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의 뷰포인트 2] 10.15 부동산 대책의 역설

일본식 침체와 서울 불패, 정반대 공포가 공존하는 시장

2025-10-27     전영선 기자
10.15 부동산 대책 시행 한달, 일본식 침체 우려와 서울 불패라는 상반된 공포가 공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CEONEWS=전영선 기자]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한 달. 시장은 안정되기는커녕 거대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부는 투기 수요 차단과 거래 정상화를 내세웠지만, 시장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과도한 긴축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재현할 것"이라는 파국론이 고개를 들고, 다른 쪽에서는 "공급 부족인 마용성·강남은 결국 폭등할 것"이라는 양극화론이 맞선다. 같은 정책을 두고 '전국적 붕괴'와 '서울 핵심지 폭등'이라는 정반대의 전망이 공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10.15 대책이 한국 부동산 시장의 근본적 모순을 건드렸지만,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수요 억제의 완결판, 시장을 얼리다

10.15 대책은 사실상 '수요 억제의 완결판'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전면 강화로 대출 문을 좁히고, 다주택자 취득세·양도세 중과를 재시행하며,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속도를 늦췄다. 강력한 '돈줄 죄기'와 '세금 압박'으로 시장의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하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시점, 시장은 이미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로 냉각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거래 절벽을 넘어 거래 실종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 긴축 카드를 꺼낸 것은, 쓰러져가는 환자에게 진통제 대신 수술칼을 들이댄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그나마 버티던 매수 심리마저 완전히 얼어붙었다"며 "연쇄적인 자산 가격 하락과 부실 채권 급증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한계에 다다른 가계부채라는 두 개의 폭탄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이 뇌관을 건드렸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악몽이 한국에서 재현되나

비관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일본식 장기 침체'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버블 붕괴 후 20년 넘게 경제 침체를 겪었다. 당시 일본 정부의 섣부른 긴축 정책과 부실 채권 처리 지연이 맞물리며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악몽이 시작됐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당시 일본과 닮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령화 진입, 저성장 고착화, 자산 시장 거품 우려,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긴축 정책. 이 모든 요소가 1990년대 일본과 오버랩된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10.15 대책은 경착륙을 유도하는 '독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끌족'의 패닉 셀링(공황 매도), 역전세난 심화, 건설업계의 줄도산.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자산 시장 붕괴는 실물 경제 위기로 전이될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금리 인하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억누를 경우, 시장은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이 비관론자들이 외치는 '빙하기 초입' 경고의 핵심이다.

■ '서울'은 다르다는 역설

하지만 이런 폭락론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10.15 대책이 시장의 본질을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서울 핵심지의 부동산 문제는 수요 과잉이 아니라 '절대적인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아무리 강력해도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핵심 입지에 대한 선호는 꺾을 수 없다는 논리다. 오히려 이번 대책으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은 극에 달해, 이들 지역으로의 자본 쏠림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시장은 이미 '서울'과 '비(非)서울'로 완벽하게 분리됐다"며 "10.15 대책은 지방과 수도권 외곽의 집값은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원하는 핵심지의 희소성만 부각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강화된 대출 규제(DSR)는 현금 부자가 아닌 이상 서울 진입을 원천 봉쇄한다. 결국 규제는 서울 외곽이나 지방의 자산 가치만 떨어뜨리고, 현금을 보유한 자산가들은 타격 없이 오히려 핵심지 매물을 독점하게 되는 '부의 양극화'만 심화시킨다는 주장이다.

"공급 대책은 실종되고 수요 억제만 남발하니, 마용성과 강남 집값은 결국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의도치 않게 이들 지역의 '불패 신화'를 공인해 준 셈이라는 냉소가 나온다.

■보유세 강화 논쟁, 실패한 정책의 재탕인가

해법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하다. '공급 부족'을 인정하는 측에서는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를 유도하기 위한 '주택보유세 강화' 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2가구 이상 주택 소유자에게 징벌적 수준의 보유세를 부과해 '버티기'를 포기하고 시장에 주택을 매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핵심지 공급 부족의 상당 부분은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잠그고 있기 때문"이라며 "강력한 보유세 인상만이 시장 왜곡을 바로잡고 무주택자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론도 거세다. 보유세 강화는 이미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답안'임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부동산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보유세 강화는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가 아닌 '조세 전가'로 이어질 뿐"이라며 "세금 부담은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전가돼 전·월세 폭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주택자들은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하거나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에 집중해 매물 잠김 현상만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다. 결국 보유세 인상이 애꿎은 1주택 실거주자의 부담만 늘리고, 시장에 공급을 늘리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진(誤診)이 낳은 정책의 역설

10.15 부동산 대책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한국 부동산 시장이 처한 '정책적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15 대책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한국 부동산 시장이 처한 '정책적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전국적 시장 안정'과 '서울 핵심지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시장은 오히려 '전국적 침체'와 '서울 핵심지 고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반응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양극화'라는 복잡한 현상을 '수요 과잉'이라는 단일한 문제로 오진한 데 있다. 지방과 서울 외곽은 수요 소멸로 신음하는데, 서울 핵심지는 공급 부족으로 들끓고 있다. 이처럼 상이한 증상에 '강력한 수요 억제'라는 동일한 처방을 내리니 시장 전체가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일본식 침체' 경고는 과도한 수요 억제가 불러올 경제 전반의 위기를, '서울 불패' 전망은 근본적인 공급 대책 없이는 핵심지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두 전망 모두 틀린 게 아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침체와 폭등이 공존하는 기형적 구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섣부른 규제가 아니다. 지역별·소득별 '핀셋' 처방이 절실하다. 핵심지에는 파격적인 공급 시그널을, 침체 지역에는 연착륙을 위한 안전장치를 동시에 제공하는 고도의 정책적 묘수가 필요하다.

10.15 대책이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침체'와 '폭등'이라는 두 개의 비난을 동시에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시장은 이미 정부의 일방적 처방을 거부하고 있다. 정책의 역설을 깨닫고 방향을 수정할 것인가, 아니면 이 혼돈을 방치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