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민영 기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정상을 달리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며 천문학적인 지원을 쏟아붓고 있고, 일본과 대만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정부는 ‘K-칩스법’이라 불리는 세제 지원책과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며 경쟁에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과연 이러한 정책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실효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냉정히 따져보면 정부의 지원책은 겉보기에 그럴싸하지만 실제 효과는 의문스럽다. 다음 네 가지 측면에서 한국 정부 반도체 정책의 현실성을 짚어본다.
세제 혜택만으로 충분한가?
정부는 반도체 기업들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K-칩스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중견기업의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0%로, 중소기업은 25%에서 30%로 올리는 내용이다. 일견 큰 폭의 인센티브로 보이지만, 정작 업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최대 25%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직접 보조금도 병행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직접 보조금 대신 간접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소한 25% 이상은 돼야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결국 20% 타협안에 그쳤다.
문제는 세제 지원이 실질적인 현금 흐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이다. 세액공제는 기업이 이익을 내어 세금을 낼 때만 혜택이 발생하는 간접 지원이므로,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면 혜택은 하락하게 마련이다. 업계에서는 “한국만 여전히 직접 보조금 지원을 꺼리고 있다”며 보다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지원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돈 쏟아붓는 경쟁국 vs 세제에 의존하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국가 재원을 투입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CHIPS Act를 통해 반도체 공장 투자 시 최대 25% 세액공제와 현금 보조금을 제공하며, 중국은 자국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정부 주도의 보조금 정책을 펼친다. 일본과 대만 역시 자국 기업의 R&D 지원과 인프라 구축에 수십조원대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지원 규모는 확연히 작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을 지정하면서도, 직접 보조금은 배제한 채 세제 혜택 등 간접 지원에 치중하고 있다. 그 결과, 글로벌 전쟁터에서 한국 기업들만 맨몸으로 투자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업 VS 정부 엇갈린 이해관계와 미스매치
정치권과 정부는 반도체 육성을 외치면서도, 현장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지원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규제 완화와 직접 지원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 문제는 오랜 기간 쟁점이 되어왔으나, 결국 정치권의 갈등으로 해결되지 못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규제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또한, 기업들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현금 지원 및 인프라 직접 구축을 원하지만, 정부는 세제감면 위주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지원해준다더니 실제로는 규제 그대로, 혜택은 그림의 떡”이라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와 기업 간의 정책 미스매치는 결국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K-칩스법’의 현실성과 한계
‘반도체 특별법’은 이름만큼 특별한 효과를 기대했으나, 실상은 반쪽짜리 대책에 머물러 있다. 우선, 법안 심사의 핵심인 주 52시간제 특례 조항이 빠지면서 규제 완화 효과가 반감되었다. 이와 동시에, 세제 혜택 확대는 투자 촉진 효과가 제한적일 뿐, 시장 전망과 정책 일관성 등 종합적 고려 요소를 감안하면 단기적 인센티브에 그친다.
또한, 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종합성 부족 역시 문제다. 단기 세제 혜택 확대만으로는 반도체 공장 증설이나 R&D 투자 유도를 담보하기 어려우며, 핵심 인프라 지원, 인력 양성, 그리고 공급망 안정 등 장기 전략은 아직 미흡하다. 정작 글로벌 경쟁국들은 국가 주도의 종합 패키지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정책 방향 전환에 실패하고 있다.
냉정한 평가와 과감한 변화 필요
현재 한국 정부의 반도체 특별법 추진은 글로벌 패권 전쟁터에서 내놓은 ‘미봉책’처럼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의 희망적인 수사는 있지만, 정작 기업들이 체감할 만한 실질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글로벌 시장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반도체 패권 전쟁의 시간표는 정치권의 늦은 걸음보다 훨씬 빠르다.
과감한 정책 보완과 규제 완화, 그리고 기업과 정부가 일치된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 한, 한국은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관전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실질적, 직접적인 지원과 초당적 협력으로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할 때이다.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