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의 뷰포인트 4] 위메프 파산이 남긴 5,800억원의 교훈

'신뢰'가 무너진 이커머스, 10만 명의 눈물이 묻는다 대한민국 이커머스 20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 남겨

2025-11-11     전영선 기자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10일 위메프의 회생 절차 폐지와 파산을 선고했다. 1세대 소셜커머스로 출발해 한때 이커머스 시장의 주역이었던 위메프가 1년 4개월간의 회생 절차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CEONEWS=전영선 기자]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10일 위메프의 회생 절차 폐지와 파산을 선고했다. 1세대 소셜커머스로 출발해 한때 이커머스 시장의 주역이었던 위메프가 1년 4개월간의 회생 절차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법원은 청산 가치가 존속 가치보다 크다고 판단했다. 기업의 '사망 선고'였다. 문제는 규모다. 피해자 10만 8000명, 피해액 5,800억 원. 위메프의 남은 자산은 486억 원에 불과한 반면 부채는 4462억 원에 달한다. 임금과 퇴직금, 조세 등 우선 변제되는 재단채권을 제외하면 일반 채권자인 판매자들이 돌려받을 돈은 사실상 '0원'이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망선고"라고 절규한 이유다. 한 기업의 몰락을 넘어, 대한민국 이커머스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사건이다.

■정산금이 '운영자금'으로 쓰인 이유

이번 사태의 핵심은 판매자 정산금이 플랫폼의 운영자금처럼 사용됐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면 플랫폼은 그 돈을 보관했다가 통상 1~2개월 후 수수료를 제하고 판매자에게 정산한다. 문제는 이 '정산금'이 법적으로 명확히 보호받지 못하는 회색 지대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메프를 비롯한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최저가' 경쟁으로 만성 적자 구조에 빠졌다. M&A를 통한 외부 자금 수혈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돈을 부을 투자자는 없었다. 자금줄이 마르자 가장 먼저 판매자 정산 시스템이 멈춰 섰다. 플랫폼이 판매자들의 돈을 볼모로 잡은 채무자가 된 셈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기본인 '신뢰'가 붕괴한 순간이었다.

■이커머스 산업 전반으로 번진 불신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10일 위메프의 회생 절차 폐지와 파산을 선고했다. 1세대 소셜커머스로 출발해 한때 이커머스 시장의 주역이었던 위메프가 1년 4개월간의 회생 절차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위메프 파산의 파장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 플랫폼에서 물건을 사도 안전한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선불 쿠폰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판매자들의 불안이다. 네이버, 쿠팡 같은 대형 플랫폼을 제외한 중소·중견 이커머스에 입점한 판매자들은 '제2의 위메프'를 우려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약한 플랫폼들은 판매자 이탈이라는 연쇄 반응에 직면할 수 있으며, 이는 시장의 독과점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시장 경쟁이 줄어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가격 경쟁이 사라지고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며 혁신은 멎는다. 위메프의 파산은 이커머스 시장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

■온라인 유통 현실 못 따라간 법제도

"현행 법 제도가 온라인 유통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비대위의 이 지적은 뼈아프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은 주로 소비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플랫폼과 판매자 간 관계, 특히 '정산금'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 플랫폼은 통신판매중개업자로 분류돼 금융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수천억 원의 타인 자본을 다루면서도 분리 보관, 예치, 보증보험 가입 등이 의무화되지 않았다. 위메프의 5,800억 원은 이커머스 시장의 구조적 허점을 방치한 대가로 지불한 비싼 수업료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기 피해자 재발방지 특별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파산이 남긴 세 가지 과제

위메프 파산은 대한민국 이커머스 20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위메프 파산이 남긴 숙제는 명확하다. 첫째, 판매자 정산금에 대한 법적 안전장치가 시급하다. 플랫폼의 운영자금과 판매자 정산금을 명확히 분리해 별도 계좌에 예치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플랫폼의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할 경우를 대비한 보증보험 가입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플랫폼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판매자들은 자신이 거래하는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을 최소한이라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정기적인 재무 상태 공시와 외부 감사를 의무화해 '깜깜이' 정산을 막아야 한다. 셋째,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저가 출혈 경쟁'이라는 1세대 이커머스의 성장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수익성 없는 성장은 결국 수많은 피해자만 양산할 뿐이다. 판매자와 상생하고 소비자에게 지속가능한 가치를 제공하는 '신뢰 기반의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위메프의 파산은 대한민국 이커머스 20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5,800억 원의 비극을 단순히 '실패한 기업'의 사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무너진 신뢰의 토대 위에 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10만 8000명의 눈물에 답하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대한민국 이커머스 산업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