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D-테슬라 양강 속 현대차의 승부수
[CEONEWS=이재훈 기자]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약 1,400만 대로 전체 승용차의 18%를 차지했고, 2024년에는 1,700만 대를 넘어 신차 5대 중 1대는 전기차가 될 전망이다. 판매 증가율만 35%에 달할 만큼 시장 파이는 커졌지만, 그 이면에서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BYD와 미국 테슬라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며 양강 구도를 형성했고, 한국 현대자동차는 추격자 입장으로 분투하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기준 BYD는 세계 전기차의 약 23.4%를 판매해 1위를 달렸고, 테슬라는 11%로 내려앉았다. 두 업체가 전세계 전기차의 3분의 1 이상을 팔아치우는 사이, 폭스바겐이나 GM 같은 전통 강호들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은 같은 기간 약 37만8천 대의 전기차 판매로 글로벌 7위권에 그쳤다. 겉으론 화려한 성장 곡선이 그려지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존 경쟁의 양상이 뚜렷하다.
기술 패권과 원가 절감의 키 '배터리 기술'
배터리 기술과 공급망 확보는 전기차 경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 요소다. 배터리 성능이 곧 차량의 주행거리와 안정성, 가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BYD는 본래 배터리 제조사로 출발한 강점을 살려 수직계열화된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했다. 배터리 셀부터 완성차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자체 통제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고, 이를 통해 공격적 가격 설정이 가능했다. BYD의 혁신적 기술로 꼽히는 '블레이드 배터리'(Blade Battery)는 리튬인산철(LFP) 계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한계를 극복하면서 화재 안전성을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내구성과 비용 면에서 우위에 선 BYD 배터리는 중국 내수뿐 아니라 테슬라를 비롯한 경쟁사의 일부 모델에도 공급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BYD는 한술 더 떠 차세대 나트륨이온 배터리까지 개발해 초저가 모델에 적용을 추진하는 등 기술 주도권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배터리 기술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답게 네바다 기가팩토리에서 파나소닉과 협업으로 배터리를 생산해왔으며,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4680 대형 셀을 양산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4680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를 높여 주행거리 향상과 원가 절감을 동시에 노린 혁신이지만, 생산 수율 문제 등으로 양산이 지연되며 계획보다 더딘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배터리 팩을 차량 구조체로 활용하는 파격적인 설계를 도입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자 했으나, 예상만큼의 비용 절감 효과는 내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테슬라는 2025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저가형 신모델 개발을 진행 중인데, 이 차량에 앞선 기술들을 적용해도 원가 혁신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3년에는 직원을 10% 이상 감축하는 구조조정도 단행하며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는 업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관리 소프트웨어 역량과 자체 배터리 소재 조달 노하우로 여전히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은 리튬 등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해 광산 기업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하며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배터리 원가의 60% 이상이 원자재 비용인 만큼, 자원 확보전도 기술 경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후발주자인 현대차는 배터리 분야에서의 자립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오랜 기간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외부 공급에 의존해온 현대차는 2023년 말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발표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2024년 말까지 한국의 중소 배터리 업체 및 대학 연구진과 협력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을 독자 개발·생산한다는 계획이다. LFP 배터리는 코나 EV 등의 보급형 모델에 2025년부터 탑재해 가격 인하를 꾀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이러한 과감한 배터리 직접 생산에 나선 배경에는 미·중 간 기술 패권 다툼과 IRA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깔려 있다. 중국산 배터리 의존을 줄이고 미국 보조금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현대차는 비교적 저렴한 LFP 배터리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테슬라와 BYD처럼 완성차 업체가 자체 배터리 개발을 늘리면 생산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10년간 9조5천억원을 투자해 LFP, 고성능 NCM, 전고체에 이르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미국의 스타트업과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기는 한편, 국내 철강사와 양극재 업체와도 합작으로 소재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배터리 주도권을 쥐기 위한 완성차 업체들의 군비경쟁이 가열되면서, 배터리 기술 혁신 속도가 전기차 시장 판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지원과 견제가 만든 희비 '정부 보조금 정책'
전기차 산업에서 정부 정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각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환경 규제가 곧 시장의 기회와 위협을 결정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의 성공 스토리 뒤에는 대규모 정부 보조금 정책이 자리한다. 중국 정부는 한때 전기차 한 대당 수천만 원에 이르는 구매 보조금을 풀어 자국 산업을 적극 육성했고, 충전 인프라 구축과 세제 혜택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23년 보조금 종료 이후에도 2024년 4월에는 노후 가솔린차를 폐차하고 전기차로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등 수요 진작책을 이어갔다.
이러한 정부 지원에 힘입어 BYD를 비롯한 중국 토종 완성차 기업들은 내수 시장을 장악하며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2023년에 자동차 생산량 기준으로 전통 강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자국 시장에서도 폭스바겐, GM 같은 외국 브랜드를 압도하고, 남미와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도 가파른 점유율 상승을 이뤄내고 있다. 품질과 기술력, 가격 경쟁력 면에서 중국산 전기차가 상품성을 입증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를 뒷받침한 결과다. 다만 최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전기차 가격이 급락하면서 중국 정부는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재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향후 중국 업체들끼리의 출혈 경쟁이 심화되면 정부도 더 이상 개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어, 중국 전기차 업계에도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럽은 한편으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고 있다. 한쪽 손에는 엄격한 환경규제를 들고, 다른 한쪽 손에는 산업 보호 조치를 쥐는 모습이다. EU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기로 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친환경차 전환 로드맵을 시행 중이다. 각국 정부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 소비자 전환을 유도하고, 충전 인프라 예산을 투입해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드라이브 덕분에 2024년 유럽의 전기차 신차 판매 비중은 2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경계심도 함께 높아졌다. 2023년 유럽 수입 전기차 시장의 8%를 중국 브랜드가 차지하자, EU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부당 저가공세를 편다고 주장하며 반덤핑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업계에서는 무역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정작 BYD 등 중국 기업들은 미리 유럽 현지 공장 투자에 나서는 등 대비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BYD는 헝가리에 전기차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추가로 유럽 내 두 번째 거점도 검토하고 있다.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장벽을 넘어서겠다는 전략으로, EU의 견제에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유럽의 정책 변화에 따라 기업들의 유불리가 즉각 엇갈리는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각사 모두 로비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국은 대대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판을 뒤흔들었다. 2022년 제정된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고 배터리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자국 생산을 전제로 막대한 지원금을 내거는 한편, 그렇지 않은 차량은 시장에서 도태시키겠다는 의도다. 이 법안으로 미국 빅3와 테슬라 등 현지 생산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은 반면, 현대차·기아 등 해외 생산 수출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2023년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이 한때 미국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며 판매가 급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차는 법인리스 판매라는 우회로를 통해 임시로 보조금 효과를 내보려 했으나 한계가 뚜렷했고, 결국 앞서 언급한 자체 할인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다행히 2024년부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기존 조약을 근거로 현대차·기아 전기차 일부가 보조금 대상에 다시 포함될 전망이다. 또한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공장이 2025년 가동되면 현대차도 당당히 현지 생산을 통한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자국 산업 보호와 기후 대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해외 기업들도 앞다투어 미국 현지 생산과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투자하는 추세다. IRA 시행 이후 북미 지역으로 발표된 배터리 공장 투자만 수십 조 원에 달하며, 현대차그룹도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 공장 설립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잡기 위한 지원금 쟁탈전이 본격화된 모습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향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전기차 업계 현실이다. 각종 보조금과 규제의 명암(明暗) 속에서 기업들은 유리한 쪽에서는 최대 수혜를 누리고, 불리한 쪽에서는 이를 뒤집기 위한 전략 수립에 사활을 건다. 한편으로는 정부 지원에 기대어 성장한 산업인 만큼, 향후 보조금 철폐나 규제 완화 시 수요 급감 가능성도 존재한다. 유럽과 중국에서 보조금 축소 움직임이 나타나자 2024년 들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둔화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IEA는 각국의 구매 인센티브와 배터리 생산 장려 정책 등이 전기차 시장 성장에 본질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당분간 주요국 정부의 친전기차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정책 변동에 민감한 사업 구조 역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기차 전쟁의 승자는?
전기차 시장의 미래 청사진은 장밋빛과 회색빛이 교차한다. 한편으로 각종 전망은 향후 10년간 전기차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35년경에는 신차의 절반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IEA는 전기차의 보급 확산으로 2030년대 중반에는 글로벌 원유 수요가 하루 600만~1,000만 배럴 감소하는 효과까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전기차가 더 이상 틈새나 과도기적 기술이 아닌,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 시나리오다. 시장 규모로 보면 앞으로도 전기차 산업에 천문학적 성장 기회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낙관론 이면의 현실은 냉혹하다. 승자 독식에 가까운 현재의 경쟁 구도가 더욱 심화되어, 살아남는 자만이 미래의 과실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전기차 판매 상위권은 중국과 미국 업체가 양분하고 있고, 나머지 기업들은 한 자릿수 점유율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러다 보니 대다수 후발주자들은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따라잡기 위한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BYD와 테슬라의 양강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두 회사 모두 공격적인 가격 전략과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BYD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사격과 자체 배터리 기술력, 그리고 내수 시장의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글로벌 1위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2024년에는 생산 대수에서 사상 처음으로 테슬라를 앞질렀고, “중국의 테슬라”에서 이제는 “세계의 BYD”로 체급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테슬라는 비록 최근 성장세 둔화와 점유율 하락을 겪었지만, 여전히 브랜드 파워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독보적이다. 충성도 높은 팬층과 거대한 충전 인프라 자산도 테슬라의 강점이다. 머스크 특유의 기행과 리스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나, 사이버트럭 생산 본격화와 보급형 모델 출시가 궤도에 오른다면 한층 판매를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두 회사 모두 수익성보다 점유율을 택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단기적 압박은 크지만, 궁극적으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시장에서 지배적 플레이어로 남으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현대차를 비롯한 추격자 그룹의 운명은 가늠하기가 보다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전사 차원의 전동화 전략과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우위 지점을 만들지 못하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유럽, 중국 어느 한 곳에서도 1위는커녕 5위권 내 점유율도 위협받는 게 현실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급선무다. 그나마 디자인 혁신과 상품성으로 일부 선진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테슬라의 가격 공세나 중국차의 저가 공습이 계속되면 입지 약화는 시간문제다. 이에 현대차는 배터리 직접 생산, 현지 공장 건설 등 체질 개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선제적 투자가 늦은 감은 있으나, 아직 정부 지원 여력이 풍부한 유럽과 한국 시장에서 내수를 다지고 북미 시장에서 재도약하면 충분히 반전의 기회는 있다. 다만 그러한 시간 벌기가 가능할지는 정글 같은 시장 경쟁에 달려 있다.
결국 글로벌 전기차 전쟁의 승패는 기술력, 원가 통제, 그리고 정책 수혜라는 세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셋을 모두 갖춘 기업만이 웃을 것이고, 하나라도 빠지면 고꾸라질 위험을 안고 달리는 형국이다. 20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각국 보조금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고, 탄소중립 목표 시한에 쫓겨 자동차 업계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승자와 패자 간 격차는 벌어질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기술 발전과 경쟁 덕분에 더 좋은 전기차를 더 싸게 살 기회가 늘겠지만, 업체들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한다. CEONEWS 창간 26주년을 맞은 올해, 전기차 시장은 마치 26년 전 닷컴 버블 시대처럼 뜨겁고도 위험한 성장기를 지나고 있다. 화려한 숫자 뒤에 감춰진 진흙탕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아직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전기차의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