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가?

[CEONEWS=이재훈 기자] 국내 5대 그룹 반열에서 밀려난 롯데그룹이 급증한 부채 부담으로 위기에 처했다. 한때 유통·화학 분야의 강자로 군림했던 롯데는 최근 재무 불안설에 휩싸이며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CEONEWS 창간 26주년을 맞아, 본지는 롯데그룹 부채 위기의 현황을 짚어보고 가능한 시나리오별 경제적 파장을 심층 분석한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전문가 인터뷰를 토대로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며, 냉소적 시각에서 재벌 구조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를 들여다본다.

현재 롯데그룹의 부채 상황

롯데그룹의 재무현황을 살펴보면 부채 증가 속도가 수익 창출 속도를 앞지르며 심각한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자료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작년 말 기준 자산 총액 약 138조 원, 부채비율 75% 수준의 재무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주력 계열사의 실적 부진으로 순이익 규모는 급감한 반면 차입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롯데그룹의 총차입금은 현재 약 38~39조 원에 달해 삼성, 현대차 등에 이어 국내 기업집단 중 네 번째로 많지만, 정작 당기순이익 규모는 1조 원 남짓으로 17위권에 그칠 정도로 갚을 여력 대비 부채 부담이 과중한 상황이다.

특히 단기 부채 비율이 높아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롯데 계열사들이 1년 내 상환해야 할 단기채무는 약 34조 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5조 원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계열사들의 현금성자산은 오히려 감소해, 당장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나는 만큼 손에 쥔 현금은 줄어드는 형국이다. 예컨대 롯데케미칼의 경우 대규모 투자 여파와 업황 침체로 인해 단기차입금이 급증했고,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들 역시 잇따라 단기 부채 부담이 커졌다. 그룹 전체 부채 중 단기 부채 비중이 높다는 것은 롯데가 향후 1년 내 상당한 규모의 차입금을 차환하거나 상환해야 함을 의미하며, 금융시장 동향에 따라 급격한 유동성 경색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 신호다.

롯데그룹에 자금을 공급한 금융권의 노출 현황을 보면, 국내 시중은행부터 지방은행, 외국계 금융기관까지 촘촘히 얽혀 있어 리스크가 전이될 우려가 있다.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은 산업은행을 비롯해 신한·국민·우리은행 등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은 상태다. 지난해 롯데건설이 부동산 PF 부실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때, 계열사 지원과 함께 여러 금융사의 긴급 자금 수혈로 버틴 바 있다. 또한 롯데는 일본 미즈호은행 등 해외 금융기관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데, 최근 롯데케미칼이 발행한 채권의 재무 약정이 악화되자 미즈호은행으로부터 추가 담보 요구를 받는 등 우호적이던 일본계 자금마저 족쇄로 돌변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주요 금융권이 롯데그룹 관련 여신에 상당 부분 노출돼 있어, 롯데발(發) 충격이 현실화될 경우 금융 시스템 전반에 파급될 소지가 크다.

한편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등급 전망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등은 수익성 악화와 부채 증가로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직면했다. 실제로 롯데지주는 자금 조달을 위해 투자등급 하단에 가까운 조건으로 사모채와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제공해가며 급한 불을 끄는 실정이다. 올 11월 롯데케미칼은 일부 회사채의 조기상환 트리거가 발동될 위기에 처하자,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채권단에 담보로 맡기는 초강수를 뒀다. 그룹 핵심 자산까지 내걸어 유동성을 방어해야 할 만큼 롯데의 재무 상황이 궁박해졌다는 뜻이다.

시나리오별 경제적 영향

롯데그룹 사태가 향후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파급력은 크게 갈릴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그룹이 부도 위기로 치달아 도미노 파산을 촉발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구책을 통해 가까스로 연착륙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나아가 그 여파가 국내를 넘어 대외 신인도와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제2의 IMF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극단적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각 시나리오별로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따져본다.

시나리오 1.롯데그룹이 부도 위기에 처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롯데그룹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져 사실상 부도 처리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태가 현실화되면 한국 금융권과 실물경제 전반에 상당한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 우선 롯데그룹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준 은행권은 대규모 부실 여신 발생으로 직격탄을 맞는다. 시중은행들은 충당금 적립 등 손실 흡수 여력이 상대적으로 있지만,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취약 금융기관들은 거액의 롯데 관련 대출이 상환불능이 될 경우 자본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롯데건설이 참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연계된 지역 금융사들은 롯데가 보증을 이행하지 못하면 연쇄 부실 위험에 노출된다. 은행권 전반이 위험자산 증가로 유동성 경색을 겪으면, 여신 회수와 신용경색이 현실화되어 정상 기업들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신용위기가 도미노처럼 번질 가능성이 있다.

채권시장과 자본시장도 요동칠 전망이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에 직면하며,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것이다. 이미 작년 말 롯데건설發 유동성 불안 때도 일부 채권·CP 시장이 경색되었던 전례가 있다. 만약 그룹 전체가 부도 위기에 놓인다면 기관투자자들은 다른 기업들의 회사채 투자까지 꺼리는 크레디트 크런치(신용 경색)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이로써 금리가 급등하고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되면, 기업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이 뛰어올라 실물경제에 광범위한 긴축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고용시장에도 큰 충격이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국내에 상시 직원만 약 8만7천 명을 거느린 거대 고용주다. 유통, 식품, 관광, 화학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있어 협력업체와 간접 고용까지 고려하면 수십만 명의 생계가 롯데와 연결돼 있다. 이런 그룹이 파산 사태에 이르면 대규모 실업이 불가피하며, 실업률 상승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내수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예컨대 롯데백화점·마트가 문을 닫으면 입점 상인들과 납품업체들까지 줄도산 위험에 처하고, 롯데호텔의 운영 중단은 관광업 일자리에도 연쇄적인 타격을 준다. 정부 입장에선 갑자기 수만 명의 신규 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과 재취업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는 지역 경제에도 치명타여서, 롯데 사업장이 몰려있는 부산·울산 등지부터 경제 충격이 가시화될 수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표면적으로 롯데는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대표적인 수출 업종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룹의 붕괴가 몰고 올 금융 불안과 경기침체는 전방위로 파급된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데, 이 기업의 몰락은 석유화학 공급망 혼란과 함께 국내 화학산업 전반의 신용도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롯데의 위기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한국 기업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1997년 IMF 직전 한보철강, 기아차 등 대기업 연쇄 부도로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을 등진 사례처럼, 롯데 부도는 한국 기업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을 높여 수출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 조달하거나 계약을 따낼 때 불리한 여건을 만들 수 있다. 요컨대 한 거대 재벌의 붕괴는 그 자체로 산업 연관효과를 통해 한국 경제 곳곳에 충격파를 던질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충격 테스트는 정책당국과 시장 모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과거 대우그룹처럼 한 때 잘나가던 재벌도 유동성 위기 앞에 속절없이 해체된 선례가 있다. 만약 롯데 사태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으면, 이는 단일 기업의 파산을 넘어 한국 경제 구조 전반의 약한 고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시나리오 2.자구책을 통한 회생 가능성

두번째 시나리오는 롯데그룹이 강도 높은 자구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다. 현재 그룹 경영진은 공식적으로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며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다. 실제 롯데그룹은 “보유 주식과 부동산 가치, 즉시 활용 가능한 예금을 합치면 약 109조 원에 이르는 자산을 갖고 있어, 38조 원 규모 부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룹 총자산이 약 139조 원이고 이 중 부동산 가치가 56조 원, 상장·비상장 주식 가치가 37조 원, 현금성 자산이 15조 원 이상이라며, 재원을 동원하면 부채 상환은 버틸 만한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자산은 장부가치이거나 담보로 잡힌 경우도 많아 실제 유동화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롯데 스스로 살 길을 찾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롯데의 자구 노력으로는 비핵심 자산 매각, 투자 축소, 비용 절감 등이 두루 포함된다. 롯데쇼핑은 서울 및 지방에 산재한 유휴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고, 최근 부산 센텀시티의 대형 백화점 부지를 매각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무리한 인수로 재정 부담을 키웠던 일진머티리얼즈 등을 포함해 저수익 자산을 매각하거나 구조조정하여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연간 6조 원을 웃돌던 투자 규모를 내년에는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시켜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한 경영 효율화를 위해 화학 분야에서는 저수익 사업을 축소하고, 유통부문도 오프라인 중심 조직을 슬림화하는 등 전방위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그룹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자산 재평가를 실시해 장부상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회계 조치도 예고되어 있다. 이는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롯데쇼핑 등 오래된 자산을 보유한 계열사들은 자산 재평가로 재무비율 개선을 꾀하고 있다.

해외 사업 리스크 관리도 회생 시나리오의 중요한 변수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공격적으로 해외에 투자했지만 성과가 미진하거나 정치적 리스크로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중국 시장에 대거 출점했던 롯데마트는 사드(THAAD) 보복 여파로 철수하며 막대한 손실을 봤다. 현재 호텔롯데 산하 면세사업부는 일본, 베트남, 호주 등에 10여 곳의 해외 면세점을 운영 중인데, 수익성 악화로 부실 매장의 철수 계획을 밝힌 상태다. “돈 안 되는 사업은 접겠다”는 결단으로 흑자 전환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롯데케미칼이 추진 중인 인도네시아 대형 석유화학단지 건설 사업은 천문학적 투자가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로, 글로벌 경기변동과 완공 지연 리스크가 상존한다. 그룹이 생존하려면 이처럼 해외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사업들의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위험요인을 축소해야 한다. 계획했던 해외 신사업들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실익 위주로 재편하지 않으면 자칫 해외에서 더 큰 손실이 돌아올 수 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 문제와 대주주의 역할 역시 회생 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요소다. 롯데는 한때 형제의 경영권 다툼과 복잡한 한일(韓日) 교차 지배구조로 악명이 높았다. 현재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 롯데 홀딩스와 호텔롯데를 정점으로 한 구조는 남아 있어 신속한 의사결정에 걸림돌로 지적된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대주주와 총수가 통 큰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총수 일가가 사재를 출연해서라도 그룹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과거 한진해운 파산 당시 정부가 총수 개인의 지원 노력을 요구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정부와 금융권이 롯데 총수에게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대주주가 보유한 해외 자산을 매각하여 그룹에 자금을 넣거나, 배당금 등 사익 추구를 포기하고 그룹 운명에 헌신할 것을 압박받을 수 있다. 또한 비상 상황에서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일본 롯데 등이 보유한 한국 롯데 지분을 정리하고 호텔롯데 상장 등을 재개하라는 요구도 나올 수 있다.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은 투자자 신뢰 회복의 선결조건인 만큼, 총수 일가가 경영권 안위보다 그룹 생존을 우선시하는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자구노력의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구 노력에 의한 회생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금융권과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은 최소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가 보유 자산 매각과 사업 재편에 성공해 부족한 유동성을 메운다면 은행 부실과 대량 실업 사태도 피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룹의 사업 규모 축소와 구조조정은 불가피해 일부 사업부문의 매각, 인력 감축 등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는 롯데그룹의 위상이 한층 위축되는 동시에 해당 산업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예를 들어 롯데가 주력하던 화학·유통 부문에서 사업을 줄이면, 그 공백을 두고 경쟁사들이 시장점유율을 재편할 수 있다. 또한 롯데발 긴축으로 협력업체들의 수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중소 납품업체들의 실적 부진도 예상된다. 결국 자구책을 통한 연착륙 시나리오는 대한민국 경제 전체로 보면 일시적 성장 둔화와 구조조정의 고통이 따르지만, 최악의 위기 국면은 피해가는 절충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시나리오 3.제2의 IMF 가능성

일부에서는 롯데 사태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이 1997년 IMF 외환위기와 유사한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경고한다. 이 시나리오는 롯데그룹 부실이 도화선이 되어 국내 금융위기 → 실물위기 → 대외신인도 추락이 연달아 발생하는 복합 위기 상황을 가정한다.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견해가 많지만, 만약 일련의 사태를 방치하거나 대응에 실패할 경우 최악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위기의 증폭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한국 경제의 대외 개방도가 높은 만큼, 대형 재벌의 부도 사태는 곧바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심리 위축과 자본 유출로 연결될 수 있다. 이미 해외 신용평가사나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가계부채, 부동산시장, 그리고 기업부채 문제를 예의주시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산 6위권의 롯데그룹마저 휘청인다면, 외국인들은 한국 기업들에 깔려있던 묵은 부채 문제 전체를 재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해외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주식시장 폭락과 채권 금리 급등, 나아가 환율 급등(원화가치 급락)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1997년에도 외환위기는 몇몇 대기업 부실과 금융기관 부도가 기폭제가 되어 촉발되었고, 국제 투자자들이 앞다투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이번에도 “한국에 또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 심리가 글로벌 자본의 썰물 현상을 부르면, 한국은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환율 및 인플레이션 측면에서도 위험 신호가 켜진다.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하면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 가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수입 물가 상승과 물가 불안을 야기하여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 가뜩이나 고금리 기조로 경기 침체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물가까지 불안해지면 한국은행은 딜레마에 빠진다. 한쪽에선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원화 방어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또는 고금리 유지가 필요해질 수 있다. 이렇듯 거시경제 정책 수단들이 충돌하면 경제 운용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또한 환율 불안은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미쳐, 무역거래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환헤지 비용 증가 등 예상치 못한 비용 부담을 지게 된다. 요컨대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를 낳고, 다시 환율위기와 물가위기로 이어지는 복합 충격이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롯데그룹 부도 그 자체만으로 당장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진 않겠지만, 만약 이를 계기로 한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현실화되고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상황까지 간다면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도를 재검토할 것이다. 실제로 IMF 사태 당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급격히 떨어졌고, 그 여파로 해외차입이 막혀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도 최악의 경우 롯데뿐 아니라 부채 부담이 큰 다른 기업들까지 연달아 문제가 터지면, 한국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로 간주되어 국가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 이는 해외 자금조달 비용 상승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초래한다. 정부가 어렵게 유지해온 “안정적 대외지표”라는 평판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국채를 비롯한 국내 발행물의 신용스프레드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제2의 IMF 시나리오는 극단적 가정이긴 하나, 한국 경제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들이 결부될 때 현실화될 수 있는 최악의 그림자다. 가계부채, 부동산발 금융위기 가능성, 미중 갈등에 따른 수출 부진 등 기존의 위험 요소들 위에 재벌 부도 사태까지 겹치면 복합 충격이 증폭될 수 있다. 과거 외환위기가 “태풍 앞의 모래성”처럼 부실한 금융·기업 구조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발생했듯, 이번에도 롯데 위기가 방치될 경우 시장 신뢰 상실 → 유동성 경색 → 위기 확산 경로를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 시나리오는 정부와 시장 모두가 결코 이르러선 안 될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제2의 IMF는 없다”는 각오로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경고신호라 하겠다.

정부 및 금융당국의 대응 전략

롯데그룹 부채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와 금융당국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과거 경제위기 대응 사례와 비교하면, 당국은 이번 사안을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전면적 위기로 보고 있진 않지만 부분적인 산업위기 내지 구조조정 이슈로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 정부는 부실 대기업을 방치했다가 위기가 증폭된 후 뒷북 대응에 나서야 했고, 2016년 한진해운 사태 때는 민간자율정리에 맡겼다가 해운물류 대란을 겪은 바 있다. 이러한 교훈을 의식해, 이번에는 선제적으로 롯데그룹의 자구노력을 유도하고 금융권과의 협의를 통해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내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그리고 한국은행 등은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금융감독당국은 롯데그룹 관련 여신 현황을 전수 조사하며 금융권 리스크 점검 회의를 수차례 열었다. 이를 통해 개별 금융회사들이 롯데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지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하고, 필요 시 유동성 지원 방안을 준비중이다. 구체적으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비상 자금라인을 구축하거나, 한국은행이 금융안정차원에서 '긴급 유동성 공급조치'(예: 일시적 공개시장조작 완화 등)를 취하는 시나리오도 점검되고 있다. 과거 IMF 직후인 1998년에는 부실채권 정리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채권은행 협의회를 통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채권단 공동관리 또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검토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국민 세금으로 재벌을 구제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셀 수 있어서, 정부로서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전망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로선 롯데그룹이 스스로 유동성을 확보할 여지가 충분하므로 공적자금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정치적 이해관계도 정책 결정의 중요한 변수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대형 악재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정부 여당의 의지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일자리와 경제적 파급력을 지닌 롯데그룹이 흔들릴 경우, 현 정부의 경제 실정 논란으로 번져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자리와 경제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필요하면 비상대책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야권과 국민 여론은 재벌에 대한 특혜 지원을 경계하고 있어, 정경유착이라는 비난을 사지 않기 위해서도 정부는 신중한 균형잡기가 요구된다. 결국 정책당국은 '체제 위험(Systemic Risk)'이 임박했다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금융권 중심의 자율협약, 시장 원리 내 해결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물 밑에서는 롯데측에 강력한 자구노력을 압박하고, 필요 시 제한적 지원책을 제공하되 그 대가로 총수 책임이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식의 조건부 개입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 부채관리와 구조조정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무위험이 높은 대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위기 조짐이 보이면 신속하게 채권단 협의를 통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이른바 “선제적 기업구조조정 프레임워크”를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과거 IMF 위기 이후 도입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정신을 계승한 조치로, 롯데그룹 같은 사례가 더 이상 터지지 않도록 상시적인 부채관리 체계를 확립하려는 취지다. 요컨대 정부와 금융당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롯데그룹 위기를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적 시각도 갖고 있다.

향후 전망 및 선택의 기로

부채 함정에 빠진 롯데그룹의 운명이 한국 경제 전반에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향후 전망은 크게 세 갈래다. 하나는 그룹이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조용히 지나가는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최악의 경우 부도의 나락으로 떨어져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되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중간 어딘가에서 정부와 시장의 개입으로 연착륙 혹은 소방수 역할이 이루어져 큰 분란 없이 마무리되는 절충적 경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사태는 한국 경제에 단기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과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교훈을 남길 전망이다.

한국 경제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가늠해보면, 우선 기업 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 사태를 지켜본 다른 재벌들과 대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과 위험관리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로, 기업들이 빚에 의존한 무리한 확장을 자제하고 내실을 중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면 단기적인 경기 위축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롯데그룹이 유동성 방어를 위해 투자·채용을 축소하면 관련 산업의 성장 둔화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넓게는 “포스트 차이나” 시대에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려야 할 시기에, 내부적으로 부채 다이어트에 몰두하느라 투자 기회를 놓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양하게 갈린다. 대체로 낙관론자들은 롯데그룹이 충분한 자산과 사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다소의 고통을 겪더라도 결국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롯데는 부동산부터 우량 계열사 지분까지 팔 수 있는 카드가 많고, 금융권도 그냥 망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질서 있는 구조조정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정부와 채권단이 적절히 개입하여 롯데가 부채를 조정하고 핵심 사업 위주로 재편하면,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고 일단락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한 재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고질적 병폐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저금리 시기에 기업들이 앞다퉈 차입 경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가 고금리 국면에서 일제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롯데는 그 빙산의 일각일 뿐, 근본 처방 없이 눈 가리고 아웅하면 제2, 제3의 롯데 사태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너무 낙관적으로 대응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위기가 커지고, 결국 더 많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위기가 기업 구조조정 및 재벌 개혁의 방향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 대학의 경영학 교수는 “롯데그룹 사태는 한국 재벌의 낮은 자기자본 의존도와 지배구조 취약성이 빚은 결과”라며 “이 기회에 재벌의 부채 남용을 억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투명경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컨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대한 부채 규제나 대주주 신용공여 제한 등을 거론하며, 재벌들이 자기 자본을 확충하고 무분별한 차입을 지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계 스스로도 선제적인 사업 재편과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국제금융 환경이 과거처럼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과거식 성장전략을 답습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롯데그룹 부채 위기는 한국 경제와 재벌 시스템이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의미한다. 눈앞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해 구조적인 문제를 덮어둘 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근본적인 개혁과 체질 개선의 길을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냉혹한 시장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크니까 알아서 살아남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은 통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오랜 숙제였던 재벌 리스크가 롯데 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난 지금,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향후 수십 년 대한민국 경제의 명운이 달려 있다. CEONEWS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이 거대한 전환점에서 우리 경제가 단기 안정과 장기 개혁 두 마리 토끼를 잡길 기대하며, 향후 전개될 선택과 대응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저작권자 © 씨이오데일리-CEODAILY-시이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