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CEONEWS=배준철 기자] 2025년 11월 18일, 대한민국 정부는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최종 승소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2022년 중재 판정의 절차적 위반을 인정하며, 2억 1650만 달러(약 320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 지급 의무가 소멸된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금융주권의 승리"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고, 법무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교적 쾌거"라고 자평했다. 표면적으로 이는 완벽한 승리다. 4천억 원 가까운 혈세 지출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론스타 측이 우리 정부의 소송 비용까지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 우리는 냉정히 물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자랑스러운 승리인가, 아니면 애초에 치르지 않았어야 할 전쟁의 끝인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한국 금융 시스템의 후진성과 관치 금융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전보의 환호가 아니라, 이 사태가 던진 묵직한 질문들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다.■법적 승리 이면의 사회적 손실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4천억 원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가 치른 보이지 않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지난 22년간 정부와 금융당국이 쏟아부은 행정력, 법률 비용, 외교적 노력은 천문학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무형의 손실들이다. '먹튀 외자' 논란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을 불확실한 시장으로 각인시켰다. 글로벌 금융사들 사이에서 회자된 "코리아 리스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투명하지 않은 규제, 예측 불가능한 행정 처리, 그리고 여론에 휘둘리는 정책 결정이라는 이미지는 한국 금융시장의 할인율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한 외국계 투자은행 임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론스타 사태 이후 우리 본사는 한국 투자안건을 검토할 때마다 '정치적 리스크 프리미엄'을 추가로 고려하게 됐다. 법이 아니라 여론과 정치 논리로 결정이 뒤집힐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안 준 돈'과 '번 돈'의 차이정부는 이번 결과를 성과로 제시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는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안 줘도 되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화재를 겨우 진압한 후 "집을 지켰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질문은 "왜 불이 났는가"다. 경제학자 김상조 교수는 지적한다. "승소 자체는 다행이지만, 애초에 이런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어야 했다. 4천억 원을 방어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이런 방어전을 치러야 했는지에 대한 성찰이다."■규제의 이중성이 만든 분쟁론스타가 ISDS를 제기한 핵심 논리는 "한국 금융당국의 부당한 매각 승인 지연"이었다. 비록 최종 판결에서 우리가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당국의 행보는 뼈아프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외환은행 매각 심사 과정은 법적 근거보다 정무적 판단이 우선시된 전형적 사례였다. 당시 여론은 론스타를 '먹튀 투기자본'으로 규정했고, 금융당국은 국민 정서를 의식해 명확한 기준 없이 승인을 지연시켰다. 법리보다 '눈치'가 앞섰던 것이다. 금융위원회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말한다. "당시 실무자들은 법적으로 승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계속 심사를 늦췄다. 결국 그 '정치적 부담'이 4천억 원 소송으로 돌아온 것이다."■재량권의 남용,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괴리문제는 이런 관행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기업들은 명문화된 법규보다 정부의 '말 한마디'를 더 두려워한다. 규제 당국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넓어, 같은 사안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처리된다. 한 대기업 법무팀장은 토로한다. "해외에서는 법조문을 보면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법뿐 아니라 '분위기'도 읽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이다."■구조적 개혁 없는 승소의 한계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이번 승소가 의미 있으려면, 제2, 제3의 론스타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가 내놓은 후속 조치는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금융규제의 명확한 법제화다. 당국의 재량권을 최소화하고, 승인 기준과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 둘째,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다.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 근거와 과정을 공개해, 자의적 해석 여지를 줄여야 한다. 셋째, 국제 투자 분쟁 예방 시스템의 강화다. 외국인 투자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부터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정치권의 소모적 공방을 넘어론스타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당시 금융당국의 판단을 옹호하며 "국익 수호"였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능한 행정이 빚은 참사"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 프레임은 본질을 흐린다.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정치적 단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시스템 개선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금융 선진화를 위한 초당적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승리가 아닌 각성의 계기로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구론스타 사태는 끝났지만, 그것이 남긴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국은 정말 예측 가능한 시장인가. 법과 원칙이 정치 논리보다 우선하는가. 외국 자본은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번 승소를 단순한 법적 승리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금융 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외환은행을 헐값에 넘겼던 과거, 그리고 그것을 되찾으려다 20년 소송전을 치른 현재. 우리는 이제 진정한 '금융주권'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특정 판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론스타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전보의 환호가 아니라 뼈를 깎는 성찰이다. 4천억 원의 청구서를 피했지만, 더 큰 숙제는 아직 남아 있다. 그 숙제를 외면한다면, 이번 승리는 일시적 안도감에 불과할 것이다.
온플법이 재점화되면서 찬반양론 논란이 뜨겁다.[CEONEWS=배준철 기자]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하 온플법)'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막고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공정'의 명분은 거대하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업계는 "가뜩이나 글로벌 빅테크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상황에서, 토종 기업만 옭아매는 '역차별적 족쇄'가 될 것"이라며 절박한 호소를 쏟아내고 있다. '혁신'과 '공정'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K-플랫폼은 지금 중대한 정책적 딜레마의 한복판에 섰다.■정부의 칼끝, "거대 문지기의 횡포를 막겠다"정부와 국회가 '온플법'을 다시 추진하는 논리는 명확하다. 일부 거대 플랫폼이 시장의 '문지기(Gatekeeper)'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정한 시장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핵심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이다.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광고 상품 구매를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가 만연해 소상공인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자사우대(Self-preferencing)' 문제다. 플랫폼이 자체브랜드(PB) 상품이나 자사 계열사 서비스를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시키고, 경쟁사 서비스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셋째, 소비자 피해다.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되면 결국 서비스 혁신은 둔화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논리다.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 당국은 "이는 유럽연합(EU)이 강력한 '디지털 시장법(DMA)'을 시행하는 등 전 세계적인 추세"라며, "최소한의 '게임의 룰'을 정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EU는 지난해부터 DMA를 통해 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자사 서비스 우대 금지, 제3자 앱스토어 허용 등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아마존, 구글 등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빅테크 규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플랫폼 시장은 소수 기업이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입점 업체들의 수수료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며 "온플법은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업계의 절규, "알리·테무는 놔두고, 왜 네이버·카카오만"온플법이 재점화되면서 찬반양론 논란이 뜨겁다.정부의 '공정' 명분에 대해 국내 플랫폼 업계는 '역차별'이라는 현실론으로 맞선다. 이들의 반발은 단순한 '규제 회피'가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절박함이 묻어난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법안의 '실효성'과 '형평성'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은 본사와 서버가 모두 국내에 있어 규제 당국의 감시와 법 집행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구글, 애플, 메타 등 미국계 빅테크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거나 규제에 순응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의 '초저가 공습'은 국내 시장 생태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이들은 국내법의 사각지대에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이용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지만, '온플법'과 같은 사전 규제의 유효한 타깃이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한 IT업계 대표는 "중국 플랫폼들은 저가 상품으로 시장을 교란하면서도 세금 회피, 불법 광고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제대로 된 규제를 받지 않는다"며 "정작 국내 기업만 온플법으로 묶어두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미 공정거래법, 전자상거래법, 표시·광고법 등 다양한 법률로 규제받고 있는 상황에서 온플법은 중복 규제"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신규 서비스 출시 때마다 규제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혁신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카오 측도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은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인데, 과도한 사전 규제는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며 "결국 국내 시장은 글로벌 빅테크와 중국 플랫폼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소상공인의 목소리, "자율규제만으로는 한계"반면, 플랫폼을 통해 사업을 영위하는 소상공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김모(47)씨는 "수수료가 매년 오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며 "플랫폼이 갑자기 알고리즘을 바꾸면 매출이 반토막 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플랫폼의 자율적 개선을 수년간 기다렸지만 실질적 변화는 미미했다"며 "법적 강제력 없이는 구조적 불공정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소비자 단체들도 온플법 필요성에 힘을 싣고 있다. 소비자권익포럼 대표는 "플랫폼 독과점으로 선택권이 제한되고,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온플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EU의 DMA다. 하지만 EU 사례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EU가 강력한 규제로 빅테크의 횡포를 견제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업계는 "EU에는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자국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규제"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EU의 DMA는 주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온플법은 국내 기업이 주요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 2020년 '특정 디지털 플랫폼 투명화법'을 제정했지만, 강제력보다는 투명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유연한 규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식 접근이 한국 상황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해법은 '스마트 규제'온플법이 재점화되면서 찬반양론 논란이 뜨겁다.온플법은 '공정'과 '혁신'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복잡한 정책 딜레마 중 하나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구글, 애플은 앱마켓을 통해 막대한 수수료를 거둬가고 있으며, 알리와 테무는 국내 시장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한다. 한국디지털정책학회 교수는 "무조건 규제를 반대하거나, 무조건 강화하자는 식의 접근은 모두 위험하다"며 "핵심은 국내외 플랫폼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면서도,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정교한 규제 설계"라고 강조했다. 법안 심사를 맡은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 방안을 함께 마련하지 않으면 온플법이 역차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면서도 한국 상황을 반영한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22대 국회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단순한 '규제 법안 통과'가 아니다. K-플랫폼의 혁신 동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한국형 스마트 규제'를 설계하는 것이다. 만약 그 칼날이 해외 기업의 불공정 행위는 베지 못하고,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자르게 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정책'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K-디지털 영토의 미래가 이번 규제 논의의 향방에 달려있다.
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하나의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AI 반도체, AI 고속도로, AI 강국 도약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었다. 정부는 이를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화'를 잇는 대한민국 세 번째 도약의 신호탄이라 자평했다. [CEONEWS=배준철 기자] 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하나의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AI 반도체, AI 고속도로, AI 강국 도약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었다. 정부는 이를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화'를 잇는 대한민국 세 번째 도약의 신호탄이라 자평했다. 정치적 수사와 국가 비전이 천문학적 재정 배분과 만나는 지점. 바로 여기에 '폴리코노미(Policonomy)'의 핵심이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경제가 다시 정치 지형을 흔드는 거대한 순환. 우리는 지금 이 대통령의 'AI 올인' 선언을 냉철하게 해부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과연 이 거대한 재정 투입은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쓸 마중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재정 부담과 사회 양극화라는 '정치적 청구서'만 남기게 될 것인가.■'AI 고속도로' 뒤에 가려진 정치적 셈법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하나의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AI 반도체, AI 고속도로, AI 강국 도약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었다. 정부는 이를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화'를 잇는 대한민국 세 번째 도약의 신호탄이라 자평했다. 정치적 선언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현시점에서 'AI'는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정치 키워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술 냉전'의 시대. "하루 늦으면 한 세대 뒤처진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글로벌 경쟁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가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고도의 정치 수사다. APEC 정상회의에서 확보했다는 엔비디아 GPU 26만장 이슈가 곧바로 여야의 '성과 논쟁'으로 비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 의제가 아니라, 현 정부의 유능함과 미래 비전을 입증하는 핵심 '정치 자산'이 되었다. 728조 원 예산안은 바로 이 'AI'라는 깃발 아래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하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의 표명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임기 중반을 지난 정부가 국정 동력을 확보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레거시'를 구축하려는 다목적 포석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과연 경제적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정치적 구호가 재정 건전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압도할 때, 그 끝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728조의 향방, 'AI 양극화'를 가속하는가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하나의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AI 반도체, AI 고속도로, AI 강국 도약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었다. 정부는 이를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화'를 잇는 대한민국 세 번째 도약의 신호탄이라 자평했다. '폴리코노미 21화'에서 우리는 2040년 부동산 시장의 '다중 양극화'를 경고했다. 자본과 정보, 접근성에 따라 주거 환경이 극단적으로 분화되는 현상. 이 대통령이 선언한 'AI 시대'는 이보다 더 심각한 'AI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다. 정부 예산은 필연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요구한다. 'AI 고속도로' 건설과 AI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은 일부 대기업과 기술 엘리트에게 막대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대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봐야 한다. 막대한 예산이 AI와 직결된 소수 분야에 집중될 때, 전통 제조업, 중소기업, 그리고 AI 기술에서 소외된 수많은 노동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AI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테크 엘리트'에게 집중되고, 단순·반복 노동은 AI로 대체되면서 일자리의 질과 소득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이는 '폴리코노미 16화'에서 다룬 '간병 살인'과 '돌봄 노동'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돌봄'과 같은 비AI 분야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할 위험이 크다. 정부가 AI라는 '화려한 성장'에만 매몰되어, 그 성장의 그늘에서 신음할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외면한다면, 728조 원의 예산은 기술 발전이 아닌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현재 한국의 AI 관련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2%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 직군의 평균 연봉은 일반 직군 대비 2.5배 이상 높다. 정부가 'AI 인재 100만 양성'을 외치지만, 실질적으로 고급 AI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다. 나머지는 'AI 시대의 보조 인력' 또는 'AI 대체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장밋빛 청사진'의 세 가지 함정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하나의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AI 반도체, AI 고속도로, AI 강국 도약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었다. 정부는 이를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화'를 잇는 대한민국 세 번째 도약의 신호탄이라 자평했다. ▲첫 번째 함정: 인재는 있는가정부는 AI 인재 100만 양성을 외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국내 최고의 AI 인재들은 졸업과 동시에 구글, 엔비디아 등 실리콘밸리로 향한다. APEC에서 GPU 26만장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 GPU를 다룰 핵심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다. 파격적인 보상, 수평적인 연구 문화, 경직된 규제 철폐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특히 한국의 위계적 조직 문화, 야근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노동 환경,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창의적 AI 인재들이 가장 기피하는 요소들이다. 하드웨어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인재는 환경으로 키우는 것이다.▲두 번째 함정: 윤리와 규제는 준비되었는가이번 시정연설에서 'AI 발전'과 '속도'는 강조되었지만, AI가 초래할 대량 실업, 데이터 편향성, 감시 사회의 위험에 대한 '제어 장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AI라는 고속열차의 액셀만 밟고 브레이크는 논의하지 않는다면, 그 열차는 결국 탈선한다. 유럽연합(EU)은 이미 'AI Act'를 통해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중국조차 AI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데이터 보호를 강조하는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만 '속도'에 집착한 채 '방향'과 '안전'을 간과한다면, 기술 선진국이 아닌 '기술 사고 다발 국가'가 될 위험이 있다. 특히 AI 기반 채용 시스템의 성차별 논란, 안면인식 기술의 프라이버시 침해, 챗봇의 거짓 정보 생성 문제 등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정치가 따라잡지 못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돌아간다.▲세 번째 함정: 재정은 감당 가능한가728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은 결국 '세금'이다. 이미 누적된 국가채무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재정 압박 속에서,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재정 블랙홀'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정치적 구호에 밀려 경제성 평가가 무력화되고, 단기 성과에 집착한 '선심성 AI R&D'가 남발된다면, 이는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넘기는 무책임한 '폴리코노미'의 전형이 될 것이다. 특히 AI 프로젝트는 성공 확률이 낮고, 초기 투자 대비 회수 기간이 길다는 특성이 있다. 정치적 성과에 급급해 '보여주기식' 투자가 난무한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반도체 신화는 반복될 수 있는가정부는 'AI 반도체'를 '제2의 반도체 신화'로 포장하지만, 1980년대 반도체 산업 육성과 2025년 AI 산업 육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맥락에 놓여 있다. 1980년대 한국은 저렴한 노동력과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 그리고 글로벌 수요 급증이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 시기였다. 반도체는 '만들면 팔리는' 시장이었고, 삼성과 LG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2025년 AI 시장은 다르다. 이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AI는 '하드웨어'만의 싸움이 아니라 '데이터', '알고리즘', '인재', '자본'이 총동원되는 종합전이다. 한국이 GPU를 26만장 확보했다 해도, 그것을 활용할 데이터 인프라, 알고리즘 경쟁력, 글로벌 시장 접근성이 부재하다면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반도체는 '제조업'이었지만, AI는 '플랫폼 경제'다. 승자독식 구조가 더욱 강화된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이 과연 어떤 포지셔닝을 가져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AI 시대'의 주도권, 정치가 아닌 '사람'에서 나와야이재명 대통령의 'AI 시대' 선포는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폴리코노미'의 시선은 화려한 선언이 아닌, 그 이면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향한다. 진정한 'AI 강국'은 단순히 GPU를 몇만 장 더 확보하고, AI 반도체 수출액을 얼마 더 늘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AI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평범한 시민을 어떻게 재교육하고 보호할 것인가, AI가 생성한 부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 AI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도록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이러한 '사람'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적 선언'과 '재정 투입'만으로 밀어붙이는 'AI 고속도로'는 결국 또 하나의 거대한 토목공사에 그칠 위험이 크다. 폴리코노미는 묻는다. 우리는 AI를 '정치의 도구'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위한 기술'로 발전시킬 것인가. 728조 원의 예산안이 답해야 할 본질적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가 주도하는 'AI 혁명'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AI 시대'를 위한 근본적 성찰. 그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1] 2040년 부동산 시장 "다중 양극화"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대한민국 총가구 수는 2039년에서 2041년 사이에 정점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총가구는 2024년 2,218만 가구에서 증가하여 2041년 2,437만 가구로 최대치에 도달한 후, 점차 감소하여 2052년에는 2,328만 가구 수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가구 수 정점’ 시점은 단독으로 해석할 경우 시장을 오판하게 만드는 심각한 착시를 유발한다. 총인구가 이미 2020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가구 수가 약 20년간 더 증가하는 현상은 오직 ‘가구 분화(Household Fission)’ 현상, 즉 전통적인 가족 단위가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는 것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실제로 평균 가구원 수는 2024년 2.3명에서 2052년 1.8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앞으로 형성될 신규 가구들이 과거의 가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며, 대부분 경제적으로 더 취약한 구조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향후 15년 이상 지속될 가구 수의 양적 증가는 주택 수요의 질적 저하라는 이면을 감추고 있다. 시장의 수요 구조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 한국 경제성장기의 주택 시장을 견인했던 전통적 가구 형태는 소수파로 전락하고, 새로운 형태의 가구들이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첫째, 1인 가구는 이미 가장 지배적인 가구 형태가 되었다. 2024년 전체 가구의 36%를 차지하는 794만 1인 가구는 2034년 948만 가구로 늘어나고, 2052년에는 전체의 41%에 달할 전망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1인 가구의 연령 구성 변화다. 2024년에는 60세 이상 1인 가구의 비중이 37% 수준이지만, 2034년에는 이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47%까지 치솟을 것이다. 이는 주택 시장의 핵심 수요층이 젊은 전문직 1인 가구에서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 1인 가구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둘째, 가구주의 연령이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024년 587만 가구로 전체의 27%를 차지하는 고령자 가구는 불과 10년 뒤인 2034년에는 885만 가구(37%)로 급증하며, 2052년에는 51%에 도달하여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한국의 고령자 가구 증가 속도는 인구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보다도 훨씬 빠르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의 반대편에는 전통적인 ‘부부+미혼자녀 가구’의 몰락이 있다.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핵심 수요 기반이었던 이 가구 유형은 2024년 26%에서 2052년 17%로 그 비중이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시장의 주류 소비자가 30~50대 3~4인 가구에서 1인 가구나 고령 부부 가구로 대체되는 것은 주택 시장 패러다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이러한 인구 통계적 변화는 2040년 변곡점 이전부터 이미 주택 시장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가구 수 증가라는 표면적 지표는 평균적인 가구의 구매력과 필요 공간의 본질적 축소라는 구조적 현실을 가리고 있다. 총인구는 감소하지만 가구 수가 증가하는 수학적 괴리는 평균 가구원 수의 감소로 설명되며, 이는 1인 가구와 고령 가구의 급증 및 3~4인 가구의 감소라는 데이터로 명확히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1인 가구(특히 고령층)와 은퇴한 고령 부부는 소득이 이중인 황금 연령대의 3~4인 가구에 비해 중위 소득과 축적 자산이 낮다. 따라서 ‘필요한 주택 수’라는 양적 수요는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고 비싼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질적 수요는 이미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요의 구조적 약화는 2040년 정점이 오기 훨씬 전인 현재부터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료: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2022~2052’ (CEONEWS=박수남 기자)일본의 선례: 보편적 붕괴가 아닌 양극화일본 부동산 버블은 1991년을 기점으로 붕괴하며 20년 이상 지속된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2013년 기준, 전국 주거용 토지 가격은 1991년 고점 대비 49.1% 수준이었고, 상업용 토지는 22.8%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전국 평균 수치는 자산 가치의 극명한 분화를 감추고 있다. 전국 시장이 침체하는 동안에도 도쿄 도심의 핵심 지역 부동산은 안정을 찾고 결국 회복세로 돌아섰다. 현재 도쿄 도심의 부동산 가격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수많은 교외 및 지방 지역의 자산 가치는 여전히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험은 모든 자산이 함께 가라앉는 침몰이 아니라, 가치 있는 자산과 그렇지 않은 자산이 폭력적으로 재분류되는 과정이었다. 일본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도심업무지구(CBD)로부터의 거리, 즉 통근 시간과 자산 가격 하락폭 사이의 명확하고 정량화 가능한 상관관계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우토 마사아키 도쿄도시대 교수는 도쿄 수도권에서 도심까지의 통근 시간이 60분을 초과하면 2045년까지 주택 자산 가치가 29.8% 하락하고, 120분을 초과하면 54.7%까지 폭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한국 수도권 시장에 강력한 분석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장거리 통근의 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강남업무지구(GBD)나 광화문 등 핵심 업무 및 인프라 허브에 대한 접근성은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는 더욱 지배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통근 시간 60분’ 경계선에서 나타나는 ‘가치 절벽(value cliff)’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팔라질 것이다. 인구 감소와 비선호 지역의 자산 가치 하락이 초래하는 최종 결과는 ‘아키야’로 불리는 빈집의 대량 발생이다. 2018년 기준 일본의 빈집은 850만 채로, 전체 주택 재고의 13.6%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33년까지 30%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사회적 재앙에 가깝다. 빈집은 범죄율을 높이고, 주변 부동산 가치를 동반 하락시키며, 지자체에 관리 및 철거에 대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긴다. 일본과 유사한 궤적을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역시 2050년경에는 빈집 비율이 전체 재고의 13%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의 부동산 역사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파멸의 예언이 아니라, ‘양극화’의 상세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저성장·고령화 사회에서 부동산 가치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인프라와 일자리에 대한 근접성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초기에 일본 부동산 분석은 전국적인 가격 붕괴에 초점을 맞췄으나, 최근 데이터는 도쿄 핵심부와 나머지 지역 간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 차이를 만드는 핵심 변수는 통근 시간으로 정량화되는 ‘접근성’이다. 이는 인구구조적 압력이 심화될수록 시장이 장거리 통근이나 편의시설 부족과 같은 ‘불편함’을 용납하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전국적인 폭락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도시 위계 내에서의 입지에 따라 자산 가치가 폭력적으로 재평가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핵심 입지의 ‘가치 프리미엄’은 폭등하고, 주변부 입지의 ‘불편함 할인율’은 재앙적인 수준이 될 것이다. 끝없이 비대해지는 메가폴리스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8%인 2,6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집중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 2052년에는 수도권 인구 비중이 53.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수준의 수도권 집중도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로, 국가 기능의 극단적 불균형을 보여준다. 국가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인구 점유율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제로섬 게임을 의미한다. 수도권은 단순히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인구, 자본, 기회 등 모든 활력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역학은 양질의 일자리, 명문 대학, 그리고 주요 대형 병원과 같은 핵심 인프라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 ‘지방 소멸’의 메커니즘 수도권으로의 인구 이동은 연령 선택적으로 일어난다. 수도권은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청년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는 반면, 중장년층은 일부 수도권을 이탈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러한 선택적 인구 유출은 지방의 인구구조를 급격히 고령화시켜 지역의 활력을 고갈시킨다. 이는 지방에 ‘소멸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청년층이 떠나면 지역의 소비 기반이 위축되고 노동력은 노쇠한다. 이는 기업의 폐업이나 이전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져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게 되는 자기 강화적 피드백 루프가 형성된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 부동산 시장에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역 인구가 1% 감소할 때 해당 연도 주택 매매가격은 0.14%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산 가치 하락이 지역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역자산효과(reverse wealth effect)’를 유발하여 소멸의 악순환을 가속화한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인구 위기는 전국에 걸쳐 완만하고 균일한 침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파국적인 붕괴와 수도권의 방어적 집중이라는 양극단 현상으로 발현될 것이다. 이 두 현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국의 경제 및 인프라가 압도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노동인구 감소로 인해 줄어드는 경제의 파이를 두고 최고의 기회를 향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 특히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기회가 집중된 수도권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러한 인구 이동은 지방 경제를 공동화시켜 경제 쇠퇴와 추가적인 인구 유출이라는 악순환을 만든다. 따라서 국가 전체의 인구 감소는 단순히 모든 지역의 ‘수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라는 ‘호수’의 물을 빼내어 수도권이라는 ‘바다’로 흘려보내는 강력한 물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 부동산 시장은 이러한 수리학적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게 될 것이다. 낡아버린 ‘국민 평형’ 잘못된 상품의 과잉 공급한국의 주택 시장, 특히 과거의 호황기는 전통적인 핵가족을 위한 전용면적 84㎡ 내외의 방 3개 아파트, 이른바 ‘국민 평형’을 중심으로 공급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제1장에서 분석했듯이, 이러한 가족 구조는 빠르게 소수파로 전락하고 있다. 미래의 주택 수요는 더 작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1인 가구와 고령 부부 가구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기능적 노후화’라는 거대한 위기를 예고한다. 특히 지방 도시들을 중심으로 수백만 채에 달하는 대형 가족용 아파트가 더 이상 지역 사회의 인구구조 현실과 부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미래 주택 시장의 수요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각 가구 유형은 뚜렷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다. 1~2인 가구의 수요: 이 집단은 면적보다 입지를 우선시한다. 이들은 교통 연결성이 뛰어나고 편의시설이 밀집한 도심 지역의 소형 주택(예: 전용 59㎡ 이하)을 선호한다. 최근 부상하는 코리빙(co-living) 스페이스, 셰어하우스, 그리고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 임대주택 등은 이러한 수요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주거 형태다. 고령 가구의 수요: 이 집단은 매우 특수한 필요를 가진다. 안전(무장애 설계), 의료시설 접근성, 그리고 공동체와의 연결이 주거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된다. 주거와 의료 및 사회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도심형 ‘실버타운’이나 ‘고령자 복지주택’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특화 주택의 공급은 고령 인구 대비 0.1%~0.12% 수준으로 극히 미미하여 수요를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공급의 지체: 시장은 이러한 수요 변화에 매우 더디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신규 소형 아파트(전용 60㎡ 이하)의 공급 비중이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주택 공급과 수요 간의 거대한 구조적 불일치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이는 단순히 입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산의 ‘유형’에 따라서도 시장이 분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새롭게 건설되고, 면적이 작으며, 입지가 우수하고, 서비스가 결합된 주택은 상당한 프리미엄을 누릴 것이다. 반면, 낡고, 면적이 크며, 입지가 좋지 않은 구시대적 가족용 아파트는 유동성이 급격히 떨어지며 큰 폭의 가격 할인을 겪게 될 것이다.미래 수요는 1~2인 가구와 고령 가구가 주도하며, 이들은 작고 접근성이 좋으며 서비스가 풍부한 주거 환경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의 기존 주택 재고, 특히 1990년대부터 2010년대 호황기에 공급된 물량의 대부분은 4인 가족을 위해 설계된 대형 아파트다. 이는 전형적인 공급-수요 불일치 상황을 야기한다. 진열대에 놓인 상품이 새로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아닌 것이다.따라서 두 개의 평행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하나는 과대 면적의 노후 아파트들이 가치 하락에 직면하는 ‘레거시 마켓(legacy market)’이고, 다른 하나는 희소성과 높은 수요로 인해 가치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키는 작고, 잘 설계되고, 입지가 좋은 ‘미래 대응형 마켓(future-proof market)’이다. 이렇게 형성된 평행 시장은 특정 지역 ‘내부’에서의 양극화를 주도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2040년 부동산 시장 ‘다중 양극화’1단계 양극화 (국가 단위): 수도권과 지방의 대분절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수준의 양극화다. 수도권은 국가의 경제 및 인구의 핵심으로서 그 지위를 공고히 하는 반면, ‘지방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지방의 부동산 시장은 비가역적인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미 17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진 수도권과 지방 아파트의 가격 격차는 구조적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2단계 양극화 (수도권 내부): 핵심부 vs. 주변부 (‘초양극화’) 견고해 보이는 수도권 내부에서도 두 번째 단계의 극심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강남, 서초, 용산 등 대체 불가능한 입지적 우위를 가진 핵심 지역의 자산 가치는 급등하는 반면, 통근 시간이 긴 경기도 외곽이나 인천의 일부 지역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초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일례로, 최근 특정 기간 동안 강남구 아파트 가격이 22.8% 상승할 때 평택시 아파트 가격은 8.0% 하락하는 극단적인 대비를 보였다. 이는 ‘도심의 중력’에 대한 일본의 교훈과 정확히 일치한다. ‘수도권 불패’ 신화는 오직 핵심 업무지구까지의 ‘통근 시간 60분’ 이내에 위치한 지역에만 유효할 것이다. 과거 호황기에 장거리 통근을 전제로 경기도에 대규모로 건설된 베드타운들은 일본식의 가치 재조정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3단계 양극화 (자산 유형): 미래 대응형 vs. 기능적 노후형세 번째 단계의 양극화는 동일한 동네 안에서도 발생할 것이다. 현대적인 편의시설과 커뮤니티 서비스를 갖춘 신축 소형 아파트는 바로 옆에 위치한 낡고 면적이 큰 아파트보다 월등한 성과를 보일 것이다. 이는 수요-공급 불일치의 직접적인 결과다. ‘새로운 다수’(1인 가구, 고령 가구)의 필요에 부응하는 자산은 회복탄력성을 가질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산은 아무리 좋은 주소지를 가졌더라도 시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도권 불패 신화는 계속될 것인가?”라는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은 복합적이다. ‘그렇다. 하지만’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 신화는 오직 양극화 모델의 세 가지 차원을 모두 만족시키는 극소수의 ‘섬’과 같은 자산에만 적용될 것이다. 즉, ▲수도권에 위치하고, ▲수도권의 ‘핵심부’에 위치하며, ▲미래의 인구구조에 ‘부합하도록’ 설계된 자산만이 진정한 안전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차원 중 하나라도 실패하는 자산은 상당한 가치 하락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인구 감소라는 거시적 압력은 경제력 집중이라는 힘에 의해 증폭되어 1단계 분절(수도권 vs. 지방)을 만들어낸다. 수도권 내부에서는 동일한 압력이 고령화 인구의 편의성 선호를 통해 2단계 분절(핵심부 vs. 주변부)을 야기하며, 이는 일본의 통근 시간 데이터에서 확인된다. 가장 미시적인 수준에서는, 특정 지역 내에서도 새로운 주류 가구 유형의 특수한 필요에 의해 3단계 분절(자산 유형 불일치)이 발생한다. 따라서 2040년 한국 부동산의 가치는 이 세 가지 차원의 양극화 매트릭스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좋은 부동산’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과거의 공식은 이제 위험한 단순화에 불과하다. 2040년에 진정으로 ‘안전한 자산’ 또는 ‘똘똘한 한 채’는 다중 양극화의 세 가지 차원 모두에서 회복탄력성을 갖춘 자산일 것이다. 즉, 수도권 핵심부에 위치하며, 뛰어난 접근성을 확보하고, 미래 시장을 지배할 1~2인 및 고령 가구의 필요에 부합하는 물리적 형태(면적, 설계, 서비스)를 갖춘 자산만이 그 가치를 보존하거나 증대시킬 수 있다. 새로운 대규모 산업단지 유치 등 독자적인 경제 동력을 가진 일부 지방 거점 도시의 부동산은 틈새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나,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0] 배임죄 폐지...한국 자본주의 72년 형벌의 굴레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경기도의 한 첨단 기술 단지, 유망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사실. 김 대표는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보고서를 응시하고 있다. 유럽의 경쟁사를 인수하기 위한 실사 보고서다.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이 회사를 인수한다면, 단숨에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전략적 타당성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사회는 주저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성공의 청사진보다 실패의 공포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배임죄'라는 유령 때문이다. 만약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과감한 도전을 한 선구자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 '재산상 손해의 위험'을 초래한 범죄자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인가? 성공하면 혁신이지만, 실패하면 범죄가 될 수 있는 이 기이한 현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기업인들이 마주한 딜레마다. 이 개인적 고뇌는 사실상 국가 경제 전체가 앓고 있는 비극의 축소판이다. 지난 72년간, 모호하고 포괄적인 형법상 배임죄 조항은 한국 기업가 정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기능해왔다. 위험 감수를 기피하게 만들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소극적 경영을 조장했으며,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이 법의 폐지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단순한 법률 개정을 넘어선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가 형사처벌을 통한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시장 규율과 강력한 민사 책임을 통한 책임 시스템으로 나아갈 만큼 성숙했는지를 묻는 심오하고도 위험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만능 범죄' - 법적 모호함은 어떻게 혁신을 겨누는 무기가 되었나 배임죄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그 구성요건의 모호함에 있다. 바로 이 모호함 때문에,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합리적인 근거를 가졌던 경영 판단마저 사법적 단죄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기업의 역동성을 옭아매는 무기로 변질되었다. 형법 제355조 2항이 규정하는 배임죄는 네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1)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주체, (2)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할 것, (3)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할 것, 그리고 (4) 행위자 자신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할 것 등이다. 문제는 이 구성요건들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는 데 있다. 특히 '임무 위배 행위'는 명확한 정의 없이 '본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로 해석된다. 신임관계 위반이라는 개념은 검찰이나 법원이 사후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성공한 M&A는 과감한 결단이지만, 실패한 M&A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신임관계를 저버린 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한국 법원의 독특한 해석이다.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한국의 판례는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이는 배임죄를 '위태범(危殆犯)'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을 본질로 하는 경영 활동의 숨통을 조이는 결정적 기제다. 이 논리에 따르면, 결국 성공했거나 손익분기점을 맞췄더라도 실패할수도 있었던 과감한 투자는 잠재적 범죄 행위가 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모든 경영 판단이 잠재적인 기소 대상이 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위축 효과이러한 법적 모호성은 기업 경영에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직접적으로 유발한다. 배임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무죄율이 5배나 높다는 통계는 역설적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기소는 쉽지만 유죄 입증은 어려운 구조는, 경영진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년간 기업 활동이 마비되고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소위 '과정 자체가 처벌'이 되는 상황을 만든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커지면서 배임죄가 더욱 공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업적 실패가 곧 형사적 단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반드시 필요하지만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 혁신적인 M&A, 장기적인 R&D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경영진 개인에게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포의 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이러한 법적 리스크와 경영의 위축은 한국 증시의 만성적인 저평가 현상,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직결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낮은 주주환원율,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배임죄는 바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배임죄 기소의 위협은 기업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투자를 가로막는다. 대신 경영진은 현금을 쌓아두거나 극도로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은 사업에만 몰두하게 되고, 이는 자본 효율성(ROE)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이 법적 리스크는 이사회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총수의 결정을 견제하기 어렵게 만든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불리한 합병이나 계열사 부당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반대하는 것은 총수에 대한 '배신'으로 비칠 수 있다. 반대로 총수의 결정에 찬성했다가 나중에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면, 이사들은 배임죄의 공범으로 몰릴 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고, 결과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인 취약한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결론적으로, 본래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을 처벌하려던 배임죄는 역설적으로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치하고,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증진시킬 과감한 경영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폐지...정치적 도박인가, 경제적 과제인가?배임죄 폐지를 둘러싼 현재의 정치적 움직임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 책임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거대한 논쟁의 장을 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법 조항의 삭제를 넘어, 한국 사회가 기업 경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다.정부와 여당은 배임죄 폐지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과도한 경제 형벌"로부터 기업을 해방시키고,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 범죄로 취급되는 관행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용실 상호 변경 미신고와 같은 경미한 위반에 대해 징역형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총 110개에 달하는 경제 형벌 규정을 정비하려는 광범위한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이다. 고위 당정 협의체를 통해 추진되는 이 사안은 재계의 오랜 숙원 사업에 정부가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며 , 이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는 형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기업 활동의 족쇄를 풀고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주요 경제 단체들은 정부의 배임죄 폐지 방침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배임죄 폐지가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계는 배임죄가 존재함으로 인해 경영진이 잠재적 법적 리스크를 먼저 고려하게 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기업들이 감행하는 과감한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배임죄 폐지는 단순히 하나의 법률을 없애는 것을 넘어, 기업 규제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형사처벌을 최후의 수단으로 돌리고, 행정적 제재나 민사적 배상을 우선하는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다. 일각의 우려...'재벌 총수 면죄부'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배임죄 폐지가 사실상 '재벌 총수들을 위한 면죄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배임죄는 지금까지 총수 일가가 회사를 사유화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익 편취 행위'를 처벌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하고 실효적인 법적 장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배임죄를 둘러싼 근본적인 딜레마가 드러난다. 시민단체의 우려는 타당하다. 지배주주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나 불공정한 합병 등을 통해 회사 자산을 사적인 이익으로 빼돌리는 행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미국과 같이 강력한 증거개시제도나 집단소송제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의 사법 현실에서, 검찰의 형사 기소는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배임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무딘 칼'이었다.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보니, 악의적인 사익 편취를 저지른 범죄자와 선의를 가졌지만 운이 나빴던 경영자를 구분 없이 법정에 세웠다. 결국 현재의 논쟁은 기업의 불법 행위를 처벌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a) 악의적 사익 편취와 (b) 선의의 경영 실패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사안을, 하나의 모호한 형법 조항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폐지론자들은 이 둘을 분리하여 각각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배임죄를 폐지할 경우 마땅한 대안 없이 전자의 불법 행위마저 처벌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사례 ... 신뢰하되, 검증하는 경제 시스템한국의 배임죄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비교의 시각이 필수적이다. 해외 주요 경제국들은 어떻게 경영진의 과감한 도전을 장려하면서도 기업의 책임을 확보하는 균형점을 찾았는가? 그들의 경험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미국과 영국은 한국의 배임죄와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독립된 형법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대신 이들은 이사의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 위반에 대한 민사 소송과 명백한 사기(fraud)에 대한 형사 처벌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에는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 BJR)'이 자리 잡고 있다. BJR은 법원이 기본적으로 '이사들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여, 선의로, 그리고 회사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고 추정하는 법리다. 원고가 이사의 중과실이나 이해 상충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법원은 이사의 경영 판단 내용 자체를 심리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선의를 가진 이사를 정직한 판단 실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명백하게 보호해준다. 물론 이것이 경영진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주주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과 같은 강력한 민사 소송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감시받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규모 M&A가 발표되면, 대부분 이사의 신의성실의무 위반을 주장하는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될 정도로 소송을 통한 책임 추궁이 활발하다. 배임죄 개념의 발원지인 독일과, 한국과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 역시 배임죄를 형법에 두고 있지만, 그 적용 범위는 한국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독일은 주식법(Aktiengesetz)에 경영판단의 원칙과 유사한 '안전항구(safe harbor)' 조항을 명문화하여,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기업가적 판단을 보호한다. 또한, 독일은 형사처벌보다는 '질서위반금(Ordnungswidrigkeit)'이라는 행정 제재를 통해 기업의 규제 위반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형벌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일본의 경우, 가장 큰 차이점은 배임죄가 '목적범(目的犯)'이라는 점이다. 일본 형법은 행위자가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을 검사가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주관적 고의성의 입증 요구는 악의적인 의도가 없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적 비교는 명확한 패턴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시장 경제는 선의의 경영 재량을 보호하는 동시에 악의적인 사익 편취 행위는 엄격히 처벌한다. 이러한 균형은 (1) 판례나 성문법으로 확립된 강력한 경영판단의 원칙, 그리고 (2) 강력한 민사 책임 시스템 또는 악의적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 정밀하게 설계된 형법 조항을 통해 달성된다. 한국은 이 모든 균형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포괄적인 형법 조항 하나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0] 배임죄 폐지...한국 자본주의 72년 형벌의 굴레 (CEONEWS=박수남 기자)과제배임죄 폐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족쇄 하나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한국 기업 생태계 전체를 지탱할 새로운 규율과 책임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자세 변화와 함께, 법적 공백을 메울 정교한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배임죄 폐지는 단독으로 추진될 수 없다. 이는 반드시 민사적 구제 수단을 강화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의 일부여야 한다. 정부 역시 '민사 책임 강화'로의 전환을 언급하며 이 점을 인지하고 있다. 형사처벌이라는 무딘 칼을 내려놓는 대신, 피해자인 주주들이 스스로 권리를 구제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를 손에 쥐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세 가지 핵심 기둥은 다음과 같다. 증거개시제도: 주주들이 소송 과정에서 기업 내부의 문서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없다면, 정보 비대칭 상황에 놓인 소액주주들이 불투명한 지배구조 하에서 이루어진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단소송제: 소액의 피해를 본 다수의 주주가 함께 소송을 제기하여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소송의 경제성을 확보하여 경영진의 위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해서는 실제 손해액을 훨씬 뛰어넘는 배상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는 징역형의 위협을 대체하여, 막대한 금전적 페널티를 통해 불법 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배임죄 폐지로 인한 '총수 면죄부'라는 사회적 우려를 불식시키고 책임 있는 기업 경영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배임죄 폐지 이후, 기업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자세는 법 조항의 부재를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경영적 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까'라는 소극적 순응의 자세에서 벗어나, '어떻게 모든 주주의 신뢰를 얻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적극적 수탁자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리더들은 경영판단의 원칙이 법제화되기 전부터 그 원칙을 내재화해야 한다.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이 충분한 정보에 기반하고, 사적인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우며, 회사와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선의 에서 비롯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소액주주들과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등 선제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들의 비판이 틀렸음을, 즉 배임죄라는 족쇄로부터의 자유가 방종이 아닌 더 나은 거버넌스로 이어진다는 것을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기업인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배임죄 폐지는 단순한 법률 개혁을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국민투표와 같다. 이는 공포를 유발하는 무딘 형법의 칼을 내려놓고, 시장 규율과 민법이라는 더 날카롭고 정교한 메스를 선택하는 계산된 위험 감수다. 이 거대한 실험의 성공 여부는 처벌을 면하는 CEO의 숫자로 측정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성공의 척도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질적인 해소, 기업 투자의 의미 있는 증가,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과감한 성공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기업가들이 등장하는지 여부다. 최종 판결은 더 이상 서초동의 형사 법정에서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 판결은 이제, 새롭게 얻은 자유가 과연 자격 있는 것이었는지를 자본의 논리로 냉정하게 심판할 여의도 증권거래소의 전광판 위에서 내려질 것이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9] "100만 개 중소기업 중 단 7개만 대기업 졸업...상생을 부르짖으나 결론은 학살" [CEONEWS=박수남 기자] 경기도의 한 산업단지에서 첨단 부품을 생산하는 김 대표의 이야기는 한국 경제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10여 년 전, 단출하게 시작한 그의 회사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직원 수는 280명을 넘어섰고, 3년 평균 매출액은 중소기업 졸업 기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축배를 들어야 할 순간이지만, 김 대표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그는 성장을 축하하는 대신, 성장을 멈출 방법을 고민한다. 회사를 둘로 쪼개야 할까? 정규직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까? 아니면 들어온 대형 계약을 내년으로 미뤄야 할까? 성공이 벌이 되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마주한 현실이다. 김 대표의 개인적 고뇌는 한국 경제 전체가 앓고 있는 비극의 축소판이다. 수십 년간 ‘상생’과 ‘격차 해소’라는 고귀한 명분 아래 추진된 한국의 중소기업 보호 정책은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기업들을 ‘황금 새장’ 안에 가두어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로 만드는, 경제 전체를 침체의 ‘네버랜드’에 가둬버리는 구조적 함정이 된 것이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이 ‘상생 협력’과 ‘지원 확대’라는 익숙한 프레임을 반복하는 동안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해외 기관들은 한국 경제의 낮은 생산성과 극심한 임금 불평등의 핵심 원인으로 바로 이 과잉보호 정책을 지목하고 있다.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 어떻게 경제의 역동성을 앗아가고,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지, 이제 그 냉정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다. 보호의 역설, 성장을 거부하는 피터팬 한국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스스로를 영속시키는 기이한 순환 구조에 갇혀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첫째, 정책 입안자들은 낮은 생산성과 임금에 허덕이는 방대한 중소기업 부문을 목격하고, 이를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시장 실패’로 진단한다. 둘째, 이에 대한 대응으로 금융 지원, 세제 혜택, 규제 면제 등 기업의 ‘규모’에 따라 혜택이 결정되는 복잡하고 방대한 지원 시스템이 구축된다. 셋째, 이 지원 시스템은 중소기업 지위를 벗어나는 순간 모든 혜택이 사라지는 가파른 ‘졸업 절벽’을 만든다. 기업들은 합리적인 경제 주체로서 이 절벽을 피하기 위해 성장을 멈추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다. 넷째, 그 결과 한국 경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는 저생산성 기업들로 과도하게 파편화되고, 대기업과의 생산성 및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정책 입안자들은 이렇게 악화된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며 자신들의 ‘보호’ 정책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재확인하고, 기존의 지원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확대하는 결정을 내린다. 정책의 실패가 역설적으로 정책의 존재 이유를 강화하는 자기 파괴적 순환이 완성되는 것이다. 성장이 곧 페널티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성장을 꺼리는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거나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의 결과다. 핵심 원인은 중소기업 지위를 ‘졸업’하는 데 따르는 막대한 기회비용에 있다. 현행법상 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3년 평균 매출액 1500억 원 등의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기업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수많은 혜택을 한꺼번에 박탈당한다. 이는 마치 온실 속 화초를 갑자기 비바람 치는 들판으로 내모는 것과 같다. 이 ‘황금 새장’이 얼마나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짜여 있는지는 OECD의 분석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2023년 기준, 한국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무려 1,646개에 달했다. 35개의 다른 공공기관이 제각기 운영하는 이 파편화되고 조율되지 않은 시스템은 기업들에게 성장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 프로그램들은 정책자금 융자 , 기술개발(R&D) 지원 , 수출 지원 , 스마트공장 구축 자금 , 창업 지원 등 기업 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 이 거대한 지원 네트워크는 중소기업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이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보낸다. 이러한 정책적 유인이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기업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수많은 실증 연구와 조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카이스트(KAIST)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지원이 중단되는 ‘자격 문턱(eligibility threshold)’에 가까워질수록 의도적으로 성장을 억제하는 경향을 보이며, 정부 지원을 많이 받을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한국 제조업 기업 데이터를 활용한 또 다른 연구 역시 ‘피터팬 증후군’이 실제로 존재함을 명백히 확인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생생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이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를 분할하거나 자산을 매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정규직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해서라도 고용 인원 기준을 맞추려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10년 내 중소기업을 졸업한 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응답 기업의 77%가 중견기업이 된 후 정부 지원 축소와 규제 강화를 체감했으며, 무려 30.7%가 각종 정책적 혜택을 위해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성장의 사다리를 오르자마자 사다리를 걷어차이는 현실 속에서, 기업들에게 ‘계속 성장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성장이 멈춘 거시 경제 개별 기업 수준의 ‘피터팬 증후군’은 한국 경제 전체를 기형적인 구조로 만들었다. 한국 산업 지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높은 소규모 기업 비중과 희소한 중견·대기업의 존재다. 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총생산성을 갉아먹는 근본 원인이다. OECD는 기업 규모를 250명 이상으로 정의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나라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데이터는 이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표 1. 기형적인 산업 구조: 주요국 기업 규모별 고용 비중 (2021년) 출처: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9] "100만 개 중소기업 중 단 7개만 대기업 졸업...상생을 부르짖으나 결론은 학살" 표에서 나타나듯, 한국의 대기업 고용 비중 14%는 독일(41%)이나 미국(58%)은 물론, OECD 평균(3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압도적인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한국 경제에 성장의 허리가 될 중견기업층이 부실하고, 생산성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생태계가 소수의 거인과 수많은 난쟁이로 양극화되어, 역동적인 성장을 이끌어갈 중간층이 실종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100만 개의 중소기업 중 단 7개만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구조적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웅변한다. 이러한 산업 구조의 파편화는 필연적으로 국가 전체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기업의 생산성은 일반적으로 규모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규모가 커질수록 자본 투자, 기술 개발, 전문화, 시장 지배력 확보가 용이해져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OECD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반면, 중소기업 부문과의 격차는 회원국 중 가장 크다고 반복적으로 지적해왔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한국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1990년대 이후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특히 중소기업이 밀집한 서비스 산업의 경직된 규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아 저생산성 기업을 양산하고, 이는 다시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다. 분단된 노동 시장거시 경제 지표로 나타나는 생산성 격차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극심한 임금 격차와 그로 인해 고착화된 ‘이중 노동 시장’이다. 중소기업 보호 정책의 가장 비극적인 결과는,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삶을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임금의 총량은 근본적으로 그 기업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근로자 한 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노동생산성)가 높아야 높은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생긴다.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기업의 규모 확대를 억제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의 가장 중요한 동력인 규모의 경제, 기술 투자, 공정 혁신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 결과 정책적으로 유발된 거대한 생산성 격차(대기업의 30% 수준)는 논리적으로 거대한 임금 격차(대기업의 50~60% 수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정부가 ‘상생’을 명분으로 저생산성 기업의 연명을 지원하는 동안, 그 안에서 일하는 80% 이상의 근로자들은 구조적으로 저임금의 굴레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격차 해소를 외치는 정책이 사실상 격차를 제도화하고 영속시키는 주범이 된 역설이다. 이 분단된 노동 시장의 현실은 통계로 명확히 확인된다. 2022년 기준, 5~9인 규모 사업체 근로자의 임금은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 임금의 54%에 불과했다. 100~299인 규모의 비교적 큰 중소기업조차 그 비율은 71%에 그쳤다. 2024년 상반기 통계를 봐도 이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대기업의 월평균 임금 총액은 중소기업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표 2. 두 개의 대한민국: 기업 규모별 월평균 임금 격차 (2024년 상반기) 출처: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분석[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9] "100만 개 중소기업 중 단 7개만 대기업 졸업...상생을 부르짖으나 결론은 학살" 이러한 극심한 격차는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는 소수의 대기업과 공공부문 일자리를 얻기 위해 소모적인 ‘과열 경쟁’에 내몰린다. 이 경쟁에서 밀려난 대다수의 청년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중소기업에 가느니 차라리 ‘그냥 쉬겠다’며 노동 시장을 이탈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를 넘어, 국가적 인재 손실이자 미래 성장 동력의 상실이다. 또한, 이 이중 구조는 한국이 OECD 최악의 성별 임금 격차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여성 인력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의 중소기업 부문이나 비정규직에 더 많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유지되는 정책이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고리인 청년 문제와 젠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보호주의를 넘어 공정한 운동장으로이제 한국 사회는 ‘상생’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정책적 관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보조금을 통해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는 병의 원인을 외면한 채 증상만을 치료하려는 것과 같다. OECD가 2000년 보고서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래, 거의 매년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일관되게 경고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본적인 처방을 미뤄왔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 대안은 중소기업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더 현명하고 역동적인 정책 철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 핵심에 바로 OECD가 국제 표준으로 제시하는 ‘경쟁 중립성(Competitive Neutrality)’ 원칙이 있다. 경쟁 중립성이란, 정부의 정책이 기업의 규모, 소유 구조, 국적 등과 무관하게 모든 기업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철학 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특정 유형의 기업을 편애하는 보호자가 아니라, 모든 선수가 자신의 실력, 즉 혁신, 효율성, 품질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고 심판을 보는 역할로 바뀐다. ‘규모 중립성(Size Neutrality)’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원칙을 정책에 적용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정부 지원의 기준을 기업의 ‘규모’에서 기업의 ‘활동’ 또는 ‘성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에만 제공되는 세액 공제’를 폐지하는 대신, ‘R&D 투자를 전년 대비 10% 이상 늘리거나, 신규 정규직 일자리를 5개 이상 창출하거나, 새로운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한 모든 기업에게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성장을 지향하는 긍정적인 행동 자체를 보상한다. 가장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중소기업들이 성장의 페널티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껏 스케일업(Scale-up)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는 특정 시장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목적에 한해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OECD의 권고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대대적인 정책 전환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이 규제 완화와 시장 중심의 개혁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초 경제 위기를 겪은 스웨덴은 광범위한 상품 시장의 규제를 철폐하는 구조 개혁을 단행했고, 이는 훗날 높은 생산성과 GDP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과거 강력한 보호주의와 수입 대체 전략을 구사했던 뉴질랜드 역시 시장 개방과 규제 부담 완화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자 노력해왔다. 이들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장기적인 번영은 특정 부문을 경쟁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역동적으로 경쟁하고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비롯된다. 첫째, 지원 제도의 과감한 통폐합과 단순화가 시급하다. OECD의 충고대로, 1,646개에 달하는 파편화된 지원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감사하고, 그 수를 소수의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단일 전문 기관이 통합 관리하여, 기업을 의존성에 빠뜨리는 관료주의적 미로를 제거해야 한다. 둘째, ‘졸업 절벽’을 ‘졸업 완충 다리’로 바꾸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유지해야 할 일부 규모 연동형 지원책이 있다면, 혜택을 일시에 끊는 현재의 방식을 폐기하고, 중소기업 기준을 넘어선 시점부터 3년에서 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혜택을 줄여나가는 ‘유예 기간(Grace Period)’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성장한 기업들이 새로운 경쟁 환경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고, 성장에 대한 가장 큰 심리적·재정적 장벽을 제거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셋째, 모든 기업 정책의 최고 원칙으로 ‘규모 중립성’을 확립해야 한다. 앞으로 신설되거나 개편되는 모든 지원 정책은 기업의 규모가 아닌 성과와 기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혁신, 투자, 양질의 일자리 창출, 수출 증대 등 국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면, 그 주체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가장 역동적인 기업가들의 잠재력을 해방시키는 가장 강력한 성장 전략이다. 피터팬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이지만, 그가 사는 네버랜드는 성장이 멈춘 슬픈 공간이다. 현재의 중소기업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한국 경제를 이 네버랜드에 영원히 가두는 것과 같다. 진정한 ‘상생’과 ‘공동 번영’의 길은 모든 기업에게 생존을 위한 보조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성장을 꿈꾸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와 인센티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제 황금 새장을 부수고, 진정한 성장의 사다리를 놓아야 할 시간이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8] "30년 뒤 누가 빚 갚나"... 저출산 쇼크, 韓 국가신용등급 '강등' 방아쇠 당겼다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경고는 끝났다. 재앙은 이미 시작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인구 절벽'이 마침내 국가 경제의 멱살을 쥐는 구체적인 금융 리스크로 전환됐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사회문제가 아니다. 바로 지금, 한국의 돈줄을 죄는 '국가 부도'의 방아쇠가 되고 있다.충격적인 사실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 언론 모두 이 치명적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주요 금융지,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의 최신 방법론, 그리고 자산운용사 보고서를 교차 분석한 결과, 글로벌 자본은 이미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있다.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저출산=‘국가 부도 리스크’ 공식화지금까지 국가 신용등급은 주로 단기적인 경제 성장률이나 외환보유고 같은 지표에 의해 결정됐다. 하지만 그 공식이 깨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월 9일 자 분석 기사에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국가의 장기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잣대로 '인구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이는 국가의 펀더멘털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반도체를 잘 만들고 자동차를 많이 팔아도, 미래에 세금을 내고 빚을 갚을 '사람'이 사라지는 국가는 신뢰할 수 없다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있다. 저출산은 이제 명백한 '채무 불이행(Default)' 위험으로 간주된다.피치·무디스의 경고장, '인구 회복력 지수(DRI)'이 변화의 선두에는 피치(Fitch)와 무디스(Moody's)가 있다. 이들은 2025년부터 국가신용등급 평가에 '인구 회복력 지수(Demographic Resilience Index, DRI)'를 도입했다. DRI는 합계출산율, 생산가능인구 감소 속도,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율을 정량화하여 신용등급에 직접 반영하는 모델이다.특히 피치는 방법론 개정 보고서에서 충격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합계출산율이 장기간 1.0 미만인 국가는 장기 성장 잠재력에 대한 ‘자동 하향 조정 트리거(Automatic Downgrade Trigger)’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이는 사실상 한국을 겨냥한 조치다. 2025년 기준 0.7명대의 처참한 출산율을 기록 중인 한국은 이 새로운 기준 하에서 언제든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블랙록의 '코리아 패싱' 선언, 채권 시장에 등장한 '인구 프리미엄'거대 자본의 움직임은 더 빠르고 냉혹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9월 초 발표한 '2026 글로벌 장기 자본시장 전망'에서 향후 10년의 최대 리스크로 '인구통계학적 분열'을 지목하며, 인구 구조가 불안정한 국가의 자산 비중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코리아 패싱'이다.블랙록은 보고서에서 "급격한 고령화는 기술 혁신으로도 막을 수 없는 구조적 디플레이션과 자산 가치 하락을 유발한다"고 단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초대형 연기금들이 한국을 '인구 리스크 집중 관리 대상국'으로 분류했다고 보도했다.이러한 경고는 이미 시장에서 현실적인 비용으로 청구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9월 10일, 글로벌 채권 투자자들이 한국 국채 매입 시 추가적인 위험 가산금리, 이른바 ‘인구 프리미엄(Demographic Premium)’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과거보다 더 비싼 이자를 내야만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우리는 30년 뒤 누가 이 나라의 빚을 갚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뼈아픈 지적을 남겼다.연금개혁 좌초가 쏘아 올린 '정책 실패'의 결정타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정책적 무능력(Policy Paralysis)'은 이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연금 개혁 지연을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은 8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연금 개혁 좌초를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지목하며 "정치적 교착 상태가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인구는 급감하는데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구조를 방치하는 시스템이 국가 신용을 갉아먹는 결정타가 된 것이다.제2의 IMF보다 고통스럽다... '구조적 쇠퇴'라는 이름의 청구서이 사태의 심각성은 1997년 외환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IMF 위기는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였기에,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하지만 인구 구조 붕괴로 인한 신용 위기는 다르다. 이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쇠퇴의 신호탄이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폭증하고, 외국인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환율은 급등하게 된다. 이는 경제 활력 저하와 자산 가치 폭락이라는 고통스러운 악순환으로 이어진다.정부와 정치권이 폭탄 돌리기를 지속하는 동안, 글로벌 금융 시장은 이미 한국 경제에 대한 사형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국가의 존립을 건 인구 전략과 연금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구조적 쇠퇴'라는 이름의 혹독한 청구서를 받게 될 것이다. CEO와 정책 결정자들의 비상한 각성이 필요하다.
[CEODAILY=이형래 기자] 한미약품이 호중구감소증 치료용 바이오신약 ‘롤론티스’의 중동 진출을 위한 공급 계약을 사우디아라비아 제약사 타북과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지난해 10월 맺은 파트너십의 확장으로, 양사는 중동 시장에서 롤론티스의 안정적 안착을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계약 체결을 위해 한미약품 박재현 대표가 작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 제약·바이오 박람회에 참석해 타북 주요 관계자들과 협의를 진행했다. 타북은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에서 영업력을 바탕으로 롤론티스가 해당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도록 역할을 맡
[CEODAILY=이형래 기자] 두나무의 자회사이자 블록체인 기술기업인 람다256이 9일 서울에서 열린 업비트 D 컨퍼런스(UDC) 2025에서 온톨로지 기반 블록체인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 ‘클레어(CLAIR)’를 공식 출시하고, 기관형 스테이블코인 통합 플랫폼 ‘스코프(SCOPE)’를 예고했다.람다256이 선보인 클레어는 온·오프체인 데이터를 결합해 불법 자금세탁(AML), 해킹, 사기 등 디지털 자산 범죄를 실시간으로 추적·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규제 준수 및 수사 대응 체계를 개선하는
[CEODAILY=김인희 기자] BYD는 2025년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 모터쇼를 통해 유럽 내 생산 계획과 신모델 공개, 안전성 평가 성과, 그리고 신규 중고차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이번 행사에서 BYD는 두 번째 슈퍼 하이브리드 차량인 BYD 씰 6 DM-i 투어링을 최초로 선보였다.현장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BYD 부사장 스텔라 리는 컴팩트 전기차 BYD 돌핀 서프가 Euro NCAP 안전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받았으며, 이 모델이 헝가리 세게드의 BYD 유럽 공장에서 첫 생산될 것이라고
[CEODAILY=김인희 기자] KOTRA가 85개국 131개 해외무역관의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2026년 글로벌 혁신 기술 동향을 정리한 전망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인체와 기술 융합, 기후위기 대응 기술 등 미래 산업 변화를 이끌 핵심 기술을 소개한다.이번에 출판된 는 15주년 특별판으로,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AI, 스마트 의료, 에너지 경제, 자연과 우주, 그리고 감성과 기술 융합 등 다섯 개 분야의 주요 트렌드를 제시했다. 주요 주제로는 뇌파를 디지털 명령으로 바꾸는 ‘뇌-컴퓨터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7] 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예견된 참사...투자유치와 비자 장벽의 모순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공장의 가동에 필수적인 숙련 인력의 입국은 가로막는 모순적인 정책으로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현대차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의 대규모 이민 단속 사태는 개별 기업의 일탈이라기보다, 미국 정부가 스스로 설계한 '구조적 함정'의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본 유치를 위해 내민 '당근'과 이민 규제라는 '채찍'이 충돌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강제된 실책(Forced Errors)'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예견된 참사:...550억 달러 투자와 18% 비자 승인율의 악순환최근 미국 남부 '배터리 벨트'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 산업 정책의 근본적인 균열을 드러낸다. 조지아주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 단속은 그 정점이다. 당시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구금됐다. 이들은 대부분 단기 상용 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해 건설 및 설치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미국법상 명백한 위반이다.그러나 업계는 "예견된 참사"였다고 항변한다.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한 촉박한 공장 완공 시한을 맞추려면 현대차 본사의 숙련된 기술자 투입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장기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취업 비자(H-1B)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H-1B 비자는 매년 무작위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하며, 2025년 기준 합격률은 18.1%에 불과하다. 즉, 자격을 갖춘 5명의 엔지니어 중 4명 이상이 서류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탈락하는 구조다.미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IRA 시한을 지키라며 기업을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일한 해결책인 인력 이동을 비자 장벽으로 차단한 뒤, 결국 불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을 단속하는 모순을 연출한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실패(보조금 상실)와 비자법 위반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타기를 강요당한 것이다.숫자로 드러난 구조적 함정...현대차가 빠진 '미국인 고용' 정책의 역설미국의 정책적 모순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IRA와 반도체법 시행 이후 삼성, 현대차, SK, LG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액은 550억 달러(약 75조 원)를 넘어섰다. 미국은 이 투자를 통해 자국 내 공급망을 재편하고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그러나 이 거대한 투자를 실행할 '사람'에 대한 문은 걸어 잠갔다. 앞서 언급했듯 H-1B 비자 추첨 탈락률은 80%를 상회한다. 주재원 비자(L-1) 역시 강화된 심사 기준으로 인해 추가 서류 요청(RFE) 비율이 25%에 육박하며, 승인까지 수개월이 소요돼 긴급한 공정 투입에 부적합하다.이러한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한국 정부와 재계는 10년 넘게 '한국 전문직 비자 쿼터 법안(Partner with Korea Act)' 통과를 위해 노력해왔다. 연간 1만 5천 개의 전문직 비자(E-4)를 신설하자는 이 법안은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상호 조치로 여겨졌으나, 반이민 정서와 정치적 무관심 속에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필요에 의해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운영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데는 극도로 인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현대차 딜레마의 본질... '첨단 산업 부활'과 비자 시스템의 불가능한 공식이러한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배경에는 '미국인 고용(Hire American)'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함몰된 정책적 오판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이 기조는 외국인 숙련 노동자를 미국인 일자리의 경쟁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는 첨단 제조업의 현실을 외면한 진단이다.반도체 팹이나 배터리 공장의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 현지 인력이 보유하지 못한 독점 기술과 공정 노하우 전수가 필수적이다. 즉, 현대차 엔지니어는 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 노동자를 훈련시켜 미래의 미국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외국인 전문가의 입국을 막는 것은 당장의 공장 가동을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내 기술 축적과 인력 양성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자해 행위다.H-1B 비자 거부율이 24% 이상으로 치솟았을 때, 많은 미국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오히려 캐나다 등 해외로 일자리를 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호주의적 이민 정책이 의도와 달리 자국 산업 경쟁력만 약화시킨 전례가 있다.결국 미국은 '첨단 산업 부활'이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모순에 빠진 형국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집행하면서도 핵심 인력을 파견하지 못해 좌초할 위기에 처했고, 미국 정부는 자신이 만든 정책적 실패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고 있다. 이 불가능한 방정식을 풀기 위한 미국의 정책적 각성과 전향적인 비자 시스템 개혁 없이는, '미국 리쇼어링' 전략의 성공은 요원해 보인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6]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③ 논란의 종착역... '비싼 돌봄'과 '값싼 돌봄' 의 프레임을 벗어나야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 논의는 단순한 정책 토론을 넘어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둘러싼 법적·윤리적 논쟁부터 이주노동자의 인권,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부재에 이르기까지, 이 이슈는 우리 사회가 노동, 인권, 평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최저임금 논쟁… 법적·윤리적 지뢰밭논쟁의 가장 폭발적인 핵은 단연 '최저임금 차등 적용' 문제다. 이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가치관의 충돌 지점이다.찬성 측 논리: 지지자들은 가계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한국의 돌봄 비용이 홍콩, 대만에 비해 4배 이상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합리적 비용'의 돌봄 서비스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행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라고 본다. 노동자의 출신 국가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의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반대 측 논리: 노동계와 인권 단체는 이를 명백한 '인종차별'로 규정한다. 국적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것은 ILO의 차별금지 협약(제111호)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며 ,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저임금 외국인력 도입이 결국 돌봄 분야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촉발할 것이며, 이는 돌봄 노동에 대한 이중의 차별—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돌봄 노동 자체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국제 노예상'을 자처하는 것과 다름없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격한 비판까지 나온다.논쟁의 법적 핵심에는 근로기준법 제11조 '가사사용인 적용 제외' 조항 있다. 조항은 가사노동자를 노동법의 핵심적인 보호(최저임금, 근로시간 등)에서 배제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법적 유물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적 계약' 모델은 바로 법적 허점을 이용하여 최저임금 이하의 노동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반면, 반대 측은 조항의 즉각적인 폐기와 ILO의 '가사노동자 괜찮은 일자리 협약(제189호)' 비준을 통해, 돌봄을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는 공식적인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최저임금 논쟁은 단순히 임금 수준을 정하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돌봄 노동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투쟁인 셈다.착취와 불안정성저비용 모델이 초래할 '인간의 비용'은 심각하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현행 고용허가제(EPS) 하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제한되어 부당한 처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미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높은 비율로 언어폭력, 임금 체불, 열악한 주거 환경 등 인권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정부가 제안하는 '사적 계약' 모델은 이러한 위험을 더욱 증폭시킨다. 외부의 감시로부터 고립된 가정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착취와 학대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의 체류 자격이 고용 관계에 종속되어 있을 경우,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거나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을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이해관계자의 목소리와 합의의 부재중차대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사회적 합의의 부재'다. 정부는 노동계, 여성계, 인권 단체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실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연구기관 내부에서조차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민정책연구원의 장주영 연구위원이나 보건사회연구원의 김유휘 연구위원과 같은 전문가들은 정책 추진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 부족, 돌봄의 관계적 특성에 대한 몰이해, 국내 노동 시장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논의에서 정작 돌봄 서비스의 최종 수혜자인 '노인'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은 오직 '비용'과 '인력 수급'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매몰되어, 돌봄을 받는 이들이 어떤 품질의 서비스를 원하는지, 문화와 언어가 다른 돌봄 제공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와 같은 인간적인 차원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사회적 합의의 부재는 정부가 이 문제를 노동 공급과 가격이라는 단순한 기술관료적 방정식으로 접근한 필연적인 결과다. 돌봄은 신뢰, 존엄, 인간관계라는 깊은 가치를 담고 있는 복합적인 사회적 이슈다.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속도와 효율성만을 앞세운 정책 추진은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뿐,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가치 돌봄 경제를 위한 청사진저비용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돌봄 비용을 낮출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질 높고 지속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는 돌봄 경제에 대한 투자를 단순한 사회적 비용이 아니라, 공중 보건, 성 평등, 경제 안정을 위한 핵심적인 사회적 투자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공공성의 핵심 강화한국의 돌봄 시장은 영세한 민간 기관들이 난립하며 저가 경쟁을 벌이는, 파편화된 시장화 구조에 놓여 있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이 시장의 기준을 제시하는 '앵커(anchor)' 역할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은 '사회서비스원(Social Service Agency)'의 기능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직접 돌봄 노동자를 고용하여 안정적인 일자리, 적정한 임금, 체계적인 교육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 민간 기관들이 따라야 할 '모범 기준(gold standard)'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민간 제공자들이 더 이상 비용 절감만으로 경쟁할 수 없게 만들고, 서비스의 질과 노동 조건으로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시장 신호가 된다. 이를 위해 현재 시·도 단위에 임의로 설치된 사회서비스원을 시·군·구 단위까지 의무적으로 설립하도록 법제화하고, 안정적인 국고 지원을 통해 운영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시급하다. 강력한 공공 부문은 저비용 경쟁의 악순환을 끊고, 시장 전체를 상향 평준화시키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전체 돌봄 인력을 전문화저비용의 함정을 탈출하기 위한 또 다른 핵심 전략은 내국인과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돌봄 노동자를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임금 체계 개혁최저임금에 의존하는 현재의 임금 구조를 넘어, 경력과 숙련도, 전문성을 보상하는 표준화된 직무급제 임금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경력 개발 경로 구축단순 요양보호사에서 시작하여 사회복지사, 시설 관리자, 전문 사례관리자 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명확한 '경력 사다리(career ladder)'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유능한 인재들이 돌봄 분야에 머무르며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안전한 노동 환경 조성돌봄 노동자들이 빈번하게 겪는 언어폭력, 성희롱, 과도한 육체적 부담, 감정적 소진 등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정기적인 심리 상담 지원, 안전사고 예방 교육, 부당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 구제 절차 등을 마련하여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권리에 기반한 이주 정책만약 외국인 인력이 해결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면, 그들의 통합은 반드시 차별이 아닌 평등의 원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대만의 '분리' 모델이 아닌 일본의 '통합' 모델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차별적 법제 폐지'가사사용인 적용 제외'와 같은 차별적인 법 조항을 폐지하고, 모든 돌봄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사회 통합 지원단순히 노동력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 문화 적응 프로그램, 법률 및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노동권의 완전한 보장사업장 이동의 자유,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의 자유 등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돌봄 노동의 질을 담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며, 지속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는 유일한 길이다.이러한 정책 제안들의 기저에는 중요한 통찰이 깔려 있다.첫째, 잘 설계된 공공 투자는 민간 시장 전체를 '높은 길(high road)'로 이끄는 파급 효과를 낳는다. 강력한 공공 부문이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세우면, 민간 부문도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저비용 모델이 유발하는 '바닥을 향한 경주'와 정반대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둘째, 돌봄 노동자의 권리와 돌봄 수혜자의 권리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운명 공동체다. 현재의 논쟁은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야만 가계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착취당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노동자는 결코 수혜자가 필요로 하는 안정적이고 공감 능력 높은 양질의 돌봄을 제공할 수 없다. 높은 이직률과 소진된 노동력은 곧바로 서비스 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수혜자를 위한 최상의 서비스 품질에 투자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일치한다.돌봄을 선택하는 미래를 향하여대한민국은 돌봄 경제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저비용의 함정'은 피할 수 없는 경제적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내리는 정책적 '선택'의 결과다. 저임금 이주노동력에 의존하는 분리된 시장을 만드는 길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의 유혹을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돌봄의 질, 노동의 존엄성, 그리고 한국 사회의 통합성에 깊은 상처를 남길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다.대안은 돌봄 경제를 21세기 사회의 필수적인 인프라로 재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공 투자를 통해 시스템의 중심을 잡고, 모든 돌봄 노동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며, 이주민을 차별이 아닌 평등의 원칙 위에서 통합하는 길은 더 어렵고 더 많은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길이다.하지만 이 길만이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이며, 품위 있는 돌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회복력, 성 평등의 실현, 그리고 모든 시민의 안녕을 위한 근본적인 투자다.결국 우리 앞의 선택은 '비싼 돌봄'과 '값싼 돌봄'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사이의 선택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답해야 할 때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5]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4]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② "외국인 가사 도우미 '바닥을 향한 경주'...대만의 경고와 일본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저비용의 함정은 본래 경영 전략과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기업이나 산업이 단기적인 저비용 우위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품질 개선, 기술 혁신, 인적 자본 투자 등 장기적인 경쟁력의 원천을 등한시하게 되어 결국 저부가가치 상태에 고립되는 현상을 의미한다.이는 눈앞의 비용 절감에만 매몰되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상실하는 전략적 실패다. 예를 들어, 도요타 생산 시스템(TPS)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카이젠(改善)으로 대표되는 지속적인 개선 활동과 인재 육성을 통해 고품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저비용의 함정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돌봄 경제에 저비용 외국인 인력을 도입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함정으로 빠져드는 경로가 될 수 있다.돌봄 분야의 악순환 메커니즘저비용 전략은 돌봄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치명적인 악순환을 유발하며 시스템 전체를 저하시킨다.품질 저하돌봄은 단순한 상품이나 기계적인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간의 신뢰와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적 노동'이다. 서비스의 질은 돌봄 노동자의 전문성, 동기, 심리적 안정감, 그리고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직결된다.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 불안정한 고용 상태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동기를 저하시키고 이직률을 높인다. 이는 돌봄 관계의 단절로 이어져 서비스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으로 고용할 경우,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낮은 직업 만족도가 겹쳐 질 낮은 돌봄으로 귀결될 위험이 매우 크다.시장 왜곡과 '바닥을 향한 경주'정부가 법적으로 더 낮은 임금의 노동 시장을 허용하면, 이는 기존 국내 돌봄 노동 시장에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일부에서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프리미엄 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대만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났듯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유입은 해당 직종 전체의 임금 수준과 사회적 인식을 끌어내려 내국인 노동자들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돌봄 시장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 시장'과 소수만을 위한 '고비용 프리미엄 시장'으로 양극화되고, 보편적인 양질의 돌봄은 사라지게 된다. 이는 노동 시장 전체를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로 이끄는 것이다.혁신 동력 상실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때, 기업과 정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이나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에 투자할 유인을 잃게 된다. 현재 일본은 높은 인건비 부담이라는 제약 속에서 돌봄 로봇, IT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효율적인 재가 돌봄 모델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위기를 기술 혁신과 시스템 개선의 기회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반면, 한국이 저비용 인력 도입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면, 이러한 혁신의 동력은 사라지고 기술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낙후된 저부가가치 산업 구조에 갇히게 될 것이다.사회적 가치 절하의 고착화정책은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국가가 특정 노동(돌봄)에 대해, 그것도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정책을 편다면, 이는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비전문적이고 낮은 가치의 일"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제도적으로 공인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돌봄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하여 미래에 유능한 인재들이 이 분야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공공 투자를 축소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이처럼 저비용의 함정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문제를 야기한다. 초기에 저비용 인력 도입이라는 '쉬운 선택'을 하면, 값싼 돌봄에 의존하는 가계와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 중개 기관 등 새로운 이해관계자들이 형성된다. 이들은 향후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공공 서비스 확대 등 비용을 증가시키는 모든 개혁에 저항하는 강력한 정치적 압력 집단이 된다. 시스템은 저품질-저임금 균형 상태에 '고착(locked-in)'되고, 처음에는 가능했던 '올바른 선택'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이는 대만에서 이미 현실화된 경로다.이러한 정책적 오류는 돌봄 노동의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고숙련 내국인 인력이 '저생산성' 부문인 돌봄에 투입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시간당 산출량을 기준으로 하는 제조업적 생산성 개념을 인간 서비스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돌봄의 '생산성'은 속도가 아니라 질, 신뢰, 관계 형성, 그리고 돌봄을 받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 증진이라는 결과로 측정되어야 한다. 시간당 비용이라는 단일 잣대로만 효율성을 판단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돌봄의 본질적 가치를 파괴하고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해외 사례외국인 돌봄 인력 정책을 둘러싼 한국의 고민은 이미 여러 국가가 거쳐온 길이다. 각국의 경험은 우리가 선택할 경로의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생생한 거울과 같다. 특히 대만과 일본의 상반된 접근 방식은 '저비용의 함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대만의 경고…현실이 된 저비용의 함정대만은 1990년대부터 저비용 모델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노동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저임금에 기반한 재가 돌봄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는 한국 사회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내국인 노동 시장의 붕괴: 저임금 이주노동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내국인 돌봄 노동자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2017년 기준, 노인 돌봄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24만여 명에 달하는 반면, 대만인은 4만 2천 명에 불과해 외국인력이 내국인력을 6대 1의 비율로 압도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인력 보충이 아닌, 완전한 '대체' 현상이다.열악한 노동 환경의 고착화: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내국인 간병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 하루 평균 10.5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39.5%는 한 달에 단 하루의 휴일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적으로 용인된 착취 구조다.공적 돌봄 시스템 발전 저해: 언제든 값싼 사적 돌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보편적이고 질 높은 공적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정치적 동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대만은 이주 여성의 희생에 기반한 불안정한 사적 돌봄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국가 돌봄 체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족쇄가 되었다.일본의 실험…권리 기반의 품질 중심이와는 정반대로, 일본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기반한 권리 중심적 접근을 택했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 요양보호사에게 일본인과 완전히 동일한 임금과 노동법의 보호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돌봄의 질' 확보다. 이를 위해 높은 수준의 일본어 능력과 요양보호사 국가자격 취득을 요구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 원인이 '동일임금'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인에게조차 돌봄 노동이 다른 직종에 비해 노동 강도는 높고 임금과 사회적 지위는 낮은, 매력 없는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외국인력 도입이 돌봄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히려 일본의 사례는, 모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여 직업 자체의 매력도를 높이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지속가능한 인력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독일의 복잡성… 통합과 시스템의 한계독일은 잘 갖춰진 공적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기반으로 전체 돌봄 인력의 15~20%를 외국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 역시 외국인력 도입이 간단한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독일 시스템은 일관된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다양한 문화적·언어적 배경을 가진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며,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돌봄 공백을 막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단순히 인력을 수입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관리하며 기존 시스템에 통합시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정책 설계가 동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이 세 국가의 사례는 한국이 서 있는 정책적 갈림길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바로 '통합(Integration)' 모델과 '분리(Segregation)' 모델 사이의 선택이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를 기존 노동 시장에 동일한 규칙으로 '통합'하는 길을 택했다. 비록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는 돌봄 직업의 가치를 지키고 품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반면, 대만은 외국인 노동자를 권리와 임금이 더 낮은 별도의 시장에 '분리'시키는 길을 택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가계의 비용 문제를 해결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착취적이고 질 낮은 시스템을 고착시키고 공공 부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결국 외국인력은 기존 돌봄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시스템의 근본적인 강점과 약점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확성기'와 같다. 일본의 문제는 돌봄 노동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 독일의 문제는 시스템의 분절성, 대만의 문제는 시장 중심의 사유화다. 외국인력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키거나 명확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한국이 자국의 돌봄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돌봄 노동의 가치 절하와 공공성 부족—를 먼저 해결하지 않는다면, 외국인력 도입은 위기를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바로 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4]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① "대한민국 돌봄 경제, '저비용 함정'에 빠지나"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맞물리면서 , 사회의 근간을 지탱해 온 전통적 돌봄 체계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붕괴하고 있다. 이 위기는 단순히 인구구조의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서로를 돌보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경제 활동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이러한 배경 속에서 '돌봄 경제(Care Economy)'는 더 이상 주변부의 사회복지 의제가 아닌,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제 전략으로 부상했다. 돌봄 경제는 노인, 아동,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영역을 포괄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정의하듯, 이는 공식적·비공식적 노동을 모두 아우르며 사회 재생산과 모든 경제 활동의 전제 조건이 되는 필수 인프라다.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일부 경제 주체들은 '저비용 외국인 인력 도입'이라는, 표면적으로 가장 손쉬워 보이는 해법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돌봄 공백을 메우고 가계의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하에 추진되고 있다.하지만 저비용 외국인 인력 도입이라는 단기적 처방은 사실상 돌봄 노동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고,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며,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저비용의 함정(Low-Cost Trap)'이라는 더 깊은 위기로 몰아넣는 전략적 실패가 될 수 있다. 저비용에 의존하는 돌봄 시스템은 혁신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고, 결국 돌봄 시장 전체를 하향 평준화시켜 지속 불가능한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이는 탈출이 매우 어렵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전략적 막다른 길이다.인구구조의 명령…격변하는 사회대한민국의 돌봄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인구구조 변화에서 시작된다. 통계는 그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2025년이면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어 2050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생산가능인구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극단적인 노년부양비(72.0%)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고령인구 수를 나타내는 노령화지수(Aging Index)는 이미 199.9에 달해 일본, 이탈리아 등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노인 돌봄 수요가 단순히 증가하는 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폭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수요의 양적 팽창만큼이나 질적 변화도 중요하다. 고령자 가구 중 혼자 사는 노인 가구의 비중이 37.8%에 달하면서 , 돌봄의 형태는 과거의 시설 중심에서 개인화되고 재가(在家) 중심적인 지원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는 더 세밀하고, 더 관계 중심적이며,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국내 노동 시장… 한계에 다다른 시스템폭증하는 수요의 반대편에서, 국내 돌봄 노동 공급 시스템은 이미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 돌봄 인력의 대다수는 50대 이상의 중고령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비중은 83%에 달한다. 이는 젊은 세대의 유입이 거의 없는, 지속 불가능한 인력 구조임을 명백히 보여준다.이들이 처한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월평균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을 맴돌고 있으며,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과 육체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정이나 직업적 성장 경로는 거의 부재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자격증 소지자와 실제 활동 인력 간의 엄청난 격차로 증명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250만 명을 넘어섰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인력은 60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열악한 일자리의 질 때문에 기존 인력마저 현장을 떠나는 심각한 '유지 위기(retention crisis)'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돌봄 격차'의 경제적, 사회적 비용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균형은 '돌봄 격차(Care Gap)'를 만들어내며, 이는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개인에게 전가된 돌봄 비용은 이미 감당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2023년 기준, 월평균 개인 간병비는 370만 원으로, 65세 이상 고령 가구 중위소득(224만 원)의 1.7배에 달한다. 육아 도우미 비용 역시 30대 가구 중위소득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재정적 압박은 '간병 파산', '간병 살인'과 같은 사회적 비극으로 이어진다. 특히, 돌봄의 책임은 여성에게 집중되어 경력 단절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가족 구성원이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돌봄에 나섬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2042년 GDP의 최대 3.6%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이처럼 대한민국의 돌봄 위기는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악순환 구조를 띠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가 돌봄 수요를 폭증시키면, 열악한 노동 조건이 국내 공급을 억제하고, 이로 인해 벌어진 격차가 민간 비용을 급등시킨다. 치솟는 비용은 다시 가족, 특히 여성에게 부담을 전가하여 이들의 경제 활동을 제약하고 출산을 기피하게 만들어, 결국 인구 고령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다.이 문제의 근원은 단순히 노동력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깊은 곳에는 돌봄 노동 자체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가치 절하(devaluation)'가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계 내에서 여성의 무급 노동으로 여겨졌던 돌봄은 , 공식적인 노동 시장으로 편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비전문적'이고 '낮은 가치'의 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인식이 낮은 공공 투자와 저임금 구조를 정당화하고, 이는 다시 국내 노동력의 이탈을 초래한다. 그리고 바로 이 '가치 절하'라는 근본적인 질병을 외면한 채, '더 값싼' 노동력을 수입하려는 시도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악화일 뿐이다.움직이는 정책…정부 제안과 시범 사업돌봄 결핍이라는 명백한 위기 앞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국인 인력 도입이라는 '빠른 해결책'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구체적인 정책과 시범 사업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는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대상을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D-2, D-10 비자 소지자)으로 확대하고, 이들을 위한 전문 양성 대학을 지정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동시에, 서울시는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 100명을 도입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맞벌이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어 저출산 문제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개별적으로 추진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돌봄 인력난의 핵심 해법을 '이주'에서 찾으려는 일관된 정책적 흐름을 보여준다.한국은행 보고서정책 방향에 가장 강력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한국은행(BOK)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현재의 정책 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국내 공급의 한계: 돌봄 수요는 폭증하지만, 국내 노동 공급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며 비탄력적이다.비용 효율성의 문제: 내국인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은 가계에 감당할 수 없는 비용 부담을 지우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초래한다.유일한 대안으로서의 외국인력: 따라서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유일하고 현실적인 방안은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이다.보고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인력을 '저비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두 가지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제안한다. 첫째, 개별 가구가 외국인 노동자와 '사적 계약'을 맺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에게는 최저임금 등 노동법의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하여, 최저임금 이하의 고용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둘째, 현행 고용허가제(EPS)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시키되, 이 업종에 한해 다른 산업보다 낮은 '업종별 차등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방안이다. 이 두 가지 방안은 모두 '비용 절감'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설계되었다.해외 모델… 홍콩과 싱가포르저비용 모델의 성공 사례로 정책 지지자들이 빈번하게 인용하는 국가는 홍콩과 싱가포르다. 이들 국가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거나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국 평균 임금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가사와 육아를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높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저비용 외국인력 도입의 가장 강력한 논거로 제시된다.이러한 정책 논의의 이면에는 중대한 함정이 숨어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와 이를 지지하는 여론은 정책적 선택지를 (A) 내국인 노동자가 제공하는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비싼 돌봄과 (B)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가 제공하는 합리적인 비용의 돌봄이라는 거짓된 이분법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프레임은 제3의 선택지, 즉 (C) 국가가 책임지고 재정을 투입하여 모든 돌봄 노동자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는 보편적 공공 돌봄 시스템 구축이라는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논의의 초점을 '가계의 사적 지불 능력'에만 맞춤으로써, 돌봄이라는 사회 필수 인프라에 대한 국가의 투자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결국 이 구도 속에서 가계와 노동자는 서로의 이익이 상충하는 제로섬 게임의 행위자로 내몰리고,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결책은 노동 비용을 억제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는 결국 돌봄의 가치 절하라는 근본적인 질병은 외면한 채, 높은 비용이라는 증상에만 집착하는 단기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러한 접근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갈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돌봄 시스템 전체를 병들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3]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③대한민국 북극항로의 미래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전환기 앞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나침반을 가지고 어디로 향해야 할까? 막연한 기대로 '항로 이용자'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가? 3부에서는 '항로 이용'이라는 수동적 포지션에서, 대한민국의 강점인 첨단 기술력을 극대화하는 '핵심 기술 선도자'가 되어 쇄빙선·친환경 선박 기술을 선점하고, 과학·환경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 기여하며, 불확실한 상업 운항이 아닌 장기적 국가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살펴보겠다.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표류하지 않고, 스스로 파도를 만드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한 대한민국의 길을 모색해본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3]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③대한민국 북극항로의 미래 야망의 연대기 - 한국 북극 정책에 대한 비판 대한민국의 북극을 향한 여정은 2013년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 영구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는 북극 관련 국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외교적 교두보를 마련한 중요한 성과였다. 이후 정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건조하고 다산과학기지를 운영하며 과학 연구 역량을 축적해왔다.최근 들어 북극항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포함을 필두로 , 여야를 막론하고 '북극항로 개발 및 지원 특별법안'이 잇달아 발의되었고 ,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각종 지원단과 협의체가 속속 출범했다. 국회와 관련 기관들은 연일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며 북극항로 시대의 도래를 기정사실화하고,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열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냉정한 현실 분석보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앞서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앞서 1부와 2부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했듯이, 북극항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경제적, 기술적, 환경적, 지정학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재의 정책 담론들은 이러한 '차가운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 없이, '부산항의 물류 허브 도약'이나 '조선업의 새로운 먹거리'와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낳을 위험이 크다. 막대한 국가 예산과 자원이 투입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꿈'을 좇아 정책이 수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가적 차원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기루를 넘어 - 대한민국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북극이라는 거대한 기회와 도전 앞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신기루를 좇아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거는 대신, 현실에 발을 딛고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북극항로를 무조건 외면하자는 패배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북극항로의 현재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의 초점을 전환하자는 현실주의적 제안이다.수동적으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항로 이용자(Route Taker)'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틈새시장 선도자(Niche Leader)'로 국가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항로 이용자'에서 '핵심 기술 선도자'로 전환해야 한다. 북극항로를 통해 오고 갈 불확실한 물동량에 국가의 미래를 거는 대신, 대한민국의 세계 최고 수준인 조선 및 ICT 기술력에 집중해야 한다.정부의 R&D 지원과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항로 이용'이 아니라 '극지 기술 개발 및 상용화'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 LNG 추진 쇄빙·내빙 선박 건조 기술, △혹한 환경에서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인공위성을 활용한 실시간 유빙 탐지 및 최적 항로 분석 기술, △국제적 규제가 예상되는 블랙 카본 저감 기술(고효율 필터, 대체 연료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를 선점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강점을 활용하는 길이며, 북극항로의 상업적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확실한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이다.또한 상업 물류에 대한 전략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대규모 정기 상업 운항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막연한 물동량 예측에 기반하여 부산항이나 동해안의 항만에 대규모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대신, 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가지고 제한적인 규모의 시범 운항을 지원하여 실제 운항 데이터를 축적하고, 운항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학술적 경제성 모델을 현실에서 검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저비용으로 실질적인 역량을 축적하며 미래의 기회가 현실화되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길이다.그리고 중견국으로 과학과 환경의 외교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극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없는 비연안국이자 세계적인 과학기술 역량을 보유한 중견국이라는 독특한 외교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이를 활용하여 북극 거버넌스에서 '책임 있는 기여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와 환경보호라는 전 지구적 의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강점을 가진 관측 기술을 활용하여 북극 해빙과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공동 연구를 주도하고, 앞서 언급한 블랙 카본 배출량 측정 및 저감 기술의 국제 표준을 수립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이는 환경 위기를 외교적, 산업적 기회로 전환하고, 북극권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는 현명한 전략이다.끝으로 '꿈'이 아닌 '현실'을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 현재 논의되는 '북극항로 특별법'은 그 목적과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아직 경제성이 불투명한 상업 운항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법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대신, 이 법은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극지 역량을 강화하는 '백년대계'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법의 핵심 내용은 △극지 핵심 기술 R&D에 대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예산 지원, △극지 전문 과학자, 기술자, 국제법 전문가 등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 △북극 관련 국제법 및 규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범부처 정책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신기루를 좇는 대신, 미래에 실질적인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유연하고 탄탄한 국가적 역량을 기르는 길이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2]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②얼음 위의 체스판, 강대국들의 그레이트 게임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북극항로는 단순한 상업 항로가 아니다. 이곳은 러시아, 중국, 미국 등 강대국들의 패권이 충돌하는 '얼음 위의 그레이트 게임'의 새로운 무대다. 주권, 군사, 자원의 생명줄로 여기며 항로의 배타적 통제권을 노리는 러시아, '빙상 실크로드'를 통해 에너지 안보와 말라카 딜레마 탈출을 꿈꾸는 중국, 그리고 이들의 팽창을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군사적, 외교적 견제에 나선 미국. 평화와 협력의 공간이었던 북극은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변모했다. 2부에서는 북극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야망과 그 충돌이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를 파헤친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2]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얼음 위의 체스판,강대국들의 그레이트 게임 북극항로를 둘러싼 담론이 경제성과 환경 문제를 넘어설 때, 그 본질적인 민낯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얼음 위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on Ice)'이다. 강대국들에게 북극항로는 단순한 상업 항로가 아니라, 21세기 지정학적 패권을 다투는 새로운 체스판이다. 한때 과학 협력과 평화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북극 예외주의(Arctic Exceptionalism)'는 녹아내리는 빙하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변화에 결정타를 날렸고, 북극은 이제 NATO와 러시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변모했다. 이 거대한 게임에서 대한민국과 같은 중견국은 순진한 상업적 기대를 넘어, 냉혹한 지정학의 법칙을 직시해야만 한다. 러시아의 북방 제국 - 주권, 군사, 그리고 자원의 길 러시아에게 북극항로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다. 푸틴 대통령이 2020년 승인한 '2035 북극 개발 및 국가안보 전략'은 그 야망을 명확히 보여준다.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국제법상의 자유로운 통항이 보장되는 국제 해협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자국의 주권이 미치는 '내부 수로'로 간주하며, 외국 선박에 대해 자국법에 따른 통항 규칙과 강제 도선, 그리고 원자력 쇄빙선의 에스코트를 강요한다. 이는 항로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명백한 주권적 의지의 표명이다.이러한 주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강력한 군사력이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에 폐쇄했던 북극 연안의 군사 기지들을 재가동하고, 최신예 극초음속 미사일과 방공 시스템을 배치하며 북극의 군사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수의 원자력 쇄빙선단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쇄빙선과 항만 인프라는 민간 수송 지원과 군사 작전 수행이 모두 가능한 '이중용도(dual-use)' 자산이다. 이는 북방 함대의 작전 반경을 보장하고, 유사시 북극항로를 완벽히 통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마지막으로 북극항로는 러시아의 자원줄이다. 시베리아 북부 야말 반도의 막대한 천연가스(LNG)와 북극 대륙붕에 매장된 석유, 광물 자원을 해외 시장으로 실어 나르는 거의 유일한 출구다. 즉, 북극항로는 러시아의 주권, 군사안보, 경제적 미래가 결합된 국가 전략의 핵심축(linchpin)인 셈이다.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 - 용의 북극 진출 북극에 영토가 없는 중국은 스스로를 '근북극 국가(Near-Arctic State)'로 칭하며 이 새로운 게임에 뛰어들었다. 2018년 발표한 '북극정책백서'는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라는 야심 찬 구상을 통해 북극에 대한 자국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는 전략적 선언이다.중국의 목표는 다층적이다.첫째, 에너지 안보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주로 러시아와 협력하여 북극의 석유, 가스, 광물 자원 개발에 참여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 한다. 러시아 야말 LNG 프로젝트에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둘째, 전략적 통로 확보다. 현재 중국의 대유럽 교역로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 '말라카 딜레마'에 처해있다. 빙상 실크로드는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대체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중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여준다.셋째, 국제적 영향력 확대다. 중국은 과학 연구, 기지 건설, 쇄빙선 건조 등을 통해 북극 거버넌스에서 '규칙 수용자'가 아닌 '규칙 제정자'로 발돋움하려 한다.현재 북극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편의상의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에 공동으로 맞선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지만, 그 기저에는 장기적인 경쟁 구도와 긴장 관계가 잠재되어 있다. 러시아는 중국의 자본을 필요로 하지만, 자국의 뒷마당인 북극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한다. 깨어나는 거인 - 미국의 안보 중심 대응 과거 북극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화와 중국의 부상에 직면하며 정책 기조를 급격히 전환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변화는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안보 우선주의'로 명확히 굳어졌다. 2022년 발표된 '북극 지역 국가 전략'은 러시아와 중국을 명시적인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미국의 전략은 러시아, 중국과 결이 다르다. 상업적 활용이나 자원 개발보다는 안보적 대응에 압도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첫째, 러시아와 중국의 활동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알래스카를 중심으로 정보·감시·정찰(ISR) 자산을 확충하고 미사일 방어 체계를 현대화하고 있다.둘째, '항행의 자유' 원칙을 내세워 북극항로를 자국 내 수로로 간주하는 러시아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미 해군 함정이 사전 통보 없이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칠 경우, 이는 양국 간의 군사적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인화점이다.셋째, NATO 동맹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덴마크, 캐나다 등 북극권 NATO 회원국들과의 연합 훈련 및 정보 공유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다만 미국은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바로 '쇄빙선 격차(Icebreaker Gap)'다. 수십 척의 쇄빙선, 특히 원자력 쇄빙선을 보유한 러시아에 비해 미국은 노후화된 쇄빙선 몇 척을 보유하는 데 그쳐, 북극에서 지속적인 물리적 존재감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이 쇄빙선 건조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이처럼 북극은 더 이상 평화로운 협력의 장이 아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언제든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정학적 경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현실은 북극항로의 상업적, 과학적 활용을 꿈꾸는 대한민국과 같은 중견국에 심각한 함의를 던진다. 우리의 경제적 야망이 강대국들의 안보 논리에 휘말려 좌초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만으로 북극에 접근하는 것은 이 위험한 게임의 본질을 외면하는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1]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① 장밋빛 꿈과 차가운 현실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지구온난화가 역설적으로 열어준 바닷길, 북극항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거리라는 지름길의 경제학은 대한민국 부산항의 물류 허브 도약과 조선업 부흥이라는 장밋빛 꿈을 제시하고있다. 그러나 화려한 청사진 뒤에는 차가운 현실이 숨어있다. 천문학적인 쇄빙선 비용과 보험료, 사실상 전무한 인프라, 예측 불가능한 자연환경은 경제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나아가 항로 활성화가 '블랙 카본' 배출을 늘려 해빙을 가속하는 치명적 모순까지 품고 있다. 1부에서는 북극항로를 둘러싼 희망과 현실의 거대한 격차를 심층 분석한다.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① 장밋빛 꿈과 차가운 현실녹아내리는 북극, 새로운 대양의 꿈 북극의 사이렌, 그 치명적 유혹 인류의 역사는 바다를 개척한 역사다. 대항해시대가 미지의 대륙을 문명의 지평으로 끌어들였다면, 21세기의 인류는 지구의 지붕에서 새로운 대양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문명의 그림자가 역설적으로 얼어붙었던 북극해의 빗장을 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재앙을 넘어, 인류사 최초로 인간의 활동에 의해 새로운 바다가 열리는 지정학적, 경제적 대사건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 NSR)가 있다. 북극항로를 향한 세계의 관심은 그 치명적인 유혹에서 비롯된다. 이는 지구의 비극이 인류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모순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24년 북극의 해빙 면적은 위성 관측 이래 최저 수준인 131만km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한반도 면적의 약 6배에 달하는 얼음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더욱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속도다. 1979년부터 2021년까지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약 4배, 일부 지역은 최대 7배 빠르게 뜨거워졌다. 이 전례 없는 해빙은 얼음에 갇혀 있던 바닷길을 열어젖히며, 글로벌 물류와 에너지, 안보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잠재력을 품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 새로운 바다에 희망의 닻을 내리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항로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에 인류가 마주한 도전과 기회의 복합적인 상징, 즉 거부할 수 없는 '사이렌의 노래'와 같다. 지름길의 경제학 - 단축, 절감, 그리고 부산의 꿈 북극항로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논리는 '지름길의 경제학'이다. 숫자는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기존의 남방항로, 즉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경로는 오랫동안 세계 교역의 대동맥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북극항로는 이 대동맥에 혁명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부산항에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까지의 거리를 비교해 보자.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는 약 2만 km에 달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만 3천 km로 7,000km가량 단축된다. 이는 운항 거리를 30%에서 최대 40%까지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0일의 운항 일수를 절감할 수 있는 수치다. 해운업에서 시간과 거리는 곧 비용이다. 운항 기간 단축은 연료비, 선원 인건비, 선박 운영비 등 전반적인 물류 비용의 극적인 절감으로 이어진다. 이론적으로는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는 환경적 이점까지 따라온다. 이러한 경제적 이점은 전략적 가치로 확장된다. 대한민국은 해상 무역의 90% 이상을 남방항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항로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수에즈 운하는 전쟁, 테러, 선박 좌초 사고(2021년 에버기븐호 사건) 등으로 예고 없이 마비될 수 있으며, 남중국해는 미중 패권 경쟁과 영유권 분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화약고다. 북극항로는 이러한 '질식점(chokepoint)'을 우회할 수 있는 대체 경로로서 국가 경제 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 위에서 '코리안 드림'이 그려진다. 북극항로 시대가 본격화되면, 지리적으로 항로의 시발점에 위치한 부산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세계적인 환적 허브로 도약할 잠재력을 갖게 된다. 또한, 북극해 운항에 필수적인 쇄빙선, 내빙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특수 선박 시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부흥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들이 북극항로에 주목하고 관련 TF 구성, 특별법 발의, 지원단 출범 등 정책적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바로 이러한 거대한 기회를 선점하려는 국가적 야망의 발로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1]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① 장밋빛 꿈과 차가운 현실 (CEONEWS=박수남 기자)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① 장밋빛 꿈과 차가운 현실차가운 현실 - 도전의 바다를 항해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1]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① 장밋빛 꿈과 차가운 현실 (CEONEWS=박수남 기자) 얼음의 경제학 - 지름길이 가장 먼 길이 될 때 북극항로의 장밋빛 전망은 '지름길'이라는 단순한 기하학에 근거한다. 그러나 경제는 기하학이 아니다. 현실의 바다는 수많은 변수와 마찰로 가득 차 있으며, 북극의 바다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40%의 거리 단축이 곧 40%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은 북극항로의 꿈에 첫 번째 찬물을 끼얹는다. 가장 먼저, 보이지 않는 비용의 빙산이 존재한다. 북극의 얼음과 혹독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 선박은 특수한 내빙(Ice-Class) 설계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특수 선박의 건조 비용은 일반 선박보다 월등히 높다. 여기에 더해, 북극항로의 대부분을 관할하는 러시아는 자국의 원자력 쇄빙선 에스코트를 의무화하고 막대한 통행료를 징수한다. 일부 학술 연구에서는 현재 수준의 쇄빙선 이용료가 유지된다면 북극항로는 경제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릴 정도다. 또한, 예측 불가능한 유빙과의 충돌 위험, 미비한 구조 및 구난 인프라 때문에 선박 보험료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치솟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프라의 절대적인 부족이다. 수에즈 항로에는 수많은 대형 항구와 선박 수리 시설, 보급 기지, 구난 시스템이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반면,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북극항로 연안에는 이와 같은 필수 인프라가 거의 전무하다. 항해 중 문제가 발생하면 도움을 받을 곳이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운항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다.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수년간의 기대와 홍보에도 불구하고, 북극항로의 실제 상업 운송량은 수에즈 운하의 며칠 치 물동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0년 첫 상업 운항 이후 물동량 증가율 자체는 높아 보이지만, 이는 시작점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통계적 착시일 뿐이다. 심지어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북극항로 개척에 가장 적극적이던 중국의 국영선사 COSCO조차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북극항로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이는 북극항로가 아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막대한 투자와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돈 먹는 하마'에 가깝다는 시장의 판단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시하는 낙관적인 경제성 분석 모델과 실제 시장의 반응 및 독립적인 학술 연구 결과 사이에는 거대한 '실현 가능성의 격차(Viability Gap)'가 존재한다. 전자는 거리 단축과 같은 이론적 변수에 집중하며 미래의 비용 절감 가능성을 전제하는 반면, 후자는 현재의 높은 운영비, 보험료, 인프라 부족 등 현실의 장벽을 분석한다. 결국 북극항로의 경제성 논쟁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의 수준과 시간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 상선사에게 북극항로는 아직 매력 없는 길이지만, 장기적 패권을 노리는 국가 행위자에게는 전략적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성과 환경의 역습북극항로가 마주한 두 번째 장벽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연 그 자체다. 경제적 장벽을 넘어선다 해도, 예측 불가능한 자연환경은 안정적인 해상 운송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다.가장 큰 문제는 운항의 불확실성이다. 얼음이 녹아 항해가 가능한 기간은 현재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약 4개월 남짓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매년 기상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변동성은 '적시생산(Just-in-Time)' 시스템에 의존하는 현대 글로벌 공급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컨테이너 정기선 서비스는 일관된 스케줄과 신뢰성이 생명인데, 북극항로는 이를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여름철이라도 녹아서 떠다니는 유빙, 짙은 안개와 폭풍, 그리고 고위도 지역의 특성상 발생하는 위성 통신 및 GPS 장애는 항해 자체를 극도로 위험하게 만든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극항로의 활성화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치명적인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를 만든다는 점이다. 선박, 특히 저품질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들은 불완전 연소 과정에서 다량의 '블랙 카본(Black Carbon)'을 배출한다. 자동차 매연의 그을음과 같은 이 미세 입자는 대기 중에서 태양열을 흡수해 온난화를 유발하는 강력한 단기 기후 오염물질이다. 특히 이 검은 입자들이 하얀 눈과 얼음 위에 내려앉으면 지표면의 태양에너지 반사율(알베도)을 급격히 떨어뜨려 얼음이 녹는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이는 '더 많은 운항이 더 빠른 해빙을 낳고, 더 빠른 해빙이 다시 더 많은 운항을 가능케 하는' 악순환을 형성한다.블랙 카본 1톤이 20년의 기간 동안 이산화탄소 900톤에 맞먹는 온난화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는 그 위험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국제해사환경단체(ICCT)의 분석에 따르면, 북극 해역의 선박 기인 블랙 카본 배출량은 2015년에서 2021년 사이 이미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그 주범은 늘어나는 해운 활동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 북극항로의 미래 자체를 위협하는 경제적, 지정학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와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를 중심으로 블랙 카본 배출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 유럽연합(EU) 역시 관련 규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만약 선박에 고가의 디젤 미립자 필터(DPF) 장착을 의무화하거나, 저렴한 벙커C유 대신 비싼 증류유 사용을 강제하는 규제가 도입된다면, 북극항로의 운항 비용은 급증하여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 환경 정책이 북극항로의 지정학적, 경제적 지형을 바꾸는 강력한 레버리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북극항로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러시아의 야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한다.이 외에도, 유빙이 떠다니는 해역에서의 유류 유출 사고는 사실상 방제가 불가능하여 생태계에 회복 불가능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선박의 수중 소음이 증가하면서, 소리에 민감한 일각고래(narwhal)의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200%나 급증했다는 연구 보고는 북극항로 개발이 초래할 생태계 파괴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연은 결코 수동적인 무대가 아니며, 인간의 무분별한 개척에 강력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박수남의 폴리코노미 9] "노란봉투법의 검은 그림자...노동자 보호법이 노동자를 죽인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8] 2025 세제개편안...눈앞 세수 매몰된 정부, 저당 잡힌 한국 경제 미래[박수남의 폴리코노미 7] 23조 원 '테슬라 잭팟'이 깨운 삼성 파운드리...TSMC 독주 체제에 균열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세계 경제 질서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를 이끌었던 기존의 규칙들은 와해되어 가고 있으며, 새로운 규칙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경기 순환이나 일시적 갈등이 아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세계경제포럼(WEF)의 2025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최고위험관리자(CRO)의 52%가 단기적으로 "불안정한" 미래를 예상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31%는 더 큰 혼란을, 5%는 전 지구적 재앙 수준의 리스크를 예측하는 등 비관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는 냉전 이후 가장 분열된 시기라는 평가를 뒷받침하며, 경제 성장의 둔화와 맞물려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5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대폭 하향 조정한 2.3%로 예상하며, 무역 장벽의 증가와 정책 불확실성 심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관세에서 초크포인트로의 전환이러한 새로운 환경은 과거의 무역 전쟁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관세는 여전히 유효한 정책 수단이지만, 전략의 핵심은 보다 정교하고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 최고 경제학자들의 97%가 무역 정책을 글로벌 불확실성의 가장 큰 원천으로 꼽을 만큼 , 무역을 둘러싼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그러나 이제 경쟁의 패러다임은 광범위한 시장 점유율 다툼에서 특정 기술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기술 봉쇄'로 옮겨가고 있다. 이는 국가 간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고리, 즉 '초크포인트(Chokepoint)'를 장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초크포인트란 특정 산업이나 군사 역량의 작동에 필수적인 핵심 기술, 부품, 자원을 의미하며, 이를 통제하는 국가는 경쟁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좁은 마당, 높은 울타리" 전략이러한 기술 봉쇄 전략의 중심에는 미국의 새로운 지정경제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 당국자들이 명시적으로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의 목표는 더 이상 경쟁국에 대해 "상대적" 우위나 "일정한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목표는 경쟁자의 기술 발전을 근본적으로 저지하고 결정적인 기술적 봉쇄를 가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른바 "좁은 마당, 높은 울타리(small-yard, high-fence)" 전략은 이러한 기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전략은 광범위한 경제적 압박 대신,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좁은 영역의 기술"을 선별하여 누구도 넘을 수 없는 "높은 울타리"를 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전략의 등장은 세계 경제가 단순한 경쟁의 시대를 지나, 특정 기술을 둘러싼 공성전(siege)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는 더 빨리 달리는 것을 넘어, 경쟁자의 다리를 부러뜨려 경주 자체를 끝내려는 시도와 같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은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현 상황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 전략은 공개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그 논리는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게도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준다. "좁은 마당"에 속하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의 안보 동맹인 동시에 치열한 경제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특정 기술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추구할 때, 그 "높은 울타리"는 중국을 차단하는 동시에, 동맹국들을 기술적 종속 상태로 묶어두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 담론에 가려져 한국 언론이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그러나 한국 경제의 미래에 결정적일 수 있는 숨겨진 위협이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21세기 초크포인트...리튬 배터리 가치 사슬미국의 새로운 지정경제 원칙이 적용되는 핵심 전장은 바로 차세대 배터리 산업이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의 심장인 배터리는 미래 산업의 패권을 좌우할 핵심 기술이며, 미국은 이 가치 사슬의 시작과 끝을 모두 장악하려는 정교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전략은 배터리 공급망을 상류(원자재), 중류(제조), 하류(응용 및 재활용)로 나누어 각 단계의 핵심 기술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상류...직접 리튬 추출(DLE) 기술첫 번째 핵심 초크포인트는 리튬 생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직접 리튬 추출(Direct Lithium Extraction, DLE) 기술이다. 전통적인 리튬 생산 방식은 염호(brine lake)의 물을 거대한 증발 연못에 가두고 수개월에 걸쳐 자연 증발시켜 리튬을 농축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고, 막대한 양의 물을 소비하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반면, DLE 기술은 흡착, 이온 교환, 멤브레인 분리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염수에서 리튬 이온만을 선택적으로 직접 추출한다. 이 기술은 리튬 회수율을 극대화하고(최대 95% 이상), 생산 기간을 수개월에서 수 시간으로 단축하며, 물 소비와 환경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DLE의 전략적 중요성은 단순히 효율성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경쟁 우위의 원천을 지질학적 조건(염호 보유 여부)에서 기술력(추출 공정 IP)으로 전환시킨다. 즉, 막대한 리튬 매장량이 없는 국가라도 DLE 기술만 확보하면 글로벌 리튬 공급망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의 거대 자본과 기술력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현상은 '거대 탄소 자본의 대전환(The Great Carbon Pivot)'이다. 엑손모빌(ExxonMobil)과 같은 미국의 석유 공룡들과 유압 파쇄(fracking) 기술 기업 ITAMCO 등이 막대한 자본력, 지질학적 데이터, 대규모 플랜트 운영 노하우를 앞세워 DLE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상대해야 할 경쟁자가 민첩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워싱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산업 자본임을 의미하며, 경쟁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수다.하류...전고체 배터리(SSB)두 번째 핵심 초크포인트는 배터리 기술의 '성배(Holy Grail)'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 SSB)다.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인화성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및 폭발 위험이 상존하며, 에너지 밀도 향상에도 한계가 있다.전고체 배터리는 이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여 구조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하고,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리고 충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 기술이다.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는 단순히 시장을 선도하는 것을 넘어, 차세대 모빌리티와 에너지 산업의 표준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을 순식간에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고, 산업계의 위계를 재편할 수 있는 파괴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전략은 바로 이 두 지점을 동시에 겨냥하는 '협공(Pincer Movement)' 전략이다. 상류에서는 DLE 기술로 핵심 원자재의 공급을 통제하고, 하류에서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로 최종 제품의 표준을 장악하려 한다. 이 협공 전략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은, 비록 세계 최고 수준의 중류(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원자재 확보와 핵심 기술 라이선스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며 결국 기술 종속의 덫에 걸릴 위험에 처해 있다.미국의 야망...차세대 배터리 기술 패권 장악미국이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초크포인트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되는 냉엄한 현실이다. 최근 발표된 한 학술 연구는 글로벌 리튬 공급망의 기술 지형을 분석하며, 미국의 압도적인 기술 패권을 수치로 증명했다. 이 데이터는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인 배터리 산업이 직면한 위협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준다.이 표가 보여주는 '가치 사슬 고도화에 따른 지배력 강화' 현상은 미국의 전략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방증한다. 이는 단순히 여러 기술 분야에서 우연히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가치가 창출되는 핵심적인 고부가가치 영역을 의도적으로 장악하려는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이는 "첨단 기술로 나아갈수록 미국의 기술적 영토 안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미국의 핵심 기업...DLE와 SSB 부문이러한 기술 패권은 구체적인 기업들의 약진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들은 강력한 기술력과 거대 자본의 지원을 바탕으로 차세대 배터리 시장의 규칙을 새로 쓰고 있다.상류(DLE) 초크포인트 주도 기업인터내셔널 배터리 메탈스 (IBAT): 최대 95%의 리튬 회수율을 자랑하는 특허받은 모듈형 DLE 플랜트를 통해, 12~18개월 내에 상업 생산이 가능한 신속성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엑손모빌 (ExxonMobil) 및 테트라 테크놀로지스 (TETRA Technologies): 아칸소 주에 대규모 리튬 생산 시설을 건설하며 미국의 새로운 '리튬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엑손모빌은 SK온과 최대 10만 톤 규모의 리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시장 지배자로 나서고 있다. 라일락 솔루션즈 (Lilac Solutions) 및 에너지엑스 (EnergyX): 각각 이온 교환 및 용매 추출/멤브레인 분야에서 혁신적인 DLE 기술을 개발하며 기술 생태계를 다각화하고 있다. 하류(SSB) 초크포인트 주도 기업퀀텀스케이프 (QuantumScape, QS): 폭스바겐과 빌 게이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의 선두 주자.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리튬-메탈 방식의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솔리드 파워 (Solid Power, SLDP): 포드와 BMW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이미 2022년 중반에 주요 파트너사에 테스트용 배터리 셀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 라인에 통합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여 빠른 양산 체제 전환을 노리고 있다.통제 생태계의 완성미국의 전략은 개별 기업의 성장을 넘어,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미국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 생태계이 생태계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고객이 경쟁자의 자금줄이 되는' 위험한 역설을 만들어낸다. 폭스바겐, 포드, BMW 등은 현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핵심 고객사다. 그러나 이들 고객사가 바로 한국 기업의 미래를 위협할 기술(전고체 배터리)을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퀀텀스케이프, 솔리드 파워)의 최대 투자자이자 전략적 파트너이기도 하다. 즉, 오늘 한국 기업이 벌어들인 매출이 내일 한국 기업을 대체할 기술의 R&D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 처한 매우 위태로운 전략적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러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동맹 전선... 일본의 전고체 배터리 특허 요새미국의 기술 초크포인트 전략은 단독 행동이 아니다. 이는 핵심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해 더욱 강력하고 배타적인 기술 블록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일본, 특히 자동차 거인 토요타(Toyota)가 있다. 이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 단일 국가가 아닌, 거대한 '동맹 전선'에 맞서야 하는 고립된 상황에 처했음을 의미한다.토요타의 특허 장벽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토요타의 지배력은 압도적인 특허 포트폴리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GlobalData의 분석에 따르면, 토요타는 최근 3년간(2020년 10월~2023년 10월) 무려 8,274건의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 이는 2위인 LG(5,539건)를 크게 앞서는 수치이며, 과거부터 꾸준히 축적해 온 1,300여 건의 특허 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단순한 R&D의 결과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구축된 '특허 요새(Patent Fortress)'다. 토요타의 전략은 경쟁사들이 자사의 방대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침해하지 않고는 독자적인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것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는 후발 주자들을 불리한 라이선스 계약으로 유도하거나,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특허 소송에 휘말리게 하여 R&D 역량을 고갈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즉, 토요타는 기술적 우위뿐만 아니라, 시장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법률적 무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연구실에서 공장으로... 이데미츠와의 동맹토요타의 전략은 서류상의 특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의 석유화학 대기업 이데미츠 코산(Idemitsu Kosan)과의 동맹은 이들의 야망이 상용화를 향해 구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요타는 이데미츠와 협력하여 전고체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을 대량 생산할 계획이며, 이를 위한 대규모 공장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은 연간 약 5만 대의 전기차에 공급할 수 있는 규모로, 이는 토요타가 2027-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양산 체제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미일 기술 동맹의 형성미국 스타트업들의 파괴적 혁신과 일본 산업 거인들의 체계적인 양산 준비는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 강력한 '미일 기술 동맹'이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DLE와 전고체 배터리 원천 기술로 미래 시장의 설계도를 그린다면, 일본은 압도적인 특허와 소재 양산 능력으로 그 설계도를 현실화하고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이러한 동맹 전선의 구축은 한국에게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다. 안보의 핵심 동맹인 미국과, 가장 가까운 경제 경쟁자이자 파트너인 일본이 한국의 핵심 미래 산업을 양쪽에서 압박하며 기술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개별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니라, 한국이 거대한 기술 블록에 맞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지정경제적 싸움으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기로에 선 한국...기술적 포위에 대처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기술 초크포인트 전략의 최종 목표 지점은 명확하다. 바로 한국 경제의 핵심 기둥 중 하나인 배터리 산업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으로 대표되는 'K-배터리' 3사는 현재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경쟁에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도전의 핵심은 '기술적 종속'의 위험이다.K-배터리 3사의 현주소와 시간 격차한국 배터리 3사 역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으나, 경쟁국들과의 미묘한 '시간 격차'가 전략적 취약점으로 부상하고 있다.삼성SDI: 3사 중 가장 공격적으로 2027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수원 연구소에 파일럿 라인인 'S-라인'을 가동 중이며, 고객사들에게 샘플을 제공하며 성능 검증 단계에 진입했다. LG에너지솔루션: 2030년 이전 상용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역시 황화물계에 집중하고 있으며, 2025년 초 파일럿 라인 건설에 착수했다. 동시에 리튬-황 배터리 개발도 병행하며 기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SK온: 고분자-산화물 복합계 전고체 배터리를 2027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2029년에 상용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핵심 파트너인 포드와의 기술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타임라인이 경쟁자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퀀텀스케이프와 솔리드 파워는 2025-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 일본의 토요타는 거대 양산 파트너와 함께 2027-2028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K-배터리의 선두 주자인 삼성SDI가 2027년을 목표로 하지만, 미국 선두 기업들보다 1~2년 늦다. 이 시간 격차는 짧아 보이지만, 기술 표준과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 데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들은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의 초기 공급 계약을 독점하고, 기술 표준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정함으로써 후발 주자들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기술적 종속의 위험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아니라,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하되 외국 기업의 기술 라이선스에 의존하는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양산 효율성과 품질 관리 능력을 유지하더라도, 핵심적인 DLE 및 전고체 배터리 원천 기술(IP)에 대한 로열티를 미국과 일본 기업에 지불해야 한다면 수익성과 전략적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이는 곧 한국 배터리 산업이 '배터리 업계의 폭스콘(Foxconn)'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타사의 핵심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고도로 숙련된 제조업체로 남지만, 가치 사슬의 극히 일부 수익만을 가져가는 역할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경쟁 구도는 한국 산업계가 오랫동안 성공 공식으로 여겨온 '초격차(超格差)'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의 제조 역량을 따라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DLE와 전고체 배터리라는 새로운 기술로 산업의 기반 자체를 바꾸어 기존의 초격차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경쟁의 장이 한국의 강점인 '공장'에서, 미국의 새로운 강점인 '연구실과 특허청'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이 표는 경쟁 구도를 한눈에 보여주며,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시간 격차와 경쟁사들의 강력한 동맹 관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 현재의 성공에 안주할 경우, 미래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기술 종속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0] 보이지 않는 전쟁 "차세대 배터리 기술 초크포인트와 한국 경제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미래 그리고 리스크차세대 배터리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은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합성생물학과 같은 파괴적 신기술의 등장은 기존의 초크포인트 위협을 더욱 증폭시키거나, 혹은 역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제공할 수 있는 복합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양자 컴퓨팅 (Quantum Computing)양자 컴퓨터의 막대한 연산 능력은 기존 컴퓨터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던 신소재 개발 및 화학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이는 전고체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할 새로운 고체 전해질이나 음극재 물질을 발견하는 과정을 급진적으로 가속화할 수 있다. 양자 컴퓨팅 기술을 배터리 연구에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적용하는 국가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영구적인 기술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미국 테크 기업들이 양자 컴퓨팅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기존의 기술 초크포인트를 더욱 공고히 하는 '위협 증폭기(Threat Multiplier)'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양자 컴퓨팅이 2035년까지 창출할 경제적 가치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 소재 과학 분야에서의 파급력 또한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AI)인공지능은 이미 다양한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으며 , 배터리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AI는 방대한 소재 데이터를 분석하여 새로운 물질의 특성을 예측하고,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최적화하며, 복잡한 양산 공정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AI 분야에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앞세운 미국의 리더십과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서의 신흥 지배력이 결합될 경우,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AI는 R&D 주기를 단축시켜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미일 기술 동맹의 패권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합성생물학 (Synthetic Biology)이러한 복합적 위협 속에서,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한국이 기술적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잠재적인 '비대칭적 탈출구'를 제시한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체를 공학적으로 설계하고 재구성하여 산업적으로 유용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술이다. 배터리 가치 사슬에 합성생물학을 적용할 경우, 기존의 기술적 난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바이오 채굴 (Bio-mining): 특정 미생물을 공학적으로 설계하여 저품위 광석이나 산업 폐기물에서 리튬과 같은 핵심 광물을 추출하도록 할 수 있다. 이는 지질학적 한계와 미국이 주도하는 DLE 기술 초크포인트를 모두 우회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이다.바이오 소재 (Bio-materials): 미생물 발효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바이오 기반 배터리 부품(예: 바인더, 분리막, 심지어 전해질)을 개발할 수 있다. 이는 석유화학 기반의 현재 소재 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 경로를 개척하여 독자적인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의 전략이 화학적 추출, 무기물 기반 소재라는 '현재의 기술 패러다임' 내에서 초크포인트를 장악하는 것이라면, 궁극적인 대응 전략은 그 초크포인트의 통제권을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초크포인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것이다.합성생물학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더 나은 DLE 공장을 짓는 문제가 아니라, 효모(yeast)에게 리튬을 처리하는 법을 가르쳐 DLE 기술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드는 접근법이다. 미국 '깅코 바이오웍스(Ginkgo Bioworks)'와 같은 선도 기업들의 사례에서 보듯 , 이는 한국이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장기적 전략적 헤지(hedge)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일구고 '초격차'를 외치는 동안, 세계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쓰고 있었다. 더 빨리 달리는 자가 이기는 경주가 아니라, 길목을 선점해 경주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공성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거대한 전환 앞에서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패배의 길이다.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기술 주권이라는 낯설지만 절실한 과제 앞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달려 있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9]"노란봉투법의 검은 그림자...노동자 보호법이 노동자를 죽인다" (CEONEWS=박수남 기자)[CEONEWS=박수남 기자] 정식 명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알려진, 소위 '노란봉투법'은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 담론의 가장 첨예한 중심에 서 있다. 이 법안의 명칭은 쌍용자동차 사태 당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벌인 '노란 봉투 캠페인'에서 유래했다. 법안의 명시적 목표는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노동 활동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것이다.그러나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취약 노동자 보호라는 정당한 열망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률적 설계는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법안이 단순히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통상적인 경제적 비판을 넘어, 한국 노동법의 근간을 급진적으로 변경함으로써 오히려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역설적 도구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 법안이 어떻게 노조 간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하청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장기적인 고용 안정을 침해하고, 궁극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할 것이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9]"노란봉투법의 검은 그림자...노동자 보호법이 노동자를 죽인다" (CEONEWS=박수남 기자)개정안의 법리적·헌법적 해부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법적 정의를 직접적인 고용 계약 관계를 넘어 극적으로 확장한다. 공식적인 고용 계약이 없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시킨다. 이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그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직접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이라는 기준은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이러한 모호성이 기업들을 상시적인 불확실성 상태에 놓이게 하여, 누가 법적 교섭 상대방인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당한 이유 없는 단체교섭 거부가 형사처벌 대상(부당노동행위)이 되는 한국의 법체계 하에서,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될 소지가 있다. 결과적으로 이 법안은 기업 경영자들을 불명확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조선이나 자동차와 같이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산업에서, 하나의 원청은 수백, 수천 개의 하청업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론적으로 원청이 이 수많은 하청업체 노조들과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을 놓고 개별적으로 교섭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법적, 행정적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법적 모호함은 단순히 기술적인 결함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전략적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하청 노조는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하며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려 할 것이다.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원청은 교섭을 거부하고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며 교섭에 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결국 이 법은 노사관계를 명확히 하기보다는, 누가 진정한 사용자인지를 둘러싼 예비적 다툼 자체를 하나의 장기적인 분쟁으로 제도화시킨다. 본질적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산업 현장은 새로운 차원의 갈등으로 마비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법적 불확실성은 '실질적 지배력'의 경계를 정의하기 위한 소송 급증을 예고하며, 이는 법무법인들의 노동 관련 업무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생산적인 기업 활동에서 법적 분쟁 해결로 경제적 자원이 이전되는, 경제 전체의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의미한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9]"노란봉투법의 검은 그림자...노동자 보호법이 노동자를 죽인다" (CEONEWS=박수남 기자)무한한 '쟁의': 경영의 정치화개정안은 '노동쟁의'의 정의에서 '결정'이라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그 범위를 확장한다. 현행법은 합법적 쟁의 대상을 임금과 같은 미래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 불일치, 즉 '이익분쟁'으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개정안은 이미 결정된 권리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다툼인 '권리분쟁'까지 쟁의 대상에 포함시킨다.이러한 변화는 노조가 해고의 정당성이나 단체협약의 해석과 같이 전통적으로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를 통해 해결되던 사안에 대해서도 합법적인 파업을 벌일 수 있게 함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구조조정, 인수합병, 신규 투자, 사업장 폐쇄 등 기존에 경영상 고도의 판단 영역으로 간주되어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었던 핵심적인 경영 결정에 반대하는 파업까지 합법화될 수 있다.찬성론자들은 쌍용자동차 사태와 같이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되었던 비극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 조항이 사실상 노조에게 기업의 핵심 전략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여, 기업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안정적인 사회는 다양한 유형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채널을 가지고 있다. 법적 권리에 관한 다툼은 사법부에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다툼은 협상이나 단체행동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법안은 이러한 구분을 무너뜨린다. 이제 노조는 해고(권리분쟁)에 불복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대신, 합법적으로 파업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법의 지배보다 '힘의 논리' 또는 '자력구제'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법적 정당성이 강한 쪽이 아니라,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쪽이 승리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리스크 계산법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모든 경영 결정이 잠재적인 파업의 도화선이 되면서 극심한 운영 불확실성이 발생하고, 이러한 리스크 프리미엄은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핵심 사업 기능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하여, 법안은 법원이 '부진정연대책임' 원칙 대신 개별 노조원의 구체적인 역할, 가담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도 등을 고려하여 책임을 개별적으로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2023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이 노조나 개별 노동자를 파산시키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을 가진다.찬성론자들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가하는 엄청난 재정적 압박을 강조한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불법 행위의 결과로부터 노조를 사실상 면책시키는 것은 주요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입법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는 유사한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으며, 영국은 손해배상액에 상한을 두면서도 불법 행위에 대한 노조의 재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노동조합주의의 핵심 원칙은 집단적 행동과 집단적 책임이다. 그러나 법안이 개인의 귀책사유를 따지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이 원칙은 근본적으로 균열된다. 불법 파업 이후의 법적 절차는 필연적으로 어떤 개인이나 파벌이 '더 큰 책임'이 있는지를 규명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이는 결국 개인의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조 내부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심지어 조합원들이 서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사태로 귀결될 수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이 조항이 역설적으로 노조를 약화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연대의 붕괴를 조장하고 경영진이 노조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투쟁의 초점은 집단적 교섭에서 개인적 리스크 관리로 이동하며, 노동조합주의의 근간 자체를 흔들게 된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9]"노란봉투법의 검은 그림자...노동자 보호법이 노동자를 죽인다" (CEONEWS=박수남 기자)예기치 못한 희생자들노란봉투법의 사용자 정의 확대는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기존 제도이자 매우 논쟁적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상호작용하며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이 제도는 하나의 교섭 단위 내에 있는 모든 노조가 단일한 교섭대표노조(통상 과반수 노조)를 통해 사용자와 교섭하도록 강제한다.법안이 통과되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안정적인 대규모 원청 노조와, 규모가 작고 불안정하며 이해관계가 판이한 다수의 하청 노조들이 하나의 혼란스러운 교섭 단위로 강제 편입될 수 있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결코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급망 내에서 창출된 가치의 분배를 놓고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관계에 가깝다. 원청 노조는 조합원의 임금 인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반면, 하청 노조는 고용 안정이나 원청과의 계약 조건 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이러한 구조는 극심한 노조 간 갈등, 즉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완벽한 레시피다. 연대를 촉진하기는커녕, 노동자와 노동자를 제로섬 게임의 경쟁자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다수 노조의 의제가 전체 교섭을 지배하게 되고, 소수 노조는 소외되어 그 조합원들의 요구는 묵살될 가능성이 높다.이 법안은 노동계의 힘을 자본에 대항하여 강화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질적이고 경쟁적인 노동 그룹들을 하나의 대립적인 장으로 밀어 넣는 법적 틀을 만듦으로써, 갈등의 방향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리게 된다. 노동운동의 에너지는 경영진과의 협상에 집중되기보다 내부 투쟁으로 소진될 것이다. 이는 결국 파편화되고 비효율적인 노동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외된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서 환멸감이 커지면 전체 노조 조직률과 참여율이 감소하여, 궁극적으로 노동계의 집단적 힘을 약화시키는, 법안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확대된 법적 책임과 다수 노조와의 교섭이라는 혼란에 직면한 원청은 공급망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하청업체 직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더 이상 그 하청업체와 거래하지 않는 것이다.이는 원청이 더 많은 작업을 내부화(insourcing)하거나,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거나, 법적 면책을 제공할 수 있는 소수의 대규모, 자본력이 풍부한 협력업체와만 거래하는 방식으로 공급업체를 통합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역학은 원청의 책임이 강화되는 다른 맥락에서도 관찰된 바 있다."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는 중소 하청업체들의 연쇄적인 도산과 폐업이다. 이 주변부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즉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가장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으며, 법안이 보호하고자 했던 바로 그 집단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이 법안은 안정적인 노동자와 불안정한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중소 하청업체라는 '중간 지대'를 너무 위험하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그 시장 자체를 파괴한다. 그 결과는 '아령형' 노동시장이다. 한쪽 끝에는 원청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파산한 하청업체에서 밀려난, 실업 상태의 거대한 노동자 풀이 존재하는 구조다. 이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내부자(insiders)'의 지위를 '외부자(outsiders)'의 희생 위에서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다빈번하고 확대된 노동쟁의는 기업의 건전성에 부식 효과를 미친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다. 생산 손실, 기업 평판 손상, 고객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초경쟁적인 글로벌 시장에서 이는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지속적인 경쟁력 하락은 필연적으로 기업이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보다 안정적인 환경으로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단행하도록 만든다. 일본, 독일, 미국 등 경쟁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한국의 노동쟁의 일수는 이미 주요 투자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파업 우선' 환경의 장기적인 결과는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 기반 자체의 침식이다. 구조조정 계획을 둘러싼 분쟁에서 '승리'한 노동자들은 몇 년 후 일할 회사가 사라진 현실에 직면할 수 있다. 장기화되는 파업 자체도 참여 노동자들에게 즉각적인 임금 손실과 극심한 고용 불안을 초래한다.파업은 사용자에게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는 신뢰할 만한 위협에서 그 힘을 얻는 지렛대다. 그러나 이 도구가 남용되거나, 기업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목표(예: 필수적인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사용된다면, 이는 자본과 노동이 나누어야 할 미래 가치의 원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그 힘은 결국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역학은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 주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투자를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세수는 감소하며, 국가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이 훼손된다. 따라서 이 법안은 소수를 위한 단기적인 전술적 이득을 위해 모두를 위한 장기적인 전략적 손실을 감수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박수남의 폴리코노미 9]"노란봉투법의 검은 그림자...노동자 보호법이 노동자를 죽인다" (CEONEWS=박수남 기자)글로벌 선례와 경고미국 노동관계법(NLRA) 하에서의 '공동 사용자(joint employer)' 독트린을 둘러싼 논쟁은 강력한 사례 연구를 제공한다. 이 기준은 좁은 의미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통제' 테스트와,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넓은 의미의 '간접적 통제' 또는 '유보된 권한' 테스트 사이를 오가며 극심한 혼란을 야기했다.이러한 기준의 변동은 엄청난 불확실성을 낳았다. 학술 및 법률 분석에 따르면, 특히 한국의 원·하청 구조와 유사한 프랜차이즈 모델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프랜차이즈 본사(franchisor)는 법적 책임을 우려하여 가맹점(franchisee)에 대한 통제를 줄이거나(브랜드 품질 저하 위험) 늘려야(공동 사용자 지위 촉발) 하는 '홉슨의 선택'에 직면했고, 이는 전체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했다.경제정책연구소(EPI)와 같은 지지자들은 더 넓은 기준이 실질적인 경제력을 가진 주체를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어 노동자의 임금과 교섭력을 높인다고 주장하지만 , 비판론자들은 이것이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고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반박한다. 미국 경험의 핵심 교훈은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는 데 간단하고 비용 없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심각하고 종종 부정적인 경제적 결과를 동반하는 복잡한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1980년대, 프랑스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노조를 광범위하게 면책하는 법률을 제정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헌법위원회는 이 법안이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조치라며 기각했다. 이는 직접적인 헌법적 경고 신호다.영국은 전면적인 면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되, 노조의 규모에 따라 배상 책임의 상한선을 설정한다. 이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대표한다. 즉,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보장하면서도 손해배상 소송이 노조를 파산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는 권리와 책임이 공존해야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독일은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사용자' 정의의 모호한 확장을 통해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파견 및 임시직 노동에 대한 고도로 규제된 법적 프레임워크를 통해 다룬다. 이는 파견업체와 사용업체 양측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여 법적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노란봉투법 지지자들은 암묵적으로 한국의 '법적 예외주의'를 주장하며, 다른 선진 경제권보다 훨씬 급진적인 프레임워크를 채택하려 한다. 그러나 비교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유럽의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노사관계는 끝없는 모호함과 갈등의 제도화가 아닌, 명확성, 균형, 그리고 구조화된 규제라는 원칙 위에 세워져 있다. 이러한 국제적 교훈을 무시함으로써, 법안은 한국을 노동법 체계에서 세계적인 특이점(outlier)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이는 주한 외국상공회의소들이 지적했듯이 ,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투자처로서의 한국의 명성을 더욱 훼손하고, 국제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증시를 부양한다며 미비한 정책으로 혼선을 빚은게 바로 최근이다. 노란봉투법은 그 결과가 더욱 심각하고 치명적일것임이 충분히 예상된다, 표 밭에서 방실거리는 정치권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