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심층리포트 2] 삼성전자 강성노조 출현으로 침몰하나?

1조7000억 사주 매각 후폭풍 '주식 인센티브 미끼'에 12만 직원 분노, 노조가입 폭증

2025-10-19     이재훈 기자

[CEONEWS 단독 심층리포트 2] 삼성전자, 강성노조 출현으로 침몰하나?

1조 7000억 사주 매각 후폭풍

'주식 인센티브 미끼'에 12만 직원 분노, 노조 가입 폭증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거함' 삼성전자가 유례없는 내홍에 휩싸였다. 12조 원이 넘는 막대한 상속세를 해결하기 위한 오너 일가의 주식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도덕적 해이' 논란이 '무노조 경영'의 종언을 고한 삼성의 가장 아픈 고리를 건드렸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는 최근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주식이 9만 원대를 넘나들던 시점에 약 1조 7천억 원 규모의 주식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문제는 이 대규모 매각 직전, 사측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주가 20% 상승 시 직급별 주식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 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12만 삼성전자 임직원, 특히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이를 '기만행위'로 규정하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오너 일가가 안정적으로 고가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주식 매도(이탈)를 막는 '미끼'로 인센티브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사주는 팔고, 직원은 묶였다'는 배신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삼성전자 노조 가입자 수는 하루 1천 명꼴로 폭증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창사 이래 '무노조' 기조를 유지하다 2020년 이재용 회장의 대국민 사과로 노조 시대를 연 삼성이, 이제는 '강성 노조'라는 거대한 암초를 마주하게 된 셈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삼성전자의 경영 근간을 흔들고, 나아가 글로벌 초격차 경쟁에서 발목을 잡는 '타이타닉호의 전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CEONEWS는 이번 사태의 배경과 의미를 진단하고, 사측과 노조의 대립각을 팩트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며 향후 전망을 조망해 본다.

​■'9만전자'의 배신감… 1.7조 매각과 '인센티브'의 전말

​이번 사태의 핵심은 '시기'와 '신뢰'의 문제다. 통상적으로 대주주(오너)의 주식 대량 매각은 시장에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우려를 불러일으켜 주가 하락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어차피 팔아야 할 주식이라면, 최대한 높은 가격에 안정적으로 처분하는 것이 최선이다.

​공교롭게도 오너 일가가 1조 7천억 원 규모의 블록딜을 단행하기 직전,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주가 부양과 연동된 보상안을 발표했다. '주가 20% 상승'이라는 조건을 달성할 경우, 직급별로 상당한 규모의 주식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이 '달콤한 제안'을 회사의 성장을 임직원과 공유하겠다는 'TSR(총주주수익률) 제고'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 많은 직원이 우리사주 혹은 보유 주식의 매도를 보류하고 주가 상승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오너 일가의 '안전한 엑시트(Exit)'를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직원들의 매도 물량이 묶이면서 주가가 9만 원대에서 방어되는 동안, 오너 일가는 1조 7천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오너의 상속세를 위해 총알받이가 되었다"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손실의 문제를 넘어, 회사와 경영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사측 입장] "12조 상속세 재원, 불가피한 선택"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사측의 입장도 절박하다. 2020년 고(故) 이건희 회장 별세로 삼성 일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 총액은 12조 원을 훌쩍 넘는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2021년부터 5년간 6회에 걸쳐 분납(연부연납)하고 있다.

​매년 2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현금을 마련할 방법은 사실상 '주식 매각' 외에는 전무하다. 배당금을 대폭 늘렸지만 역부족이다. 이재용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등의 지분을 매각해왔다.

​사측 입장에서 이번 1.7조 원 매각 역시 상속세 납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또한 '주가 20% 상승 인센티브' 역시 주가 하락으로 고통받는 주주(임직원 포함) 가치를 제고하고, 실적 개선의 의지를 보이기 위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항변한다. 오너의 매각 일정과 인센티브 발표 시기가 겹친 것은 '의도된 기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필요에 의해 진행된 사안이 우연히 맞물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에게 주식 매도를 사실상 '권장하지 않는' 인센티브를 제시한 직후 대주주가 대량 매각에 나선 것은, 법적 문제를 떠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삼성전자의 컨트롤 타워 부재 혹은 내삼부 소통의 심각한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 입장] "신뢰 상실… 무노조 족쇄 풀렸다"

​이번 사태는 삼성전자 노조에 '강성 투쟁'의 최대 명분을 제공했다. 2020년 이재용 회장이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며 노조 시대가 개막됐지만, 그동안 노조 활동은 타 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인센티브 미끼' 의혹은 잠자던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전삼노 측은 "사측이 12만 직원을 우롱하고 오너의 사익을 위해 임직원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며 "이는 명백한 배임 행위에 준하는 기만"이라고 맹비난했다.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사태가 불거진 직후, 전삼노 가입자 수는 수직 상승했다. 하루 1천 명 이상이 가입하는 폭발적인 증가세가 나타났으며, 이는 삼성전자 내부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음을 보여준다. 과거 임금 협상이나 복지 문제에 국한되었던 노조의 요구는 이제 '경영 투명성 확보', '오너 리스크 견제', '공정한 성과 배분' 등 경영의 본질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직원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관리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증거"라며, 이번 주식 매각 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전면 파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망] '타이타닉'인가, '항로 수정'인가?

​'거함' 삼성전자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섰다. 반도체(DS) 부문은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며 '초격차' 신화에 금이 갔고, 스마트폰과 가전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고전 중이다.

​이러한 '퍼펙트 스톰' 속에서 '노조 리스크'의 급부상은 삼성의 침몰을 가속화하는 가장 치명적인 암초가 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단 1시간의 라인 중단(셧다운)만으로도 수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극도의 '장치 산업'이다. 만약 강성 노조가 출현해 생산 라인을 볼모로 '강대강 대치'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가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공은 다시 이재용 회장과 경영진에게 돌아갔다. 상속세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수조 원의 주식을 더 매각해야 할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직원들의 신뢰를 잃는다면, '뉴 삼성'을 향한 이 회장의 비전은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타이타닉호'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조를 진정한 경영 파트너로 인정하고 '항로를 수정'해 신뢰를 회복할지, 재계 전체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번 사태가 향후 삼성전자의 노사 관계는 물론, 대한민국의 기업 지배구조 전체에 거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