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서울 강남의 한 치킨집. 가죽 재킷 차림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함께 치맥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유튜브 쇼츠로 공개된 이 장면은 순식간에 전 세계 산업계의 화제가 됐다. AI 시대를 이끄는 세 거물이 화려한 호텔 연회장이 아닌 서민적인 치킨집에서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만남을 단순한 문화 체험이나 친목 도모로 치부한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강남의 '깐부치킨'에서 이뤄진 이날의 회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축인 AI, 반도체, 모빌리티의 미래 동맹을 상징하는 전략적 사건이었다. 격식과 의전을 과감히 벗어던진 이들의 선택은 오히려 미래 산업 질서를 재편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깐부'라는 이름에 담긴 메시지
회동 장소가 '깐부치킨'이었다는 점부터 의미심장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깐부'는 '가장 친한 친구', '동맹'을 뜻하는 한국어다. 엔비디아 측이 이 장소를 선택했다는 것은, 삼성과 현대차를 단순한 거래 파트너가 아닌 미래를 함께할 핵심 동맹으로 규정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젠슨 황 CEO가 직접 "한국의 진정한 치맥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고 제안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수평적 소통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과 두 총수와의 개인적 유대감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고도의 전략이다. 미래 산업은 천문학적 투자와 장기적 협력이 필수적인 영역이다. 계약서상의 파트너십을 넘어선 최고경영자 간의 깊은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치킨집에서 오간 건배는 바로 그 신뢰를 다지는 의식이었다.
■삼각편대가 그리는 미래 산업 지도
이들의 만남에서 읽히는 것은 명확한 전략적 이해관계다. 먼저 엔비디아와 삼성의 'HBM 동맹'이다. AI 혁명의 핵심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할 고대역폭 메모리(HBM) 없이는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이 HBM의 핵심 공급자다. 젠슨 황에게 이재용 회장은 폭발하는 AI 수요를 감당할 안정적인 공급처이며, 이 회장에게 젠슨 황은 HBM 시장 주도권을 되찾고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협력을 강화할 최대 고객이다. 다음은 엔비디아와 현대차의 '모빌리티 혁신'이다. 정의선 회장이 추진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와 자율주행 기술은 막대한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할 강력한 AI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플랫폼이 그 해답이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시장을 선점하고, 엔비디아는 AI 생태계를 모빌리티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양측의 목표다. 결국 이 만남은 AI(엔비디아), 반도체(삼성), 모빌리티(현대차)라는 21세기 산업의 세 축이 하나로 수렴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동맹이 만들 새로운 생태계
향후 전망은 구체적이다. 단기적으로 삼성의 HBM 공급 확대와 현대차의 차세대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이 가속화될 것이다. 삼성은 엔비디아를 발판 삼아 TSMC와의 파운드리 경쟁에서 반격을 모색할 것이며, 현대차는 AI 기반 스마트팩토리와 로보틱스 분야로 협력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그림이다. 이 동맹은 특정 제품 협력을 넘어 거대한 'AI 생태계' 구축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의 AI 플랫폼 위에서 삼성의 최첨단 반도체가 작동하고, 그 기반 위에서 현대차의 모빌리티 서비스가 구현되는 수직 통합형 구조다. 여기에 삼성의 가전과 스마트폰, 현대차의 도심항공교통(UAM)까지 결합된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래는 격의 없는 소통에서 시작된다
한 편의 쇼츠 영상으로 기록된 이날의 만남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미래 산업의 패권은 더 이상 엄숙한 회의실의 격식 속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격의 없는 소통과 진정한 신뢰 관계에서 비롯된다. '깐부'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시작된 이들의 AI 동맹이 그려낼 미래 산업 지도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치킨과 맥주를 나누며 오간 대화가 수십조 원대 투자와 수만 개의 일자리, 그리고 새로운 산업 표준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남의 치킨집에서 시작된 이 동맹이 한국을 AI 시대의 핵심 거점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그 결과는 곧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