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주식·승계·법적 공방·M&A로 해부한 리스크 지도

구자경 명예회장 생일축하에 함께한 구광모 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생일축하에 함께한 구광모 회장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대한민국 재계에서 LG는 늘 ‘조용한 그룹’으로 불려왔다. 삼성처럼 법정 공방이 끊이지도 않고, 현대차처럼 노조 이슈가 터져 나오지도 않는다. 외부에서 보기엔 안정적인 경영과 묵묵한 숫자가 눈에 띈다. 그러나 이 고요는 착시일 수 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지난 7년간 LG는 내부적으로 누구보다 치열한 구조 개편과 리스크 관리에 몰두해왔다. 이번 칼럼은 LG의 지배구조와 법적 공방, 투자와 사업 구조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무풍 제국’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본다.

■개인사와 리더십 DNA=양자의 길, 조용한 결단

구광모 LG 회장
구광모 LG 회장

구광모 회장은 고(故)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되며 LG의 후계자로 자리 잡았다. ‘조카에서 양자’로 이어진 이 가족사는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LG 오너십 정통성을 공고히 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동시에 이는 구광모에게 무거운 책무를 남겼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한마디로 “조용한 결단”이다. 보여주기식 언어보다 실행, 화려한 선언보다 묵묵한 구조 변화에 방점을 두는 스타일이다. 취임 직후부터 그는 가문 리스크와 기업 리스크를 분리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정판이 바로 2021년 LX그룹 분리다. 비핵심 사업군을果斷히 분리하며 지주–핵심 자회사 중심의 단순한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오너가(家)의 문제와 상장사 가치의 충돌을 최소화하며, ‘조용한 구조조정’이라는 별칭을 남겼다. 이는 구광모 리더십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주식과 지배구조=15.96%의 지분과 우호지분의 방어선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8월 미국 보스턴 소재 바이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랩센트럴'에서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랩센트럴 CEO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8월 미국 보스턴 소재 바이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랩센트럴'에서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랩센트럴 CEO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LG 지배구조의 심장은 지주사 ㈜LG다. 구광모 회장은 15.96%의 개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수관계인과 장기 기관투자가를 포함하면 약 41.7%의 우호 지분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재계가 평가하는 안정적 방어선이다.

구 회장 취임 이후 ㈜LG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확대를 축으로 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했다. 과거의 자사주가 “총수 방어용”이라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자본 효율성과 주주 가치 제고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LG전자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고, LG유플러스 또한 1000억 원 규모 소각과 800억 원 규모 매입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히 주식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지주–자회사 간 지분 구조를 더욱 촘촘히 다지며 지배의 일관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동시에 글로벌 연기금과 의결권 자문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압력이 거세지는 국면에서, LG가 배당·소각·분할·합병 같은 자본 정책의 정교함을 높여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승계와 법적 공방=가족 소송과 상속세라는 이중링

현장을 둘러보는 구광모 회장.
현장을 둘러보는 구광모 회장.

LG의 리스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먼저 불거졌다. 구광모 회장은 현재 두 가지 법적 난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첫째는 가족 간 상속분 소송이다. 모친과 자매가 제기한 이 소송은 2023년 2월에 시작돼 2년이 넘는 시간을 끌고 있다. LG 오너 일가 내부의 갈등이 법정으로 번진 것은 드문 일이다. 지배력 자체를 흔들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판결이나 조정 결과에 따라 일부 지분 구조의 미세 조정은 불가피하다.

둘째는 상속세 소송이다. 100억 원대 규모의 상속세 산정 문제를 두고 진행된 행정소송에서, 1심은 오너 측에 불리하게 판결이 났다. 이후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변론 재개와 일정 변경으로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상속세 문제는 단순한 세금 납부를 넘어 자사주 정책, 배당성향, 차입 구조 등 LG의 자본 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가족 소송과 상속세 소송은 평판, 거버넌스, 현금흐름이라는 세 축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 리스크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얼마나 세밀하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LG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선제적 공시와 정례적 소통, 기술적 조정을 통해 리스크의 체적을 줄여야 한다.

■M&A와 투자=LG식 ‘핀셋형 흡수 전략’

LG는 고 화담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19년 5월 20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LG그룹)
LG는 고 화담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19년 5월 20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LG그룹)

LG의 인수합병은 경쟁 그룹처럼 화려한 빅딜로 판을 흔들기보다, 필요한 부분만 정밀하게 흡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LG전자는 생활 밀착형 로봇 시장을 겨냥해 실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로봇 플랫폼 기업을 인수했다. 이는 단순히 기기를 보강하는 수준이 아니라 운영 소프트웨어와 플릿 관리까지 통합해 하드웨어–OS–서비스를 아우르는 구조를 만들었다. LG화학은 북미 완성차 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미국 남동부에 양극재 공장을 짓는 동시에 남미·북미를 잇는 리튬 공급망을 구축하며 IRA 대응형 현지화 투자를 본격화했다. LG디스플레이는 대규모 유상증자와 OLED 전환에 집중하며 체력을 회복했고, LG생활건강은 중국 시장의 부진 속에서 브랜드와 채널 믹스를 재정비하고 있다. LG의 M&A는 외형적 과시 대신 ROIC 관점에서 실속을 챙기는 전략으로 요약된다.

■사업 포트폴리오=숫자로 읽는 LG의 체력

1월 2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새해모임에서 구광모 회장과 임직원들이 새로운 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1월 2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새해모임에서 구광모 회장과 임직원들이 새로운 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LG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안정과 도전이 교차한다. 

에너지솔루션 부문은 북미 전기차 수요 변동성에 직면했지만, 일부 EV 배터리 라인을 ESS로 전환하며 2026년까지 30GWh 규모의 북미 ESS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전자 부문은 프리미엄 가전의 견조한 수익 위에 전장과 로봇, 플랫폼을 얹어 새로운 성장의 길을 모색한다. 

디스플레이 부문은 OLED 전환이 흑자 전환의 지속성을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됐다. 생활건강은 중국 시장 매출 감소로 실적이 위축되며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고, 지주사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정책을 통해 NAV 디스카운트 해소에 힘을 쏟고 있다. LG의 체력은 안정된 현금흐름 관리 능력과 글로벌 현지화 투자에서 힘을 얻고 있지만, 동시에 변동성 관리 능력이 평가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리스크 매트릭스=보이지 않는 격랑

LG가 직면한 리스크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결코 작지 않다. 가족 소송과 상속세 문제는 지배구조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지만 자본 정책의 미세 조정을 요구한다. 전기차 사이클과 IRA 규제 변수는 배터리와 소재 사업의 단기 마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중국 소비 부진은 생활건강 부문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OLED 전환 역시 수율과 수요라는 이중 난제를 풀지 못하면 흑자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글로벌 자문사들의 압박이 더해지며 LG는 배당·소각·ESG 등 모든 영역에서 투명 거버넌스의 시험대에 서 있다. 결국 LG의 진짜 리스크는 겉으로 드러난 폭풍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격랑이다.

■전략 시나리오=제2의 도약을 위한 다섯 가지 카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LG가 제2의 도약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전략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자본정책의 스케일업이다. 단순한 배당과 소각 차원을 넘어, 지주사 차원에서 정례적 소각과 배당 상향, 자회사 현물배당까지 열어두어야 NAV 디스카운트 축소라는 시장의 숙제를 풀 수 있다. 

둘째, 로봇·전장·소재 삼각편대를 강화해야 한다. 로봇은 단순한 장비 판매가 아닌 운영·데이터 기반의 반복적 수익 모델로 전환해야 하며, 전장은 전기차 침체기의 방파제가 될 수 있고, 소재는 수직계열화로 마진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셋째, 데이터 산업화다. LG가 축적한 가전·전장·생활건강 데이터는 생활 OS 설계의 자산이다. 이를 AI와 엣지, 온디바이스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플랫폼 수익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 글로벌 현지화 전략의 정밀화다. IRA와 EU 규제는 단순한 규모 경쟁이 아니라 규정 준수 능력에서 승패가 갈린다. 

마지막으로 구광모 회장의 리더십은 과시형이 아니기에, 더욱 투명한 공시와 실적이 곧 리더십의 언어가 된다. 주요 의사결정의 근거와 수치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순간, ‘무풍’은 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번역될 수 있다.

■조용함의 가격, 그리고 다음 문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광모 체제의 LG는 지난 7년간 스핀오프, 상속세, 자사주 정책, 핀셋형 M&A라는 무소음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바꿔왔다. 지배구조 안정과 현금흐름 관리, 글로벌 현지화 전략이 리스크 흡수력을 뒷받침했지만, EV 사이클 둔화, 중국 소비 부진, OLED 전환이라는 외풍은 여전히 기업의 이익 톤을 흔든다. LG의 성패는 조용함 그 자체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격랑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고, 숫자로 억제하며, 투명한 공시로 시장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시장은 묻는다.

 “구광모의 다음 문장은 어디에 적힐 것인가.”
그 답은 선언이 아니라, 배당·소각·M&A·공시라는 실천 보고서 위에 쓰여야 한다. LG가 보여줄 공실(公實)의 무게가 곧 ‘조용한 제국’의 진짜 가격표이자, 프리미엄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재훈의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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