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DX 리더십, 그가 만든 빛과 그늘—그리고 다가올 파도의 행방
삼성전자 DX부문을 이끌며 프리미엄 가전 혁신을 주도한 한종희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그의 리더십이 남긴 발자취와 포스트 한종희 시대의 도전들

한종희 - 삼성전자 제56기 정기 주주총회 현장
한종희 - 삼성전자 제56기 정기 주주총회 현장

[CEONEWS=박수남 기자] 삼성전자 DX부문장 한종희 부회장. TV 개발 엔지니어로 출발해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오른 한종희는 가전 왕국 삼성의 혁신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지난 3월 25일 새벽, 삼성전자의 한종희 부회장(63)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세계 TV 1위 신화를 일군 기술자 출신 경영자의 갑작스러운 부재 소식에 재계와 임직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의 별세는 삼성전자의 디바이스경험(DX) 부문 – TV, 스마트폰, 가전 등 완제품 사업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 – 에 커다란 리더십 공백을 남기며 포스트 한종희 시대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종희 스케치
한종희 스케치

성장 배경과 삼성 입사...엔지니어의 길

한종희는 1962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고, 천안고등학교를 거쳐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88년 삼성전자에 바로 입사한 그는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배치되면서 영상 디스플레이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전자공학에 매료되었던 그는 대학 시절 만난 은사로부터 기초를 탄탄히 다지며 실무 역량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삼성의 최전선 개발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삼성 입사 초창기부터 한종희는 남다른 열정과 학습 태도로 주목받았다. 그는 신입 사원 시절 선배들의 업무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며 “만약 내가 선배 위치라면 어떻게 결정할까”를 늘 고민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도적 태도 덕분에 그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LCD TV 랩장, 상품개발팀장 등을 역임하며 개발조직의 핵심 리더로 성장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차세대 TV 제품 전략 수립과 개발을 이끌며 삼성 TV가 글로벌 1위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TV 사업 혁신과 커리어 주요 행보

'TV 개발 전문가'로 통했던 한종희의 경력은 삼성전자의 TV 성공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입사 후 30년 가까이 TV 개발에만 매진하며 거의 모든 삼성 TV 신제품 개발에 참여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가 글로벌 TV 시장 1위를 달성하고 2006년 이후 19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013년 말부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장을 맡은 그는 남다른 제품 차별화와 원가 경쟁력, 빠른 혁신 출시라는 세 박자를 앞세워 경쟁사를 압도하는 전략을 주도했다. 그의 팀이 개발한 QLED·초대형 TV 등 프리미엄 제품군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따돌리고 삼성 TV의 수익성과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이었다​.한종희의 리더십은 2017년 한 단계 도약한다. 그해 말 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김현석 사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CE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에 올랐다​. 개발 책임자에서 사업부장으로 변신한 그는 기술과 경영을 접목하며 TV 사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다. 현장에서 그는 “남들과 격이 다른 제품을 개발하고, 최적의 가격으로 생산하여, 누구보다 한발 앞서 출시”해야 세계 1위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고​, 직접 그런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조직을 이끌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코뿔소 사장”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던 것도 이때다. 한 번 맡은 과제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어떠한 난관도 밀어붙이는 그의 끈기는, 거대한 몸집으로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코뿔소에 빗댄 별칭으로 회자됐다​. 실제로 그는 좌우명으로 “뜻을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한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을 내세우며, 끝까지 파고드는 집념과 열린 사고를 겸비한 엔지니어 정신을 강조하곤 했다​.

한종희 주요 경력 및 업적 일람표

연도경력/업적

1962년충청남도 천안 출생

1988년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 입사​

2000~2010년대삼성전자 LCD TV 랩장, 상품개발팀장, 개발그룹장 등 역임 – TV 기술 개발 주도​

2013년 12월삼성전자 VD사업부 개발팀장 선임 – TV 11년 연속 세계 1위 유지에 공헌​

2017년 11월삼성전자 VD사업부장 사장 승진 – 프리미엄 TV 전략 강화, “코뿔소 사장” 별명​

2021년 12월삼성전자 부회장 승진 및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취임 – CE(소비자가전)와 IM(IT·모바일) 통합 총괄​

2022년 10월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 겸임 및 품질혁신위원장 임명 – 역할 범위 확대​

2025년 3월심장마비로 별세 (향년 63세)

삼성전자 내 37년간 헌신한 ‘살아있는 전설’의 졸업​

 

DX부문 총괄,스마트 기기 혁신과 삼성 프리미엄 전략

2021년 말, 한종희는 삼성전자 조직개편의 핵심 축으로 낙점된다. CE부문(가전)과 IM부문(모바일)을 통합한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수장으로서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것이다​. TV로 대표되는 영상디스플레이 외에 스마트폰, 생활가전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사업부문을 이끈 그는 “제품 간 경계를 허물고 통합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로 DX부문을 진두지휘했다. 실제로 부회장 취임 후 한종희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 플랫폼을 중심으로 TV·폰·가전을 연결하는 생태계 구축에 힘썼고, AI·IoT 기술을 접목한 똑똑한 가전제품 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각 사업부의 역량을 한 데 모아 “한종희 표 디바이스 경험”을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리더십 아래, 부문 간 시너지 프로젝트들이 속도를 냈다.

DX부문장으로서 한종희는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도 집중했다. 그는 TV와 스마트폰 모두 최상위 제품군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프리미엄은 곧 삼성”이라는 공식을 굳히려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한종희 부회장 취임 이후 2500달러 이상 초고가 TV 시장과 75인치 이상 초대형 TV 시장에서 확고한 1위를 유지했고​, 스마트폰 부문에서도 폴더블 폰 등 혁신 제품으로 고급 라인업을 선도했다. 한종희는 인터뷰에서 “중저가 영역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센 만큼, QLED TV 같은 프리미엄에 주력해 격차를 벌렸다”고 설명하며, 가격 경쟁보다는 기술과 가치 경쟁으로 승부하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방향성은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가 직접 챙긴 비스포크(BESPOKE) 가전은 맞춤형 디자인과 IoT 기능으로 삼성 가전의 고급화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한편 한종희는 DX부문장 임무 외에도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을 쏟았다. 품질혁신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며 제품 신뢰성 향상을 주도하는 한편, 삼성의 숙원 과제였던 대형 인수합병(M&A)도 직접 챙겼다​. 그는 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가전 혁신을 강조하면서 “메타버스와 로봇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고 밝히는 등​, 의료기기부터 로봇에 이르는 4대 신사업 투자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처럼 엔지니어 출신의 기술통이자 종합경영인으로서, 한종희는 삼성전자 DX부문의 현재와 미래 전략 모두에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과 삼성전자의 대응

한종희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삼성전자 내부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한 부회장은 25일 새벽 안타깝게도 눈을 감았다​. 삼성전자는 즉각 사내 공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비보를 알리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회사 측은 “고인은 37년간 회사에 헌신하며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세트부문과 생활가전 부문을 이끌며 최선을 다했다”면서 “TV 글로벌 1위 유지 등 회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이라고 그의 공로를 기렸다​. 오랜 동료였던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 등 경영진과 직원들도 한종희의 열정적인 리더십과 인간적 면모를 회고하며 깊은 슬픔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리더십 공백이다. 삼성전자는 한 부회장의 부재로 인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시 후임 인선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회사 안팎에서는 “한 부회장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기엔 적임자 찾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만큼 한종희가 DX부문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작년 말 인사에서 생활가전사업부장까지 겸임하며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고​, 삼성의 미래 전략인 대형 M&A까지 직접 주도해온 터라 그의 부재가 가져올 후유증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삼성전자는 긴급 대책으로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사업지원TF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당분간 한 부회장의 직무를 분담시켜 공동 대행 체제를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호 부회장은 이재용 회장의 최측근으로 그룹 전반을 조율해온 전략통이며,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전자 DS부문장을 지낸 반도체 전문가로 두루 경륜을 갖춘 인물이다. 두 경영인의 가세로 급한 불은 껐지만, 한종희 부회장이 한창 진행 중이던 사업 구상과 의사결정 공백을 얼마나 빠르게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는 우선 DX 부문 산하 각 사업부의 자율 경영을 강화하며 혼선을 최소화하고 있다. 모바일(MX) 사업은 노태문 사장이,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은 용석우 사장이, 생활가전(DA) 사업은 개발담당 임원들이 각각 책임지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중요한 사항은 사업지원TF를 통해 수평적으로 협의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조만간 보다 명확한 새 판짜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포스트 한종희” 시대의 과제와 전망

한종희 부회장의 별세는 삼성전자의 경영구조 개편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우선 DX부문의 거버넌스 변화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장에는 정현호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가 중심이 되어 DX부문을 뒷받침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DX부문장을 공석으로 둘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몇 가지 시나리오를 주목한다. 하나는 현재 DX부문 산하 주요 사업부장 중 한 명을 부문장으로 승진 임명해 공식 후임을 세우는 방안이다. 이 경우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노 사장은 스마트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왔으나, 아직 부회장단으로 승진한 전례가 없어 파격 인사 여부가 관건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DX부문을 다시 여러 부문으로 분리해 각각 전문 경영인을 두는 것이다. 실제로 DX부문 통합 이전처럼 소비자가전과 모바일을 분리하거나, TV/가전과 모바일을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하는 식의 구상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는 한 명의 리더로 커버하기에는 DX부문 사업 포트폴리오가 방대하다는 현실론에 바탕을 둔 시각이다.

새로운 권력지형도 재편될 전망이다. 한종희 부회장은 이재용 회장을 보좌하며 삼성전자 2인자 중 한 명으로 통했다. 그의 부재로 당분간 정현호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 부회장은 현재 삼성전자 유일의 부회장급 인사로서, 한종희 부회장의 공백기 동안 DX부문 주요 현안을 챙기며 존재감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 부회장의 기술 리더십 아래 힘을 발휘했던 DX부문 사장단은 새로운 구심점을 찾기 전까지 다소 위축될 수 있다. 이는 자칫 의사결정 지연이나 조직 동력 약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TV·가전처럼 한종희 부회장이 직접 챙기던 분야에서 향후 혁신 프로젝트가 속도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과제가 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직면한 기회와 위험 역시 분명하다. 한종희 부회장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며 삼성의 프리미엄 지배력을 공고히 다져왔다​. 그의 부재 이후에도 삼성은 TV와 스마트폰 등 주력 분야에서 당분간 선두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니, LG전자, 중국 TCL 등 경쟁자들은 기술 격차를 줄이며 맹추격 중이고, AI 가전·스마트홈 분야에서는 구글·아마존 같은 IT 공룡들과의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한 부회장이 진두지휘하던 통합 디바이스 전략이 흔들린다면, 삼성의 프리미엄 이미지와 시장 지배력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대로 이번 위기를 변화의 전환점으로 삼아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도 있다. 삼성 내부에는 이미 젊은 세대의 유능한 기술 리더들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더욱 기민하고 과감한 혁신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포스트 한종희 시대, 삼성전자는 다시 한 번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한종희 부회장이 남긴 유산 "세계 1위의 기술력과 도전 DNA" 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삼성 DX부문의 향후 명운이 좌우될 것이다. 그의 빈자리를 메울 새로운 리더십을 찾는 일, 조직 문화를 재정비하는 일, 그리고 당면한 글로벌 경쟁의 파고를 넘는 일 등 세 가지 과제가 동시에 주어져 있다. 생전에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다”고 밝히던 고인의 말처럼​, 이제 삼성전자에는 고객 가치를 향한 초심과 미래 혁신을 향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도약을 준비할 시간이 찾아왔다. 한종희 부회장이 일생을 바쳐 보여준 리더십의 본보기는 삼성의 차세대 경영진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며, 그의 리더십과 유산은 한국 전자산업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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