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찍힌 기업은 끝장난다?
대통령에게 찍혀 곤욕을 치른 기업의 비극과 생존의 역사

[CEONEWS=김병조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6일 국무회의에서 산재 사망 사고를 많이 낸 포스코이앤씨를 콕 찍어 산재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건설면허 취소와 공공입찰 금지 등 가능한 모든 제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을 때 뉴스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저 기업 살아남겠나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국 현대 경제사에서 권력에 찍혀 사라진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재 시대도 아닌데,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자체가 놀랍기도 하고, 특히 기업들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을 것이다.

이에 한국 현대 경제사에서 역대 대통령에게 찍혀 곤욕을 치른 기업과 CEO들의 운명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조명해 본다.

한국식 자본주의의 역설

한국의 자본주의는 국가 주도형 경제 발전 모델 속에서 성장했다. 정부가 대규모 자금과 정책적 지원을 통해 재벌을 육성했고, 재벌은 다시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엔진이 되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권력과 재벌의 동반 성장사였다.

그러나 그 관계는 언제나 긴장으로 얼룩졌다. 권력의 비호를 받을 때는 급성장의 날개를 달았지만, 권력의 눈 밖에 날 경우, 기업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었다. 협력의 이면에는 언제든 기업을 짓누를 수 있는 권력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 산업정책에서 밀려난 기업,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체된 국제그룹, 김대중 정부의 본보기로 쓰인 대우, 노무현 정부의 희생양이 된 SK와 현대아산, 그리고 오늘날 이재명 대통령이 특정 기업명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하는 모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찍히면 끝장난다는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한국 재계가 실제로 경험한 냉혹한 현실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성장과 배제의 양면성

박정희 정권 시절은 전두환 정권처럼 노골적으로 찍어내기식 해체가 일어난 것은 적었지만, 비협조적이거나 권려과 거리가 멀었던 기업은 세무조사와 금융 차별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기업은 구조적으로 쇠락했다는 특징이 있다.

, 박정희 시대의 권력에 찍힌 기업은 주로 중견 재벌과 섬유 기업들이었으며, 이 시기의 교훈은 권력과의 네트워크 없이는 금융, 정책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공업 드라이브를 추진하면서 금성방직, 경방 등 전통 섬유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소외와 쇠락을 겪게 된 측면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몰락은 직접적인 정치보복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산업정책에서 밀려난 구조적 퇴출이 많았다.

일본 그림자와 함께한 롯데 신격호의 살아남기 위한 굴종

롯데그룹은 한국 재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창업주 신격호는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고 한국에 진출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롯데는 일본계 기업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지속적인 압박을 받았다. 반일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세무조사, 인허가 지연 같은 무기가 동원되었다. 특히 롯데호텔 준공 허가 과정에서 권력의 불편한 시선이 집중됐다.

신격호의 대응은 정권 협조였다. 정치인과 관료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살아남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롯데는 재계 5위권으로 성장했지만, ‘권력 친화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끝내 벗지 못했다.

롯데그룹의 사례를 통해 외부적 출신 배경이나 정치적 취약성이 있을 경우, 권력과의 협조 없이는 생존이 어려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 본사 사옥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 본사 사옥

전두환 정권과 국제그룹 하루아침에 사라진 재벌

1980년대 중반, 재계 7위였던 국제그룹은 전두환 정권의 칼날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창업주 양정모 회장은 전후 산업화의 대표적 기업가로 꼽혔고, 국제상사(프로스펙스·르까프), 국제화학, 국제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은 건실한 기업이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부실기업 정리였다. 그러나 당시 국제그룹의 부채비율은 400% 안팎으로, 대우·현대 등 동시대 재벌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재계는 이 조치를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적 의도의 산물로 해석했다.

국제그룹 해체의 배경에는 신군부와의 갈등설이 있었다. 양정모 회장이 군부 권력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야기가 회자 됐고, 전두환 정권은 이를 계기로 정권 비호 기업들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실제로 국제그룹 해체 이후 알짜 계열사들은 현대·LG·쌍용·한진 등 다른 재벌에 인수됐다.

국제그룹은 하루아침에 해체되었고, 양정모 회장은 재계에서 퇴출됐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권력이 직접 개입해 재벌을 제거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당시 재계의 반응은 국제는 부실이 아니라 권력에 찍혀 무너졌다는 것이었고, 해외 언론의 평가는 한국의 기업 환경은 권력자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정주영과 현대 정치적 야망의 파멸

현대는 중동 건설 붐을 타고 1980년대 재계 1위까지 성장했다. 정주영은 기업가 정신의 아이콘이었으나, 동시에 정치적 야망이 컸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그의 결정은 현대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선거 패배 직후, 현대는 권력의 집중 타깃이 됐다. 이어지는 세무조사와 금융 압박은 현대건설·현대전자 등 주요 계열사에 직격탄이 되었고, 결국 그룹은 와해 수순에 들어갔다.

문민정부는 정경유착 청산을 내세웠찌만, 정치와 기업의 긴장은 여전했다. 정권은 채벌 총수의 정치 참여를 용납하지 않았다. 정치적 야심은 곧 정권 도전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곧 기업 압박으로 이어졌다.

현대는 왕자의 난을 겪으며 건설·자동차·중공업 등으로 쪼개져 재계 1위 자리에서 몰락했다.

현대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경영자의 정치 참여는 기업 전체를 리스크에 노출시키며, 정권과의 충돌은 대기업조차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재계 반응은 정 회장의 대선 출마는 기업가의 정치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룹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도박이었다는 것이었고, 해외 언론의 평가는 한국은 정치 권력과 대기업이 얽혀 있어, 정권과의 충돌은 기업에 치명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대우 김우중 세계경영 신화의 붕괴

1990년대 대우는 세계경영이라는 이름으로 급성장했다. 김우중은 단기간에 대우를 글로벌 기업군으로 키웠지만, 그 성장의 상당 부분은 빚에 의존한 것이었다.

IMF 이후 구조조정 국면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대우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재벌 개혁의 본보기로 대우를 지목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대우는 재계 2위였다. 자산이 약 78조 원이었고, 매출은 71조 원이나 됐다. 그러나 1998~1999년 부채가 28조 원에서 47조 원으로 폭등했다. 결국 대우는 1999년 해체됐고, 김우중은 해외 도피와 귀국 후 구속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대우의 과도한 차입경영이 원인이었지만, 정부가 재벌 구조조정 본보기로 대우를 지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우의 해체는 단순한 기업 실패를 넘어, 권력이 관리 가능한 몰락을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재계에서는 정부가 재벌 구조조정의 본보기로 대우를 선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뉴욕타임스는 대우의 몰락은 아시아식 재벌 모델의 종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SK 최태원 재벌 개혁의 본보기로 지목된 희생양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재계는 긴장했다. ‘재벌 개혁기조 아래 누군가는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돌았다. 그 대상이 SK였다.

2003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은 최태원 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분석 규모가 약 15천억원이나 됐다. 최태원 회장의 구속으로 재계는 충격에 빠졌고, SK는 존립 자체가 흔들렸지만, 반도체·통신이라는 신사업 덕분에 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권은 필요할 때 언제든 특정 기업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불안을 재계 전반에 각인시켰다.

당시 재계에서는 정권이 SK를 희생양 삼아 개혁 의지를 과시했다는 반응을 보였고, 국내 언론은 최태원 회장의 구속이 재벌 개혁의 신호탄으로 봤다. 해외 언론도 한국 정부는 정치적 메시지를 위해 대기업 총수를 구속시키는 드문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삼성 이건희 권력과 타협, 그리고 복권

삼성은 절대적 1위 재벌로서 정치 권력 입장에서는 늘 견제와 필요의 대상이었다. 권력과 공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재벌 개혁을 추구하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견제의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 비자금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기소와 퇴진을 불러왔다. 정치권은 삼성의 압도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상징적 조치로 해석했다.

이건희는 경영에서 물러났으나 불과 몇 년 뒤, 이명박 정부는 그를 사면했고, 이건희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삼성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며 오히려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사례는 권력의 필요에 따라 재벌은 희생양이자 동시에 국가적 자산으로 취급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당시 재계에서는 삼성마저 정권 견제를 피할 수 없다는 교훈, 그러나 사면 복귀는 예외적 지위의 상징이라는 반응이었다. 해외 언론도 한국은 삼성 없는 경제를 상상하기 어렵다. 정부와 삼성의 관계는 견제와 공생의 양면성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정몽헌과 현대아산 대북사업의 비극

정몽헌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속에서 대북사업을 전개했다.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협의 상징적 인물로서 평화경영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 초반, 대북송금 특검이 시작되며 정몽헌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끊임없는 조사와 여론의 비난 속에서 그는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북사업을 하던 현대아산은 몰락했고, 현대그룹도 사실상 해체 수준으로 축소되며 쇠락했다.

이 사건은 정치적 노선 변화가 기업의 운명을 순식간에 뒤바꿀 수 있음을 상징한다. 정치 노선이 바뀌자, 대북사업은 순식간에 권력의 표적이 되었다.

이 사례는 정권 교체와 정책 변화가 기업 존립을 좌우할 수 있다는 비극적 사례였다.

당시 재계는 현대그룹은 대북사업과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반응이었고, 해외 언론 가운데 BBC한반도의 정치적 긴장이 기업 총수의 생명까지 앗아간 드문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시대별 정치 권력과 기업의 운명

박정희~전두환 시대에는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을 해체 또는 몰락시킬 수 있었다. 국제그룹과 현대그룹, 대우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거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정치자금을 주면서 위기를 모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는 군사정권 때처럼 강압적이고 노골적인 압박은 없었지만, 구조조정이나 특검을 통한 압박이 심했다. 이에 따라 그룹이 몰락의 길을 걷거나 구속 또는 사망 같은 개인적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명박 이후~현재는 직접적 해체보다는 검찰 수사, 규제, 여론 압박으로 기업을 견제하고 있다. 기업 자체의 존립보다는 CEO 교체, 이미지 타격, 제도적 규제가 뒤따르는 방식이다.

현재의 이재명 정부에서도 특정 기업이 권력의 공개적 비판이나 견제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노동·산재 문제를 직접 겨냥해 기업명을 거론했다. 아직 기업 몰락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사회적 낙인 효과가 상당히 크다.

현재는 권력에 찍히면 바로 해체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특정 기업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 그 자체가 기업 리스크다. 국제그룹이나 대우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구조는 사라졌지만, SPC·포스코이앤씨 같은 사례는 ESG·산재 규제 시대의 새로운 권력-기업 갈등 양상을 보여준다.

대통령에 찍히면 끝장난다”, 아직도 유효한 권력의 그림자

2025년 현재, 한국 재계는 여전히 정치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정권 교체기에 따라 특정 기업이 유불리를 겪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 환경 변화와 맞물려, 정치 리스크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경제 발전의 역설은 바로 여기 있다. 국가 주도의 압축 성장은 재벌을 키웠지만, 동시에 정치 권력에 종속시키는 구조를 낳았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권력과의 타협을 통해, 무너진 기업들은 권력과의 갈등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남겼다. 결국, 한국의 재벌사(財閥史)는 곧 권력사(權力史)였다.

이 역사들은 한국식 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권력과 기업은 공생했지만, 갈등할 경우 기업은 쉽게 무너졌다. 2025년 오늘날에도 CEO들은 여전히 정치적 리스크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권력의 그림자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통령에게 찍히면 끝장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자, 한국 기업 생태계의 뿌리 깊은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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