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미·중 희토류 패권전쟁 분석
한국의 '생존 시나리오'는? 현대산업의 비타민 '희토류' 부각 첨단산업 선점을 두고 벌이는 초강대국의 '핵심 자원전쟁'
[CEONEWS=배준철 기자] "이제 더 이상 '만약'이 아니다." 희토류를 둘러싼 미·중 간의 경제 갈등이 전면전 수준으로 격화되면서, 한국 산업계의 비상이 울렸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냈고, 미국은 100% 추가 관세로 맞서고 있다. 양국 간의 이 같은 신경전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첨단 기술 헤게모니'를 건 본격적인 경제 안보 전쟁으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게 경종을 울리는 까닭이다. 전 세계 반도체 제조, 배터리 생산, 우주항공 분야에서 필수적인 희토류. 이 '현대 산업의 비타민'을 두고 벌이는 미·중의 각축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만큼, 이 위기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中의 '독점'은 얼마나 절대적인가
데이터가 현실을 말해준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량의 약 60%, 정제 및 가공 능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희토류 수요의 78%를 중국에 의존하며, 일부 전략 품목은 의존도가 90%를 초과한다. 이는 단순한 '무역 의존'을 넘어 '전략적 목 조르기'상황이다. 중국의 이 같은 우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희토류 산업에 투자했고, 환경 규제를 최소화하며 채굴 원가를 압도적으로 낮춰왔다. 현재 중국의 희토류 생산 단가는 브라질 등 주요 경쟁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 독점이 만드는 '압도적 우위'는 단기간에 무너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제-가공-합금' 분야에서의 중국의 기술 독점이다. 희토류 원광에서 실제 산업에 필요한 고순도 자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거의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미국이 자국 내 채굴을 늘리려 해도, 정제 기술 없이는 '보석 원석 같은' 희토류일 뿐이다.
■미국의 '탈중국' 전략, 얼마나 현실적인가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JP모건체이스가 최근 1조 500억 달러의 투자를 발표한 것을 보면, 미국의 '희토류 독립' 결의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미 국방부는 2020년부터 국내 공급망 개발에만 4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F-35 전투기, 첨단 미사일 시스템 등 국방력의 심장부가 희토류에 달려 있다는 절박한 인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탈중국'은 쉽지 않다. 미국의 희토류 채굴은 환경 규제에 막히고, 채굴지 주민의 반발도 크다. 가장 현실적인 경로는 '동맹국 협력'이다. 호주, 캐나다, 베트남 등과의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 역시 '5~10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이다. 미국의 전략 광물 안보 파트너십(MSP)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전 세계 희토류 생산국들을 '전략 동맹'으로 포섭하려 한다. 한국도 이 구도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 더욱 정교해진다
중국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미국과 동맹국을 압박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이는 경제 제재라는 '부드러운 무기'를 넘어, '자원 민족주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동시에 중국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에서 희토류 채굴과 정제 시설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른바 '일대일로' 전략의 일환이다. 희토류라는 '핵심 자원'을 매개로 새로운 지정학적 영향력을 구축하려는 중장기 전략이 녹아 있다. 중국의 또 다른 카드는 '재활용(리사이클링)' 분야의 선제적 장악이다. 폐전자제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도시 광산 기술과 시설에 중국이 이미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래의 희토류 공급처가 '채굴'이 아닌 '재활용'으로 전환될 것을 예측한 움직임이다.
■한국, '새우'가 될 것인가 '허브'가 될 것인가
"결국 한국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의 희토류 대중 의존도는 72%에 달한다. 중국의 수출 제한이 본격화되면 국내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 산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이 '공급망의 중간자'라는 구조적 약점이다. 중국에서 희토류를 사들이고, 이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팔아온 '중개 역할'이 한국 산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왔다. 이 구조가 흔들리면 한국 산업계 전체가 흔들린다. 그러나 '위기 속 기회'는 존재한다. 고려아연이 이달부터 안티모니를 미국에 수출하기로 한 것은 상징적이다. 한국의 고급 광물 정제 기술이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 필수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신호다. 이것이 '새우'에서 '전략적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공급망 다변화'를 넘어 '기술 독립'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국의 '정제-가공' 기술 독점을 깨트리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호주 라이너스, 캐나다 기업 등과의 '초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되, 동시에 국내 정제 시설 투자와 연계하는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도시 광산(Urban Mining)'을 국책 사업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폐전자제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기술은 이미 한국이 보유한 강점이다. 이를 중국 의존도 절감의 '생명줄'로 전환할 수 있다. 환경 문제 해결과 자원 주권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셋째, '한국 주도의 '핵심 광물 동맹'구축이 시급하다.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참여는 기본이고, 호주, 캐나다, 베트남, 브라질 등 희토류 부국들과의 전략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이들 국가의 채굴-정제 인프라 투자와 연계하는 '호혜적 협력 모델'을 제시하면, 중국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을 전략적으로 포섭할 수 있다. 넷째, '정부-기업 협력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희토류 확보는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여하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까지 포함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 '최후의 경고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미·중 희토류 전쟁은 한국 산업의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최후의 경고음이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와 미국의 '탈중국 추진'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 시점에, 한국의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은 이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객관적 중립은 불가능하고, 어느 한쪽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진영 가입'이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 강화'이다.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도, 미국에 무조건 종속되지도 않으면서, 한국이 보유한 기술과 자본을 무기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의 중심에 서는 것. 이것이 '새우'에서 '전략적 허브'로 거듭나는 길이자, 한국이 해야 할 '차별화된 선택'이다. 더 이상 미루거나 방관할 시간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