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전신인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산업은행의 전신인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CEONEWS=김병조 기자] 적산기업 중에는 앞서 소개한 재벌이 된 회사와 식품회사들 외에도 제약회사, 타이어회사, 방적회사, 유통회사, 광업소, 철강회사도 있었고, 심지어 공기업도 3개나 된다. 이번 회에서는 기타 주요한 적산기입과 공기업들을 소개한다.

대웅제약과 중외제약

대웅제약의 전신은 1945년에 경남위생시험소에서 일하던 지달삼이 인수한 일본인 소유 제약업체 가와이제약소. 인수 후 조선간유제약공업사로 새로 설립했다. 이후 1947년 대한비타민화학공업사, 1961년 대한비타민산업()로 사명을 바꾸고 같은 해에 간장약 우루사를 출시했다.

1966년 부산 선화약국 주인이던 윤영환이 회사를 인수했다. 1978년 대웅제약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래서 대웅제약의 창업주는 1966년에 인수한 윤영환 전 회장으로 보고 있다.

중외제약은 일본의 츄가이제약‘(중외제약)이 전신이다. 해방 후 한국인 임용식이 불하받아 194588일 기존의 이름인 중외제약 앞에 조선을 붙여서 조선중외제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6.25 전쟁 후 1953년 임용식 사장이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이기석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고, 이기석이 투자해 정식 법인을 설립하면서 사명을 대한중외제약으로 바꿨다. 그래서 오늘날 JW중외제약의 실질적 창업자는 이기석으로 본다.

이기석이 죽고 1975년 아들 이종호가 경영을 맡았다가 2015년부터는 이종호의 장남 이경하가 회장을 맡고 있다. 2011년 사명을 JW중외제약으로 바꿨다.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전신은 1941년에 일본 브리지스톤 주도로 설립된 조선다이야공업이다. 1942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도림리에 영등포공장을 차렸다. 해방 후 귀속 재산으로 상공부 관할이 되었다가 1955년 강경옥 의원이 인수한 후 한국다이야로 사명을 변경해 1958년 영등포공장을 재건했다.

경영 악화로 1962년부터 한일은행의 관리를 받다가 1967년 효성그룹으로 편입됐고, 1963한국타이어제조로 사명을 바꾸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자동차 시대가 되면서 고속 성장했다. 2019년 그룹명 변경에 따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리지로 사명을 변경했다.

넥센타이어의 모태는 1942년 설립된 흥아고무공업이다. 해방 이후 일본인 대표가 도주하면서 종업원들이 공장을 운영하는 자치관리위원회를 조직했다. 초기에는 자전거 타이어와 튜브를 생산했다.

미국 군정 시기에는 부산의 부호 이연재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타이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1952년 사명을 흥아타이어()‘로 변경했고, 1956년 한국전쟁 이후 국내 최초로 자동차 타이어를 생산하며 미국 극동사령부에 납품을 시작했다. 이후 국내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지만, 경영난을 겪다가 1971년 원풍산업에 매각되었다.

그후 사명이 원풍타이어로 변경되었다가 1986년 우성건설이 인수하면서 우성타이어가 되었고, 195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으로 시공사였던 우성건설이 부도처리 되면서 법정관리를 받다가 강병중 회장이 인수하면서 2000년 사명을 넥센타이어로 변경했다.

전방(전남방직)DI동일

전방의 모태는 1935년 일본 가네가후치방적이 세운 광주공장이다. 해방 후 귀속재산 전남방직공사가 됐다가 1951년 정치인 김무성의 아버지인 김용주와 김형남이 불하받아 2년 후인 1953전남방직으로 새로 창업했다.

김용주는 경남 함양 출신으로 부산제2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식산은행(한국산업은행의 전신)에 입사해 본점과 포항지점에서 근무한 적 있다. 정치인 김무성은 김용주의 3남이며, 장녀인 김문희의 딸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다.

1961년에 동업자 김형남이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려다가 김용주와 갈등을 빚어 일부 공장설비를 떼어 일신방직으로 독립했다. 1968년 인천 북구에 부평 소모방공장을 세운 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1970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했다. 2001년까지 김씨 집안이 경영하다가 2002년에 조규옥 삼동산업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장악했다.

DI동일의 전신은 귀속재산 동양방적공사‘(도요방적 인천공장)이다. 19558월에 창업주 서정익이 불하받아 동양방직으로 창립했다. 1960년 경성방직 등과 공동으로 중앙염색가공 설립에 투자하고 196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66동일방직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 회사는 1978221일에 발생한 동일방직 똥물 사건으로 회사의 이미지가 크게 추락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동일방직 인천공장에서 벌어진 여성 노동자 탄압 사건으로 유명하다. 어용노조를 이용해 쟁의 중인 노조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뿌린 사건으로, 노동탄압이자 기업범죄로서 회사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한 계기가 되었다.

동일그룹의 모기업이지만, 1990년대 이후 섬유산업 사양화와 1997년 외환위기 등으로 일부 계열사를 정리하고 주력 산업을 섬유가 아닌 다른 분야로 전환했다.

신세계백화점

1930미츠코시경성점이 전신이다. 해방 후 귀속 재산이 되어 동화백화점으로 영업하다가, 19506.25 전쟁 때는 한동안 미군 PX로 활용되기도 했다.

1953년 휴전 이후 관재청 관할로 들어왔고, 1954년 조선방직에 불하되어 독립법인이 되었다. 1962년 동방생명에 인수되었고, 1963년 동방생명이 삼성그룹에 인수됨에 따라 삼성 산하에 들어갔다. 삼성에서는 동화백화점을 신세계백화점으로 개칭했다.

동아연필

적산 기업 대동아연필이 전신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필기구 제조 회사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해방을 맞아 귀국한 창업주 김정우 회장이 194610월에 미국 군정으로부터 적산 기업 대동아연필 대전 공장을 불하받아 동아연필을 세웠다.

초대 회장은 김정우의 아버지인 김노원이 맡았고, 김정우가 2대 회장, 김정우의 3남 김충경이 3대 회장, 그리고 2004년부터 김충경의 아들 김학재 대표가 4대째 경영을 하고 있다.

유성 볼펜과 중성펜, 연필, 샤프펜슬, 샤프심 등을 생산하고 있다.

대구텍

19362월에 설립된 고바야시광업이 모체다. 19529월 국영기업 대한중석광업으로 출범했다가 1992대한중석()‘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19943월 민영화 방침에 따라 거평그룹에 인수됐다.

1998년 거평그룹의 부도로 IMC그룹이 한국에 설립한 대한중석초경()에 인수되어 대구텍()‘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했다.

현재 절삭공구, 산업제품, 분말제품, MATRIX/CTMS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세아베스틸

뿌리는 1937고바야시광업창업주 고바야시 우네오가 경기도 시흥군 동면 도림리에 세운 광산개발회사 관동기계제작소.

초기에는 광산기계만 만들어 오다가 해방 후 적산기업이 된 후 조선중기공업이 됐다. 6.25 전쟁 휴전 뒤인 1955년 관리인이던 김연규가 불하받아 대한중기공업으로 새 출발을 했다.

1986년 기아산업에 인수돼 1990년 법인명을 기아특수강으로 변경했다. 2003년 세아그룹에 매각되어 2004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특수강봉강, 형단조품, 단강품 등 1차 철강 제조업이다.

공기업이 된 적산기업

한국산업은행

한국산업은행의 모태는 일제강점기 국책은행인 조선식산은행이다. 조선식산은행은 191810월 조선총독부가 6개 농공은행(農工銀行)들을 합병해 출범한 은행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502월에 상호가 한국식산은행으로 변경됐다. 19544월 새로 설립된 한국산업은행 등으로 모든 업무를 이관하고 주요 자산을 양도한 후 해산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LH의 전신은 일제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이다. 194171일부터 1948814일까지는 조선주택영단이라고 불렀고, 1948815일부터 1962630일까지는 대한주택영단이라고 했다.

그후 대한주택공사, 토지금고, 한국토지개발공사, 한국토지공사 등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2008년부터 진행된 공기업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명박 정부의 주도하에 200910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병해 출범했다.

한국전력공사

대한제국 시절인 1898년 설립된 한성전기회사가 전신이다. 얼마 안 가 1904년 소유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고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9일한가스회사로 넘어가서 일제강점기를 보냈다.

해방 이후 한국 정부와 미국 군정 간의 귀속 재산 처리 과정에서 국가 관리 기업이 된 전력 3(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에 대한 처리 문제가 대두됐다. 그 후 전력 3사의 통합이 이뤄져 1961한국전력()‘으로 통합됐다. 그리고 1982년 현재의 한국전력공사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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