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기자] 최근 2심 무죄 판결을 받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사건은 단순한 법률적 쟁점을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거울’이다.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유·무죄’가 아닌 ‘시스템의 실종’에 있다. 우리는 이재용 개인의 운명보다, 왜 10년째 같은 논쟁을 반복하는지 물어야 한다.
‘경영권 승계’라는 이름의 합리화
이번 재판의 쟁점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불공정성이다. 1심은 이 회장이 합병을 통해 경영권을 강화한 사실을 ‘배임’으로 규정했지만, 2심은 “주주 이익 침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뒤집었다. 문제는 이 같은 논리가 과거 20년간 재벌 경영권 사건에서 늘 반복됐다는 점이다.
법원은 매번 “기업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논리로 재벌 오너의 행위를 합법화해왔다. 그러나 이는 ‘기업=국가’라는 편향된 프레임 속에서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한 탓에, 공정과 정의의 저울추를 무시해온 결과다.
삼성, 그리고 ‘K-자본주의’의 함정
삼성전자는 한국 GDP의 15%를 차지하는 초거대 기업이다. 그러나 이재용 재판은 그 위상만큼 한국 사회가 직면한 딜레마를 증폭시킨다.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은 TSMC와의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경영권을 오너 일가에 집중시키는 ‘지배구조 후진성’과 맞닿아 있다. 애플·테슬라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10년간 주가를 1,000% 이상 끌어올렸지만,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80% 상승에 그친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삼성의 지배구조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라고 지적해왔다. 2023년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삼성전자를 ‘윤리적 기준 미달’로 투자 제한 리스트에 올렸다. 이재용 재판의 최종 결과가 삼성의 ESG 등급에 미칠 영향은 실물 경제보다 더 클 수 있다.
검찰의 상고, 그리고 ‘진퇴양난’의 법정
검찰이 상고한 배경에는 ‘법의 잣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2심 판결문의 “증거 부족” 이유는 1심과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됐지만, 이는 오히려 사법 시스템의 비일관성을 보여준다.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이재용 회장이 복귀할 수 있는 ‘제3의 길’(집행유예·선고유예)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한국 사법이 재벌에 대해 ‘엄중하되 관대한’ 태도를 고수해온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위기의 기회를 삼성과 한국에 묻다
이재용 재판은 삼성과 한국 경제가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다.
삼성에게 기자로서 권한다. “오너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애플의 팀 쿡, MS의 사티아 나델라처럼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글로벌 투자자 신뢰를 회복할 때다. 아울러 정부에게 기자로서 요청한다. ‘재벌 특혜’와 ‘규제 과잉’ 사이에서 방황할 것이 아니라, 소버린 웨얼스 같은 국부펀드를 설계해 재벌의 초과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민에게도 묻는다. “삼성은 너무 크기 때문에 실패할 수 없다”는 맹목적 신뢰를 버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엄정하게 평가할 줄 아는 시민의식을 키워야 한다.
이재용 재판의 최종 판결은 삼성의 단기 경영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이미 한국 경제의 체질적 한계를 드러낸 데는 변함이 없다. “과연 우리는 재벌 중심 성장 모델을 버릴 용기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이재용의 다음 세대도 똑같은 재판정에 서게 될 것이다. 법원이 유·무죄를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가 ‘삼성 의존증’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지혜를 찾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