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화 정책의 빛과 그림자
[CEONEWS=이재훈 기자] 트럼프의 암호화폐 정책 변화
트럼프가 전략자산 비축 암호화폐를 전격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가 언급한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을 포함해 리플(XRP), 솔라나(SOL), 에이다(ADA) 등 4개다. 3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이같이 밝히며 암호화페에 힘을 실어줘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비트코인은 돈도 아니며 가치도 허상에 불과하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2024년 대선에서는 돌연 친(親)암호화폐 공약을 앞세우며 태도를 바꿨다. 그는 7월 비트코인 컨퍼런스 연단에서 "미국을 암호화폐의 수도, 비트코인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재집권 시 친암호화폐 행정부를 약속했다. 불과 몇 년 사이 180도 달라진 배경에는 젊은 표심 공략과 중국 견제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정부의 SEC 규제로 암호산업이 위축되고 중국이 CBDC(디지털 위안)로 금융패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민간 암호화폐 육성을 해법으로 제시한 셈이다. 표심과 지정학을 동시에 겨냥한 현실적인 노선 변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트코인의 향후 5년 예측
트럼프 재집권으로 제도권 자금의 비트코인 유입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월가의 대형 금융사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추진 중이며, 우호적인 정책 환경에서는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다. ETF가 등장하면 연기금부터 개인 투자자까지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어 향후 몇 년간 기관 자금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통 금융기관들도 암호화폐 커스터디와 거래 서비스를 출시하며 뛰어들고 있다. 한때 "비트코인은 사기"라던 월가도 이젠 비트코인을 하나의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규제 환경에도 변화의 바람이 예상된다. 트럼프 측은 업계에 대한 과도한 단속을 중단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SEC가 추진해온 일부 제재를 철회하고, 미국 최초의 비트코인 ETF 승인도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회에서도 초당적 논의에 속도가 붙어 암호자산의 법적 지위 명확화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입법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스테이블코인 규제 역시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트럼프 진영은 중국식 CBDC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대신 USDT나 USDC 같은 민간 달러 코인을 활용해 디지털 달러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직접 CBDC를 발행하지 않고도 민간 암호화폐를 통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국제 지정학적 요인도 비트코인 시장의 향방에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의 친암호화폐 행보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에 맞서는 견제 카드다. 중국이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자체 CBDC 보급에 주력하는 사이, 미국은 개방 전략으로 글로벌 자본과 인재를 끌어모으려 하고 있다. 러시아 등 제재국이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거래수단으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계속된다. 미국이 암호화폐 주도권을 쥐면 이러한 악용을 억제하기 수월해질 수 있다. 한편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신흥국들도 앞다투어 암호화폐 산업에 뛰어드는 만큼, 향후 5년간 비트코인의 수요와 활용은 북미·유럽 바깥에서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과 탈중앙화 논쟁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편입될수록 본연의 탈중앙화 정신과 충돌하는 모습도 뚜렷해지고 있다. ETF와 기관투자 확대는 비트코인의 중앙화 우려를 낳는다. 소수 거대 금융기관의 ETF와 거래소가 막대한 비트코인을 보유·관리하게 되면 '내 돈은 내가 지킨다'는 비트코인 철학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커뮤니티 내에서도 "월가의 비트코인 장악"을 경계하는 목소리와 "기관 돈 환영" 의견이 교차한다. 탈중앙화를 중시하는 이들은 정부나 기업에 휘둘리지 않는 통화를 지향하지만, 정작 시장은 가격 상승을 좇아 제도권 자본을 받아들이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금융 주권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암호화폐 옹호자들은 비트코인을 "국가로부터 독립된 돈"으로 여겨왔지만, 이제 미국 정부가 오히려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편입하려는 모습이다. 트럼프 측이 언급한 '국가 암호자산 비축고' 구상은 비트코인을 금과 같은 국가 보유자산으로 삼겠다는 구상인데, 만약 미 연준이나 재무부가 실제로 비트코인을 보유하게 되면 이는 대안 통화였던 비트코인이 기존 질서에 포섭되는 순간이 된다. 한때 정부에 도전하던 혁신 통화가 정부 금고에 들어가는 현실에 일부에서는 "혁명의 배신"이라는 냉소도 나온다. 앞으로도 비트코인이 안정된 제도권 자산으로 안착하는 흐름과 탈중앙화 지향 사이에서 정체성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전망과 리스크 요소
트럼프 당선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 급등하며 시장 기대감이 반영됐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긍정론과 위험 요소가 교차한다. 우선 우호적 정책과 기관 유입으로 당분간 완만한 상승세를 점치는 시각이 있다. 디지털 금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란 기대다. 반면 변동성 리스크는 여전하다. 경기, 금리, 달러 가치에 따라 비트코인은 급등락을 거듭해왔다. 인플레이션기엔 '인플레 헤지'로 주목받다가도 긴축기엔 위험자산 취급을 받으며 급락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당분간 비트코인은 거시경제에 민감한 자산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E) 요인의 ESG 이슈도 무시 못 할 변수다. 비트코인 채굴에 드는 막대한 전력 탓에 탄소 배출 논란이 크다. 각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앞세워 채굴을 제한하거나 부담금을 부과할 위험이 있고, ESG 투자 기조가 강해지면 기관 자금이 등을 돌릴 우려도 제기된다. 채굴 업계가 재생에너지 전환과 탄소 감축에 나서지 않으면 장기적 성장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정책 리스크도 존재한다. 현 정부가 우호적이어도 정권 교체나 시장 사고로 규제 기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이미 겪었던 거래소 파산 같은 스캔들이 다시 발생하면 당국은 투자자 보호 명분으로 강력한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 밖 환경도 변수다. 유럽연합은 암호자산규제안(MiCA)을 시행하며 엄격한 관리에 나섰고, 중국은 여전히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있다.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는 언제든 비트코인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지정학적 변수도 잠재해 있다. 국제 분쟁 속에 러시아나 이란 등이 제재를 피하려고 암호화폐 활용을 늘리면 미국은 추가 제재로 맞설 수 있다. 이러한 충돌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반대로 신흥국들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나 외환보유고로 채택하는 사례가 늘면 새로운 수요로 이어져 호재가 될 수 있다.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분쟁부터 미·중 갈등, 신흥국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건들이 향후 비트코인 시장의 변수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친화 정책이라는 순풍이 비트코인에 제도권 편입의 탄력을 더할 전망이지만, 그 과정에서 암호화폐의 원래 지향점이 흐려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향후 5년간 비트코인 시장은 이러한 기회와 위험 요인 속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