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예견된 참사... 550억 달러 투자와 18% 비자 승인율의 악순환
숫자로 드러난 구조적 함정... 현대차가 빠진 '미국인 고용' 정책의 역설
딜레마의 본질... '첨단 산업 부활'과 비자 시스템의 불가능한 공식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7] 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예견된 참사...투자유치와 비자 장벽의 모순 (CEONEWS=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7] 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예견된 참사...투자유치와 비자 장벽의 모순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공장의 가동에 필수적인 숙련 인력의 입국은 가로막는 모순적인 정책으로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현대차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의 대규모 이민 단속 사태는 개별 기업의 일탈이라기보다, 미국 정부가 스스로 설계한 '구조적 함정'의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본 유치를 위해 내민 '당근'과 이민 규제라는 '채찍'이 충돌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강제된 실책(Forced Errors)'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예견된 참사:...550억 달러 투자와 18% 비자 승인율의 악순환

최근 미국 남부 '배터리 벨트'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 산업 정책의 근본적인 균열을 드러낸다. 조지아주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 단속은 그 정점이다. 당시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구금됐다. 이들은 대부분 단기 상용 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해 건설 및 설치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미국법상 명백한 위반이다.

그러나 업계는 "예견된 참사"였다고 항변한다.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한 촉박한 공장 완공 시한을 맞추려면 현대차 본사의 숙련된 기술자 투입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장기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취업 비자(H-1B)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H-1B 비자는 매년 무작위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하며, 2025년 기준 합격률은 18.1%에 불과하다. 즉, 자격을 갖춘 5명의 엔지니어 중 4명 이상이 서류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탈락하는 구조다.

미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IRA 시한을 지키라며 기업을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일한 해결책인 인력 이동을 비자 장벽으로 차단한 뒤, 결국 불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을 단속하는 모순을 연출한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실패(보조금 상실)와 비자법 위반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타기를 강요당한 것이다.

숫자로 드러난 구조적 함정...현대차가 빠진 '미국인 고용' 정책의 역설

미국의 정책적 모순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IRA와 반도체법 시행 이후 삼성, 현대차, SK, LG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액은 550억 달러(약 75조 원)를 넘어섰다. 미국은 이 투자를 통해 자국 내 공급망을 재편하고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거대한 투자를 실행할 '사람'에 대한 문은 걸어 잠갔다. 앞서 언급했듯 H-1B 비자 추첨 탈락률은 80%를 상회한다. 주재원 비자(L-1) 역시 강화된 심사 기준으로 인해 추가 서류 요청(RFE) 비율이 25%에 육박하며, 승인까지 수개월이 소요돼 긴급한 공정 투입에 부적합하다.

이러한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한국 정부와 재계는 10년 넘게 '한국 전문직 비자 쿼터 법안(Partner with Korea Act)' 통과를 위해 노력해왔다. 연간 1만 5천 개의 전문직 비자(E-4)를 신설하자는 이 법안은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상호 조치로 여겨졌으나, 반이민 정서와 정치적 무관심 속에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필요에 의해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운영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데는 극도로 인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 딜레마의 본질... '첨단 산업 부활'과 비자 시스템의 불가능한 공식

이러한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배경에는 '미국인 고용(Hire American)'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함몰된 정책적 오판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이 기조는 외국인 숙련 노동자를 미국인 일자리의 경쟁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는 첨단 제조업의 현실을 외면한 진단이다.

반도체 팹이나 배터리 공장의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 현지 인력이 보유하지 못한 독점 기술과 공정 노하우 전수가 필수적이다. 즉, 현대차 엔지니어는 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 노동자를 훈련시켜 미래의 미국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외국인 전문가의 입국을 막는 것은 당장의 공장 가동을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내 기술 축적과 인력 양성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자해 행위다.

H-1B 비자 거부율이 24% 이상으로 치솟았을 때, 많은 미국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오히려 캐나다 등 해외로 일자리를 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호주의적 이민 정책이 의도와 달리 자국 산업 경쟁력만 약화시킨 전례가 있다.

결국 미국은 '첨단 산업 부활'이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모순에 빠진 형국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집행하면서도 핵심 인력을 파견하지 못해 좌초할 위기에 처했고, 미국 정부는 자신이 만든 정책적 실패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고 있다. 이 불가능한 방정식을 풀기 위한 미국의 정책적 각성과 전향적인 비자 시스템 개혁 없이는, '미국 리쇼어링' 전략의 성공은 요원해 보인다.

저작권자 © 씨이오데일리-CEODAILY-시이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