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X파일 9화] 글로벌 톱 10 항공사로 비상중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오너 리스크' 의 잿더미 위에 세운 메가 캐리어 실리주의 리더십과 ESG·AI 비전으로 '뉴 한진' 청사진 제시 진짜 시험은 아시아나항공 통합 후 시너지 창출

2025-10-28     이재훈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며 글로벌 톱 10 항공사로 비상중이다.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19년 4월 7일. 한진그룹 선대회장 조양호의 별세는 단순한 창업주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재벌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경영권 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52세의 장남 조원태가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앞에는 '황태자의 꽃길'이 아닌 '벼랑 끝 가시밭길'만이 놓여 있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주도한 '3자 연합'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저지하며 경영권을 흔들었고, 2020년 초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은 항공 산업 자체를 무너뜨렸다. 여객 수요는 90% 이상 증발했고, 경영권 분쟁과 생존 위기를 동시에 맞닥뜨린 조 회장의 실패를 점치는 목소리가 재계를 뒤덮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2025년 10월. 조원태 회장은 마침내 대한민국 항공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로 불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최종 완료하며, 자산 100조 원(공정위 기준), 재계 순위 10위권, 그리고 항공 여객 부문 '글로벌 톱10' 메가 캐리어의 수장으로 올라섰다. 경영권 분쟁의 잿더미 속에서 '승자의 저주' 우려를 딛고 일어선 조 회장의 6년은, 한국 재벌 3세의 전형적 승계 서사가 아닌 '전시(戰時) CEO'로서의 생존 드라마였다. 'X파일 9화'는 그가 걸어온 험로와 리더십의 명암, 그리고 '뉴 한진' 시대를 향한 청사진을 팩트와 데이터로 해부한다.

■벼랑 끝 승계 : '신의 한 수'로 뒤집은 경영권 분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며 글로벌 톱 10 항공사로 비상중이다.

 

2019년 말, 조현아 전 부사장은 공개 성명을 통해 "선대회장의 공동 경영 유훈에 어긋난다"며 조 회장을 정면 비판했다. 행동주의 펀드 KCGI와 반도건설이 가세한 '3자 연합'은 2020년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저지에 나섰다. 당시 재계 분위기는 냉랭했다. 2020년 3월 위키리크스한국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조현아' 관련 부정 감성어가 75%에 달했지만 '조원태' 역시 46%의 높은 부정 비율을 보이며 여론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족 간 불화가 연일 보도되며 '오너 리스크'는 극에 달했고, 재계 일각에서는 조 회장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2020년 3월 주총에서 조 회장은 56.67%의 찬성률(반대 43.27%)로 극적 승리를 거두며 경영권 방어의 1차 관문을 돌파했다. 핵심은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이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은 '경영 안정성'을 선택했고, 조 회장은 가까스로 숨통을 틔웠다.

■독이 든 성배, 아시아나 인수라는 역설

진짜 승부수는 그다음에 터졌다. 2020년 11월, 조 회장은 팬데믹으로 사실상 파산 직전에 몰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격 결정했다. KDB산업은행의 지원(8,000억 원 유상증자 참여)을 끌어들인 이 결정은 '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라는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비판론자들은 부채 1.7조 원(부채비율 1,700% 초과)에 허덕이는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것이 '자충수'라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의 계산은 달랐다. 아시아나 인수는 단순한 M&A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신의 한 수'였다.

첫째,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끌어들여 3자 연합의 지분을 희석시키고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둘째, 국내 항공 산업 재편이라는 대의명분을 확보하며 정부·여론의 지지를 끌어냈다. 셋째, 코로나 이후 항공 산업 회복기에 독점적 지위를 선점하는 전략적 포석을 깔았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영권은 안정되었고,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인수를 통해 명실상부한 '메가 캐리어'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빅딜 완성 : 220대 기단, 100조 자산의 메가 캐리어 탄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며 글로벌 톱 10 항공사로 비상중이다.

2025년 하반기, 미국 법무부(DOJ)의 최종 승인으로 4년간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사업부(에어인천 매각)와 일부 유럽·미주 노선 슬롯 반납이라는 조건을 수용하며 '조건부 승인'을 얻어냈다. 이로써 탄생한 통합 항공사는 220대 이상의 기단(PwC 분석)을 보유한 글로벌 항공 여객 부문 톱10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산 규모는 100조 원을 돌파했고, 재계 순위는 10위권으로 치솟았다. 조 회장이 그리는 합병 시너지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이다. 중복 노선 통폐합과 기재 운영 효율화를 통해 연간 수천억 원대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항공기 정비(MRO), 연료 구매, 리스 비용 등 모든 부문에서 압도적인 협상력을 확보하게 된다.

둘째, 네트워크 시너지와 글로벌 위상 강화다. 대한항공의 미주 노선과 아시아나의 중국·동남아 노선이 결합되면서 환승 네트워크가 극대화된다. 스카이팀(SkyTeam) 얼라이언스 내에서도 영향력이 커지며, 글로벌 항공사들과의 파트너십 협상력이 강화된다.

세째, 재무구조 정상화다. 대한항공의 1.5조 원 유상증자 참여와 영구채 인수로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은 2025년 말 기준 급격히 개선됐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 지분 60%대(전환 시 70% 이상)를 확보하며 완전한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 남은 과제 : 조직 통합과 독과점 우려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합 과정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조직문화 충돌(Culture Clash)이다. 30년 넘게 경쟁해 온 양사의 이질적 문화를 하나로 녹이는 것은 가장 큰 난제다. 인력 재배치, 직급 조정, 처우 격차 해소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예상되며, 이는 통합 시너지를 갉아먹는 최대 위협 요인이다. 둘째, LCC 통합 논란이다.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하나로 묶는 '원 LCC' 통합은 부산 등 지역 정치권의 반발로 지연되고 있다. 지역 거점 상실 우려와 일자리 감소 논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셋째, 소비자 불만과 독과점 우려다. 마일리지 통합 비율을 둘러싼 불만이 터져 나왔고, 항공권 가격 인상 우려는 공정위와 소비자단체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대상이 되고 있다.

■조원태 리더십 해부 : '실리주의'와 '불통' 사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이 가장 빛난 순간은 팬데믹 시기였다. 2020년 여객 수요가 90% 이상 증발하자, 그는 즉각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용하는 '역발상'을 감행했다. 좌석을 뜯어내고 화물칸으로 개조한 '프리터(Preighter)' 운항은 업계에서 파격적 결단으로 평가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0~2022년 대한항공은 화물 부문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2022년 영업이익은 2조 8,836억 원에 달했다. 이 수익은 아시아나 인수의 실탄이 됐고, 조 회장은 2023년 'ATW 올해의 항공업계 리더', 2024년 '대한민국 경영자대상'을 수상하며 '준비 안 된 황태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 그의 경영 철학은 선대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이념을 계승하되, 운영 방식은 철저한 '실리주의'에 기반한다. 명분보다 실리, 감성보다 데이터, 보수보다 과감함이 그의 결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여전히 남은 '오너 리스크'의 그림자

하지만 조 회장의 PI(Personal Identity)가 온전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2019년 디지털투데이 PI 분석에 따르면, 그의 '시무룩한 인상'과 '내성적 행동 언어'는 대중에게 '불통', '권위적' 이미지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일가(一家)의 과거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가족 구성원의 논란은 조 회장 개인의 성과와 무관하게 그룹 전체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드러난 가족 간 불화 역시, '통합'을 외치는 그의 리더십에 아이러니로 작용한다. 조 회장이 '오너 리스크'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는 개인적 성과를 넘어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다음 단계인 ESG 전략으로 이어진다.

■미래 비전 : ESG와 AI로 그리는 '뉴 한진'

조 회장은 '오너 리스크' 해소를 위해 2021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며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그 결과 KCGS(한국기업지배구조원) 평가에서 2년 연속 통합 'A등급'을 받으며 지배구조 투명성을 인정받았다. 환경(E) 부문에서는 지속가능항공유(SAF) 도입을 선언했고, 보잉 787 등 친환경·고효율 기재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탄소배출 감축 로드맵은 2030년까지 배출량 25% 감축,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다. 사회(S) 영역에서는 양사 통합 과정의 고용 안정과 공정한 처우 개선을 약속하며,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통 채널을 강화하고 있다.

■AI와 디지털 전환 : 데이터로 시너지 극대화

조 회장의 '실리주의'는 AI 전략에서 구체화된다. 양사 통합으로 방대해진 고객 데이터, 운항 정보, 정비 이력을 AI로 분석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운영 효율화: AI 기반 수요 예측으로 최적 노선을 배분하고, 연료 효율을 관리하며, 예방 정비를 통해 항공기 가동률(Uptime)을 극대화한다.

▲고객 경험 혁신 : 통합 마일리지 시스템과 고객 데이터를 AI로 분석, 초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와 요금제를 제공한다. 챗봇·음성인식 기반 고객센터 고도화로 응대 품질을 높인다.

조 회장은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며 IT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통합 과정의 복잡성을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통합'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원태 회장은 불과 6년 만에 그룹을 뒤흔든 경영권 분쟁을 잠재우고, 코로나 팬데믹을 이익 창출의 기회로 반전시켰으며, 대한민국 항공 산업을 재편하는 역사적 빅딜을 완수했다. 그는 더 이상 선대의 후광에 기댄 '재벌 3세'가 아닌, 위기 속에서 성과로 자신을 증명한 '전시(戰時) CEO'다하지만 'X파일'이 주목하는 진짜 평가는 지금부터다. 아시아나라는 거대한 조직을 화학적으로 융합하고, 독과점 우려를 불식시키며, '글로벌 톱10'에 걸맞은 서비스와 안전을 제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통합 시너지가 실제 수치로 구현되기까지는 최소 2~3년이 소요된다. 그 기간 동안 조직 내부의 갈등, 소비자 불만, 경쟁사의 반격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조 회장이 '오너 리스크'라는 부정적 PI를 완전히 지우고 '글로벌 항공 리더'로 각인될 수 있을지, 그 마지막 퍼즐은 '성공적인 통합'에 달려 있다.

조원태 회장의 '뉴 한진'은 이제 막 이륙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글로벌 톱10'이지만, 항로는 여전히 난기류로 가득하다. 그가 과연 이 거대한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킬 수 있을지, 대한민국 재계와 항공 산업 전체가 지켜보고 있다.

이재훈의 X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