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미국은 어디로 갔을까
[CEONEWS=조성일 기자] 우리나라만을 예외로 하고, 온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소식을 대서특필하며 야단법석을 떤다. 예측 불허의 트럼프 행보를 놓고 각기 자기 나라에 미칠 유불리를 따져보느라 분주한 거다.
여기서 ‘우리나라만 예외’라 한 건 지금 우리가 그런 걸 따질 형편이 못 되어서 한 말이다. 굳이 무슨 일 때문이라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더 알고 있다. 어차피 하고 또 하는 말이 될 터인데 굳이 내 말까지 얹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어서 그 얘기는 입을 닫겠다.
아무튼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취임이라는 화두는 내게 이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동안 우리에게 어떤 나라였을까.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나라일까.
나는 외교나 국제정치에 밝은 편이 아니라 인상적 비평 수준의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미리 고백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겠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에게 무척 고마운 나라였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때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라는 반미 구호가 나오긴 했어도, 대체로 ‘동맹’이란 낱말로 두 나라의 관계를 설정했다.
‘양키 고 홈’은 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인들이 북부인들을 향해 외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은 스포츠에서 미국 출신 선수가 삽질할 때 그 선수를 바꾸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이 의미의 변천사만큼 한미관계의 성격은 달라졌다. 첨예한 정치적 용어가 이젠 농담처럼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된 거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는 어제오늘 맺어진 사이가 아니다.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신음하던 우리가 해방되자 점령군처럼 이 땅에 들어와 본격 인연을 맺었다. 물론 38선을 가운데 두고 이북은 소련(현 러시아)이 들어와 영향권 아래 두게 된다.
이렇게 38선 이남을 통치 아닌 통치를 하게 된 미국은 이후 매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질을 해대며 우리의 후견인처럼 굴었다. 솔직히 불편했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그냥 감수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급발전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참전하여 우리의 전선에서 피를 흘렸다. 휴전 후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잠시 멈춤’ 상태의 한반도를 감시하기 위해 남았다. 그렇게 우리나라와 미국은 이른바 ‘동맹’이 된다. 한편에선 ‘피’를 나눈 ‘혈맹(血盟)’이라는 표현으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무척 가깝다는 걸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특히 요즘 들어 이 ‘동맹’이란 낱말이 더 자주 소환된다. 미국 편중 외교에 대한 거센 비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만 쳐다보고 살 수 없다. 1기 때의 트럼프를 보지 않았는가. 뭐 “America First!”라는 구호로 상징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우리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 똑똑히 보았다.
우선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대폭 올리지 않았는가.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체결했던 ‘한미FTA’마저 미국이 불리하다며 재협상까지 했다. 정말 미국 우선주의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매운맛을 톡톡히 보았다.
1기 트럼프가 한 가지 우리에게 의안이 되게 한 일은 있다. 이마저도 수포가 되었지만,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관계를 누그러뜨리려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보다 훨씬 피부에 와 닿는 것이어서 솔직히 2기 트럼프에게 살짝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긴 한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민주주의가 가장 모범인 나라로 꼽혔다. 그래서 비민주적 행태가 보이면 ‘미국처럼’이란 말로 응전하곤 했다.
그런데 이 미국이 정말 민주주의 국가인가 싶다.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상처를 남긴 미 의사당 난입자들을 사면하는 일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행정명령’이라는 구실로 다른 나라와의 관세 등을 일방적으로, 아니 싸구려 말로 하면 ‘제멋대로’ 부과한다. 우리나라와는 주한미군 주둔비는 물론이거니와, 한미FTA 재협상도 또 거론된다.
여기서 나는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의 무기력을 본다. 이를 제지하는 방법이 없다는 절벽과 마주친다. 그래서인지 트럼프는 이런 짓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오로지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양심에 털이 난 미국만 있다. 우리가 알던 미국은 어디로 갔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