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페이백의 역설 ‘공짜 점심’은 어떻게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가

2025-10-15     전영선 기자
전영선 CEONEWS 기자

[CEONEWS=전영선 기자] 지갑 속 신용카드가 ‘요술봉’이 되는 시대다. 정부와 카드사가 손잡고 내놓은 ‘상생소비지원금(상생페이백)’이 다시금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당장 지출의 일부가 현금처럼 돌아온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환호하고, 골목상권은 모처럼의 특수를 기대한다. 언론은 연일 캐시백 한도를 채우기 위한 ‘슬기로운 소비생활’을 조명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모두가 ‘윈윈(Win-Win)’을 외칠 때, 우리는 이 정책이 던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생페이백이라는 달콤한 사탕은 과연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영양제일까, 아니면 더 큰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마약성 진통제일까. 해외 석학들과 국제기구의 보고서는 이러한 현금성 지원 정책의 이면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비용(unseen costs)’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소비 진작인가, ‘미래 소비’의 잠식인가?

상생페이백의 가장 큰 명분은 ‘소비 진작’이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항상소득가설(Permanent Income Hypothesis)’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시적인 ‘횡재’보다 자신의 생애에 걸쳐 벌어들일 것이라 예상되는 ‘항상소득’에 맞춰 소비를 계획한다. 상생페이백 같은 일시적 지원금은 미래를 위한 저축으로 이어지거나, 어차피 지출할 예정이었던 소비를 단지 앞당기는 효과(pull-forward effect)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는 미국의 코로나19 경기부양 현금 지원(stimulus checks)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직접적인 현금 지원은 단기적으로는 소비를 급격히 늘리지만, 지원이 끊긴 후 소비 절벽을 초래하고 정책 효과를 지속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의 캐시백이 몇 달 후의 잠재적 소비를 미리 끌어다 쓰는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다면, 이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활력을 담보로 잡는 것에 다름 아니다.

‘평균의 함정’: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곳은 외면받는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무차별성’에 있다. 상생페이백은 소득이나 자산 수준과 무관하게 일정 기준 이상의 소비를 하는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 이는 정책 자원의 심각한 낭비를 초래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팬데믹 이후 각국의 재정 정책을 평가하며 “보편적 지원보다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선별적·목표화된(targeted) 지원이 재정 효율성과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

월 소득 1,000만 원인 가구의 추가 소비 10만 원과, 월 소득 200만 원인 가구의 10만 원은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 즉 ‘한계소비성향(MPC)’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고소득층에게 돌아간 캐시백은 명품 소비나 해외 주식 투자 등 내수 경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지만, 저소득층에게 주어진 지원은 당장의 생필품 구매로 이어져 내수 순환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분 아래, 정작 도움이 절실한 곳에 투입되어야 할 소중한 재원이 엉뚱한 곳에서 새고 있는 셈이다.

‘정책 중독’이라는 그림자

반복되는 현금성 지원은 국민들에게 ‘정부 지원에 대한 기대’를 학습시킨다. 이는 경제 주체들의 자생력을 갉아먹고,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보다 정부의 다음 지원책을 기다리게 하는 ‘정책 의존성’을 키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한 보고서는 이러한 형태의 재정 정책이 장기적으로 ‘재정 환상(fiscal illusion)’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들이 정부 지원을 ‘공짜 점심’으로 인식하게 되지만, 그 비용은 결국 미래 세대의 빚이나 현재의 인플레이션이라는 형태로 청구된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에 취해 반복적으로 ‘진통제’를 투여하다 보면, 한국 경제는 어느새 스스로 걷는 법을 잊어버린 중증 환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상생’은 일시적인 현금 살포가 아닌,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소상공인에게는 캐시백 특수보다 디지털 전환 지원이나 불공정 거래 구조 개선이 더 절실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몇만 원의 캐시백보다 양질의 일자리와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상생페이백이 주는 단기적 효용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이제 그 이면에 숨겨진 비용과 장기적인 부작용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때다. 달콤한 열매에 취해 뿌리가 썩어 들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페이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페이 포워드(Pay it Forward)’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