로 올라섰고, 다시 4년 만인 2023년에 3조 원대를 돌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3년 만인 올 연말 매출이 4조원 대를 가볍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익 신장률은 더 가파르다. 2014년 562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4년 3,712억 원으로 560.5%나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2014년에는 6.3%였으나 2024년에는 9.4%로 수익성이 더 높아졌다.
순이익도 급증했다. 2014년 470억 원이었던 순이익은 지난해 3,094억 원으로 558.3%나 성장했다. 한마디로 알짜배기 회사가 되었다.
아성다이소는 어떤 기업인가?
아성다이소는 우량의 상품을 저가의 균일가(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로 판매하는 생활용품 전문판매회사다. 1992년 1월 28일 (주)아성무역으로 설립되었다. 1996년에 법인명을 ㈜아성산업으로, 2001년 9월에 ㈜다이소아성산업으로 변경했으며, 2018년 1월에 현재의 ㈜아성다이소로 변경했다.
본사는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물류센터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자본금은 32억 1,900만 원이고, 주요 주주는 아성HMP(76%)다.
창업주는 박정부 회장이며, 일본 100엔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97년 5월 서울 천호동에 아스코 이븐플라자 1호점을 오픈했다. 이것이 국내 최초 균일가 생활용품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매장 수는 1,576개인데, 직영점이 1,093개이고 가맹점은 483개로 직영점 비율이 69.4%나 된다. 전체 매장 수는 올해 상반기에 1,600개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원수는 12,520명에 이른다.
일본 다이소와의 관계
아성다이소를 알려면 창업자 박정부 회장이 벤치마킹한 일본 다이소를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의 100엔 숍 ‘다이소(ダイソー)’를 운영하는 ㈜다이소산업(株式会社大創産業, 영어: Daiso)은 본사가 일본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에 위치해 있다. 전 세계에 총 5천 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데, 100엔숍 체인점으로는 매출액, 점포 수 모두 일본에서 1위다.
1972년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가 가정용품 판매를 목적으로 야노상점을 창업했는데, 1977년 ㈜다이소산업으로 법인화하고, 1987년부터 '100엔SHOP 다이소'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001년 9월 일본 다이소산업이 한국 아성산업에 38억원(4억엔)을 투자해 주식 34.21%를 취득하고 합작회사를 설립함과 동시에 기업명을 다이소아성산업으로 변경했다. 2002년 3월에 외국인 투자 촉진법에 의한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서 등록되었다.
2018년 1월 아성다이소로 기업명을 변경했다. 일본 기업이 2대 주주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2013년과 2019년 반일 감정이 고조됐을 때 불매운동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23년 12월 12일 한국 아성다이소의 최대주주인 아성HMP가 일본 다이소산업이 보유한 아성다이소 지분 34.21% 전량을 매입해 합작을 해소했다. 취득 금액은 5,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아성다이소의 발전 과정
아성다이소는 1997년 국내 최초로 균일가 생활용품 첫 매장을 열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굴곡을 거치면서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 오늘의 ‘국민가게’로 성장했다. 아성다이소는 “놀라운 가치로 고객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드리는 것을 경영이념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첫 매장을 연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적은 돈도 그 속에 담긴 땀의 가치는 크기에 천원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균일가 정신을 한결같이 지켜왔다.
고객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가격은 놀랄 정도로 저렴하되 품질은 기대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 상품에 대한 다이소의 기준이다. 이를 위해 다이소는 남보다 많이 뛰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유통과정에서 제거할 수 있는 거품을 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회사다.
‘국민가게, 다이소’는 지금과 같이 고객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직한 고집으로 기본을 지키며, 꼭 필요한 생활용품처럼, 꼭 필요한 국민가게로 고객의 곁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다이소 브랜드 스토리
‘다이소’라는 브랜드를 처음 접한 한국인이라면 ‘모든 게 다 있다’는 의미의 ‘다있소’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원래 유래는 일본 다이소를 운영하는 '다이소 산교'(大創産業, 대창산업)의 '大創'(대창)을 일본식 발음인 '다이소' 그대로 쓴 것이다.
한국의 다이소는 1997년 처음 1호점을 낼 때는 ‘아스코이븐프라자’였다.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이름이었지만, 발음이 어렵고 생뚱맞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다가 2001년 창업자 박정부 회장이 물건을 납품하던 일본 회사 대창산업에서 지분 투자를 받으면서 ‘다이소’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대창산업을 일본어로 하면 ‘다이소산교’이고, 그들이 일본에서 운영하던 100엔숍 이름이 ‘다이소’였다.
‘다이소’는 ‘필요한 것은 다 있소’라는 의미로도 연상이 되고 쉽게 기억할 수 있어 좋은데, 일본의 다이소와 이름이 같다 보니 일본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성다이소는 100% 한국 기업이다. 일본의 다이소가 투자한 적은 있지만, 일본 대창산업이 경영에 참여한 적도 없고, 로열티를 낸 적도 없다. 게다가 투자했던 지분도 이제는 전부 매입했기 때문이다.
아성다이소의 가치
아성다이소 창업자 박정부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격이 싼 상품을 팔지만 싸구려를 팔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품질이 나쁘면 1,000원도 비싸다고 느낀다. 좋은 상품은 신기하게도 소비자가 먼저 안다. 그 수만 가지 제품 중에서 판매가 대비 원가가 높고, 기능도 좋은 상품만 소비자는 쏙쏙 잡는다”고 박 회장은 전했다.
다이소는 1997년 1호점을 시작으로 1,000원도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균일가 정책을 통해 국민과 함께 성장해온 대한민국 대표 생활기업이다.
일본 다이소 자본이 철수함에 따라 이제 완전한 대한민국 기업이 된 다이소는 더 높은 품질로 고객을 더 높이고, 더 낮은 가격으로 고객 앞에 더 낮아지겠다는 브랜드 아이덴터티를 정립했다.
아무리 적은 돈도 그 속에 담긴 땀의 가치는 크다. 1,000원이 소중하게 대접 받는 국민가게 다이소, 다이소는 작지만 다이소가 제공하는 만족은 어느 기업보다 컸으면 좋겠다는 것이 다이소의 소박한 꿈이다.
고객이 다이소에서 물건을 고르는 기준과 다이소가 제품을 가져오는 기준은 다르지 않다. 고객이 가격만 보고 선뜻 물건을 사지 않는 것처럼 오늘도 다이소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최고의 가성비를 갖춘 제품만을 찾고 있다. 좋은 품질을 좋은 가격으로 사겠다는 고객의 기준이 곧 다이소의 기준이다.
이런 기준에서 다이소는 현재 화장품, 패션, 반려동물, 사무문구, 주방용품, 청소/욕실, 수납/정리, 문구/팬시, 인테리어, 원예, 공구/디지털, 식품, 스포츠, 레저, 취미, 유아/완구, 잡화 등의 상품 카테고리에서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상품을 제공하는 국민가게 역할을 하고 있다.
아성다이소 창업자 박정부는 누구?
아성다이소를 창업한 박정부 회장은 1944년생이다. 서울 영등포고등학교와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서울 구로공단의 전구 업체인 풍우실업에 입사해 15년간 근무하며 공장장 직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관리하는 현장에서 파업이 터지면서 책임을 지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박 히장은 1988년 일본 100엔숍 등에 저가 생활용품을 수출하는 무역회사 한일맨파워(현 아성HMP)를 설립했다. 2002년 무역의날에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일본에 수출을 제일 많이 하던 2003년에는 수출액이 2,142억 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2년 국내에 균일가숍을 개점하기 위해 아성산업을 설립했다. 법인 설립 후 첫 매장을 열기까지는 5년이나 걸렸다. ‘아성’이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주셨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성공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1997년 석탑산업훈장, 2002년 철탑산업훈장, 2008년 동탑산업훈장, 2016년 금탑산업훈장, 2014년 대통령표창 등 다수의 훈장과 표창을 받은 바 있다. 2022년 11월에 출간한 ‘천 원을 경영하라’는 저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부터 ㈜아성HMP와 ㈜아성다이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