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감축률 61%, 산업구조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CEONEWS=김병조 기자] 2025년 11월 11일, 한국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기로 확정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다. 탄소중립이 곧 산업정책이 되는, 전례 없는 대전환의 신호탄이다.
정부는 이번 목표를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으로 규정했지만, 산업계의 시선은 훨씬 냉정하다. 53%와 61%의 격차는 단순한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수십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와 수천 개 일자리의 재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지금, 생존을 위한 ‘전환의 경제학’을 새로 써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정책의 본질: “감축이 아니라 산업혁신을 강제하는 구조조정”
정부가 제시한 2035년 감축 목표는 에너지·산업·수송·건물·농축수산 등 전 부문에 걸친 구조 개편을 전제로 한다. 특히 산업 부문은 전체 배출량의 37%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실질적 부담의 상당 부분을 기업이 떠안게 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감축률 61%를 달성하려면 석탄발전 전면 퇴출, 산업용 열과 연료의 전기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0% 이상 확대, 제철·시멘트 등 중공업의 수소 및 전기로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는 곧 ‘국가 차원의 산업지도 재편’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탄소감축을 통해 녹색기술, 수소, 전력망,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생태계를 육성하려 한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는 “탄소중립은 환경문제가 아니라 비용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기업의 투자 여력, 기술혁신 속도,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이 목표의 현실성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산업계의 현실적 충격: “탄소는 새로운 세금이자 리스크”
이번 목표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은 향후 10년 동안 ‘탄소비용’을 핵심 경영요소로 관리해야 한다. 배출권 거래제 강화, RE100(재생에너지 100%) 의무 확대, ESG 공시 강화 등 복합적 규제가 예고되어 있다.
규제비용의 구조적 증가
한국의 탄소배출권 평균가격은 이미 톤당 10만 원을 넘어섰다. EU CBAM(탄소국경조정제)이 본격 시행되면, 수출기업은 제품당 탄소데이터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탄소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면 수출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
투자 의사결정의 변화
전통적 ROI 계산에 탄소가격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석탄·정유 중심 설비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으로 분류되고, 그린수소·전기화 프로젝트·순환경제 설비가 우선 투자영역으로 재편된다.
공급망 압력의 가속화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에도 Scope 3 감축 목표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탄소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납품기회가 축소될 위험이 있다.
탄소정보 관리 능력은 새로운 ‘신용등급’이 되고 있다.
▲업종별 대응전략: “생존은 전환의 속도에 달려 있다”
철강 – 수소환원제철이 게임체인저
포스코는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의 핵심으로 ‘수소환원제철(HyREX)’을 제시했다. 기존 고로방식 대신 수소로 산소를 제거하는 공정으로, 탄소 배출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수소 생산비용과 인프라 구축이 걸림돌이다. 향후 정부의 수소경제 정책과의 연계가 철강업계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정유·화학 – 에너지기업으로의 체질변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등은 정유사업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바이오항공유(SAF),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수소혼합연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정유회사가 ‘에너지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반도체·IT – 전력소비의 전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장은 하루 전력소모량이 한 도시 규모에 달한다. 따라서 재생전력 조달(PPA 계약), 냉각 효율화, 탄소프리 전력 인증이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고객(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Net Zero 요구를 맞추지 못하면 프리미엄 반도체 시장에서 제외될 위험이 있다.
자동차 – 배터리와 순환경제로의 이동
현대차·기아는 2030년까지 글로벌 판매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배터리 재활용, 소재 회수, 전동화 부품 내재화가 향후 핵심경쟁력이 된다.
내연기관 부품 생태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며, 정부의 ‘전환지원펀드’ 활성화가 관건이다.
건설·시멘트 – CCUS 기술이 생존의 열쇠
시멘트 산업은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산화 반응이 전체 배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한일시멘트·삼표시멘트 등은 탄소포집·저장(CCUS) 기술 도입과 저탄소 결합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탄소중립 건물’ 인증을 강화하며 ESG 투자 유치를 시도 중이다.
금융 – 탄소리스크의 자본시장화
국내 금융지주들은 고탄소 대출을 감축하고,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으로 전환하고 있다. 은행의 여신 심사 기준에 탄소집약도 지표가 도입되면서,
이제 ‘금융의 탈탄소’가 곧 산업의 탈탄소를 견인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