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의 함정'
해외 사례의 진실
선택의 갈림길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5]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4]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② "외국인 가사 도우미 '바닥을 향한 경주'...대만의 경고와 일본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5]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4] '간병 살인' 시대...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 ② "외국인 가사 도우미 '바닥을 향한 경주'...대만의 경고와 일본의 딜레마"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저비용의 함정은 본래 경영 전략과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기업이나 산업이 단기적인 저비용 우위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품질 개선, 기술 혁신, 인적 자본 투자 등 장기적인 경쟁력의 원천을 등한시하게 되어 결국 저부가가치 상태에 고립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눈앞의 비용 절감에만 매몰되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상실하는 전략적 실패다. 예를 들어, 도요타 생산 시스템(TPS)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카이젠(改善)으로 대표되는 지속적인 개선 활동과 인재 육성을 통해 고품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저비용의 함정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돌봄 경제에 저비용 외국인 인력을 도입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함정으로 빠져드는 경로가 될 수 있다.

돌봄 분야의 악순환 메커니즘

저비용 전략은 돌봄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치명적인 악순환을 유발하며 시스템 전체를 저하시킨다.

품질 저하

돌봄은 단순한 상품이나 기계적인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간의 신뢰와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적 노동'이다. 서비스의 질은 돌봄 노동자의 전문성, 동기, 심리적 안정감, 그리고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직결된다.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 불안정한 고용 상태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동기를 저하시키고 이직률을 높인다. 이는 돌봄 관계의 단절로 이어져 서비스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으로 고용할 경우,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낮은 직업 만족도가 겹쳐 질 낮은 돌봄으로 귀결될 위험이 매우 크다.

시장 왜곡과 '바닥을 향한 경주'

정부가 법적으로 더 낮은 임금의 노동 시장을 허용하면, 이는 기존 국내 돌봄 노동 시장에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일부에서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프리미엄 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대만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났듯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유입은 해당 직종 전체의 임금 수준과 사회적 인식을 끌어내려 내국인 노동자들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돌봄 시장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 시장'과 소수만을 위한 '고비용 프리미엄 시장'으로 양극화되고, 보편적인 양질의 돌봄은 사라지게 된다. 이는 노동 시장 전체를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로 이끄는 것이다.

혁신 동력 상실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때, 기업과 정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이나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에 투자할 유인을 잃게 된다. 현재 일본은 높은 인건비 부담이라는 제약 속에서 돌봄 로봇, IT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효율적인 재가 돌봄 모델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위기를 기술 혁신과 시스템 개선의 기회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반면, 한국이 저비용 인력 도입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면, 이러한 혁신의 동력은 사라지고 기술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낙후된 저부가가치 산업 구조에 갇히게 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 절하의 고착화

정책은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국가가 특정 노동(돌봄)에 대해, 그것도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정책을 편다면, 이는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비전문적이고 낮은 가치의 일"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제도적으로 공인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돌봄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하여 미래에 유능한 인재들이 이 분야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공공 투자를 축소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저비용의 함정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문제를 야기한다. 초기에 저비용 인력 도입이라는 '쉬운 선택'을 하면, 값싼 돌봄에 의존하는 가계와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 중개 기관 등 새로운 이해관계자들이 형성된다. 이들은 향후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공공 서비스 확대 등 비용을 증가시키는 모든 개혁에 저항하는 강력한 정치적 압력 집단이 된다. 시스템은 저품질-저임금 균형 상태에 '고착(locked-in)'되고, 처음에는 가능했던 '올바른 선택'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이는 대만에서 이미 현실화된 경로다.

이러한 정책적 오류는 돌봄 노동의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고숙련 내국인 인력이 '저생산성' 부문인 돌봄에 투입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시간당 산출량을 기준으로 하는 제조업적 생산성 개념을 인간 서비스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돌봄의 '생산성'은 속도가 아니라 질, 신뢰, 관계 형성, 그리고 돌봄을 받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 증진이라는 결과로 측정되어야 한다. 시간당 비용이라는 단일 잣대로만 효율성을 판단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돌봄의 본질적 가치를 파괴하고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해외 사례

외국인 돌봄 인력 정책을 둘러싼 한국의 고민은 이미 여러 국가가 거쳐온 길이다. 각국의 경험은 우리가 선택할 경로의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생생한 거울과 같다. 특히 대만과 일본의 상반된 접근 방식은 '저비용의 함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대만의 경고…현실이 된 저비용의 함정

대만은 1990년대부터 저비용 모델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노동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저임금에 기반한 재가 돌봄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는 한국 사회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내국인 노동 시장의 붕괴: 저임금 이주노동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내국인 돌봄 노동자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2017년 기준, 노인 돌봄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24만여 명에 달하는 반면, 대만인은 4만 2천 명에 불과해 외국인력이 내국인력을 6대 1의 비율로 압도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인력 보충이 아닌, 완전한 '대체' 현상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의 고착화: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내국인 간병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 하루 평균 10.5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39.5%는 한 달에 단 하루의 휴일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적으로 용인된 착취 구조다.

공적 돌봄 시스템 발전 저해: 언제든 값싼 사적 돌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보편적이고 질 높은 공적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정치적 동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대만은 이주 여성의 희생에 기반한 불안정한 사적 돌봄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국가 돌봄 체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족쇄가 되었다.

일본의 실험…권리 기반의 품질 중심

이와는 정반대로, 일본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기반한 권리 중심적 접근을 택했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 요양보호사에게 일본인과 완전히 동일한 임금과 노동법의 보호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돌봄의 질' 확보다. 이를 위해 높은 수준의 일본어 능력과 요양보호사 국가자격 취득을 요구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 원인이 '동일임금'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인에게조차 돌봄 노동이 다른 직종에 비해 노동 강도는 높고 임금과 사회적 지위는 낮은, 매력 없는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외국인력 도입이 돌봄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히려 일본의 사례는, 모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여 직업 자체의 매력도를 높이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지속가능한 인력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독일의 복잡성… 통합과 시스템의 한계

독일은 잘 갖춰진 공적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기반으로 전체 돌봄 인력의 15~20%를 외국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 역시 외국인력 도입이 간단한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독일 시스템은 일관된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다양한 문화적·언어적 배경을 가진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며,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돌봄 공백을 막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단순히 인력을 수입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관리하며 기존 시스템에 통합시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정책 설계가 동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 세 국가의 사례는 한국이 서 있는 정책적 갈림길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바로 '통합(Integration)' 모델과 '분리(Segregation)' 모델 사이의 선택이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를 기존 노동 시장에 동일한 규칙으로 '통합'하는 길을 택했다. 비록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는 돌봄 직업의 가치를 지키고 품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반면, 대만은 외국인 노동자를 권리와 임금이 더 낮은 별도의 시장에 '분리'시키는 길을 택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가계의 비용 문제를 해결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착취적이고 질 낮은 시스템을 고착시키고 공공 부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외국인력은 기존 돌봄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시스템의 근본적인 강점과 약점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확성기'와 같다. 일본의 문제는 돌봄 노동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 독일의 문제는 시스템의 분절성, 대만의 문제는 시장 중심의 사유화다. 외국인력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키거나 명확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한국이 자국의 돌봄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돌봄 노동의 가치 절하와 공공성 부족—를 먼저 해결하지 않는다면, 외국인력 도입은 위기를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바로 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저작권자 © 씨이오데일리-CEODAILY-시이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