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더 43] 실리콘밸리 여제 AMD 리사 수가 쓰는 반도체 제국의 새 역사
이민자의 딸에서 글로벌 테크 리더로, 그녀가 보여준 '불굴의 경영학' 파산 위기 AMD를 250조 원 기업으로 부활시킨 위대한 변화의 설계자
[CEONEWS=김소영 기자] 2025년 현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리사 수(Lisa Su), AMD의 최고경영자다. 그녀가 2014년 CEO로 취임했을 때 AMD의 주가는 3달러에 불과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AMD의 시가총액은 250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가치의 상승을 넘어, 한 여성 리더가 만들어낸 '산업사의 기적'이다. 대만 출신 이민자의 딸에서 실리콘밸리 최고의 CEO로 올라선 그녀의 여정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술과 리더십,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만나 어떤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대판 서사시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는 위기에 처한 기업을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이민자의 꿈, 천재성의 발현
▲뉴욕 브롱스에서 시작된 아메리칸 드림
1969년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난 리사 수의 삶은 전형적인 이민자 가정의 분투사로 시작된다. 통계학을 전공한 아버지 수춘성과 회계학을 공부한 어머니 뤄화펑은 1974년 일곱 살 딸과 함께 뉴욕 브롱스로 향했다. 당시 브롱스는 범죄율이 높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이었지만, 수 가족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었다. 리사 수의 부모는 전형적인 아시아계 이민자 부모였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자녀의 성공에 대한 간절함이 남달랐다. 특히 피아노를 전공했던 어머니는 딸에게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자세'와 '끈기'를 심어주었다. 이는 훗날 그녀가 반도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에 천부적 재능을 보인 리사 수는 17세에 MIT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학부 과정에서부터 반도체 물리학에 매혹되었고, 특히 실리콘의 전기적 특성을 개선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MIT에서 IBM까지, 기술자로서의 정체성 확립
MIT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마친 리사 수는 1994년 IBM 연구소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OI) 기술 개발에 참여하며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SOI 기술은 반도체 칩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면서도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이었다. IBM에서의 15년간 리사 수는 단순한 연구원을 넘어 리더로 성장했다. 그녀는 기술적 전문성과 함께 팀을 이끄는 능력을 키웠다. 동료들은 그녀를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리더"로 기억한다. 2007년 프리스케일 반도체로 이직한 것은 그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대규모 사업부를 책임지며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비록 프리스케일이 시장에서 고전했지만, 이 경험은 그녀에게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을 가르쳐주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AMD 구원 작전
▲죽음의 계곡에 선 AMD
2014년 리사 수가 AMD CEO로 취임했을 때, 회사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주가는 3달러대로 추락했고, 시장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인텔은 CPU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AMD의 생존 가능성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리사 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취임 후 첫 번째 전사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에게는 뛰어난 기술과 인재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집중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과감한 투자
리사 수의 첫 번째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녀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문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모든 자원을 CPU와 GPU 개발에 집중시켰다. 특히 그녀가 주목한 것은 젠(Zen) 아키텍처였다. 이는 AMD가 오랫동안 개발해온 차세대 CPU 설계였지만, 자원 부족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리사 수는 회사의 미래를 젠 아키텍처에 걸었다. 그녀는 "기술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실제로 성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엔지니어들과 마케팅 팀 간의 긴밀한 협업을 주문했다. 2017년 출시된 라이젠(Ryzen) CPU는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였다. 인텔의 동급 제품보다 뛰어난 성능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수년간 인텔에게 밀렸던 AMD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
리사 수의 리더십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녀의 '공감 능력'이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그녀는 기술적 세부사항까지 깊이 이해했고, 이는 직원들과의 소통에서 큰 장점이 되었다. 직원들은 "CEO가 우리의 작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녀는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했다. "실패는 학습의 기회다. 중요한 것은 실패로부터 배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그녀의 철학은 직원들에게 도전 정신을 심어주었다.
■AI 시대의 선구자, 미래를 설계하다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는 AI 전략
현재 리사 수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ChatGPT의 등장 이후 AI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엔비디아가 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리사 수는 이를 기회로 보았다. 그녀는 "AI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모든 산업을 변화시킬 근본적인 힘"이라고 강조하며, AMD의 모든 자원을 AI 반도체 개발에 집중시키고 있다. 2023년 출시된 MI300 시리즈는 그 결실이다. 이 칩은 엔비디아의 H100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 중요한 것은 리사 수가 단순히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의 쿠다(CUDA)에 대항하는 ROCm 플랫폼을 통해 개발자들이 AMD 칩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모든 곳의 AI, 엣지 컴퓨팅의 미래
리사 수의 AI 비전은 데이터센터를 넘어선다.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모든 기기에서의 AI'다. PC, 스마트폰, 자동차, 심지어 가전제품까지 모든 기기에 AI 기능이 탑재되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AMD는 저전력 고효율 AI 칩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AI는 클라우드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 모든 곳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그녀의 비전은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젠더와 다양성, 새로운 리더십의 모델
▲유리천장을 깬 여성 리더
실리콘밸리에서 여성 CEO는 여전히 드물다. 특히 반도체처럼 전통적으로 남성이 주도해온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리사 수는 이런 환경에서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녀는 성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STEM 분야 여성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포춘지는 그녀를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이는 그녀의 성취가 단순히 기업 경영의 범주를 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성을 통한 혁신
리사 수는 조직 내 다양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이 소수자로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AMD를 더욱 포용적인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성별, 인종, 출신 배경을 불문하고 능력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그녀의 인재 전략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난다"는 그녀의 믿음은 AMD의 기업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AMD는 실리콘밸리 기업 중에서도 다양성 지수가 높은 편으로 평가받는다.
■미래를 향한 도전과 전망
▲지속가능한 성장의 조건
AMD의 놀라운 부활에도 불구하고 리사 수 앞에는 여전히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인텔은 여전히 거대한 경쟁자이고, 엔비디아는 AI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환경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리사 수는 이런 도전들을 성장의 기회로 보고 있다. 그녀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우리는 더욱 혁신적이 되어야 한다"며 지속적인 R&D 투자와 인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컴퓨팅'이다. AI와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성장으로 전력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난 반도체 개발은 필수불가결한 과제가 되었다. AMD는 이미 이 분야에서 선두적 위치에 있으며, 리사 수는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차세대 리더 육성과 조직 문화
리사 수는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리더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그녀는 "위대한 리더는 자신보다 뛰어난 후계자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AMD 내부에서는 이미 그녀의 리더십 철학을 체득한 젊은 리더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녀가 구축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문화'와 '기술적 탁월성을 추구하는 문화'는 AMD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이는 리사 수 개인의 리더십을 넘어 조직 전체의 역량으로 체계화되고 있다.
■위대한 변화의 설계자
리사 수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업 경영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조직을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리더가 가져야 할 세 가지 핵심 덕목이다. 첫째,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 둘째,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 셋째,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간적 역량. 2014년 파산 위기에 놓였던 AMD가 2025년 현재 시가총액 250조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한 명의 뛰어난 리더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하지만 그 기적의 이면에는 치밀한 전략과 끝없는 노력,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었다.
리사 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I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함께 그녀 앞에는 더 큰 도전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리더십을 볼 때, 그 도전들 역시 새로운 성공의 발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한 이민자의 딸이 실리콘밸리 여제로 우뚝 선 이 놀라운 이야기는, 꿈과 노력이 만날 때 어떤 기적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인상적인 서사시다. 그리고 그 서사시의 가장 흥미진진한 장은 아직 쓰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