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말하는 진실...한국의 예대금리차는 '낮다'
예대금리차 확대의 진짜 원인... 정책 혼선이 만든 딜레마
한국 예대금리차 추이...2025년 5월 재확대 전환
민병덕 의원 은행법 개정안의 치명적 한계
성공 사례에서 찾은 해법...대환대출 시스템의 전면 확대
포퓰리즘을 넘어선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CEONEWS=박수남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해외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예대금리차가 벌어져 있는 것 아니냐"며 은행권을 향한 우려를 표명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 같은 문제 제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바로 사실관계에 대한 사전 검증 없이 정치적 판단을 앞세웠다는 점이다.
2025년 7월 현재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한국의 예대금리차는 주요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의 확대 추세 역시 은행의 '폭리'가 아닌 정책당국의 혼선된 신호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잘못된 진단을 바탕으로 한 민병덕 의원의 은행법 개정안이 오히려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한국의 예대금리차는 '낮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공식 통계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의 예대금리차는 국제적으로 매우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20년 말 기준 한국의 예대금리차는 1.89%포인트로, 같은 시기 미국(3.16%p), 스위스(3.01%p), 홍콩(4.94%p), 싱가포르(5.07%p)보다 현저히 낮았다
- 주요국 예대금리차 비교... 한국은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 유지 -
2025년 4월 기준으로도 이 같은 격차는 더욱 벌어져, 한국이 1.35%p를 기록한 반면 미국은 5.75%p, 홍콩 5.05%p, 싱가포르 5.13%p를 보였다34. 국내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025년 4월 평균 예대금리차는 1.35~1.53%p로, 전 세계 어떤 주요국과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수준이다.
순이자마진(NIM) 기준으로도 한국 은행권의 수익성은 과도하지 않다. 국내 4대 은행의 평균 NIM은 1.57%로 미국 주요 은행(2.4%)보다 0.83%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 은행들이 '이자 장사'를 통한 과도한 수익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객관적 증거다.
예대금리차 확대의 진짜 원인... 정책 혼선이 만든 딜레마
그렇다면 왜 예대금리차가 확대됐을까?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은행의 탐욕' 이론은 데이터 분석 결과 근거가 취약하다. 실제 원인은 금융당국과 정부의 상충된 정책 신호에 있다.
한국 예대금리차 추이...2025년 5월 재확대 전환
2024년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속 인하했지만, 동시에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강화를 주문했다. 이는 은행들에게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출 수요를 억제하려면 대출금리를 높여야 하는데, 기준금리 인하는 대출금리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은행들은 가산금리 조정을 통해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예대금리차가 확대된 것이다.
특히 2024년 8월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급증에 따른 당국의 대출 억제 지침이 내려지면서, 은행들은 가산금리 인상을 통한 수요 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기준금리가 하락했음에도 대출금리가 충분히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런 정책적 배경 때문이다.
민병덕 의원 은행법 개정안의 치명적 한계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은 가산금리에서 법정 비용을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세, 예금자보호료, 각종 기금 출연금 등을 대출금리 산정에서 배제해 금융소비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개정안의 실효성은 의문이다. 2024년 한국은행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했음에도,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2024년 9월 3.85%에서 2025년 4월 3.95%로 오히려 상승했다. 이는 법정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은행들이 다른 가산금리 항목이나 우대금리 축소를 통해 수익을 보전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금융 생태계의 왜곡 가능성이다.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 고신용자 중심의 여신 포트폴리오로 전환할 경우, 중저신용자나 소상공인들의 대출 접근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사례에서 보듯, 인위적인 금리 억압은 결국 금융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공 사례에서 찾은 해법...대환대출 시스템의 전면 확대
진정한 해법은 이미 검증됐다. 2023년 5월부터 시행된 대환대출 플랫폼의 성과가 그것이다.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1년간 20만 명의 소비자가 총 10조 원 규모의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했다. 평균 대출금리는 1.52%포인트 하락해 1인당 연간 162만 원의 이자 부담 절감 효과를 거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장 경쟁을 통한 자연스러운 금리 인하였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이용자는 평균 1.49%포인트의 금리 인하로 연간 273만 원의 이자 부담을 줄였다. 이는 정부의 강제적 개입 없이도 플랫폼을 통한 투명한 금리 비교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사례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리파이낸싱 활성화를 통해 연간 53억 달러(약 7조 원)의 가계 부담 절약 효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의 오픈뱅킹 정책 역시 금융 데이터 공유와 비교 플랫폼 구축을 통해 자연스러운 금리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포퓰리즘을 넘어선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문제의 본질은 정치적 프레임에 있다. 은행을 '사자', 금융소비자를 '사슴'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금융 생태계의 복잡성을 무시한다. 금융시장은 상호 연관된 시스템으로, 한 부문에 대한 인위적 개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다.
실질적 대안은 명확하다. 대환대출 시스템을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고, 금융사 간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강제적 금리 규제가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오픈뱅킹의 성공 사례처럼, 금융 데이터의 개방과 플랫폼 기반 서비스 확산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연스러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계산이 아닌 경제적 합리성에 기반한 정책 방향이다.
금융정책은 국민의 경제적 건강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단기적 정치적 효과를 노린 포퓰리즘적 접근보다는, 시장의 자율적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 금융 부담 완화를 원한다면, 검증된 시장친화적 해법에 주목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