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맞춤형 '면죄부' 의혹…고용부는 왜 법을 바꿨나

3만 직원 근로계약서 미교부 혐의 포착…돌연 '혐의 없음' 종결 열람=교부' 이례적 유권해석,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고무줄 잣대' 논란 '일자리 으뜸기업' 선정과 122조 반도체 클러스터…'봐주기 수사' 배경 의심

2025-10-02     박수남 기자
SK하이닉스 맞춤형 '면죄부' 의혹…고용부는 왜 법을 바꿨나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2021년 12월 13일, 경기도 성남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의 한 사무실. 공익제보자 이병우 씨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의 앞에는 SK하이닉스의 10년 넘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덮으려는 듯한 공무원들이 앉아 있었다.

 "하이닉스 때문에 바뀌었다는 걸 저는 알려야 될 것 같아요."

이 한마디는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과 국가 규제기관 사이의 유착 의혹을 관통하는 외침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SK하이닉스가 2012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3만 명에 달하는 직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근로계약서 교부'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근로기준법 제17조는 사용자가 근로조건을 명시한 서면을 근로자에게 '반드시 교부'하도록 규정한, 노동자 보호의 최후 보루다. 위반 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스모킹 건: 2021년 12월 13일의 대질

"근로계약서 미교부가 핵심인데 왜 자꾸 연봉 안내서를 갖고 얘기를 하세요?"  

제보자 이병우 씨의 이 질문은 고용부 공무원들이 사건의 본질을 어떻게 흐리고 있는지를 정확히 짚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안 모 팀장 등 고용부 관계자들은 법적 의무가 명확한 '근로계약서' 문제를 부차적인 '연봉안내서' 문제로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법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을 펼쳤다. "회사 달라 해서 받을 수 있으면 준 걸로 본다라고 해석이 되어 있잖아요." 이는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줘야 하는' 교부 의무를, 근로자가 '요청해야 받을 수 있는' 권리로 둔갑시키는 명백한 법리 왜곡이다. 고용부 스스로 만든 '전자근로계약서 가이드라인'조차 "단순히 사내 전산망에 저장해 열람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교부로 볼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원칙을 뒤집은 것이다. 이날 대질에 동석한 13년 차 SK하이닉스 재직자 김 모 씨의 증언은 공무원들의 주장을 더욱 무색하게 했다. "월급제인데 (전산에서) 본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현직 직원의 살아있는 증언 앞에서도 공무원들은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마법의 방패: SK하이닉스 맞춤형 '유권해석'

결정적인 순간은 공무원들이 '본부의 유권해석'이라는 마지막 방패를 꺼내 들었을 때였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은 SK하이닉스가 피의자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던 사이, 본사에 질의를 올렸고, 본부가 "사내 시스템에서 열람이 가능하면 교부로 본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려줬다고 실토했다. 이 '마법의 유권해석' 하나로 10년간의 위법 행위가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된 것이다.  

이 유권해석이 나온 시점은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에 대한 3차 피의자 소환 통보가 불발된 직후였다. 제보자 이병우 씨가 "시간을 벌어주다가 유권해석을 바꿨다"고 지적하자, 공무원들은 "거의 그 시점에 맞물려 있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라며 우연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용부는 다른 일반 기업에는 여전히 "근로자가 지정한 이메일 등으로 발송해야 교부로 인정된다"는 기존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대기업의 형사처벌을 막기 위해 법 해석의 일관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특정 기업의 권리 행사를 부당하게 돕고 수사기관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한 '직권남용'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

너무 커서 처벌할 수 없는가: '일자리 으뜸기업'의 두 얼굴

고용노동부는 왜 이토록 무리한 유권해석까지 동원하며 SK하이닉스에 면죄부를 주려 했을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21년, SK하이닉스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4년 연속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된 유일무이한 기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을 주관한 곳이 바로 SK하이닉스의 위법을 수사하던 '고용노동부'였다. 자신들의 치적을 상징하는 '모범 기업'에 대규모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은 고용부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 큰 배경에는 'K-반도체 벨트' 전략이 있었다. 정부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산업을 육성했고, 그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122조 원을 투자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가 있었다. 국가 경제 안보의 핵심 파트너가 형사처벌 리스크로 흔들리는 것을 정부가 방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반도체 패권'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목표 앞에, 3만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는 너무나 쉽게 종속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끝나지 않은 싸움: 연쇄적 제도 실패

제보자 이병우 씨의 싸움은 고용노동부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후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경찰청에, 검찰과 법원의 '법 기술'을 이용한 사건 종결 의혹을 공수처에 고발하며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한 기관의 실패가 다음 기관의 부실로 이어지는 '제도적 실패의 연쇄'를 보여준다.

고용부가 '유권해석'이라는 1차 방패를 세우자, 경찰은 전문 부처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검찰은 그 부실한 기록을 근거로 손쉽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구조다. 이 거대한 책임 전가의 고리 속에서 진실은 파묻히고, 제보자는 거대한 벽 앞에 홀로 서 있다.

한 공익제보자의 외침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이제 단순한 노동법 위반을 넘어, 국가 시스템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이 '너무 커서 처벌할 수 없는' 거대 기업 앞에서도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사법 당국의 철저하고 공정한 재수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