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경영권 승계 구도와 재무전략
[CEONEWS=이재훈 기자] 한국의 5대 그룹 중 하나인 롯데그룹이 3세 경영 시대를 준비하면서 재무 건전성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으로부터 현 신동빈 회장, 그리고 그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신 회장은 최근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강도 높은 재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전문지 스타일로 롯데가(家)의 경영 승계 구도와 재무 대응 방안을 정리한다.
롯데그룹 가계도: 창업주부터 현재 경영진까지
신격호(1922~2020):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명예회장. 한·일 양국에서 롯데를 식품, 유통, 관광 중심의 대기업으로 일군 인물이다. 말년에는 장남과 차남 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으며 2020년 별세했다.
신동주(1954년생): 신격호 창업주의 장남.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나, 2015년 신동빈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나 현재는 일본에서 독자 경영 노선을 걷고 있다.
신동빈(1955년생): 창업주의 차남으로 현 롯데그룹 회장이다. 미국 유학과 일본 노무라증권 근무 후 1988년 롯데에 합류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11년 롯데그룹 회장에 올라 한일 롯데 경영을 총괄했고, 형 신동주와의 갈등을 정리하며 그룹의 확고한 총수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주력 사업 부진으로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안정적 승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호텔롯데 상장 등의 과제를 추진 중이다.
신유열(1986년생): 신동빈 회장의 장남으로 롯데그룹 3세 후계자다. 일본에서 성장해 202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으로서 바이오 등 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이끌고 있으며, 2024년 말 임원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일본 국적(시게미츠 사토시)을 유지해왔으나 만 38세를 넘긴 올해 병역 의무가 해소됨에 따라 한국 국적 취득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신동빈 회장이 과거 만 41세에 귀화해 이듬해 부회장으로 승진했던 전례를 따르는 행보로, 향후 신유열 부사장의 경영 전면 부상이 점쳐진다.
신유열 부사장의 현재 직책과 승계 전망
신유열 부사장은 현재 그룹 지주회사인 롯데지주에서 미래성장실장을 맡아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동시에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으로서 롯데가 미래 핵심 사업으로 낙점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1986년생인 그는 Nomura증권 등 외부 금융회사 근무를 거쳐 일본 롯데상사와 롯데케미칼 등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이는 부친 신동빈 회장의 젊은 시절 경영수업 경로와도 유사하다. 그룹 내부에서는 신 부사장이 국내외 주요 사업현장에 부친을 수행하여 참석하고, 해외 파트너들과의 미팅에 동행하는 등 사실상 후계자 수업에 한창인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유열 부사장이 향후 몇 년 내 한국 국적으로 전환하고 그룹 핵심 보직에 오르면서 3세 경영 승계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공식적으로 롯데지주는 “아직 승계 작업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신유열 부사장의 지분도 매우 미미한 수준(롯데지주 지분 0.02% 보유)임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신 부사장은 최근에서야 롯데지주 주식을 처음 매입해 영향력을 넓혀가는 단계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신동빈 회장이 전문경영인들과 함께 그룹을 이끌고, 신유열 부사장은 신사업 성과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며 차츰 경영 보폭을 넓힐 전망이다. 롯데는 이미 지주사-계열사 체제를 구축해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CEO)이 맡고 그룹 전략은 오너가 조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유열 부사장 역시 향후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지주사 등기임원에 선임되고, 부친으로부터 지분 승계를 받는 수순을 밟으면서 현 경영진과 조화를 이루는 공동 경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경영 공백이나 내부 혼선을 최소화하면서 3세 경영으로 부드럽게 이행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와 대응 전략
한편 롯데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직면하며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그룹 근간인 유통 부문의 수익성 악화가 맞물리며 그룹 전반의 부채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글로벌 금리 상승과 내수 침체 등 경영 환경까지 겹치자, 일부에서 롯데그룹의 신용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신동빈 회장은 올해 초 사장단 회의에서 “지금이 변화의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위기를 대혁신의 계기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신년사에서도 그는 “고강도 쇄신”을 언급하며 재무 건전성 강화에 그룹의 사활을 걸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동성 확보와 부채 축소를 위해 롯데그룹은 현재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중장기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은 미련 없이 접고 유휴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비축하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롯데는 비핵심 사업과 자산을 처분해 왔다.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니티에 차량임대 계열사인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6000억원에 매각했고, 신성장 사업으로 출범시켰던 롯데헬스케어는 수익성 부진으로 설립 3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또한 재무 위험의 진원지로 지목된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조기 상환 리스크를 해소하고자 그룹 상징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여 4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조달했다. 아울러 해외 자회사 지분을 활용해 약 1조3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확보, 총 5조원대의 유동성을 마련하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했다.
이와 함께 롯데는 호텔롯데를 중심으로 자산 유동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국내 L7 호텔과 롯데시티호텔 일부 지점 매각을 추진해 약 6000억원의 현금 확보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L7 명동점과 홍대점, 울산롯데시티호텔 등이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며, 여행 수요 회복으로 호텔 자산 가치가 상승한 시점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나아가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 역시 꾸준히 검토되고 있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 측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한 비상장사로,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계 지분을 희석하고 롯데지주 편입을 추진함으로써 한일 롯데 간 복잡한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구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다. 그러나 호텔롯데 IPO는 2015년 그룹 비리 사태 이후 수차례 연기되었고, 코로나 여파로 관광사업 실적이 부진하면서 10년 넘게 숙제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2025년에도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롯데=일본 기업”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불식시키고 투명경영 이미지를 회복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신동빈 회장은 이같은 자구노력을 통해 연내 그룹 부채비율을 낮추고 신용등급을 방어하는 한편, 미래 투자여력을 확보함으로써 위기 극복과 승계 준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를 그리고 있다. 잇따른 재무 구조 개선 조치에 시장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뚝심있는 결단으로 그룹의 체질을 바꾸려는 신 회장의 움직임은 분명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롯데그룹은 대대적인 사업 재편과 재무개선을 바탕으로 3세 경영 승계를 안정적인 환경에서 실현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는 곧 신유열 부사장 체제로의 연착륙을 뜻하며, 롯데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