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
석유화학산업 위기의 원인과 대응전략은?

[CEONEWS=김병조 기자] 우리나라에서 석유화학산업은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지난 수십 년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수출 주도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기반 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원인과 전략적 대응전략을 짚어 본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현황

석유화학산업이란 석유와 천연가스를 원료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고 이를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으로 가공하는 산업을 말한다. 자동차, 전자,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 필수적인 기초소재를 공급한다.

2023년 기준, 화학제품업은 국내 석유 소비의 56.5%를 차지하며 석유를 핵심 원료로 사용하는 산업의 특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원유 정제처리업의 부가가치는 202353.8조 원에 달하며, 연관 산업(석유·화학)을 포함한 총 부가가치는 142.3조 원에 이른다. 이 산업은 27,662개의 사업체에서 약 43만 명의 종사자가 일을 하고 있어서 고용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이 국내 석유 소비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과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막대한 부가가치 및 고용 규모는 이 산업이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을 시사한다. 석유화학 제품은 전자, 자동차, 건설, 섬유 등 주요 전방 산업의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 산업의 안정성과 경쟁력은 국가 전체 산업 생태계의 건전성과 직결된다.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전방 산업의 생산 비용 상승, 소재 조달 불안정성, 나아가 전체 산업 밸류체인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석유화학산업의 특성

석유화학산업의 최초원료는 원유를 정제해 얻어지는 액상원료(나프타, 경유, LPG )와 천연가스에서 추출되는 기상원료(에탄, 프로판, 부탄 등)로 대별 되며 비산유국에서는 대부분 액상원료인 나프타를 사용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경공업의 소재 산업으로서 합성수지는 산업용·가정용 성형품, 전기·전자 부품, 자동차부품, 포장재, 건자재 등으로, 합성섬유 원료는 합성섬유 등으로, 합성고무는 타이어, 신발 등으로, 기타 화공약품은 합성세제, 계면활성제, 도료, 안료, 의약, 농약, 비료 등 각종 화학산업의 주원료 및 보조원료로 사용된다.

석유화학산업은 여러 종류의 다양한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나프타분해공장 또는 에탄분해공장을 중심으로 각종 계열제품 공장들이 모여 콤비나트(단지)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유화학산업의 최초원료 및 기초유분이 액체 또는 기체이기 때문에 항만, 탱크, 파이프라인 등 저장 및 운반설비가 필요하고, 주제품 제조시설 외에 전력, 가스, 증기 등 유틸리티 생산설비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초기건설에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자본집약형 장치산업으로 공장이 대형화할수록 경제성이 높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며 생산비용면에서는 고정비 비중이 높고 직접노동비 비중이 낮아서 가동률 상승에 의한 코스트 절감효과가 크다.

석유화학산업은 수요에 맞추어 생산을 유연하게 증감시키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제품이 대부분 범용품이므로 질보다는 가격이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시황변동이 매우 크다.

석유화학산업은 타 소재의 대체수요 확대, 일회성 용도 등의 요인으로 소비량은 생활 수준 향상과 상관관계를 지니며, 원유는 유화산업에 있어 에너지 원인 동시에 원료원인 관계로 원가 비중이 높아 다른 산업에 비해 유가가 제품 가격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석유화학산업은 원유 등의 천연자원을 가공해 부가가치가 높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가공기술의 향상과 특수소재의 개발로 고부가가치화가 더욱 가속되고 있다.

최근 석유화학산업 위기의 원인

최근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글로벌 에틸렌 공급은 5.4% 증가했는데 수요는 2.6% 증가에 그쳐서 업계 전반에 가동률이 크게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 범용 제품의 자급률이 빠르게 높아져서 2025년에는 주요 기초유분의 자급률이 10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 시장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업계로서는 가장 큰 위협이다.

지난 3년 동안 중국은 에틸렌 기준 국내 생산 능력의 200%에 달하는 2,500만 톤 규모의 설비를 증설했다. 이 여파로 동북아 지역 내 석유화학 공장 가동률은 15% 이상 하락했다.

지난 72'석유화학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재편'을 주제로 열린 국회미래산업포럼에서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동북아 내 신규 증설 물량을 고려했을 때 현재의 침체는 과거와 양상이 달라 내수 성장 기반의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업계) 재편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석유화학 업체들의 대응이 늦어질 경우 석유화학산업뿐만 아니라 실물 경제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과 자급률 제고는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공급 과잉이 지속할 경우 향후 3년 이상 버틸 수 있는 국내 기업은 50%에 불과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이는 이미 국내 기업들의 생산 시설 가동률 감소와 구조조정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실적으로 나타난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우리나라 5대 석유화학 기업은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여천NCC이다. 이들의 최근 5년 실적을 분석해 보면 산업의 위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업계 1위인 LG화학은 매출이 5년 전과 비교하면 78.8%나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1.1% 증가에 그쳤다. 2021년에는 영업이익이 5264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1.8%나 되었지만,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고작 1.9%에 불과했다. 경쟁 악화로 수익성이 떨어졌다는 증거다.

업계 2위인 롯데케미칼은 더욱 심각하다. 매출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3년째 적자다. 이 회사도 지난 2021년에는 영업이익이 15,356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8.5%나 되었던 회사다.

3위 업체 한화솔루션도 지난해부터 영업순실을 보기 시작했다. 순이익은 2년째 적자인데, 지난해에는 적자 규모가 14천억원이 넘었다. 역시 매출이 정체된 가운데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의미다. 이 회사도 2021년에는 영업이익률 6.9%를 기록했던 회사다.

4위 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은 아직 적자로 전환되지 않았지만, 역시 전성기에 비하면 이익 규모가 크게 줄었다. 업계 전반적으로 호황이었던 2021년에는 영업이익이 24,068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28.4%나 되었지만,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2,728억원으로 줄어들어서 영업이익률이 3.8%로 급감했다.

 

부도 위기에 몰려 국내 석유화학산업 몰락의 신호탄이 되었던 업계 5위 여천NCC의 경우는 다른 기업들보다 더 심각하다. 2017년에 매출 54,150억원에 영업이익 1110억원을 올려 영업이익률 18.7%를 기록했던 이 회사는 최근 3년 연속 영업이익과 순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석유화학산업 위기의 발단 여천NCC는 어떤 회사인가?

여천NCC19991228일에 설립된 석유화학 회사다. 한화그룹의 석유화학 계열사인 한화솔루션과 DL그룹(대림산업)의 석유화학 계열사인 DL케미칼이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다. 원래 상호는 여천석유화학()이었으나 설립 이틀 만인 19991230일 여천NCC()로 바꿨다.

이 회사는 나프타를 열분해해 석유화학 기초원료를 생산하는 NCC(Naphtha Cracking Center)업체로 에틸렌을 비롯해 프로필렌, 벤젠, 톨루엔, 자일렌, 스티렌모노머,부타디엔 등 각종 석유화학산업의 기초원료를 생산해 국내외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에틸렌이 차지하는 비중이 32.93%, 프로필렌이 21.47% 등 두 품목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에틸렌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 능력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다.

10여 년 전엔 금융권을 제외한 기업 중에 연봉 1위였던 회사가 유동성 위기로 지난 32천억 원을 수혈받았는데, 반년도 안돼 또 부도 위기를 맞아 지난 8일부턴 여수 3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대주주 2개사가 부족한 자금 3천여 억원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며 겨우 부도 위기를 막았지만, 미봉책에 가깝다.

업계는 지금 뼈를 깎는 구조조정 중

3대 석유화학단지 중 여수산단에선 LG화학, 롯데케미칼의 생산라인 일부가, 울산에선 효성화학 등 10개 공장의 일부 생산이 중단됐다. 충남 대산산단에선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통폐합을 논의 중이다.

업계 1위 업체인 LG화학은 지난해 3월 여수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최근 수익성이 악화한 김천 공장 전체와 나주 공장 일부를 철거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두 공장은 주요 산업단지 내 시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수익성 저하로 인한 생산 효율화의 대상이 됐다.

업계 2위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2월 여수 2공장의 5개 라인 중 3개 라인의 철거를 결정했다. 산업 사이클을 타는 석유화학산업 특성상 일시 중단이나 가동정지는 유연하게 일어나지만, 공장을 철거하는 결정은 사실상 해당 시설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해서 그 충격파가 더 크다. 롯데케미칼의 대산 에틸렌글리콜 2공장도 약 1년 반 동안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업계는 일단 공급 과잉이 덜한 고부가 제품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부진을 버텨낼 몸집을 줄이기나 통폐합은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생산 능력을 유지해서 생존하기는 어렵고, 결국 일부 생산 능력 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3대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 전남 여수, 충남 서산 지역 세무서에서 거둔 국세가 최근 4년 새 36.3%나 감소한 것이 석유화학산업의 침체를 반증해주고 있다. 20212080억원이었던 3대 석유화학단지의 국세 수입은 133,82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석유화학산업의 위기가 곧 국가경제의 위기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업계가 금융 지원 등을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는 조만간 석유화학 위기 극복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석유화학산업 최근 동향 및 전망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최근 동향은 친환경 기술 혁신이다. 생분해 플라스틱(PLA, PHA)과 바이오 기반 제품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 내 비중이 2028년까지 62%에 이를 전망이다. LG화학, SKC 등은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시설 확대 및 탄소 포집 기술 도입을 통해 탄소 배출 저감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저성장 속에서 범용 제품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으며, Specialty 제품과 친환경 기술 투자가 필수적이다. 2025년 아시아 시장 내 공급 과잉 완화와 미국·유럽의 방향족 제품 수요 증가로 일부 제품 스프레드 개선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은 기술 부진과 협소한 시장 규모로 인해 글로벌 선도기업(: BASF, Nature Works)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신흥 시장 진출과 기술 협력 확대가 시급하다.

국내 기업들은 또 원자재 가격 변동성 대응과 규제 대응이 핵심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가 안정화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생산 거점 다변화가 필요하고, 플라스틱 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제품 개발과 재활용 기술 상용화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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