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정체성 고스란히 타고난 3세 CEO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CEONEWS=조성일 기자] 신세계와 롯데와 더불어 백화점 업계 빅3 삼각형의 한 꼭짓점을 차지하는 현대백화점그룹. 2030년까지 매출 40조 원, 영업이익 2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대내외에 놓인 경영 환경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고객들의 충성도가 가장 높다는 이미지를 살려 나름의 전략을 구사한다. 고객과 시장, 비즈니스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적극 실천하여 성장 동력을 만든다는 것.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맨 앞에서 그룹을 이끄는 CEO는 정지선 회장이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방문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과 정지선 회장.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방문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과 정지선 회장.

 

현대는 고객 충성도 가장 높은 백화점

 

현대백화점의 이미지는 어떨까. 고급스러우면서도 만족도가 높은 백화점이란 개인적 인상 비평이 먼저 와닿는다. 아마도 우리나라 부자 동네의 상징인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1호점을 냈던 역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비공간의 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서울 여의도의 더현대서울도 한몫했으리라.

하지만 현대백화점은 소비자 개인의 인상 비평을 넘어 객관적 조사에서도 고객 충성도가 가장 높은 백화점으로 꼽혔다.

시장조사기관인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20세 이상 남녀 어른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NPS(Net Promoter Score, 순고객추천지수)’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이 21.0으로 가장 높았다. 신세계가 17.0, 롯데가 1.5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조사는 특정 백화점을 친구 혹은 지인에게 얼마나 추천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0(절대 추천 안함)부터 10(매우 추천)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06점은 비추천, 78점은 중립, 910점은 추천 고객으로 분류해 이를 기반으로 NPS를 계산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현대의 추천 고객 비율은 36.0%, 비추천 고객 비율은 15.0%였다. 중립 고객은 49.0%로 나타났다.

 

MZ 친화적 전략을 성공시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MZ 친화적 전략을 성공시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이봐, 해봤어?”가 경영 모토

 

현대백화점의 이 같은 이미지 창출은 정지선 회장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정 회장은 그 유명한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셋째아들 정몽근 명예회장의 맏아들이다. 3세대 CEO이다. 그런 그는 서른네 살에 아버지의 배턴을 이어받아 20년 가까이 그룹을 경영하면서도 은둔의 경영자로 통했다.

하지만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에 진출할 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걸로 유명하다. 다른 경쟁사들은 구조조정을 하며 숨 고르기를 할 때도 정 회장은 확신이 들면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할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빼다 닮은꼴이다.

정지선 회장은 할아버지의 이봐, 해봤어?”를 삶의 모토로 삼으면서 아버지의 겸손하고 성실하라는 조언을 실천하는 효자’ CEO이다. 홑따옴표를 친 효자라는 말과 경영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형용모순 같다고 할지 모르는데, 이는 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현대가의 CEO 정체성을 상징하는 거다.

여기에다 소리 없이 강한 착한 모범생 스타일의 정지선 회장은 친화력을 지닌 따뜻한 리더십으로 무장한 CEO로 통한다. 검소하고 소탈한 스타일의 정 회장은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걸로 유명하다. 그는 부장 이하 사원급까지 다양한 직급의 직원들을 뽑아 매달 한 번씩 대화하는 자리인 주니어보드제도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정 회장은 특별한 포상제도를 시행한다. 이른바 퍼스트 펭귄이다. 과감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직원을 격려하는 포상이다. 도전에 실패하면 또다시 도전하기보단 현실에 안주하곤 하는데, 이때 위기가 오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지론에 따른 격려다.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먼저 도전하는 선발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서울 여의도에 2021년 2월 26일 오픈한 더현대 서울 모습.
서울 여의도에 2021년 2월 26일 오픈한 더현대 서울 모습.
서울 여의도 소재 더현대서울 내부 모습.
서울 여의도 소재 더현대서울 내부 모습.

 

더현대서울, 소비공간 진화의 대명사

 

정지선 회장의 경영 성과에서 더현대서울의 성공을 빼놓을 수 없다. 거주 인구 3만 명을 겨우 넘은 비주거상권인 서울 여의도에 백화점 문을 연다고 했을 때 다들 고개를 가로 저다.

하지만 정 회장의 뚝심은 결국 더현대서울‘1조 원 클럽’(매출 1조 원을 넘어서는 백화점)으로 성장시켰다.

더현대서울의 성공에는 오피스 상권과 백화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 관념을 깸과 동시에 공간의 진화였다. 김난도 교수가 2022년 더현대서울 오픈 1주년을 맞아 쓴 더현대서울 인사이트에 따르면, 더현대서울의 성공 요인으로 소비자, 공간, 마케팅, 조직문화 등을 꼽았다.

우리는 백화점하면 쇼핑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더현대서울 하면 이색적인 이벤트가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다가오면서 MZ들이 찾는 문화 명소로 기능한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서울 강남 현대백화점 본사에 난데없이 AI 기술로 본떠 얼굴을 생성한 디지털 포토 카드 존에 등장했다. 디지털사업본부 Z세대의 아이디어로 턱시도 차림의 정 회장이 작은 폭죽까지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신났다. 본인이 원하는 실감 나는 포즈로 촬영하고, 소장까지 할 수 있어서 앞다투어 AI 회장과 만났다.

이렇듯 덕장의 품격을 지닌 정지선 회장은 올해를 서로 믿고 도우며 함께 성장하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성장은 실천에서 시작되고 다양한 협력으로 확장되며 서로의 공감으로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관습적으로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적용해 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새로운 시도는 익숙함을 버려야 하는 수고가 따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갖게 하지만, 성장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성공이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정주영의 손자다운 CEO 정지선. 그가 풀어놓는 경영철학은 우리 사회와 어떤 모습으로 공존할까.

턱시도 입고 불꽃 든 현대백화점룹 정지선 AI 회장.
턱시도 입고 불꽃 든 현대백화점룹 정지선 AI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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