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0] 배임죄 폐지...한국 자본주의 72년 형벌의 굴레

"검찰 포토라인 vs 나스닥 상장: 배임죄가 가로막은 글로벌 도약"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숨겨진 주범, 모호한 법 조항 하나가 만든 경영 공포정치 형사처벌에서 민사책임으로, 한국 경제 거버넌스의 패러다임 시프트

2025-09-30     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0] 배임죄 폐지...한국 자본주의 72년 형벌의 굴레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경기도의 한 첨단 기술 단지, 유망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사실. 김 대표는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보고서를 응시하고 있다. 유럽의 경쟁사를 인수하기 위한 실사 보고서다.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이 회사를 인수한다면, 단숨에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전략적 타당성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사회는 주저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성공의 청사진보다 실패의 공포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배임죄'라는 유령 때문이다. 

만약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과감한 도전을 한 선구자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 '재산상 손해의 위험'을 초래한 범죄자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인가? 성공하면 혁신이지만, 실패하면 범죄가 될 수 있는 이 기이한 현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기업인들이 마주한 딜레마다. 이 개인적 고뇌는 사실상 국가 경제 전체가 앓고 있는 비극의 축소판이다. 

지난 72년간, 모호하고 포괄적인 형법상 배임죄 조항은 한국 기업가 정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기능해왔다. 위험 감수를 기피하게 만들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소극적 경영을 조장했으며,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이 법의 폐지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단순한 법률 개정을 넘어선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가 형사처벌을 통한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시장 규율과 강력한 민사 책임을 통한 책임 시스템으로 나아갈 만큼 성숙했는지를 묻는 심오하고도 위험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만능 범죄' - 법적 모호함은 어떻게 혁신을 겨누는 무기가 되었나 

배임죄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그 구성요건의 모호함에 있다. 바로 이 모호함 때문에,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합리적인 근거를 가졌던 경영 판단마저 사법적 단죄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기업의 역동성을 옭아매는 무기로 변질되었다. 

형법 제355조 2항이 규정하는 배임죄는 네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1)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주체, (2)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할 것, (3)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할 것, 그리고 (4) 행위자 자신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할 것 등이다.    

문제는 이 구성요건들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는 데 있다. 특히 '임무 위배 행위'는 명확한 정의 없이 '본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로 해석된다. 신임관계 위반이라는 개념은 검찰이나 법원이 사후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성공한 M&A는 과감한 결단이지만, 실패한 M&A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신임관계를 저버린 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한국 법원의 독특한 해석이다.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한국의 판례는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이는 배임죄를 '위태범(危殆犯)'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을 본질로 하는 경영 활동의 숨통을 조이는 결정적 기제다. 이 논리에 따르면, 결국 성공했거나 손익분기점을 맞췄더라도 실패할수도 있었던 과감한 투자는 잠재적 범죄 행위가 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모든 경영 판단이 잠재적인 기소 대상이 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위축 효과

이러한 법적 모호성은 기업 경영에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직접적으로 유발한다. 배임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무죄율이 5배나 높다는 통계는 역설적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기소는 쉽지만 유죄 입증은 어려운 구조는, 경영진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년간 기업 활동이 마비되고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소위 '과정 자체가 처벌'이 되는 상황을 만든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커지면서 배임죄가 더욱 공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업적 실패가 곧 형사적 단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반드시 필요하지만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 혁신적인 M&A, 장기적인 R&D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경영진 개인에게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포의 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러한 법적 리스크와 경영의 위축은 한국 증시의 만성적인 저평가 현상,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직결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낮은 주주환원율,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배임죄는 바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배임죄 기소의 위협은 기업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투자를 가로막는다. 대신 경영진은 현금을 쌓아두거나 극도로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은 사업에만 몰두하게 되고, 이는 자본 효율성(ROE)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이 법적 리스크는 이사회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총수의 결정을 견제하기 어렵게 만든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불리한 합병이나 계열사 부당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반대하는 것은 총수에 대한 '배신'으로 비칠 수 있다. 반대로 총수의 결정에 찬성했다가 나중에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면, 이사들은 배임죄의 공범으로 몰릴 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고, 결과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인 취약한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결론적으로, 본래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을 처벌하려던 배임죄는 역설적으로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치하고,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증진시킬 과감한 경영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폐지...정치적 도박인가, 경제적 과제인가?

배임죄 폐지를 둘러싼 현재의 정치적 움직임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 책임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거대한 논쟁의 장을 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법 조항의 삭제를 넘어, 한국 사회가 기업 경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정부와 여당은 배임죄 폐지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과도한 경제 형벌"로부터 기업을 해방시키고,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 범죄로 취급되는 관행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용실 상호 변경 미신고와 같은 경미한 위반에 대해 징역형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총 110개에 달하는 경제 형벌 규정을 정비하려는 광범위한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이다.    

고위 당정 협의체를 통해 추진되는 이 사안은 재계의 오랜 숙원 사업에 정부가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며 , 이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는 형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기업 활동의 족쇄를 풀고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주요 경제 단체들은 정부의 배임죄 폐지 방침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배임죄 폐지가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계는 배임죄가 존재함으로 인해 경영진이 잠재적 법적 리스크를 먼저 고려하게 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기업들이 감행하는 과감한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배임죄 폐지는 단순히 하나의 법률을 없애는 것을 넘어, 기업 규제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형사처벌을 최후의 수단으로 돌리고, 행정적 제재나 민사적 배상을 우선하는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다. 

일각의 우려...'재벌 총수 면죄부'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배임죄 폐지가 사실상 '재벌 총수들을 위한 면죄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배임죄는 지금까지 총수 일가가 회사를 사유화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익 편취 행위'를 처벌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하고 실효적인 법적 장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배임죄를 둘러싼 근본적인 딜레마가 드러난다. 시민단체의 우려는 타당하다. 지배주주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나 불공정한 합병 등을 통해 회사 자산을 사적인 이익으로 빼돌리는 행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미국과 같이 강력한 증거개시제도나 집단소송제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의 사법 현실에서, 검찰의 형사 기소는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배임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무딘 칼'이었다.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보니, 악의적인 사익 편취를 저지른 범죄자와 선의를 가졌지만 운이 나빴던 경영자를 구분 없이 법정에 세웠다. 결국 현재의 논쟁은 기업의 불법 행위를 처벌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a) 악의적 사익 편취와 (b) 선의의 경영 실패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사안을, 하나의 모호한 형법 조항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폐지론자들은 이 둘을 분리하여 각각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배임죄를 폐지할 경우 마땅한 대안 없이 전자의 불법 행위마저 처벌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사례 ... 신뢰하되, 검증하는 경제 시스템

한국의 배임죄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비교의 시각이 필수적이다. 해외 주요 경제국들은 어떻게 경영진의 과감한 도전을 장려하면서도 기업의 책임을 확보하는 균형점을 찾았는가? 그들의 경험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미국과 영국은 한국의 배임죄와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독립된 형법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대신 이들은 이사의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 위반에 대한 민사 소송과 명백한 사기(fraud)에 대한 형사 처벌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에는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 BJR)'이 자리 잡고 있다. BJR은 법원이 기본적으로 '이사들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여, 선의로, 그리고 회사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고 추정하는 법리다. 원고가 이사의 중과실이나 이해 상충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법원은 이사의 경영 판단 내용 자체를 심리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선의를 가진 이사를 정직한 판단 실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명백하게 보호해준다.    

물론 이것이 경영진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주주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과 같은 강력한 민사 소송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감시받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규모 M&A가 발표되면, 대부분 이사의 신의성실의무 위반을 주장하는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될 정도로 소송을 통한 책임 추궁이 활발하다.    

배임죄 개념의 발원지인 독일과, 한국과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 역시 배임죄를 형법에 두고 있지만, 그 적용 범위는 한국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독일은 주식법(Aktiengesetz)에 경영판단의 원칙과 유사한 '안전항구(safe harbor)' 조항을 명문화하여,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기업가적 판단을 보호한다. 또한, 독일은 형사처벌보다는 '질서위반금(Ordnungswidrigkeit)'이라는 행정 제재를 통해 기업의 규제 위반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형벌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일본의 경우, 가장 큰 차이점은 배임죄가 '목적범(目的犯)'이라는 점이다. 일본 형법은 행위자가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을 검사가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주관적 고의성의 입증 요구는 악의적인 의도가 없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적 비교는 명확한 패턴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시장 경제는 선의의 경영 재량을 보호하는 동시에 악의적인 사익 편취 행위는 엄격히 처벌한다. 이러한 균형은 (1) 판례나 성문법으로 확립된 강력한 경영판단의 원칙, 그리고 (2) 강력한 민사 책임 시스템 또는 악의적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 정밀하게 설계된 형법 조항을 통해 달성된다. 한국은 이 모든 균형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포괄적인 형법 조항 하나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0] 배임죄 폐지...한국 자본주의 72년 형벌의 굴레 (CEONEWS=박수남 기자)

과제

배임죄 폐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족쇄 하나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한국 기업 생태계 전체를 지탱할 새로운 규율과 책임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자세 변화와 함께, 법적 공백을 메울 정교한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배임죄 폐지는 단독으로 추진될 수 없다. 이는 반드시 민사적 구제 수단을 강화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의 일부여야 한다. 정부 역시 '민사 책임 강화'로의 전환을 언급하며 이 점을 인지하고 있다. 형사처벌이라는 무딘 칼을 내려놓는 대신, 피해자인 주주들이 스스로 권리를 구제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를 손에 쥐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세 가지 핵심 기둥은 다음과 같다.    

증거개시제도: 주주들이 소송 과정에서 기업 내부의 문서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없다면, 정보 비대칭 상황에 놓인 소액주주들이 불투명한 지배구조 하에서 이루어진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단소송제: 소액의 피해를 본 다수의 주주가 함께 소송을 제기하여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소송의 경제성을 확보하여 경영진의 위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해서는 실제 손해액을 훨씬 뛰어넘는 배상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는 징역형의 위협을 대체하여, 막대한 금전적 페널티를 통해 불법 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배임죄 폐지로 인한 '총수 면죄부'라는 사회적 우려를 불식시키고 책임 있는 기업 경영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배임죄 폐지 이후, 기업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자세는 법 조항의 부재를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경영적 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까'라는 소극적 순응의 자세에서 벗어나, '어떻게 모든 주주의 신뢰를 얻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적극적 수탁자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리더들은 경영판단의 원칙이 법제화되기 전부터 그 원칙을 내재화해야 한다.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이 충분한 정보에 기반하고, 사적인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우며, 회사와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선의 에서 비롯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소액주주들과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등 선제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들의 비판이 틀렸음을, 즉 배임죄라는 족쇄로부터의 자유가 방종이 아닌 더 나은 거버넌스로 이어진다는 것을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기업인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배임죄 폐지는 단순한 법률 개혁을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국민투표와 같다. 이는 공포를 유발하는 무딘 형법의 칼을 내려놓고, 시장 규율과 민법이라는 더 날카롭고 정교한 메스를 선택하는 계산된 위험 감수다. 

이 거대한 실험의 성공 여부는 처벌을 면하는 CEO의 숫자로 측정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성공의 척도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질적인 해소, 기업 투자의 의미 있는 증가,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과감한 성공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기업가들이 등장하는지 여부다. 최종 판결은 더 이상 서초동의 형사 법정에서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 판결은 이제, 새롭게 얻은 자유가 과연 자격 있는 것이었는지를 자본의 논리로 냉정하게 심판할 여의도 증권거래소의 전광판 위에서 내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