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헌법 잘 계시느냐?

 

[CEONEWS=조성일 기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가 쓴 가인 김병로라는 책이 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1887~1964) 선생의 일대기를 다뤘다.

이 책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헌법과 법률 수호에 대한 진통을 고스란히 빼닮은 사건이 나온다

거창양민학살사건 국회 조사단장으로 활동하던 서민호 의원이 19524월 지방의회의원 선거 감시차 전남 순천에 갔다. 이날 저녁 840분쯤, 서 의원 일행은 순천의 평화관이란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 이곳엔 광주에서 출장 온 서창선 대위도 있었다.

이들은 어찌어찌하다 서로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런데 말다툼이 격해지면서 서 대위가 먼저 총을 꺼내더니 위협한답시고 두 발을 쏜다. 그러자 이에 위협을 느낀 서 의원이 자신이 갖고 있던 권총을 꺼내 서 대위에게 쏘아 살해한다.

그런데 1심 재판부를 맡았던 안윤출 판사가 정당방위라며 무죄를 선고한다. 또 국회도 서민호 의원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이를 무시했다. 이때의 정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제안했지만 국회가 되레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해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맞서고 있었던 상황이다. 특히 서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연장 목적의 개헌에 반대하였던 터라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법원의 판결을 거부할 명분도 무시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안윤출 판사는 서민호 의원에게 구속집행정지결정을 내려 석방한다.

난리가 났다. ‘백골단이나 땃벌떼같은 정치 테러 단체가 안윤출을 죽이라고 난장판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안 판사는 석 달 동안 처가가 있던 경기도 피신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이 하루는 이 대통령의 관저에 올라갔다. 이승만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게 대뜸 이랬다고 한다.

요즘 헌법 잘 계시느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법무부 장관은 어리둥절해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무슨 말씀이십니까?”라며 되물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이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대법원에 헌법이 한 분 계시지 않느냐?”

이승만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원칙론자인 김병로 대법원장에게 못마땅함을 이런 식으로 표시한 거다.

지금 우리 사회를 한번 보라. 그때의 상황을 고스란히 빼다닮지 않은가. 김병로 대법원장과 안윤출 판사의 준법정신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우리는 여러 달 동안 계엄령’ ‘내란’ ‘탄핵과 함께 위헌’ ‘위법이라는 낱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한두 번이지 계속 먹으면 질리게 마련이다. 자칫 다시 등장해서도 결코 안 되는 이 용어들이 너무 쉽고 흔하게 입에 올리다 보니 양치기 소년의 경고쯤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 우리 사회의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자영업자들이 피눈물 흘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은가.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누가 지갑을 선뜻 열겠는가. 비상계엄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에 누가 여행을 오겠는가. 이런 나라의 제품을 어느 나라가 사주겠는가.

내란 피로도가 극에 치달았다. 계엄을 막아냈던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은 이제 내란을 끝내고 다시 일어서는 힘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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