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기자의 다른시선 2] '10만전자'가 말하는 것들

이재용 회장 취임 3년, 위기를 기회로 바꾼 AI 승부수

2025-10-27     김소영 기자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 취임 3주년에 '10만전자' 타이틀을 획득하며 주목받고 있다. 향후 삼성전자의 주식이 상승곡선을 이어갈지 자못 기대된다.

[CEONEWS=김소영 기자] 지난 10월 27일, 삼성전자 주가가 역사적인 10만 원 선을 돌파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이재용 회장 취임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주가는 전일 대비 3.24% 오른 10만 2000원에 마감되며, 3년간의 여정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아니,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느낌표였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 '10만전자'의 숫자에 환호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 이면의 혹독했던 여정을 직시해야 한다. 이재용 체제 3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성전자 역사상 가장 가혹한 시험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험을 어떻게 통과했고, 지금의 '10만전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4만 원대 추락, 'D램 1위' 내준 굴욕의 기록

2024년 7월, 삼성전자 주가는 8만 7800원으로 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것은 긴 추락의 시작이었다. 불과 4개월 뒤인 11월, 주가는 4만 9900원까지 내려앉으며 5만 원 선이 무너졌다. 45% 가까운 폭락이었다. 추락의 중심에는 'HBM 쇼크'가 있었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연달아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시장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1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며 글로벌 D램 1위 자리까지 내주는 사태가 벌어졌다.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는 단순한 시장 우려를 넘어섰다. 30년간 지켜온 아성이 흔들렸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정체성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의미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망설임 없이 삼성전자를 매도했고, 주가는 6개월 이상 5만 원대 박스권에 갇혔다. 그런데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2024년 6월 말 424만 명이었던 소액주주가 2025년 6월 말에는 504만 명으로, 80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주가가 바닥을 기던 그 시기에, 개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삼성전자를 모아들였다. 기관과 외국인이 떠날 때, 개인들은 '삼성전자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 믿었던 셈이다. 이 믿음은 결국 보상받았다.

■AI가 바꾼 게임의 룰, 이재용의 광폭 행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게 한 건 AI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정확히 읽고 거기에 삼성전자를 올려놓은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이었다. 전환점은 2025년 7월에 찾아왔다. 테슬라가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에 AI 칩 생산을 맡겼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가는 한 달 만에 19.4%나 뛰었다. HBM에서 밀렸지만, 파운드리로 만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졌다. 추석 연휴 직후에는 더 큰 폭탄이 터졌다. 이재용 회장이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만나 AI 협력을 논의했다는 소식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었다. 삼성전자가 AI 생태계의 핵심 공급망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 글로벌 빅테크들과의 광폭 외교를 펼쳤다. 엔비디아, 오픈AI, AMD, 테슬라 등 AI 시대의 주역들과 직접 만나며 삼성전자의 위상을 재정립했다. 이는 '총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12조 원 '어닝 서프라이즈'가 증명한 펀더멘털

그러나 주가 상승의 진짜 원동력은 '숫자'였다. 2025년 3분기,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12조 1000억 원이라는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10조 원)를 무려 2조 원 이상 뛰어넘는 수치였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1.81% 증가했다. 이 실적의 배경에는 AI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AI 모델 개발이 '학습(Training)' 단계에서 '추론(Inference)' 단계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삼성전자가 절대 강점을 가진 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다는 평가는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AI 인프라 확장은 HBM만으로 감당할 수 없으며, 범용 D램과 NAND의 수요 역시 동시에 늘어났다. 9월부터 10월 24일까지 주가가 41.75%나 급등한 것은 바로 이런 펀더멘털의 극적인 개선이 반영된 결과다. 주가는 결국 실적을 따라간다는 자본시장의 오래된 진리가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10만전자'는 시작일 뿐,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10만전자'의 축포로 향후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10만전자' 시대는 계속될 것인가. 증권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KB증권 김동원 상무는 "엔비디아, 오픈AI, AMD 등 빅테크들이 HBM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어, 삼성전자가 직접적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점했지만,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세계 최대 메모리 생산 능력'을 가진 삼성전자에 기회가 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10만전자'가 단순한 축포로 끝나지 않으려면, 삼성전자는 두 가지 숙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첫째, HBM 기술 경쟁력의 완전한 회복이다. 아무리 범용 메모리 수요가 늘어도,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에서 뒤처진다면 '반도체 1위'라는 타이틀은 공허해진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핵심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HBM 시장 점유율은 계속 SK하이닉스에 밀릴 수밖에 없다.

둘째, 파운드리 부문의 추가 성과다. 테슬라 수주는 고무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메모리 편중 리스크를 분산하고, TSMC와의 격차를 좁히려면 더 많은 빅테크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실패한다면, 파운드리는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국민주의 부활, 그리고 신뢰의 회복

이재용 회장 취임 3주년에 터진 '10만전자'는 단순한 주가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혹독한 위기를 뚫고 AI 시대의 주도권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상징적 사건이다. 주가가 4만 원대로 추락했을 때, 80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새로 유입됐다. 그들은 삼성전자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은 지금 보상받고 있다. 이제 삼성전자는 그 신뢰에 응답해야 한다. 'HBM 기술 회복'과 '파운드리 추가 수주'라는 두 개의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10만전자'는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10만전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재용 회장이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삼성전자를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우리는 지금 그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