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의 C-Level Daily Briefing 3] 2025년 10월 29일

韓美 '동맹 청구서'와 APEC의 'AI 지상명령'… 안갯속 韓 경제, 활로는 어디에

2025-10-29     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C-Level Daily Briefing 3] 2025년 10월 29일

[CEONEWS=박수남 기자] 2025년 10월 29일, 대한민국 경제라는 캔버스 위에는 두 개의 거대한 그림이 동시에 그려지고 있다. 하나는 경주에서 펼쳐진 한미정상회담과 APEC CEO 서밋이라는 화려한 유화(油畫)다. 동맹 강화, 기술 협력, 글로벌 리더들의 AI 비전 제시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를 품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홈플러스의 존폐 위기, 가계부채발 신용 경색, 얼어붙은 소비 심리로 대표되는 국내 시장의 차가운 현실을 담은 수묵화(水墨畫)다.

이 두 그림의 극명한 대비는 대한민국 기업의 C-레벨 경영진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외교적 수사 뒤에 가려진 냉혹한 현실은 무엇이며, 거대한 지정학적 파도와 국내 시장의 암초 사이에서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항로는 어디에 있는가. 그림은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일부의 화려한 색감에 취해 전체 그림의 위태로운 구도를 놓쳐서는 안 된다.

'관세 타결'이라는 전술적 승리, '3,500억 달러'라는 전략적 청구서

표면적으로 한미관계는 순항하는 듯 보인다. 대통령실은 한미 관세 협상이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협상단을 "강경한 협상가들"이라 칭하며 갈등 봉합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는 더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관세 협상 타결과 동시에 발표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는 이 '승리'에 대한 명백한 청구서다.   

이 펀드의 구조를 해부해보면 미국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총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는 미국의 조선 산업 재건을 위한 "조선 분야 협력" 및 대출 보증에 묶여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매우 번창하는 조선 산업"을 미국에 재건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은,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미국의 산업 정책, 즉 중국 견제라는 지정학적 목표 달성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이 청구서의 리스크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가 "투자의 방법, 규모, 시기, 그리고 손실 분담 및 수익 배분 방식 등 모든 핵심 세부 사항에서 교착 상태(deadlocked)"라고 인정한 사실은 이 펀드가 얼마나 위험한 '정치적 부채'인지를 웅변한다.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이 이 펀드를 '협력'이 아닌 트럼프의 '요구(demands)'로 규정한 것은 국제사회가 이 관계의 본질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냉정한 시선이다. 국내 기업들은 관세 인하라는 '사탕'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의 뇌관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비상 계획을 수립해야 할 때다.   

APEC의 경고 'AI 지상명령'과 '확실성 격차'의 함정

경주 APEC CEO 서밋에서 울린 경고음은 더욱 명료하다. OECD는 미국발 관세 인상 여파로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2.9%로 둔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딜로이트의 설문조사에서 CEO 10명 중 7명은 자사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확실성 격차(certainty gap)'는 리더들이 거시적 위기를 과소평가하고 내부 역량만으로 파도를 넘을 수 있다고 믿는 위험한 착시다. 작아지는 파이에서 더 큰 조각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APEC이 내놓은 유일한 해법은 '인공지능(AI)'이다. 마티아스 콜만 OECD 사무총장은 AI가 향후 10년간 연평균 노동생산성을 최대 0.4%p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AWS가 2028년까지 APEC 지역에 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AI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닌 전기나 인터넷과 같은 필수 인프라의 영역으로 넘어왔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AI 도입은 생존을 위한 지상명령'이라는 의미다. 이제 질문은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깊게 전사적 가치사슬에 통합할 것인가'이다. 지금 투자를 망설이는 기업은 2~3년 내 극복 불가능한 생산성 격차에 직면하며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내수 시장의 경고등  '홈플러스의 눈물'과 '총수들의 외줄타기'

화려한 국제 외교 무대와 달리, 국내 경제 현장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유통 거인' 홈플러스가 인수자를 찾지 못해 청산 위기에 내몰린 것은 단일 기업의 위기를 넘어선다. 이는 10만 노동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자, 오프라인 기반의 레거시 산업 전체에 울리는 시스템 리스크 경보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4대 그룹 총수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하는 것은 한국 경제가 처한 외교적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희토류 등 핵심 공급망의 '아킬레스건'을 쥔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필사적인 '외줄타기'다. 이들의 어깨에 국가 경제의 명운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은 높아지고, '골드러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은 금값 폭락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반면 안전자산인 채권 시장으로는 돈이 몰리고, 서울 핵심 지역 부동산은 꺾일 줄 모른다. 모든 지표가 소비 시장의 'K자형' 양극화와 내수 동력 상실을 가리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2025년 10월 29일 대한민국 경제는 지정학적 기회와 리스크, 글로벌 기술 혁명의 압박, 그리고 내수 시장의 구조적 침체라는 다중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C-레벨 경영진은 한미동맹이라는 순풍에 돛을 다는 동시에, 대미 투자라는 암초와 중국 리스크라는 역풍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지 않으면 이 거친 바다에서 좌초를 피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니라, 다가올 폭풍에 대비해 뱃머리를 돌리고 조직을 재정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