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넘어 종합식품기업 일구는 CEO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CEONEWS=조성일 기자] 프라이드이든 도리탕이든 닭 요리를 먹을 때 원재료인 닭에 관해 묻고 따지지도 않는 브랜드가 있다. ‘하림이다. 하림은 닭 요리의 연관검색어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고품질의 대명사다. 이런 하림은 축산, 사료, 해운, 유통 판매, 식품 제조업까지 아우르며 총매출이 8조 원, 총자산 11.9조 재계 순위 26위에 랭크되는 그룹(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한때 잘 나가던 금호와 함께 호남을 대표 하는 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룹의 종합식품기업위상이 흔들리면서 재계의 이목은 김홍국 회장에게로 쏠린다. 김 회장은 과연 이 부진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프리미엄 브랜드 더미식부진

 

성장을 거듭하던 하림그룹이 주춤한 건 아무래도 지난해 있었던 국내 최대 선사 HMM(옛 현대상선)의 인수에 실패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하림은 그룹 매출 1위의 계열사로 벌크 전문 선사인 팬오션을 갖고 있던 터라 HMM의 인수는 그룹 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 수 있길 기대했다. 해서 워크아웃 중인 HMM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하림은 역시 인수 의사를 밝힌 동원그룹을 꺾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인수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7주간에 걸친 협상에서 난항을 거듭했다. 특히 매각 측은 실질적인 경영권은 담보해 주지 않으면서 최대 주주 지위만 갖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하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하림의 고전엔 야심 차게 내놓은 프리미엄 즉석식품 더미식의 부진도 한몫했다. 더미식은 같은 첨가물을 넣지 않은 즉석식품으로 가격을 기존 제품보다 두 배나 비싸다. 가장 먼저 시장에 론칭한 장인라면은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고 사골과 소고기, 닭고기 등 육류 재료와 버섯, 양파, 마늘 등 양념 채소를 20시간 이상 끓인 제품이라는 콘셉트로 차별화했다. 이어 만두와 비빔면 등 상품군도 다양화했다.

김홍국 회장은 더미식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출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진심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이런 적극적인 추진력에 힘입어 장인라면은 매출 목표 15천 원을 향해 순항하는 듯했다. 출시 두 달 만에 500만 봉이 팔렸을 정도다. 하지만 고물가에 시달리던 소비자들의 마음이 돌아서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THE미식 장인라면'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셰프 복장을 하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THE미식 장인라면'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셰프 복장을 하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위기 탈출

 

그런데도 김홍국 회장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신념으로 신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대표적인 포트폴리오가 길거리 음식을 표방한 스트릿푸드 전문 브랜드 멜팅피스와 어린이식 브랜드 푸디버디.

이 사업의 시장 상황은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지는 못하지만 대내외적 환경이 좋아지면 당연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한다.

김홍국 회장은 되레 공격적인 경영을 한다. 위기라고 팔짱만 끼고 있다간 그동안 쌓은 공든탑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 회장은 나름대로의 위기 타개 방안은 제시한다. 김 회장의 전략은 그룹 차원에서 식품 온라인 유통플랫폼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거다. 이 유통플랫폼은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하고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한 HMR 제품 개발 및 면류·즉석밥 등 식탁에 오르는 모든 식품을 생산·판매하겠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식품 온라인 유통 사업, 스마트그린물류·복합유통사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해 나가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렇게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굴지의 그룹을 일군 신화와 지금의 위기가 공존하는 하림은 김홍국 회장의 인문학적 경영철학처럼 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숨을 돌리고 쉴 수 있는 숲처럼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휴식을 주는 기업[夏林]”이 되려고 노력한다.

 

양계장에서 닭을 들고 있는 김홍국 회장.
양계장에서 닭을 들고 있는 김홍국 회장.

 

닭에 의한, 닭을 위한, 닭의 CEO

 

김홍국 회장의 하림그룹을 일군 서사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무척 크다.

하림의 시작은 김 회장이 열한 살 때인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에게서 선물 받은 병아리 열 마리에서 비롯됐다. 그 열 마리는 김 회장의 나이 열여덟 살에 닭 5천 마리, 돼지 7백 마리로 불어난 큰 농장이 되었다.

그러자 김 회장은 인문계 진학을 원하던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여 양계와 축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부모님의 승낙을 받으려고 가출까지 했던 김 회장의 결재를 받으려고 직원들이 교실 밖에서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일화는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을 서사다.

병아리 키우는 일이 너무 재밌다는 김홍국 회장은 종계사육장 황동농장으로 확장된다. 이 황동농장이 하림의 실질적 모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이런 성장을 시샘하듯 1982년 전국을 강타한 전염병으로 닭값이 폭락한다. 이때 김 회장은 슈퍼마켓에서 돼지 가격은 폭락해도 소시지값이 그대로인 걸 보고 1차 산업의 한계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 회장은 1986년에 하림을 설립한다. 닭고기의 질과 이윤 극대화를 구조적으로 보장받으려면 사육, 가공, 유통을 수직계열화한 통합경영이라는 결론이 이르렀던 거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2003년 화재로 공장이 전소하는가 하면 조류독감까지 유행했다. 그때 김 회장은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뚝이처럼 일어나 비위생적인 환경을 문제 삼아 수입을 금지하던 미국에 삼계탕을 수출하면서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한다.

이후 김 회장은 팬오션 인수를 비롯하여 여러 회사를 인수하여 진용을 갖추어 오늘의 하림그룹으로 거듭났다.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김홍국 회장은 진심을 다해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롤 모델이 되었다. 아마도 자수성가로 성공한 김 회장은 지금의 위기도 더 높이 날기 위한 디딤돌로 만들 거다.

하림그룹 사옥.
하림그룹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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