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의 뉴스프리즘 5] 코스피 3900선 붕괴가 던진 경고

코스피 5000, 꿈인가, 착시인가? AI거품론과 실적의 벽 사이에 선 한국 증시

2025-11-19     김정복 기자
코스피가 장중 심리적 지지선인 3900선이 붕괴하면서 향후 주가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EONEWS=김정복 기자] 11월 19일, 코스피 지수가 장중 심리적 지지선인 3900선 아래로 밀렸다. 연초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코스피 5000 시대'를 향해 질주하던 한국 증시가 급제동에 걸렸다. 단순한 조정인가, 아니면 구조적 위기의 신호탄인가. 이재명 정부가 국정 과제로 제시한 '5000선'은 여전히 유효한 목표인지, 시장이 보내는 신호를 읽어본다.

■AI 신화에 드리운 그림자

코스피 급락의 진원지는 서울이 아닌 뉴욕 월스트리트였다. 그동안 글로벌 증시를 이끌던 기술주 불패 신화가 흔들리면서, 그 충격파가 한국으로 직행한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 발표된 연구논문 'Anchoring AI Capabilities in Market Valuations'는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이 논문은 '역량 실현 비율(CRR)' 개념을 통해 현재 AI 기업들의 주가가 실제 수익 창출 능력을 지나치게 앞질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기술력이 반드시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냉정한 분석이다. AI 반도체의 대장주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시장의 긴장감은 고조됐다. 옵션 시장에서는 실적 발표 직후 주가가 7% 이상 요동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는 "AI 거품이 터질 것인가, 재도약할 것인가"를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불확실성은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증시에 직격탄이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술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속 냉각되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11월 19일 하루에만 외국인은 약 4500억원어치 주식을 매도했다.

■매크로 환경의 역풍

거시경제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됐다. 성장주에게 치명적인 환경이다. 환율 불안정과 금리 불확실성, 기술주 조정이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자금 흐름만 봐도 시장의 온도를 체감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바뀌면서 신흥시장에 대한 선별적 접근이 강화되고 있다"며 "한국 시장이 프리미엄을 받으려면 펀더멘털로 승부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근거가 약하다"고 진단했다.

■5000선, 가능한 목표인가

코스피가 장중 심리적 지지선인 3900선이 붕괴하면서 향후 주가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지수 기준으로 5000선 달성을 위해서는 약 28%의 추가 상승이 필요하다. 과거 강세장에서 이 정도 상승은 가능했던 수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상승을 이끌 동력이다. 한국 증시의 상승 엔진은 반도체와 AI에 집중돼 있다. 이 엔진이 과열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밸류에이션만으로 지수를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MIT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 도입 기업 상당수가 막대한 투자 대비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실적 장세'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기대감으로 오르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내놓더라도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는 '뉴스에 팔아라'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며 "시장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책의 한계와 구조적 과제

정부의 의지만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코스피 5000'은 유동성 공급이나 정책 구호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리스크 관리, 반도체 편중 산업구조의 다변화, 환율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방어체계 구축 등 구조적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미국 금리나 환율 변동에 기업 이익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5000선은 영원히 닿지 않는 목표가 될 수 있다. 경제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밸류업 프로그램 같은 정책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실제로 수익을 내고 주주에게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해야 한다"며 "정책과 시장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갈림길에 선 시장

코스피가 장중 심리적 지지선인 3900선이 붕괴하면서 향후 주가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스피는 지금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글로벌 기술주들이 압도적인 실적으로 시장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HBM 등 차세대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다면, 이번 하락은 저가 매수 기회이자 5000선을 향한 도약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술주 조정이 장기화되고 AI 수익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된다면, 지수는 3800선을 넘어 더 깊은 조정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 조정이 아니라 그간 누적된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일 수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스트래티지스트는 "현재 시장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재조정 중"이라며 "이 과정에서 실적과 펀더멘털이 탄탄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숫자보다 본질을 볼 때

이재명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5000'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지수가 왜 오르고 왜 떨어지는지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기술 혁신, 수익 모델 창출, 주주 환원 및 재투자'라는 선순환 구조가 기업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시장이 정부에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기대감만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은 이미 AI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계산서를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한국 증시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화려한 구호보다는 거품과 실체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는 정교한 정책 운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코스피 5000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려면 시장과 정부, 기업이 함께 답해야 할 질문들이 산적해 있다. 착시를 걷어내고 본질을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