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지금으로부터 129년 전인 1896년 8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이 생겨났다. 오늘날 ‘두산’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8월호 브랜드 스토리로 소개한다.
한 말 한 말 쌓아 큰 산을 이룬다
‘두산’은 곡물을 측정하는 단위인 ‘두(斗)’와 산을 의미하는 ‘산(山)’이 합쳐져 ‘한 말 한 말 쌓아 큰 산을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류의 풍요로운 삶에 중점을 둔 두산은 1896년 박승직 두산 창업주의 국내 최초 현대식 상점 설립을 시작으로, 국내 최초 화장품 개발까지 시대를 앞서는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 무역업을 시작하고 OB맥주를 설립해 그룹의 면모를 다졌으며, 1960년대에는 건설, 식음료, 기계산업 및 언론, 문화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두산은 삶에 더욱 필수적이며 발전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와 깨끗한 물, 도로, 시설, 건물 등을 제공하는 비즈니스로 사업 영역을 변화시켰다.
창립 100주년에는 다음 100년으로의 도약을 위해 여러 자회사를 하나의 지주회사로 통합하고, 선진화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일련의 성공적인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통합된 인프라 지원 사업을 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두산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인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거대한 발전소에서, 중동의 수백만 명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담수화 플랜트를 비롯해, 북미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건설장비들, 사용량이 급증하는 에너지 저장장치와 연료전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삶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두산은 계속해서 협동로봇과 모바일 연료전지, 중장비 자동화/무인화 기술 개발 등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 매진하고 있다.
깨끗한 물과 어둠을 밝히는 빛에서부터 삶의 터전을 일구고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솔루션에 이르기까지 인류 모두가 그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기회를 열어주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두산의 생각이다.
변신을 거듭한 두산
두산은 1896년 창업한 대한민국 최고(最古) 기업으로 소비재부터 시작해 중공업,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장해 왔다. 두산의 역사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초기의 두산
구한밀인 1896년 8월 1일 창업주 박승직이 서울 종로에 세원 ‘박승직상점’이 두산의 모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지만, 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했다.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했다.
박승직은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1916년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을 히트시켰다. 포목점에서 화장품까지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포목점에 이어 화장품 사업까지 잘되면서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은 일제로부터 우리 상권을 지키기 위해 광장시장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해방으로 큰 전환기를 맞이한 두산
일제의 패전과 8.15 광복 이후 1945년 9월 박승직은 박승직상점을 휴업하고, 10월 6일부터 소화기린맥주(주)의 취체역(取締役, 이사)으로 상근했다. 소화기린맥주는 1933년 창립 때부터 박승직이 주주로 참여했던 회사다.
미국 군정에 의해 박승직의 장남인 박두병이 적산기업인 쇼와기린맥주의 지배인으로 선임됐고, 박두병은 1947년 6월 소화기린맥주의 상호를 동양맥주(주)로 변경했고, 상표도 Oriental Brewery로 바꾸었다.
1948년 7월 박두병은 동양맥주 사장에 취임했고, 두산상회를 설립해 무역업에도 뛰어들어 1950년 홍콩에 게살 통조림을 수출했다. 두산 창업자 박승직은 6.25전쟁 중에 세상을 떠났다.
1951년 3월에 이승만 정부가 귀속재산 불하 계획을 발표하자 박두병은 1951년 10월 두산상회를 주식회사로 설립해 사장에 취임하고, 동양맥주 불하 경쟁에 참여해 1952년 5월 동양맥주(주)를 불하받는데 성공했다. 이어 1953년 6월 두산상회를 두산산업으로 개편해 동양맥주의 총판으로 만들고, 동양맥주는 생산에만 전담케 했다.
1954년 3월 상표를 단순화한 OB로 바꾸고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을 33.5%에서 57%로 끌어올려 크라운맥주를 추월했다.
OB그룹에서 두산그룹으로
동양맥주를 기반으로 1960년대에는 사업다각화에 나서서 1960년 7월에 동산토건을 세워 건설업에 진출하고, 11월에는 합동통신을 인수해 언론에도 손을 댔다. 1973년까지 연평균 1개 회사를 신설하거나 인수해서 그룹이 되었다. 처음에는 OB그룹으로 부르다가 1978년부터 두산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룹이 되면서 동양맥주 사장을 맡고 있던 박두병이 회장으로 올라가고, 박두병이 발탁했던 정수창이 동양맥주 사장이 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됐다. 정수창은 그 후 2대, 4대 그룹 회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를 열었다.
1981년부터는 박두병의 장남인 박용곤이 회장이 되면서 3세 경영체제에 들어갔다.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가업을 포기한 두산
OB맥주 등 소비재 사업이 주력이었던 두산이 소비재를 버리고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91년에 발생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이었다. 경북 구미시에 있는 두산전자(현 두산 전자BG)가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해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이로 인해 낙동강 라인인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 지역 소비자들로부터 두산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 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었기 때문에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OB맥주의 경쟁 브랜드인 크라운맥주가 천연암반수를 강조한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맥주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장남인 박용곤이 회장에서 물러나고, 둘째인 박용오가 회장을 맡았는데 소비재 사업 포기를 두고 형제들간에 심한 갈등을 빚었다. 논란 끝에 두산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매각 혹은 사업 철수를 통해 그룹의 뿌리와도 같은 소비재 산업을 버리고 중공업에 치중하게 된다.
위기를 극복하고 부활하고 있는 두산
소재 산업을 정리한 두산그룹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중공업, 플랜트 건설 기업으로 변모했다. 소재 분야 계열사 매각대금으로 확보한 실탄을 활용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 그룹으로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 후로 중공업과 플랜트 분야의 기업 M&A를 통해 건설중기, 해수 담수화, 발전 플랜트 분야에서 내공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재 중심의 기업에서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하면서 두산의 위기는 시작됐다. 특히 2007년 미국의 건설기계 제조 기업인 밥캣을 인수하면서부터 위기가 닥쳤다. 인수를 위해 과다한 차입금을 지불한 데다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건설 경기가 맛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밥캣 인수와 비슷한 시기에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두산그룹을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건설 부문의 위기가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결국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만들었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더불어 산업용 로봇 계열사인 두산로보틱스의 약진과 두산중공업의 활황 덕분에 두산그룹은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산의 발전 과정>
▲1896년 박승직상점 개점
1896년 지금의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두산의 모체인 ‘박승직상점’이 문을 열었다.
▲1978년 OB그룹에서 두산그룹으로 명칭 변경
다각화하는 사업들을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로 연결하기 위해 그룹의 모체인 박승직상점의 정통성을 법적으로 이어받은 두산산업의 ‘두산’을 따서 그룹의 새로운 명칭으로 삼았다.
▲1982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창단
OB베어스는 한국 프로야구 1호 팀으로서 대망의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1998년 두산타워 준공
두산의 발상지인 종로4가 배오개에서 가까운 동대문에 두산의 동대문 시대를 열었다.
▲2001년 한국종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인수
선제적 구조조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해 온 두산은 발전, 담수, 주단조 및 건설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두산 역사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사 밥캣 등 3개 사업부 인수
두산은 세계 1위의 경쟁력을 보유한 미국 잉거솔랜드사(IngersolRand)의 소형 건설장비 사업 부문 등에 대한 M&A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건설기계 분야 세계7위로 급부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4년 두산, 연료전지 사업 진출
두산은 국내 주택용 연료전지 시장 선도업체인 퓨얼셀파워를 합병하고, 건물용 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 업체인 미국 클리어엣지파워(ClearEdge Power)를 인수해 연료전지 사업이 진출했다.
▲2017년 두산로보틱스 설립
두산로보틱스는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 수원산업단지에 연면적 4,451㎡, 연간 최대 생산량 1만여 대의 협동로봇 공장을 준공하고, 12월부터 M시리즈 양산에 들어갔다. 이 공장의 주요 공정에서는 사람과 협동로봇 완제품이 함께 작업하며, ‘로봇이 로봇을 생산’한다.
▲2018년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드론용 연료전지 사업 진출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oosan Mobility Innovation)은 수소 연료전지팩을 활용해 2시간 이상의 획기적인 드론 비행시간을 구현했다.
▲2019년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국산화...세계 5번째
두산에너빌리티는 2013년부터 국책과제인 한국형 대용량 가스터빈 모델 개발 과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세계 5번째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독자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2020년 두산퓨얼셀, 세계 최초·최대 부생수소 연료전지발전소 준공
두산퓨얼셀은 수소 연료전지 114대를 공급한 ‘대산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준공했다. 대산 수소연료전지발전소는 부생수소를 연료로 하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연료전지발전소이다.
▲2021년 분당 두산타워 준공
지하 7층~지상 27층 규모의 신사옥은 국내 최대 규모인 1,500톤 스카이 브릿지에 리프트업 방식을 적용한 랜드마크 건축물로 건립됐다. 분당 두산타워에는 두산,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디지털이노베이션, 두산로보틱스, 두산큐벡스 등이 입주해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2022년 두산테스나 공식 출범
두산은 국내 반도체 웨이퍼 테스트 분야 1위 ‘테스타’를 인수해 ‘두산테스타’를 출범했다. 두산테스타는 시스템 반도체 생산의 후공정 가운데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향후 웨이퍼 가공 및 반도체를 조립하는 페키징 기술까지 확보해 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후공정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2023년 두산에니빌리티,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본격 착수
두산에니빌리티는 국내 대형 원전, 신한울 3·4호기에 공급할 1,400MW급 한국 표준형 모델(APR1400)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 등 핵심 주기기 제작에 본격 착수했다.
▲2024년 두산에너빌리티, 가스터빈 부문 수주 1조원 돌파
두산에너빌리티는 K-가스터빈 제작·서비스·건설 3개 부문을 연이어 계약 체결해 수주 1년 만에 누적 금액 1조원을 돌파하며, 가스터빈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