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철의 정경유책 20] '온플법'의 재점화, '공정'의 칼날 위에 선 K플랫폼
'독점 막자'는 정부 VS '통종만 잡는 역차별' 업계 격돌
[CEONEWS=배준철 기자]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하 온플법)'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막고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공정'의 명분은 거대하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업계는 "가뜩이나 글로벌 빅테크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상황에서, 토종 기업만 옭아매는 '역차별적 족쇄'가 될 것"이라며 절박한 호소를 쏟아내고 있다. '혁신'과 '공정'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K-플랫폼은 지금 중대한 정책적 딜레마의 한복판에 섰다.
■정부의 칼끝, "거대 문지기의 횡포를 막겠다"
정부와 국회가 '온플법'을 다시 추진하는 논리는 명확하다. 일부 거대 플랫폼이 시장의 '문지기(Gatekeeper)'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정한 시장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핵심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이다.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광고 상품 구매를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가 만연해 소상공인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자사우대(Self-preferencing)' 문제다. 플랫폼이 자체브랜드(PB) 상품이나 자사 계열사 서비스를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시키고, 경쟁사 서비스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셋째, 소비자 피해다.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되면 결국 서비스 혁신은 둔화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논리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 당국은 "이는 유럽연합(EU)이 강력한 '디지털 시장법(DMA)'을 시행하는 등 전 세계적인 추세"라며, "최소한의 '게임의 룰'을 정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EU는 지난해부터 DMA를 통해 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자사 서비스 우대 금지, 제3자 앱스토어 허용 등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아마존, 구글 등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빅테크 규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플랫폼 시장은 소수 기업이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입점 업체들의 수수료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며 "온플법은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업계의 절규, "알리·테무는 놔두고, 왜 네이버·카카오만"
정부의 '공정' 명분에 대해 국내 플랫폼 업계는 '역차별'이라는 현실론으로 맞선다. 이들의 반발은 단순한 '규제 회피'가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절박함이 묻어난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법안의 '실효성'과 '형평성'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은 본사와 서버가 모두 국내에 있어 규제 당국의 감시와 법 집행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구글, 애플, 메타 등 미국계 빅테크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거나 규제에 순응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의 '초저가 공습'은 국내 시장 생태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이들은 국내법의 사각지대에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이용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지만, '온플법'과 같은 사전 규제의 유효한 타깃이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IT업계 대표는 "중국 플랫폼들은 저가 상품으로 시장을 교란하면서도 세금 회피, 불법 광고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제대로 된 규제를 받지 않는다"며 "정작 국내 기업만 온플법으로 묶어두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미 공정거래법, 전자상거래법, 표시·광고법 등 다양한 법률로 규제받고 있는 상황에서 온플법은 중복 규제"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신규 서비스 출시 때마다 규제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혁신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카오 측도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은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인데, 과도한 사전 규제는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며 "결국 국내 시장은 글로벌 빅테크와 중국 플랫폼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상공인의 목소리, "자율규제만으로는 한계"
반면, 플랫폼을 통해 사업을 영위하는 소상공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김모(47)씨는 "수수료가 매년 오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며 "플랫폼이 갑자기 알고리즘을 바꾸면 매출이 반토막 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플랫폼의 자율적 개선을 수년간 기다렸지만 실질적 변화는 미미했다"며 "법적 강제력 없이는 구조적 불공정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소비자 단체들도 온플법 필요성에 힘을 싣고 있다. 소비자권익포럼 대표는 "플랫폼 독과점으로 선택권이 제한되고,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
온플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EU의 DMA다. 하지만 EU 사례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EU가 강력한 규제로 빅테크의 횡포를 견제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업계는 "EU에는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자국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규제"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EU의 DMA는 주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온플법은 국내 기업이 주요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 2020년 '특정 디지털 플랫폼 투명화법'을 제정했지만, 강제력보다는 투명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유연한 규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식 접근이 한국 상황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법은 '스마트 규제'
온플법은 '공정'과 '혁신'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복잡한 정책 딜레마 중 하나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구글, 애플은 앱마켓을 통해 막대한 수수료를 거둬가고 있으며, 알리와 테무는 국내 시장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한다. 한국디지털정책학회 교수는 "무조건 규제를 반대하거나, 무조건 강화하자는 식의 접근은 모두 위험하다"며 "핵심은 국내외 플랫폼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면서도,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정교한 규제 설계"라고 강조했다. 법안 심사를 맡은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 방안을 함께 마련하지 않으면 온플법이 역차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면서도 한국 상황을 반영한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단순한 '규제 법안 통과'가 아니다. K-플랫폼의 혁신 동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한국형 스마트 규제'를 설계하는 것이다. 만약 그 칼날이 해외 기업의 불공정 행위는 베지 못하고,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자르게 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정책'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K-디지털 영토의 미래가 이번 규제 논의의 향방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