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청년들의 이상, 늙은 중년들의 권력용 자위기구가 되다"
"정의의 저울, 기울어진 천칭... 진영논리에 휘청이는 양심의 수호자들"
"거울 앞에 선 파수꾼...투명성의 그림자와 후원금의 역설"
"침묵의 메아리... 조국 사태와 박원순 논란에 드리운 선택적 외침"

박수남 CEONEWS 데스크/부사장
박수남 CEONEWS 데스크/부사장

[CEONEWS=박수남 기자] 대한민국이라는 역사 드라마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참여연대'와 그 밖의 시민단체들의 가면극이 그 실체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그들의 위태로운 가면 놀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가면극 속에서 언제나 정의의 사도로 군림했던 참여연대의 '쓸쓸한 민낯'을 적확히 적시해, 옳고 그름의 정의는 이미지메이킹과 천박한 '겉'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팩트로 입증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지극히 바른, 소시민들의 참 외침 '시민운동'

 

언제나 대한민국 역사드라마의  클라이막스 씬에는 거리와 광장에서 솟구쳐 터져 나오던 소시민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데자뷰된다. 그들의 심장은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향해 타올랐고 치열히 울부짖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움트기 시작했다. 억압적 권력을 견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변호사, 언론인, 교수 등 각계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힘을 모아 시민단체들을 설립했다​. 그 대표 주자 중 하나가 1994년 9월에 출범한 참여연대다.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를 기치로 내건 이 단체는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첫발을 뗐다. 초창기 시민단체들의 행보는 눈부셨다. 참여연대는 창립 직후 사회안전망 확보 운동, 사법 개혁, 부정부패 척결, 재벌 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운동 등 굵직한 캠페인을 이끌며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는 부패 정치인을 낙천·낙선시키는 역사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도해 정치개혁의 새 지평을 열었다. 거리의 시민들은 '우리 손으로 부정한 권력을 심판하자'는 구호 아래 촛불을 들었고, 그 불꽃은 부조리한 기득권을 향한 경고장이 되었다. 당시 참여연대와 여러 시민단체는 권력에 맞서는 파수꾼이자 약자의 대변자로 비쳤다. 시민운동은 말 그대로 '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며 힘차게 도약했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푸르렀던 청년들에서 고깃덩어리에 굶주린 짐승으로

 

참여연대의 등장은 특히 큰 희망을 안겼다.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의 눈'을 자처한 참여연대는 정부나 거대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까지 시민의 힘으로 견제하겠다고 나섰다. 실현하고자 한 이상은 분명했다. 법 앞의 평등을 지키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는 법정과 사회 여론의 장을 넘나들며 활동했다.

90년대 후반 참여연대가 대기업 삼성의 편법 승계 의혹을 폭로하고 소액주주 운동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또 SK 등 다른 재벌 기업들을 상대로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며 주주총회장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날로 커졌다. 한 시사 매체는 참여연대에 대해 '권력과 싸우는 시민의 권리선언'이라 평하며 199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참여연대가 몸담은 시민사회는 한때 민주주의의 건강한 기틀이자 든든한 축이었다.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모습은 이상주의자들의, 열정으로 가득 찬 청년기와도 같았다. 시민들은 그런 참여연대를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웠다. 그러나 푸르렀던 청년의 이념으로 시작한 시민운동이 권력욕에 빠진 냄새 나는 중년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드러난 민낯은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고깃덩어리에 미쳐 돌아 피를 갈구하는 짐승의 출현을 예고하는 서막이 되었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권력의 파수꾼에서 권력의 애첩으로

 

시민단체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여실히 드러낸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는 정권 교체와 사회 변화의 격랑 속에서 점차 그 위치와 역할이 변모해 갔다. 특히 2017년 등장한 문재인 정부 시기를 거치며 참여연대는 전에 없던 영광과 굴욕을 함께 맛보게 된다.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참여연대는 '문재인 정부의 인재 등용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등 경제·정책 핵심에 참여연대 창립 멤버들이 포진했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등도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었다.​

한때 권력을 감시하던 시민단체 인사들이 이제는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영광'은 참여연대에 가장 뼈아픈 '위기'를 초래했다. 시민들의 감시자여야 할 단체가 오히려 권력과 한 몸이 되자, 곧바로 내로남불의 비판이 쏟아졌다. 2018년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과 셀프 후원 등 도덕성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를 계기로 '참여연대가 아니라 권력연대'라는 조소가 사회에 퍼졌다.​ 자신들이 임명한 인물의 비위 의혹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만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은 이들이 과연 화염병에 콜록거리며 거리에서 동지를 구하기 위해 살신했던 이들이 맞나 싶을 만큼 경이롭고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실제로 참여연대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선 이후, 이들이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언론과 학계를 통해 제기되었다. 한 정치학자는 '참여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료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려는 태도는 편향적 집단의식의 발로이며, 이제 참여연대는 권력의 파수꾼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권력을 감시하겠다던 단체가 권력의 애첩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보수 앞에서는 포효하는 사자

진보 앞에서는 꼬랑지를 흔드는 '똥개'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은 그 신뢰의 생명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참여연대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으로 기운 정치적 편향을 드러냈다. 과거 군사정권이나 보수정권 아래에서 시민단체들이 민주와 인권의 보루로 활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같은 잣대가 자신들과 성향이 유사한 정권에도 적용되었느냐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참여연대는 뼈아픈 자기모순을 경험했다. 2019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참여연대의 침묵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가족 특혜, 입시 부정 등)이 연일 폭로되었지만, 한때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던 참여연대는 좀처럼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조차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한 실행 위원은 조직을 떠나며 '참여연대가 관변 시민단체로 전락했다''고 비판했고, 또 다른 공동집행위원장 김경율 회계사는 ''촛불혁명 정부에서 참여연대가 권력 주변만 맴돌았다'며 작심한 듯 쓴소리를 남겼다​.

진영 논리에 갇혀 선택적 정의를 행한 것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실제로 조국 사태 직후 참여연대 내부 게시판에는 '왜 우리는 조국에게 침묵했나'를 성토하는 회원들의 글이 빗발쳤다. 보수 정권하에서는 그토록 맹렬히 비판하더니, 진보 정권 실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자신도 이 논란 이후 적잖은 회원 탈퇴 사태를 겪으며 곤욕을 치렀다​. 정의의 편이라 믿었던 이들이 보여준 선택적 행보는 많은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최근에도, 이 편향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비판 보고서를 내며 현 정권을 강도 높게 성토했다. 이를 두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왜 박원순 다큐 2차 가해 논란에는 한마디도 안 하느냐'고 지적하자, 참여연대 측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탄핵감 발언'이라 맞섰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미화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판을 두고 벌어진 이 논쟁은, 참여연대가 창립자인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는 침묵하면서 정권 비판에는 앞장선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정작 시민 인권을 말해야 할 장면에서는 침묵하거나 변명을 일삼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이슈에는 날 선 목소리를 내니, 대중의 냉소가 뒤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그냥 말하십시오 '기부미 또 머니'(Give Me The Money)

고고(孤高)의 껍질은 애처로우니.

 

시민단체가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은 투명하고 깨끗한 운영에서 나온다. '성역 없는 감시자'를 자처하면서 뒤로는 부정한 거래를 하거나 금전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신뢰는 산산이 조각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수년간 드러난 일부 사례들은 시민단체의 도덕성에 큰 의문부호를 던졌다. 참여연대의 경우, 오랜 기간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고 홍보해왔다. 겉으로는 재정적으로 깨끗함을 자부해온 셈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본 일부 정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참여연대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동시에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참여연대가 기업들의 잘못을 폭로하여 압박한 뒤면 어김없이 해당 기업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아름다운재단에 쾌척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실제로 참여연대가 한화그룹의 편법 증여와 분식회계 문제를 제기한 후, 2004년부터 한화 계열사에서 3년간 총 10억 원이 넘는 돈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고, 참여연대가 90년대 말부터 집요하게 공격하던 LG그룹도 20억여 원을 기부한 뒤엔 참여연대의 비판이 갑자기 잦아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마치 '비판을 멈추는 대가로 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충격적인 풍자까지 나왔다. 또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관련해서도, 시민단체들은 분노한 국민들과 함께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을 규탄했지만, 정작 박원순 당시 참여연대 대표는 론스타로부터 4년간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다는 폭로가 있었다​. '불법투성이 론스타를 협박해 돈을 받아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쏟아진 이 사건은, 훗날 서울시장에 오른 박원순의 도덕성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정의의 투사로 비치던 시민운동가조차 돈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은 시민들에게 커다란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비단 참여연대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시민단체 회계 비리 사건으로 2020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정의연은 한 할머니의 폭로로 인해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졌다.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니, 지출 내역을 부실 기재하고, 심지어 전 이사장 개인 계좌로 기부금을 모금했으며, 정부 보조금을 받고도 결산 보고에서 누락하는 등 총체적 부정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정의연 출신 국회의원은 사법 처리 절차를 밟게 되었고, 시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나눔의 집 등 다른 공익법인들에서도 유사한 후원금 유용 스캔들이 이어져, 한동안 '시민단체는 믿을 수 없다'는 냉소가 사회 전반에 팽배했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단체들에 투명성의 실패는 곧 존재 이유의 상실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정의를 부르짖기 전에 가글링부터

 

이제 참여연대에 묻겠다. 한때 정의와 공익을 부르짖으며 출범한 그대들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말이나 뱉질 말았어야지... 정의라는게 그리도 쉬운 말이었던가? 나는 감히 정의의 지읏 자도 꺼내기 불편하다. 내 추한 몰심(沒心)을 알기에. 그대들의 고고했던 정의가 우습게 보이는 건 나뿐일까? 그토록 정의를 외치던 그대들의 진짜 정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감시하겠다던 그대들은, 세월이 흐르며 그대들이 그토록 경계하던 권력의 자리를 탐하게 되었다.

정치권과의 유착 의혹이 꼬리를 물고, 불투명한 돈의 흐름이 포착되었으며, 비판의 칼날은 선택적으로 휘둘러졌다. 스스로 밝힌 대의(大義)와 행동 사이에 크나큰 간극이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모든 시민단체가 타락하거나 본령을 잃은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이름 없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양심적인 시민운동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눈에 비친 거대 시민단체들의 행태는 이상보다는 권력에, 원칙보다는 편향에, 투명성보다는 이익에 끌려다닌 모습이었다. 이는 시민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이어져, 결국 사회적 공익에도 해를 끼치는 일이다. 정권과 자본을 견제하라고 보낸 시민의 위임장을 자기 잇속과 정치적 편의에 남용했다면, 그에 대한 심판 또한 시민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참여연대가 싸질러놓은 똥들이 가득 찬 변기는 10여 년째 고여 썩어가고 있다. 레버? 시민들을 향한 진심 어린 자기반성이 레버다. 자기반성의 레버는 참여연대만이 내릴 수 있다.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박수남 데스크의 딥팩트 5] 정의팔이의 끝은 고깃덩어리... 참여연대, 초심은 어디에?

 

다시 시작하시길.

그 푸르렀던 초심으로.

 

사람들은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시민단체란 과연 무엇인가? 권력 바깥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제3의 영역인가, 아니면 때때로 권력과 손잡는 또 다른 이익집단에 불과한가?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순수한 운동체인가, 아니면 지원금과 후원금에 기대어 돌아가는 거대한 조직인가? 정의를 부르짖지만 정작 자신들의 내면엔 또 다른 권력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참여연대의 사례는 이러한 물음에 복합적인 단면을 제공한다.

광장에서의 함성은 컸으나 회의실 뒤편에서 들리는 속삭임은 때로 은밀했다. 스스로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의 눈'이라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 눈이 선택적으로 감기곤 했다. 시민단체의 존재 의의는 권력도 시장도 미처 돌보지 못하는 공익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있다. 그들이 초심을 잃고 권력과 이익을 좇을 때, 시민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무엇이 되려고 그리들 애를 썼나' 되묻고 싶다.

부패한 권력을 쫓아내겠다고 했던 이들이, 새로운 권력이 되어 부패하지 말란 법이 없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지금 깊은 성찰의 거울 앞에 서 있다. 스스로 내세운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게 행동할 때 비로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향해 쏟아붓던 비판의 날을 자신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태어난 시민단체가 또 하나의 권력 연대로 기억될 뿐이라는 냉혹한 역사의 교훈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묻겠다.

이한열 열사를 뵐 그날. 나. 이렇게 살아왔다, 동지야! 라고, 말할 수 있겠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그 이름 없었던 죽음들에게, 나. 떳떳하게 당신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대들이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입을 닥치겠다.

말할 수 없다면 시작하길 바란다. 자기반성의 레버는 필수이고, 꼭 해야 할 '선택사항'도 있다. 참여연대가 가장 먼저 사죄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은 참여연대의 옛 동지들이자 옛 후원자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의 시작점은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이다. 그것이 당신들의 진정성을 시민들에게 증명할 유일한 기회다. 

저작권자 © 씨이오데일리-CEODAILY-시이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