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미국의 관세 정책이 전 세계 무역질서를 흔들어 놓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전승절 80주년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밀착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북·중·러 밀착이 국내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묘한 시점에 한자리에 모인 북·중·러
묘한 시기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최고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MAGA’를 외치며 관세 정책으로 우방국마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시점이라서 묘하다. 전통적인 미국 우방국들이야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정책에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미국과 등을 질 가능성도 있어서 북·중·러의 강력한 연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전승절 행사에는 26개국 정상과 정부 수뇌부가 참석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비롯해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파키스탄, 네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벨라루스, 이란, 쿠바, 캄보디아, 짐바브웨, 세르비아 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도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했지만, 미국과 일본, 서방 선진국 정상들은 단 한 국가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여국의 면면을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력의 대척점에 있는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차하면 똘똘 뭉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섬뜩한 기분도 든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신냉전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진핑이 기념사에서 “세계는 다시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한 대목이 그런 우려를 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가까운 우방마저 곤경에 처하게 하는 반면, 미국의 대항마인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은 물론 다른 우방들도 포용하는 상반된 모습을 취하고 있는 점이 대조적이다. 특히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는 북한의 존재감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돼 우리로서는 매우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북·중·러 밀착의 배경과 성격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밀착의 배경과 성격은 3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안보적 측면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고 군사기술을 제공하게 됐고, 중국도 전략적 지원을 하는 등 3국 간에 삼각 구조가 형성됐다. 이는 군사적 연대뿐 아니라 에너지와 식량, 무기 교환까지 확대되고 있다. 말하자면 안보협력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측면이다. 러시아는 석유, 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고, 북한은 저임금의 노동력과 군수물자를 담당할 수 있으며, 중국은 제조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는 식으로 상호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보완 관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서방 견제 구도다. 미국과 EU 중심의 제재 체제에 대한 대응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반(反) 제재 블록’이 형성되는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북·중·러의 밀착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동북아 지정학 질서를 재편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국제 제재로 인해 에너지와 무기 수출로 활로를 찾고 있으며, 북한을 ‘군수품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군사기술과 인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에너지와 식량, 외화 지원을 확보한다. 중국은 ‘전략적 완충지대’를 강화하며, 서방의 압박 속에서 자원, 군사, 외교적 입지를 넓히고 있는 꼴이다.
이 삼각축은 단순한 편의적 협력이 아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지속 가능한 결합’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기업에 미치는 4대 충격
이같은 북·중·러의 밀착과 연대는 한국 기업들에게 4가지 충격을 주고 있다.
첫째는 에너지·원자재 리스크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중국과 북한을 우선시하면서 한국 기업은 LNG·석유 확보 비용이 늘어나거나 불안정해질 수 있다. 또 희토류와 같은 전략자원이 중국과 러시아 블록으로 집중되면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도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안보 리스크 증폭이다.
북한의 군사 도발 빈도 증가 가능성은 한국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또 북·중·러 합동 군사훈련은 외국 투자자에게 ‘한국 리스크’를 각인시킨다. 이는 외국인 자본 유입을 저해하고, 기업의 글로벌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다.
셋째는 글로벌 규제 압박이다.
북·중·러 연계 기업과 거래한 한국 기업은 미국의 ‘세컨드리 보이콧’. 즉 2차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특히 조선, 에너지, 방산 업계는 거래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실사와 법적 검증 없이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넷째는 시장 경쟁 심화이다. ‘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협력이 확대되면, 한국 기업이 강점을 보이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는 한국의 기술 우위ㅜ를 희석시킬 수 있다.
한국 기업의 대응전략
한국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4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공급망 다변화다.
원재재와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 호주, 중동, 아프리카와의 자원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소재는 한·미·일 공급망 연대 내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둘째는 글로벌 제재 준수 강화다.
미국과 EU의 제재를 정밀하게 모니터링하며, 해외 법률 자문을 통해 거래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컴를라이언스 관리팀‘을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해 세컨더리 보이콧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는 안보 리스크 내성 강화다.
해외 투자자 및 글로벌 파트너에게 ’한국 리스크 관리‘ 전략을 적극 설명해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금융·보험상품(예: 지정학적 리스크 해지)을 통해 충격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신시장 개척과 차별화 전략이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에서 중국 기업과의 단순 가격 경쟁을 지양하고, ESG·브랜드 신뢰도를 앞세운 차별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동시에 인도·중동 등 비(非)중·러 블록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별 시사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희토류와 반도체 장비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하며, 미·일 협력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자동차 업체들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중국 기업과의 가격경쟁을 피하고, 친환경차, 스마트 모빌리티로 차별화해야 한다.
포스코와 LG에너지솔루션 등은 배터리 핵심소재 조달을 위해 인도네시아, 호주와의 장기 계약을 강화해야 한다.
조선, 방산업체는 러시아, 중국과의 거래를 피하면서 미국, 유럽 발주를 확대해 제재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한국에겐 도전이자 기회
북·중·러 밀착은 한국에게 복합적인 함의를 제공한다. 안보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후방을 확보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강경 태세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적 태도는 국제 제재 체계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북한의 제재 회피를 용이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북한과 러시아간 군사협력과 중국의 무기 과시는 한반도 안보 환경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며 확장억제의 실질적 강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 밀착은 동시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남북 접점이 확대되면서 한국은 중추국가로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APEC, G20, UN 등 다자채널을 활용한 중추국 외교는 한국의 외교적 존재감을 강화할 수 있으며,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프레임워크를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협상 기준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 기업에게 분명 위협이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블록경제 시대에 한국 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공급망 재편, 리스크 내성 확보, 신시장 개척이라는 3대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다. 위기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무대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